에이와타 / 이것과 그것

히비키가였는데 히비와타였습니다

그 머리는 아주 특별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건 없을 거야. 


에이치는 우연히, 아주 우연히… 부친의 지인이 운영하는 경매장에 따라갔다가 그것을 얻었다. 경매에 부치는 건 주로 그런 물건, 어떤 예술가의 낡은 일기장이나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아니면 역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건축물의 조각이나 저주받았다고 하는 을씨년스러운 인형(글쎄, 일단 좀 씻어서 햇볕 좋은 곳에 말리면 부정이 좀 달아날 것 같은걸) 정도였는데, 물론 그것들은 미관부터가 흥미를 끌지 못했으므로 경매장 안의 인테리어 따위를 살펴보기나 할 뿐이었다. 아름답지 않잖아. 곰팡내 나는 일기장을 끌어안고 잠들 수는 없는 일이다. 

얼마나 시간을 죽였을까, 에이치가 문득 고개를 들자 머리통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양 바르게 앉아 있었다. (머리통이 앉아 있을 수 있나? 정정하자. 놓여 있었다) 왼쪽 눈을 가로질러 뺨 근처까지 형편없이 부서져 부품이 보이는 중대한 실수만 없었어도 진짜 사람의 머리를 박제시켰나, 착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에이치는 그런, 의도치 않은 흠집에 흥미를 느꼈고 무엇보다도 그 머리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어디를 구르다가 발견된 건지 뺨에는 닦아내지 않은 검댕이 가득했고 머리카락엔 오물이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손에 넣는 건 사흘이면 충분했다. 터무니없는 값을 치르고, 이게 '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작성하고, …… 포장 같은 건 됐으니까 빨리 보내기나 하면 좋을 텐데. 하릴없이 그러다 보면 상자를 뜯는 날이 온다. 미련하게도 테이프를 직접 뜯어 곱게 다듬은 손톱 끝이 상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머리가 온갖 완충재에 둘러싸여 빛이 났다. 양손에 쥐고 들어 올리면 소리도 없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에이치의 손등을 간지럽힌다. 인공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속눈썹과 생기 있게 물든 뺨. 에이치는 방안을 가득 메운 그것의 존재감을 느낀다. 어라.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이…


그것이 눈을 뜬다.

말했다. "안녕하세요!"


미안, 에이치는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들어 떨리는 손끝으로 다시 움켜쥔다. 아까보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네가 말한 거니?" "네, 제가 아니면 대체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복화술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건 어렵겠죠."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구 뛰고 있다. 당신, 숨을 쉬세요. 곧 멈출 것 같군요. 정교하게 뒤엉킨 은빛 실 너머의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깜빡이며 이게 현실임을 알려 주었다……. 맙소사. 저는 제가 죽은 줄 알았어요! 머리는 그렇게 입을 벌려 말한다.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르게, 인상이 변한다. 우아한 얼굴은 익살맞게 웃었다. 그것의 눈이 휘어진다. 절 구해 주신 건가요?

아니, 아무도 너를 구하지 않았어… 에이치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혀를 써서 부정하지는 않는다. 네가 내게 은혜를 느끼면 좋을 텐데. 너덜거리는 부품이 사방으로 마구 튀었다. 나사가 빠지고 굴러서 침대 아래로 들어간다. 

너는 잠깐 입을 닫고 있는 게 좋겠는걸.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분으로 구성된 부품, 그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최대한 비슷하게 써먹을 수 있는 걸 집어넣어. 망가지지 않을 정도라면 충분해. 에이치도 모르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겠느냐마는, 고용인들은 최선을 다해 그렇게 했고, 그래서 머리에게는 왼쪽 얼굴을 덮는 가면이 생겼다. 눈을 달아 줄까, 말했더니 필요가 없단다. 대신 초점이 없고 굴러가기만 하는 동그란 빨간 공을 집어넣었다. 마음에 든 모양이었는지 종일 눈 구르는 소리가 났다.

씻기고 벗겨내서 집어넣고 땜질한 그것을 에이치는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는다. 밤이 되어 커튼을 쳤다. 에이치는 유일한 불빛을 꺼 없앴다. 사방이 캄캄하다. 머리카락이 물결쳐 내려와 한쪽 베개를 덮었다. 하나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난다. 에이치는 엎드려서 그것을 마주 보았다. 이야기를 해 줘. 너는 어디서 왔고, 무엇을 했고, 무얼 하고 싶어 했고, 이름이 뭔지…….

머리는 웃는다. 고작 그런 게 궁금하신가요? 저는 진귀한 이야기를 수만 개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대단하고 거창하고 허풍 떠는 가짜 같은 이야기를요… 당신 머리맡에 벌들이 무리 지어 날갯짓하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파도가 치고 눈물이 떨어지고 칼이 빗나가는 언어를 뿌려 드릴까요, 잠에 빠지기 전에 제가 먼저 질문하죠. 머리는 웃는다. 웃는다. 웃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적어도 눈을 뜬 이후부터는.

"이름이 뭡니까?"



……

살아 있는 머리를 사랑하게 되다니, 역시 그 빌어먹을 핏줄은 어디 안 간다고. 무심하고 멍청한 조부와 허영심 많은 어머니를 닮아 기괴한 것에 끌리는 성정을 지닌 텐쇼인 에이치는 당연하게도 그렇게 되었다. 반쯤 눈을 감고 다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이야기가 머리에 들어와 멋대로 휘젓고 활개를 치다 신경을 끊어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분노는 가라앉고 한숨은 날아가 깊은 밤에는 행복만 남는다. 

폭군을 달래는 그것처럼…… 머리는 에이치를 천천히 그리고 아주 깊게 허물어뜨린다. 에이치의 정신은 이미 침대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다. 사랑을 하는 눈동자. 그것은 에이치의 비취색 눈동자 안에서 별무리를 본다. 사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돌가루도. 에이치의 손가락은 아주 가늘고 섬세한 실타래를 건드렸다. "너는 머리카락이 무척 길구나." 여전히 에이치는 그것의 이름을 몰랐으나 그저 사랑할 따름이었는데, 그건 퍽 소모적인 행동이었다. 

"제게 남은 마지막 유산이라서요…" 길게 이어진 실 끝을 따라가면 흔적이 남는다. 분리된 기억과 부서진 파편, 우주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 자수정과 그를 이루던 부품들. 확신만 있었더라면 에이치는 당장 그것을 구하러 갔을 텐데.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머리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직접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나'를 이루던 것들이 그곳에 있는데 '내'가 가지 못한다니 말도 안 돼…….

그래, 머리는 두 번 다시 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 번 추락한 몸이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밀랍으로 이어 붙인 날개는 하늘의 열기에 녹아떨어지고 높이 쌓아 올린 탑은 혀를 꼬는 것만으로도 쉽게 무너지는데 하물며 머리통만 남은 네가 무슨 수로. 에이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밤마다 이야기하는 그것에게, 목이 마르지 않니, 물었을 뿐. 전 식물이 아닌데요? "그러니까 제대로, 버젓한 컵에다 따라서 주세요." 에이치는 물론 그렇게 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머리는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맛도 안 나요. "당연하지, 물은 원래 그런걸."



………모든 분노도 진노도 증오도 혐오도 저주도 사라진 어느 날 밤,

생명을 문질러 깎아가며 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것'을, 그것은 기특하다 여긴다. 후후. 웃었다. "팔이 있었다면 당신을 껴안아 줬을 텐데." 에이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몸을 줄까?"

"나와 비슷하게, 아니, 더 괜찮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이야기 값 치고는 후하게 느껴지네요."

에이치는 그것의 머리카락을 땋고 있었다. 아주 길어서 침대 양 모서리에 묶어도 남을 정도의 길이였다. 이야기가 유독 긴 날이었고, 에이치는 편안했으나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침까지 발소리가 없을 이 공간에서. "만들어 준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머리는 굴러다니다가 그리 대답했는데,

"하지만 넌 도망가버릴 거잖아?"

"세상에." 그것은 조금 아연한 얼굴로, "도망이라뇨." 그건 에이치에게 '네가 날 소유한 적이 있었느냐'란 반문으로 들렸고,

"너는 돌아갈 거지… 몸만 있으면 그렇게 할 거지, 너를 찾으러 떠나 버릴 거지."

그것은 이것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는데, "텐쇼인 에이치 군……" 이름을 발음하기 위해서였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의심해 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물을 것이다. 입을 벌려서. 고작 온전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한쪽 눈을 가진 머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침대 위를 제외하고는 없으니까…

는 누구죠?

는…

히비키 와타루였던 것 같은데…

글쎄, 기억하니? 

하지만 에이치가 그 이름을 입에 담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를 구하지 못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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