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劉原

1차 by 노픈

한 순간, 한 도깨비가 태어났다. 아무도 없는 곳, 그저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만 맴도는 곳에서. 오직 달빛만 눈치챘을 그의 머리카락은 새까맸고, 눈동자도 새까맸으며, 그의 몸 위로 내려앉은 옷자락도 새까맸다.


劉原.

죽일 유, 근원 원.

처음부터 자기 자신이 없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태어날 때는 이름이 없었고, 그를 거둔 요괴들이 지어 준 이름은 있는데, 그들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기억에서 지워졌다.


유원은 한국 도깨비이다. 겉보기엔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이유로 인간에게 친근할 것이나, 아직 인간과 만난 적은 없다.

체온이 상당히 높아서, 하루 종일 체온을 조절하는 데만 신경 쓰기 바쁘다. 그럼에도 노력이 아까울 정도로 인간에 비해 월등히 따뜻하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뜨거워져서, 그는 항상 자신의 신체에 온 집중을 다하고 있다. 답지 않게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는 면이 이 때문.

근처에만 다가가도 따뜻할 정도라서 추위를 타지 않는다. 반대로 더위는 참 많이 탄다. 그런데도 얼굴과 손발 이외의 살갗을 내 보이는 일이 없다.


유원은 밝고 사근사근한 성격이다. 차분하고, 물론 그렇게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이성적이다. 친구들 앞에 앞장설 수도 있고, 뒤에서도 잘 받쳐 주며, 함께하기 편하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스스로는 잘 모르고 있어도, 그의 친구들도 그를 편하게 여기지 않을까.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자신의 친구들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 친구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는 솔직했다. 친근한 성격과 더불어 솔직한 농담도 쉬이 하곤 했는데,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의지가 없음이 느껴지는 정도의 농담이었다.

또한 정에 약하다. 친구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일보다 친구들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사실 자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도 않기는 한다.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내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마 이에는 자신의 체온을 조절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쓰는 나머지, 다른 쪽으로는 생각이 미치지조차 않는 것이 한몫할 것이다.


손에 든 홍색 부채로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기운만 있다면 그가 못 만들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만들고자 하는 것에 관해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그가 만들어낼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다.

생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겉모습이 같은 무언가는 만들어 낼 수 있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두루마기에 가리운 허리께에 차고 있는 청색 부채로는 무언가를 없앨 수 있는데, 대체로 자신이 만들어 낸 것에 한한다. 더 복잡하거나 더 큰 것들, 심지어는 살아 있는 것들까지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생물에 능력을 쓰고 나면 누군가가 자신을 저주하는 환청을 듣는다. 동물이든 곤충이든 요괴든 인간이든 결과는 같다. 기분 나쁜 낯선 목소리가 수없이 그를 저주한다. 누군가에게도 당당할 수 있을 만큼 선하게 살아 온 그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도 없게.

후에 유원은 '그 일'에 관한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으며, 청색 부채의 힘의 세기를 알지 못한다. 부작용 또한 아는 바가 없다. 그가 아는 것은, 청색 부채는 굉장히 쓰기 꺼려진다는 것뿐이다.

홍색 부채보다 청색 부채의 힘이 더 강하다. 다시 말해, 홍색 부채를 쓰는 데에보다 청색 부채를 쓰는 데에 힘이 덜 든다. 그가 청색 부채는 눈에 띄게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부채를 손에 쥐어야만 능력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채는 그에게 종속되어 있다. 아무리 내던지고 불태우고 적셔 버려도 부채는 어느샌가 멀쩡한 모습으로 그에게 돌아와 있다. 청색 부채의 능력을 처음 쓴 날이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절망스러웠던 날인 이유이다.

부채를 사용하는 조건은 간단하다. 부채가 유원의 신체 일부에 닿아 있어야 하고, 유원이 마음을 먹어야 하며, 대상에 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유원이 직접 해야 한다. 유원 이외의 사람은 부채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조건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다. 함부로 타인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됐기 때문에 그는 타인을 웬만해서는 무조건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게 그가 정에 약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위에 서술했지만 세 번째 조건이 그가 많은 것들을 만들어낼 수 없는 이유이다.

능력을 사용하면 어둡고 진했던 부채의 색이 밝아진다. 능력의 정도에 따라 완전히 하얘지기도 한다. 홍색 부채를 사용할 때에는 왼눈에 붉은빛이 돌고, 청색 부채를 사용할 때에는 오른눈에 푸른빛이 돈다.


한 순간, 한 도깨비가 태어났다. 아무도 없는 곳, 그저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만 맴도는 곳에서. 오직 달빛만 눈치챘을 그의 머리카락은 새까맸고, 눈동자도 새까맸으며, 그의 몸 위로 내려앉은 옷자락도 새까맸다.

유원은 산속에서 홀로 태어났다. 어둠이 내린 산속, 그의 주위에 아무도 없던 것은 당연했다. 유원은 자신의 존재 의의조차 알지 못했다. 그냥 태어났고, 존재하기 때문에 살아갔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의미 없이 돌아다니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그의 앞에 두억시니 한 쌍이 나타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짧은 상의 후에 유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혼자서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던 유원은 별생각 없이 그들의 손을 맞잡았다.

그들의 집은 유원이 태어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조금 걷고, 조금 뛰어서 도착한 곳엔 꽤 아늑한 오두막이 있었다. 둘이 살기엔 넓어 보였다. 유원을 데려 온 데 큰 이유는 없었지만, 그들은 적적하던 집이 활기를 찾았다며 기뻐했다. 그들의 행복에 유원도 행복했다.

그들은 유원을 정성을 다해 키웠다. 좋은 옷을 내어 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으며, 그에게 삶의 의미를 불어넣었다. 그들은 유원의 부채와 그 능력을 보고 자랑스러워했고, 유원은 그런 그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능력을 썼다. 그들은 유원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유원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기를 바랐다. 유원은 그들을 사랑했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도 잘 몰랐으나,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했다.

그들에게서 유원은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그들은 그것을 기뻐했으며, 그 행복은 꽤 오래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삶에서의 긴 시간은 아니었다. 육십 년 정도 지났을 때, 그렇지만 유원이 아직 어린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두억시니들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났다.


양동생 이야기.


그 이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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