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특수계통 이능력자에게 선택권을 주어라!

2화

오늘의 이능력자 협회 안내 센터의 TIP

헌터 등록을 통한 서비스 가입 도중 자꾸 에러가 생긴다고요? 혹은, 문의하거나 직접 본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헌터 등록에 있어 사이트가 버벅거린다고요? 그렇다면 사이트 앞에 혹시 pp라는 단어가 붙어있진 않은지 확인해 주세요. 이는 가드너 협회의 약자로, 헌터 협회가 아닙니다! 헌터 협회는 pp가 존재하지 않는 사이트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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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F

사이프는 타인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회로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 절차가 남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탓에 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뜻이 담겨있을 거라 어중떠중이들이 믿곤 해서 그렇지. 차고 있던 검을 꺼내며 자칫 부상을 입힐 수도 있는 아군의 위치를 확인한다. 에인즈는 바닥에 손을 짚어 앉기 좋은 자리를 만들더니, 금방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기에 좋은 그늘을 흙으로 빚어둔다. 마치 손가락 장난이라도 치듯 모래를 문지르고 거친 흙을 새끼손가락으로 몇 번 그어두다 보면, 그 근방에 있던 땅이 흔들리며 에인즈가 의도한 방향과 일치하는 움막이 생긴다. 아니면 단순히 파라솔 모양의 차양이 생기거나. 이번에는 테한이 첫 번째로 들어서지 않고, 티-보 쪽을 살피며 조심조심 걸어간다. 보통 더위가 심한 곳에선 이렇게 에인즈가 쉴 곳을 만들어주기에 이런 그늘이 생기면 걱정하지 말고 들어오면 된다고 나름대로 고참 행세 하는 테한의 모습에 웃음이 픽 나온다.

“사이프. 방금 웃었지? 나 방금 다 봤거든요! 안 했다고 거짓말할 생각하지 말아!”

“부정하진 않았습니다만.”

“그럼 날 비웃었다고 인정하는게 맞다 이거지!”

“아직 긍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테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을 갈무리하고 저 멀리 그어진 가이드-세이프티 라인 너머의 몬스터를 바라본다. 조사 인력 중 소수가 다섯에게 다가오며 간단한 정보를 안내한다. 사흘 전부터 무리를 형성. 지성과 지능이 있는 개체는 아닌 것으로 추정되나, 포자 번식을 통해 인근의 동식물을 자신들의 편으로 포섭하여 타 생명체를 공격하거나 길들이는 중. 최근 관찰 결과에 의하면 인간 또한 그 포자에 의해 감염이 된 후 조작될 수 있다고 하여 헌터의 출정이 시급하다고 판단. 자신이 검 끝에 달린 술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곁에 가만히 선 나오스는 짐짓 심각한 얼굴을 내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임무에 있어 테한을 뒤로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이능력의 상성이 맞지 않아요. 티보도 그렇고요. 아까 들은 바에 의하면…”

나오스의 시선은 테한에게로 닿는다. 뭐라 말하듯 입을 뻐끔거렸다가, 장신구가 달린 귓가를 느리게 문지른다. 산란하는 빛이 눈에 들어오면 깜빡, 하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오늘도 화려하시군. 감상도 잠시, 테한이 곧바로 그늘 아래에서 티보를 번쩍 든 채로 총총 뛰어온다. 뒤편에서 타 헌터의 안내 밑 운송을 맡은 인력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워프게이트의 좌표를 고정하고 있다.

“응, 응. 아까도 들어보니 강건이나 유니쪽 보단 마지카 쪽을 더 구인하는 것 같았어. 가드너 쪽에선 아예 피시스 제외에 가능하다면 알케아가 오길 바란다고 말 하더-마는. 그러니 나랑 티보는 이번에 관찰하는 쪽이 더 알맞지 않을까?”

“네. 설명 고마워요 테한. 이처럼 테한과 티보는 해당 임무 건에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알고 있습니다. 마는, 이 자료 보시죠. 화면에 드러난 바와 같이, 포자에 의해 감염이 된 숙주는 본래의 능력을 활용하기까지 다소 긴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포자에 한 번 포착되면 정신 계열 헌터들의 능력으로도 돌리지 못하고 계속 감염이 된 채로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직원의 뒤편으로 큼지막한 사람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만지작거리고 있던 검 장식의 옥 구슬에 미새하게 금이 갔음을 확인한다. 나중에 교체해야겠어. 턱 올려 상대를 바라본다. 아, 에인즈군.

“우리 중 한 놈이 얻어걸리면, 곧바로 처리다. 이 말이구먼? 하지만 등급도 그리 높진 않았던 것 같은데. 고작 우리 다섯 정도에다가 송사리들 한 무더기로 불러두고.”

“포자의 번식 속도가 느리니깐요. 그리고 적당히 목숨의 경각심을 느끼며 활동에 임하는 것도 여러 초보- 미숙한 헌터에게 있어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염병을 떠는군.”

테한이 곧바로 에인즈의 입을 손바닥으로 쳤다. 티보는 그 ‘초보’라는 단어가 귀에 와닿았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사이프는 테한에게 엄지 한 번 올려준 후, 티보의 곁에 가서 선다. 게이트를 타고 막 넘어오게 될, 시끌벅적하고 통제도 안되는 헌터 무리가 어린 외형을 보고 한두 마디 뱉는 게 치명적임을 알아서이다. 예측 시간이 다가온다. 셋, 둘-

“에인즈 씨의 단어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희가 성장하길 바라는 게 많은…스폰서 기업들의 희망 사항이니깐요. 알겠어요. 대신 이번 일에 대한 대가나 보상은 확실해야 할 것 같네요. 그렇죠, 레티?”

나오스는 직원의 명찰을 흘깃 본 후,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름을 언급한다. 한낱 직원에서 레티라는 개인으로 격상하게 된 사람은 허리를 펴 자세를 바로 하고선, 분명 확실한 것을 돌려받게 될 거라고 빠릿빠릿답을 한다. 어쩐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엑스펠 기업의 천으로 묶인 옷을 입고 있더니만. 스폰서 기업 계열로 들어온 직원이었던 모양이다. 티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늘로 이동한다.

어른 셋-음. 테한은 어른이라고 하기엔 다소 문제가 많다. 사이프는 네 살이나 어린 테한의 과격함이나 미숙함을 곱씹다가, 그 옆에 놓인 더 어린 헌터를 바라본다. 이제 티보 메르제네스가 18세였던가. 사전에 브리핑을 몇 번이나 받았던 정보를 복기한다. 나오스께서 모쪼록 아이의 정보를 틀리는 일 없도록 하라며 하루가 지날 적마다 언제나 종알거려준 탓에 이젠 모조리 외웠지. 그 에인즈 조차 잊지 않고 챙길 정도였으니… 생각이 삼천리에 빠지다 말고 수면 위로 건져진다. 티보가 먼저 말을 건 탓이다.

“이, 있죠… 사이프 헌터.”

“네, 티보 헌터. 듣고 있습니다.”

“이번 임무에선, 그러니까… 목숨을 제대로 걸지 않으면 곤란한 등급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마는, 당신을 포함한 우리 다섯에게 있어선 그렇다고 볼 만한 등급도 아닐 겁니다. 애초에 과하게 위험하여 격리가 필요한 일이었다면, 저기 보십시오. 지금 신참 헌터들도 막 무리를 지어 워프를 타고 넘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 나름대로의 제어 수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어가 지금은 어렵게 됐기에 헌터 파견 요청을 한 것일 테고요.”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모, 못했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괜찮고. 저 사람들에겐 위험한 드, … 등급인 건가요?”

“티보 메르제네스. 당신은 유니입니다. 그렇죠?”

“네… 그리고 에인즈 선배님은 마지카, 나오스 선배님은 페르소나 논 그라타, 사이프 선배님도 마지카, 어어, 그리고 테한 선배님은-”

“강건이고요. 중요한 건 유니라고 이름을 받았을 시 당신이 헌터 협회에서 보인 자질의 크기입니다. 당신은… 유니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자격을 충족했습니다. 그래서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와의 합의하에 협회에 소속됐고. 제 말 중에 틀린 부분이 있습니까.”

다른 장면에선 나오스가 직원들과 대화를 이어가며, 어떻게 전략을 짜고 대형을 맞추면 좋을지 의논한다. 에인즈는 사이에만 조언을 던질 뿐, 나머지는 테한과 나오스. 그리고 몇몇 전략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보인 어린 헌터들이 머리 잘 합치고 굴려 주먹밥이라도 되라고 놔둔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다른 곳을 바라본다. 때마침 마른 바람이 부는데, 먼지가 많은 곳인지라 눈의 깜빡임이 잦아진다. 티보도 어어어, 같은 소릴 내며 눈가를 애써 막아본다. 그로 인해 다음 대화는, 눈을 뜬 자신과- 양손으로 얼굴 가렸다가 빼꼼. 그 사이로 시선을 주는 티보의 모습에서 이어진다.

“없어요. 그렇지만 그 자격 충족이라는 것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티보 헌터. 당신은 지난번에 스물에 가까이 되는 헌터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끓어오르는 산과 열 속에서 그들의 신체를 하나 하나, 마리오네트처럼 섬세하게 조작해서 말입니다. 그 외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채 움직인 헌터들까지 헤아린다면 수는 대강 마흔을 넘을 것으로 합산됩니다.”

“… 저는 그, 그게 그냥 가능한 삶을 살았는 거, 걸요. 그리고 안 다치면 좋기도 하구요… 하, 지만 대부분은 사람보단 동물을 직접 다루고 싶-”

“아닙니다, 티보. 당신은 그대로 능력을 운용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저희와 함께하는 것이니깐요. 이 자리에 있는 것 만으로 비난의 손가락은 사그라들고, 당연히 여기는 자들이 나중에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모래바람이 잦아든다. 의견 교환이 다 끝난 것인지, 바람으로 만들어진 새가 하늘을 가르며 긴 휘파람 소릴 만든다. 이동합시다. 티보를 이끌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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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F

간단한 브리핑 시간을 가진다. 처치해야 하는 대상은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한 포자. 해당 포자에 감염이 된 자들은 포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이는 별도의 세뇌 과정이나 육체 조종은 아니다. 말 그대로 신경 자체를 장악해 움직이게 되는 것으로… 사이프는 눈을 깜빡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느리게 걸어간다. 우둘두툴한 바닥이 에인즈의 발 구르는 동작에 맞춰 깔끔한 길로 정돈이 된다. 테한이 양손을 팡- 하고 소리 나게 치며 곁을 따라간다.

몇몇 고참 헌터들이나 전략 계통 헌터들이 다른 자들에게 명령과 구조, 위급상황 시의 수칙을 전하는 사이 다섯은 각자의 장소에 자릴 잡는다. 저기 바라보니 나오스랑 에인즈, 그리고 티보는 한 팀인 모양이지. 둘 다 성숙한 사람들이니 티보의 케어에 확실할 것이다. 사이프는 손가락을 딱, 딱. 소리나게 치며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 테한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불꽃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걸 잊지 말고.”

“그거 내가 지난번에 궁금해서 네 검 휘둘렀을 때에도 똑같은 소리 들었다, 사이프!”

“아무리 강건이라 하더라도 주의해야 할 건 해야 하는 법이니까. 철칙이 괜히 있는 이유가 아니야.”

“각 헌터마다 까탈스러운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어쩔 수 없고?”

“그래. 나는 내 불에 누군가의 살갗이 달라 붙는게, 너는 실수로 힘 조절을 잘못해 무언갈 부술까 봐 걱정하고.”

“허. 이 테한 씨는 그런 걸 걱정하진 않거든!”

“그러면 뭘 걱정하길래.”

테한은 이마에 쓰고 있던 두툼한 고글을 눈가에 붙인다. 팔을 옆으로 쭉 뻗었다가 돌리길 반복하며 스트레칭한다. 사이프는 두 걸음 옆으로 물러선 후, 그들의 앞에 놓여 있던 노란색 세이프티 라인을 검 끝에 붙인다. 아니, 검을 세이프티 라인의 끝에 가져다 붙인다. 날카로운 면에 따라 톡, 하고 끈이 풀려 아래로 떨어진다. 트드득, 하고 푸른 불꽃이 붙으며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포자 군단을 감싸두고 있던 금 실타래가 소멸해나간다.

“능력을 더는 조절할 수 없게 되어서, 상태가 고정되는 게 무섭지.”

그대로 테한은 포자가 가득 퍼진 곳으로 뛰쳐나간다. 사이프는 뒤따르듯 검의 날을 반듯하게 쥔 후, 테한이 툭툭 바닥에 찍어둔 자국- 사실상 힘으로 인해 움푹 파인 곳을 피하며 걸어나간다. 일정한 간격으로 검의 선을 남기며 거리를 측정한다. 나중에 돌아가 보고서를 적을 때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는 헌터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다 시선이 그 헌터에게로 닿는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저 멀리서도 보이는, 몸에 두른 반짝이는 장신구 따위. 한 번 더 눈을 깜빡인다. 화려한 사람. 그리고 눈 앞을 푸른 불길이 채운다.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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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OS

그 사이 사이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티보는 무언갈 중얼거리며 자신의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바람을 불어넣은 걸까 싶어 궁금해진 나오스는 조곤조곤 비밀을 여쭈어보듯 말을 건넨다.

"있죠, 티-보.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듯한 뺨을 하고 있으신 건가요? 여기 고참 두 명도 있겠다. 언제든 상의하고 싶은게 있다면 소리 내면 될 텐데 말이에요."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티-보, 혹시 우리가 나이 많은 뒷방 신세들이라 생각해서 입을 열어봤자 가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에인즈 선생님."

나오스가 그대로 에인즈의 옆구릴 확 잡아 뜯는다. 에인즈는 으아아악, 세상에서 둘도 없을 정도로 아플 사람인 것처럼 엄살떨며 흙으로 빚어진 탑 위에서 데구루루 구른다. 주인이 주인이니 가림막 하나 없는 고층의 바닥에서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능력이 알아서 주인을 살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자리에 몸이 다다르니- 떨어지기도 전에 흙이 움푹 파여 올라와 에인즈를 다시 두 발로 서도록 자세 잡는 걸 돕는다.

그런 에인즈 선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금방 자신과 눈 맞추며 물어보고 팠던 것을 더듬으면서도 반듯하게 말하는 티보는- 어쩜 이렇게나 장한지! 자신은 몇 살에 여기에 들어왔더라. 아마 티보 나이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열여덟이라고 했지. 딱 한 살 차이 나던 때였겠네. 페르소나 논 그라타도 아닌데 어째 보호자가 허락을 했을련지… 실례합니다, 티-보. 잠깐 닿아도 될까요? 나오스는 특유의 부드러운 눈의 움직임을 통해 웃음을 조형한 후 허락을 구한다. 그런 나오스의 동작에 아니라고 답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몇 없다. -에인즈가 뒤에서 애를 꼬셔먹는 다고 혀를 찼지만 그건 간단히 무시하자.- 티-보는 얼떨결에 "ㄴ, 네에." 답을 하며 제 뺨을 내민다.

"어머나. 영특하기도 해라. 제가 티-보의 뺨을 만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한 건가요?"

"네… 그야, 근육의 움직임이랑, 어, 그으, 혈관의 형태랑 그런 식으로 조, 조작되어서… 저, 저는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남들이랑은 다르게… "

"응, 알고 있어요. 걱정 말아요. 당신이 보이는 세상을 우리는 엿볼 수 없겠지만, 우리도 각자만의 다른 세상을 지닌 사람들이거든요. 당장 저쪽의 에인즈 선생님께선 바닥에 닿는 모든 흙이란 흙은 조종할 수 있는 걸요.“

“그러니 그냥 땅의 어머니 추종자 뭐시깽이 같지 않나."

“뭐… 후추랑 소금 더 쳐보자면, 그놈의 흙만 있다면 설령 시멘트와 콘크리트 사이의 세상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집을 빚어 올리고 깔끔하게 조각낼 수 있답니다. 음, 어디 보자. 사이프의 경우엔 온도가 일반 불 보다 훌쩍 넘는 푸른 불로 세상을 다 태워버릴 수 있을테고. 테한은 언제든 다른 존재가 되어서 우리 넷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는. 그런 유능함과 기발함을 갖춘 사람이고요. 티보도 순식간에 누군가를 제압하거나 바뀌게 할 수 있어서 이런 다른 자리에 서있는 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 아니, 우, 우리는 강해서 여기 있는… 건가요?"

"저는 격리의 개념이라고 보고 있어요. 다르니까 따로 두어야 한다는 쪽이죠. 아, 물론 화합이나 구분의 의미를 지닌 헌터 분들도 있어요. 가령 여기 있는 에인즈 선생님의 경우엔-"

저 먼 곳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셋이 동시에 눈을 굴려 소음의 원인을 추적한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 사이로 몇몇 몸을 쓰는 헌터들이 보인다. 포자에 먹히지 않도록 주의를 돌리면서 동시에 대처하다 보니, 근접전에 가까운 계열들은 큰 한 탕을 치고 빠지길 반복하는 듯이 보였다. 저러면 금방 힘이 소모될 텐데. 귓가에 연결된 무전을 통해 신호가 세 번 들어온다. 삐- 이건 1차 임무의 성공. 삐- 이건 2차 돌격의 성공. 삐비빅- 이건 3차 진입에 있어 어려움이 생겼다는 시그널.

티보를 향해 손을 천천히 흔들고, 허공 위로 발을 뻗는다. 그러는 족족 에인즈가 만드는 기다랗고 매끈한 계단이 걸작을 흉내 내듯 포도나무 덩굴이 얽혀 만들어진 손잡이와 대리석 특유의 무늬가 툭툭 갈라지듯 흙 위에 만들어진다. 장난도 참!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상공 몇 미터 위를 가른다. 바람이 흩날린다. 모래조차 닿지 않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걸어 내려간다.

그러다가 아참, 잊었다는 듯 고갤 돌려 뒤를 바라본다. 티보가 걱정이 되는 듯한 얼굴을 한 채로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그 옆의 에인즈는 티보가 떨어지지 않도록 뒷덜미 잘 잡고 있는 채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을 쓰는 건 상관 없지만, 가능하다면 티보. 당신과 함께 출전하는 저희에게 능력을 쓰는 건 금물에 가까워요."

"이, 이유가 무엇, 이, 일까요."

분명 경고 신호를 들었고, 저 아래에서 계속해서 격전 중인 광경이 배경에 깔려있음에도 꿋꿋히 질문을 던지는 신참을 바라본다. 호기심이 많은 건 좋은 자질이지. 상황도 잘 보고 있고. 나오스는 구름 사이로 태양빛이 아스라히 내려오는 각도에서 티보와 낯을 맞춘다.

"기질과 재능이 강한 능력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상성이자 역이라서 그래요. 우리가 각자의 일에 험담을 뱉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아쉽게도 말이지, 나오스 루베오!"

"여전히 거창하고 섬세한 솜씨를 가지고 계시네요, 에인즈 선생님."

"자, 잘 다녀오세요! 지, 켜… 보고 있겠, 스,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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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F

전투가 끝날 무렵, 에이스 카드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여러 대중 매체와 장르에서 그러하듯, 가장 강한 사람이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법칙은 사리지지 않는다. 나오스 카도 루베오는 이에 부합하는 역할을 지닌 이었다. 테한과 함께 포자의 소탕을 말 그대로 '깡그리' 짓밟아 버린 후, 잔해 더미 위에서 천공의 계단을 구경한다.

"워-후. 테한씨 또 저렇게 한 탕 연출 하시는구만! 이번 던전 공략에 신참들이 많아서 저런 걸까나."

"스폰서가 나오스의 이름 앞으로 걸려있을 확률이 높으니 돕는 것이겠지."

"에인즈 씨의 이름으로 있었는데."

"그럼 저건 전형적인 책임 전가겠어."

"에인즈도 참, 어디 곱게 죽을 상은 아니다."

"애초에 헌터들의 죽음이 호상인 적은 드물지 않던가?"

"또 또 또, 사이프. 넌 그놈의 진실의 주둥이가 문제야."

수다를 떠는 사이 나오스가 마침내 바닥에 발을 딛는다. 바닥에 그어진 선을 찾아 이동하다가, 양 발을 감싸고 있던 구두를 풀어 내린다. 리본을 잡아당겨 툭, 툭. 손쉽게 방어구를 해제한다. 앞에 마구잡이로 무리를 지어 다친 몸을 감추거나 크게 부풀려 위협하기에 바쁜 포자의 숲을 향해 다가선다. 귓가에 걸린 인이어에서 경고음이 짧게 두 번 울린다. 띠-띠. 대피 권고. 그러나 이건 일반 헌터들에게 속하는 이야기고. 안전거리 내에 있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건이다. 저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사람이 움직이는 걸 바라본다. 테한은 괜히 손으로 차양까지 만들어 아주 구경거리 보듯 군다.

저 멀리서 굉음이 서서히 다가온다. 단순한 폭격과는 다른 음. 인간이라면 당연하게도 공포를 지닐 법한, 어떠한 자연재해가 사전에 내는 소리. 지진의 전조증상이 찾아온다. 저어 멀리 산맥 위에 놓인 새무리가 한순간에 자리에서 급히 떠나 자신들의 뒤로 날아간다. 번식하는 포자는 그런 걸 감지하는 능력이 아직까진 없는지- 혹은 진화 단계 중인지 영 어리둥절한 눈치다. 적어도 사이프 본인이 분석하기엔 그랬다.

그리고, 쩌적. 땅이 갈라진다. 포자에 먹히게 될 거란 겁이나 공포도 없는지, 나오스는 그대로 뒤엉킨 사체의 숲으로 직진한다. 시취와 악취는 취향에 안 맞을 사람일 텐데. 걱정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홀린 듯 구두가 놓여있던 장소로 천천히 이동한다. 테한은 어련히 그가 다른 임무를 받아 위치를 변경하고 있었겠거니 싶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자연재해 앞에서 -사이프는 문득 이 문장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능력자라는 이들이 얼마나 이레귤러에 가까운 타지인 처지인지 한 차례 더 자각한다.- 포자의 주인으로 되는 것은 몸을 작게 말며 자신의 종말을 예견한다. 헌터들도 슬슬 물러나는 추세이다. 이렇게 넓고 뭣 하나 없는 허허벌판의 땅에서만 볼 수 있는 나오스 헌터의 진기명기, 지진 일으키기 같은 걸 구경하는 자들도 있다. 아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이런 건 본부의 훈련 센터에서도 쉬이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 구두 한 켤레를 손에 쥔다. 그 사이 모래가 들어간 틈을 탈탈 털어내고, 제 옷소매로 앞 코를 닦아 닦아 반짝이게 만든다. 일을 마쳤다는 듯 몸을 돌려 금이 가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나오스 헌터의 얼굴 위에 조급함이 묻어난다는 것도 그 기회에 처음 알게 됐다.

"어머나. 사이프. 여기까지 오면 위험하잖아요. 아까 신호를 받은 게 아닌-"

"나오스. 당신은 몇 세에 헌터 협회에 들어오게 됐습니까?"

사이프는 한쪽 무릎을 굽힌 뒤, 구두를 신기 좋게 잡은 채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오스는 난감하단 기색을 없애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볼 거란 생각으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제 낯이 방금 들통났단 것으로 인해서인지. 사이프는 많은 걸 무시하고 살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만큼은 눈을 돌리지 않기로 택한다.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이 스스로의 능력에 겁을 먹는다는 걸 감추고 싶어할 뿐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이렇게 기사님처럼 앉아 제 신발을 신겨주려는 시늉도 안 거두실 거죠?"

"별생각 없었는데, 말을 듣자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곤란함에 대한 힌트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오스."

"이런! 당신은 정말 못 이기겠네요."

잘 만들어진 웃음소리. 까르륵, 그 뒤엔 긴 한숨. 나오스는 발을 구두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 뒤에 말려 올라간 리본조차 단정하게 넣어두려는 사이프에게, '밖으로 빠지기 쉽도록 해둔 장치에요. 반대로 정리해야 한답니다.' 귀띔한다. 사이프는 군말없이 리본을 정리한다.

"열일곱이에요."

"이른 나이였습니다."

"인터넷에 뒤적거려보면 다 나올 정보인데도 말이에요!"

"당신의 입에서 나온 것만이 진실입니다. 우리 헌터들은 그렇게 배우지 않습니까. 기사와 찌라시는 다를 바 없다고. 제게 조언해 주었던 사람이 당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억력도 좋네요. 그래서. 나이를 물어본 까닭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까요?"

둘은 다른 헌터들이 모여있는 포탈로 귀환하며 마저 말을 나눈다. 테한은 그제야 사이프가 별도의 명령 없이 그쪽으로 갔단 사실에 궁금증이 낯 위에 서리고, 티보는 그제야 해당 격에 머무르는 헌터들에게 함부로 능력을 사용하면 안 되는지 깨달았다며 에인즈와 말을 나눈다. 그리고 그들- 모든 자들의 귀에 닿지 않을 영역에서. 단둘이 나누는 문장 몇 마디.

"당신은 그때 너무나도 어렸습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있진 않았죠."

"기사를 보았습니까."

"그럼요. 이제 돌아가서 뭐라 답하면 좋을지 궁리해야 하는걸요."

"그렇습니까."

무리로 귀환한 뒤, 약간의 잡담. 헛소리와 우스갯소리, 부상자와 사망자의 수를 헤아린 뒤- 이번 임무에 있어선 사망자 0명. 부상자 8명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기록을 들은 후 모두가 안심한다. 워프를 타고 돌아가는 순서는, 온 순서와 다르게 늦게 온 사람들부터 먼저 빠져나가는 식이다. 이번에는 그가 나오스보다 먼저 워프 게이트의 순서에 걸린다. 워프를 타고 넘어가기 전, 나오스보단 능숙하지 못한 포즈. 하지만 직원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문장을 던진다.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이능력자는 생각보다 더 많습니다, 나오스."

"나는-"

이번에는 그 문장이 끊겼다. 사이프는 웃음소리가 잘리듯 들린 것보다, 해명하려는 것 같은 문장이 잘린 것에 대해 더 만족감을 느꼈다. 적어도 지금 책임질 수 있는 이야긴 아니니까. 냉큼 제 목에 팔을 걸며 장난치는 테한을 상대하며 생각한다. 이것도 어쩌면 에인즈에게서 배운 나쁜 버릇이라고 둘러댈 순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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