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특수계통 이능력자에게 선택권을 주어라!

3화

오늘의 이능력자 협회 안내 센터의 TIP

이능력자와 관련된 차별적인 발언, 편파적인 집행과 관련된 상황이 있을 시 협회의 118번으로 연락 바랍니다. 이능력자와 비이능력자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점은 크게 존재하지 않으며, 때에 따라 비이능력자의 권력과 권위가 더 큰 경우 또한 존재합니다. 사람마다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임을 잊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헌터-가드너-그리고 모든 시민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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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BO

티보는 첫 임무의 복귀 후 다른 이능력자에 대한 이야길 한 차례 더 들을 수 있었다. 특수 계통 계열의 이능력자의 경우엔 유년 시절부터 국가에 소속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나오스 헌터와 같은 사례는 흔하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면, 어디 능력 조절 못 하는 폭탄처럼 다뤄지면서도 최종 카드로 꺼내지는 것 말이다. 물론 정신-세뇌 계열 중에서는 더 그런 사람들이 많아 아예 별도로 조성이 된, 숨겨진 특수 마을이 있다는 설명까지 들은 뒤엔 턱이 아주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테한과 사이프가 이런저런 정보를 건네주던 사이, 한참 가만 바라보던 에인즈 대선배가 -어쩐지 ‘大’라는 한자를 붙여야만 할 것 같다.- 물어봤다.

“이봐, 티-보.”

“네, 네… 지금까지 한 말은 바, 밖에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하시려는 거, 라면 알고 이이, 있어요…”

“물론 대외비인 사실이긴 하다마는! 그런 건 아니고.”

“그렇다면…?”

“세상에 네 편 하나 없다고 여겨질 때 가끔은 그런 마을에 가보는 것도 환기에 도움이 된다. 이쪽의 나오스도 제법 그런 곳에서 도움을 받고 말이지.”

“규격 외에 대한… 특이점과 그, 그로 인한 고립감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네, 맞아요 티보. 아이 참 영특하기도 해라. 내 나이대엔 이렇게 조리 있게 말하지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에인즈 선생님.”

“나 참. 혀에 꿀 바른 건 너나 저 티보라는 애랑 비슷하다마는…. 그래. 그 말이다, 티-보. 너는 왜 여기에 왔냐? 헌터가 될 나이도 아닌데 먼저 능력 알려 온 것이 네 선택지라는 것 즈음은 이번 임무 통해서 훤히 알게 됐걸랑.”

“아, 답은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에인즈 선생님의 말은 직접 생각해 보라는 의미니깐요.”

“아, 알겠어요. 에인즈 헌터의 의견은… 네, 응. 긍정적이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저는 제가 왜 여기 있는지 잘 아니까요…”

에인즈는 그러면 됐다는 듯이 제 뒷머릴 벅벅 긁다가, 시선을 떼어내지 못한 나오스와 눈을 맞춘다. 티보는 이 모든 걸 관찰한다. 타인의 근육 움직임과 눈 신경의 처리 정도는 티보에게 있어 이해하지 못할 분야이긴 무슨, 너무나도 잘 알아 곤란할 정도의 시각 정보량이었다. 북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스스로의 손으로 꾹꾹 눌러 시야 앞을 가리려고 하며 상황을 분석한다. 의도치 않게 말이다.

“그게 외부의 힘으로 인한 결정은 아닌 게지, 티-보?”

“에인즈 선생님. 그 선까지만 개입하면 됐어요.”

“아이 참, 너는 내가 꼭 좋은 일 하려고 하면…”

“아이의 결정이에요.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성인이 된 스스로 뿐이고요.”

나오스께선 어쩐지 불편해 보였다. 발에 힘이 몰려있다가 금방 풀려나고, 잘 만들어진. 그러니까 자주 써서 말랑말랑한 얼굴 근육이 부드러워지며 웃음을 조형했다. 나오스의 저런 능력은 정말 신기하단 말이지. 테한과 사이프께선 아쉽게도 그런 표정 관리엔 능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로 내보이는 감정선과 형태가 일치한다고 해야 하나. 점퍼에 걸린 기다란 끈을 양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지막 문장을 되뇌인다. 음성으로. 마, 맞아요. 저를 막거나 후회할 수 있거나,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아군이자 적군은 내일의 나 뿐일테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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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HJAN

과자를 와작와작 씹어 먹는 소리가 난다. 매운 콩, 그러니 와사비 맛인가 뭔가 들어가 녹색 동그랗게 있는 걸 몇 봉지째 뜯어 와삭와삭 먹고 있는 건지. 아마 그 먹보 테한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알갱이나 떨어져 나온 껍질 같은 건 손바닥 위에 올려 한참 바라보다가, 혀 낼름 내밀어 콕 찍어 먹는다. 마치 카멜레온이나 도마뱀 흉내 내듯이. 그런 애같은 짓을 하면서도 찾아보는 기사는 온통 심오하거나 충격이 큰 것들뿐이다. 오늘의 에고 서치에 뒤이은 팀원 에고 서치의 주된 단어는 이와 같다. 특수 계통 이능력자의 처우.

뭐 어쩌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 그러니 특수계통 한 명이 기업 시설-우리 같은 협회가 아니라 개인 시설로 넘어가 착취당한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능력자에 무지한 보호자들에게 접근하기를, 이런 이능력은 특수하기에 협회에서 곧바로 데려간다고. 그리고 어떻게 쓰이는 지도 스물 되기 전까진 잘 모른다고. 그러니 우리가 먼저 데려가 생사와 형태 알 수 있도록 언제나 연락을 취하겠다고. 달콤한 울림이다. 그리고 그 증거의 들먹임 속에서 스물 전까지 가정과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몇몇 헌터들의 사례를 언급했는데, 하필 그중 한 명이 나오스 카도 루베오 씨- 였던 모양이다. 연관 검색어로 그 이름이 뜨는 걸 보자니 말이다.

“이봐, 버디버디. 콜 좀 연결해 줘.”

“네, 확인했습니다 테한 헌터! 어디로 연락할까요?”

“음, 버디버디가 생각하기엔 누가 가장 적당할까?”

‘"버디버디는 테한 헌터가 설정해둔 값에 따라, 친구 목록에 들어간 헌터, 사이프 헌터에게 연락 할 것을 추천해요!“

“이래서 인공지능이란 위대하단 말이지. 좋아, 버디버디. 연결해줘.”

“별말씀을요, 테한테한.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허공을 부유하는 실체 없는 홀로그램이 옛썰 포즈를 한 번 잡은 후, 금방 돌고래처럼 몸 한 바퀴 돌려 전화기 사인으로 바뀐다. 뚜르르, 뚜르르. 기본 연결음이 한참 이어진다. 그 사이 테한은 나오스 헌터라는 특정 검색 단어와 특수 계통 이능력자의 처우와 관련된 검색 단어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 주변에 모조리 창으로 띄워둔다. 순식간에 허공에 키보드, 수신호 매크로로 단어를 짜깁기해 내용을 요약한다. 완성도 되지 않은 시간대에 달칵. 연결음이 끝을 맺는다.

“여보세요-!? 사이프, 나야. 테한!”

“테한. 이렇게 사적인 연락으로는 간만…”

“어제도 했잖아.”

“이 아니네요. 무슨 일이야.”

“별 건 아니고, 지금 세상 돌아가는 소식 좀 아는가 싶어서?”

“조트론 회사가 최근에 세금을 정산하는 것 관련된 비리를 저질러서 맺을 예정이었던 광고 기획을 취소하고 온 참이긴 해.”

“아 걔네가 사고를 쳤어? 알려줘서 고맙다, 땡큐, 땡큐.”

“테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따끈따끈한 정보는 뭐길래 이렇게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릴까.”

말마따나, 테한은 방금 와사비 동글 콩 과자를 열 여섯 번째로 뜯고 있었으며, 어디 한 손으로 타자 치기가 여간 쉬운 일인 게 아닌지라 먹었다가. 내려뒀다가. 자판 두들겼다가. 그랬다가 창 넘기고 광고 끄고 또 간식 탐내고 있으니 잡소리가 부스럭 바스락 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테한은 키득키득 웃는 소리랑 함께 말을 시작한다. 난 원래 그런 편이었잖아!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 지점에서 사이프의 생각. 그렇다면 뭐가 중요한 거지? 간단하고 소소한 의문 중 하나다.)

“나오스 씨 기사 봤어? 지금 댓글 창도 막아둘 정도로 지저분하잖아. 뭐, 좀 질 낮은 기사 사이트 가면 이야기들 아주 아글바글 진행되고 있긴 해.”

“어떤 일 있으셨길래. 내가 아는 건 최근에…”

“특수계통 이능력자 한 명의 회고록인가 고발록인가 소설에 가까운 건이 신문에 언급되면서 기존의 이능력자들이 싸잡혀서 언급된 거 말야. 지금 계속 이어지고 있더라고. 아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처음 건수 잡았던 언론사가 마구잡이로 이야길 퍼나르고 있어. 그 당사자도 할 말이 많은 듯 감정적이게 구는 것 같던데…”

“그러면 그럴수록 기존의 협회에 소속된 페르소나 논 그라타의 자격을 딴 사람들의 위치가 위태로워 진단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해가 가는 측면이야. 보아하니 아주 수탈과 착취에 가까운 생활을 미성년자 시절부터 보냈다고 하더라고.”

“우와. 미성년자 때부터? 그것 하나는 지독한걸. 그런데 맞아. 감정적이게 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건 협회 측 인간인 우리가 할 일은 아냐.”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협회 사람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중립을 지키거나, 각자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니까.”

“뭐… 나오스 씨가 괜찮을 지를 모르겠네. 야. 나 연락 보낼 건데, 너도 할 거야? 할 거라면 문장 좀 훔쳐가게.”

“내겐…연락처가 없을 지도 모르겠는데.”

“헐.”

“왜 그런 감탄사로 말을 끝맺-”

테한은 그대로 전화를 껐다. 뭐, 사이프는 사이프 알아서 하라지. 지난번에 구두를 씌워주며 관련된 이야길 나눴던 것 같은데 제 착각인가 싶고. 룰루랄라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지 많은 않은 손가락으로 연락을 보낸다. 타닥, 탁, 타다다닥. 나오스,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조잘조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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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F

제멋대로 종료가 된 전화를 바라보았다. 홀로그램으로 띄워진 테한의 아이콘이 다른 헌터에게 전화하는 중, 바쁜 관계로 연락은 다음 기회에!라고 얄밉게 자동 인사를 한 후 반짝이는 이펙트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적막이 찾아온 방 안에서 사이프는 악착같이 다시 달라붙으려고 하는 광고 계약사 연락을 무시한 후, 단출한 연락처에 N이라는 글자를 입력해 넣었다. 곧바로 뜨는 나오스 카도 루베오, 라는 이름에 당혹스러워한 것도 잠시. 메세지를 위해 단어를 정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용은 이와 같았다.

- 요전에 임무를 마친 후 잘 들어가셨습니까. 사이프입니다. 지금 뭐 하고 계십니까.

자신과 비슷하게 광고를 찍고 사업 같은 걸 맺고 다니는 사람이니 영 바쁘겠다 싶어, 그대로 화면을 치웠을까. 몇 초 안 지나 사진이 띠롱 보내진다. 그것조차 대충 찍었을 것임에 분명하나 눈가의 분칠 메이크업, 각도, 빛, 머리카락 결과 장신구 설렉팅마저 완벽한 사진이. 여기서 사이프는 약간의 경외심을 느낀다. 저 사람은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저런 모습을 취하는 걸까. 의구심도 생겼고.

- 꽃의 가시가 손가락에 박혔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모쪼록 빠른 처치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나오스.

- 당신은 정말 활자조차 사이프 그 자체네요! 연락 고마워요.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기꺼이 말해준다면 좋겠어요. 전 언제나 시간이 나도는 인력이랍니다.

- 그런 건 아닙니다. 테한을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걸 듣곤 하는데 오늘 그 주제에 당신이 있었을 뿐입니다.

-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당연히 내가 꽃을 깎다가 가시에 찔렸단 이야기 따윈 아니겠죠. 나의 6000번째 출근에 있어 여름인데도 걷던 도중 재채기를 했단 사실이라도 있었나요?

- 그런 적 있습니까?

- 아뇨. 그럴 리가요?

- 그렇군요.

- 그렇답니다.

사이프는 금방 자신이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렸음을 자각하고 문장을 씹어 구현한다. 점과 물음표를 정갈하게 섞어 예의가 바르도록.

- 특수계통 이능력자들을 향한 말들이 많은 시기입니다. 비록 당신에게서 직접 말을 들은 적은 없으나 유추가 되는 것들은 있어 염려의 의미로 연락을 남겨봅니다.

- 날 걱정하는 건가요? 세상에 신기하고 놀라워라! 마음 고마워요 사이프,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청렴결백한 당신에게 어떠한 뇌물을 먹여야 이 이야기가 즐겁게 끝날 수 있으려나….

사이프가 상대의 화법에 감탄하며 화면을 보기를 한참, 5분이 딱 지났을 즈음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인, 나오스 카도 루베오. 수신인, 당연하게도 그 앞에 놓인 사이프 본인.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물 한 모금을 입 안에 머금은 후 승낙 버튼을 누른다. 삼킨다. 큼, 같은 소리는 내뱉지 않아도 앞전 테한과의 전화로 인해 도중에 삑사리가 나진 않으리라.

"사이프, 갑작스러운 연락 실례해요. 별 건 아니고 약속 잡으려고 한다면 말로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요."

"약속이라 하면, 던전에서의? 아니면 사석에서의 건입니까."

"당연하 사석이죠! 던전 약속은 협회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으로 충분하니깐요. 이전에 사이프에게 받은 빚도 있고요. 어디보자... 오늘은 좀 여유롭나요?"

"네. 방금 광고가 예약되어 있던 기업과의 약속이 파토나게 되어 시간이 텅 빈 참입니다."

"아. 그 조트론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세상 참.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기업들도 못 믿을 게 된단 말이지. 수다가 길었네요. 30분 뒤에 협회에서 만날 수 있겠어요? 외부는 좀 어렵고, 거기 내부에 회의실 정도는 저희 이름으로 빌려 떠들 수 있거든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 물어보니까 우리는 특혜 서비스라고 냉큼 제공되던데요? 안 된다면 이번에도 우기죠, 뭐. 아니면 헌터 일 관련으로 조언 구할 일이 있다고 하거나. 그러면 회의실 꽉 다 차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말 한마디에 따라 빈 방이 생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30분 뒤 협회에서 뵙겠습니다. 1층 로비 안쪽이면 되겠습니까?"

"그럼요. 아. 나름대로 수수하게 입고 가니 편한 복장으로 나와요. 알겠죠?"

"나오스, 당신의 수수함이란 기준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알겠습니다. 30분 후에 뵙겠습니다."

테한과 나누던 연락과 다르게 알맞은 타이밍에 끊는다. 상대방에 인사를 한 후 셋, 둘, 하나, 뚝. 사이프는 곧장 나오스가 아까 따끈따끈하게 보낸 사진을 확인 한 후, 머리카락이라도 빗어 위로 틀어 올린다. 굳이 광고나 협찬 옷을 입을 필요는 없겠다 싶으나- 그런 옷들이 유일하게 가장 깔끔하고 태가 잘 사는 옷인 관계로 골라 입는다.

어차피 사이프도, 나오스 본인도 협회에서 안전 구역으로 지정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겠다. 걸어서 가봤자 20분도 안 걸릴 거리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자신을 알아차린 시민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이번에 협찬받은 곳에 대해서 언제나 믿고 쓴다며 응원의 메세지를 남기기도 한다. 사인 요청엔 단정하게 거절한다. 죄송합니다. 지금 협회로 급히 가는 중이었던지라. 다음에 또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 끝.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협회로 입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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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F

발을 협회 안으로 집어넣자마자 깨닫는 사실 몇 가지. 쉬는 날의 협회엔 생각보다 사람들이 더 드물고, 일 거릴 찾아 득실거리던 헌터들 무리는 깡그리 빠져 몇 가지의 알맹이만 남아있다. 협회를 휴식 장소로 쓰는 몇몇 네임드, 혹은 알려진 헌터들. 지난 던전 공략에 있어 도움이 됐던 전략 계열 헌터에게 고개 숙여 꼬박꼬박 인사한다. 저 끝에 앉아 구두를 만지작거리는 나오스를 발견하자마자 걸음 소리를 늦춘다. 의도적으로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알린다.

곧바로 고개를 든다. 그러나 자세까지 일으키진 못한다. 구두에 걸려있던 실린더가 빠진 모양인지 곤란하단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무릎을 굽혀 다시 바닥에 닿은 후 형태를 살피는데, 잠깐. 이건 그냥 실린더 형태가 아니다. 중간에 특정 금속과 제어 장치가 내재된. 그러니까 이능력자 제압 용으로 쓰이는 이능력 제어 장치다. 곧바로 강력한 약물이 주입되어 능력의 제어를 시도하게 되는 약에 가까운 것. 그리고 그 아래엔 또 자석까지 붙어 붙일 수 있는 장식으로- 이능력 위력 제어 장치까지. 어린아이들이나 자기 힘 제대로 다루지 못해 팔목 형태로 차곤 하는 걸 구두에 아름답게 조각헤 박아두는 헌터라니. 손 끝으로 이를 쥔 채로 주인을 올려다본다. 물건의 주인은 난감하다는 듯한 시선을 준 것도 잠시, 요청을 한다.

"사이프. 미안해요. 직접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런데, 혹시 인근의 직원을 불러 물건 교체를 요청할 수 있을까요? 예비용 파츠 서너 개가 해당 협회에 존재해요. 페르소나 논 그라타, 나오스 헌터 전용 억제장치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우선은 걱정 마시고... 이곳에서 기다리시죠."

"오자마자 이런 거 시켜서 곤란하기도 하네요. 오늘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알았죠?"

그러나 사이프는 답을 하기도 전에 몸을 움직여 직원을 찾아 나섰다. 머리 안에서 퍼즐이 맞춰 돌아간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 갇히게 되는 꿈은 사이프의 긴 악몽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 더 끔찍하게 발전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 동료들까지 타고 말아버리는. 테한의 경우엔 강화한 신체가 더는 기본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향상된 채로 남아 자신을 괴롭히게 될 것이 가장 공포스럽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오스는? 그는 직원을 만나 예정된 말을 뱉고, 직원과 함께 복귀한다. 높은 구두에 다시 도구가 장착되는 장면을 보며 뱉을 말을 갈무리한다. 그러니 도통 쉽게 걸리지 않는다. 나도 이런 번거로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나도 힘이 강해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만 하는지, 눈치 보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찮고 힘든지 알고 있다고.

기만이다. 사이프는 구두를 마저 신겨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습관적이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절 데려다두실 겁니까. 협회 내부는 잘 모릅니다마는…."

"저에게 흥미를 보이는 사이프는 참, 보기 신기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내가 모쪼록 즐거운 것들로 당신의 관심을 살 수 있다면 좋겠네요."

"... 에인즈의 말이 맞습니다. 혀에 꿀을 바르셨습니다, 나오스."

"아하하, 당신도 이제 그렇게 말을 할 생각인가요?"

자신의 능력은 불을 피운다. 끝에서. 물건 끝에서, 바라는 곳에서 일렁이게 한다. 차라리 살아있는 시한폭탄의 꼴이 좋지. 발바닥과 닿은 면에서만 능력이 시작된다니, 그것도 지역 자체를 확 바꿔버릴 수 있는 이능이라. 인간은 자연재해를 두려워한다. 지진, 해일, 폭우, 걷잡을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그에 비해 인간이 만드는 산불은 차라리 물로 꺼지기라도 하지. 지각이 뒤흔들리는 것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이프는 안내하듯 손을 내밀었던 주제에, 잡힌 채로 회의실- 말만 이렇고, 수다 떨기 좋은 방으로 이동되며 생각을 마친다. 뱉을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부른 건지. 기대가 무척 됩니다. 농을 섞어서, 웃음기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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