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전언
청춘의 메세지 시간선
어떤 삶도 영원할 수는 없다. 영원이 그를 구성하는 음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순적이게도 영원을 바란 적이 없다. 오히려 이 지긋지긋한 순백이 지워졌으면 했다. 지속되는 영원은 하나다.
분노.
나고 자란 곳이 타버리는 것이야 이 시대에 흔한 비극이지만 아이에게서 미움을 사면 흔한 비극도 평생 그치지 않는다. 손 안에 겨우 쥔 애착을 잃으면 노인네가 되어서까지도 비슷한 부드러움을 찾듯이, 유년의 순간은 뼈에 새겨져 긁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기억의 골조가 되어 외벽과 내벽이 바뀌더라도 형태를 바꾸지도 못하고. 영원히, 영원히…….
그러므로 모리츠의 유년은 참으로 모난 세계였다. 한번 불타 들보와 기둥만 남은 세계를 악착같이 붙들고 어디로도 가지 않겠다고 주저앉은 위로 눈이 한 차례 내렸다. 이제 그것은 너의 것이 아니라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한다 이르는 말에 인정하지 못하고 안간힘을 들여 돌을 쌓았다. 그것을 구성하는 것들은 단편적이고 거친 돌들이었다. 남의 피가 묻어있거나 그가 흘린 피, 혹은 남을 베어낼 듯 날이 세워진 돌들. 백야 외에는 절대 살 수 없는 골조에는 이따금 투명하고 찬란하며 푸른 돌들이 끼어들었다. 유리 조각처럼 평평하지는 않아 난반사된 빛이 온 사방에 제멋대로 빛을 뿌렸지만 그는 빼내지 않았다. 그것들은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빼버리면 집안이 무너질 위치에서 빛을 냈다. 불길하지도 않고 고요하게.
세월이 지난다. 모리츠의 세계는 일순도 바람과 눈이 멈춘 적 없어 돌은 풍파된다. 면면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푸른 빛의 돌은 이따금 창문이 될 정도로 사이사이에 끼어 안을 밝혔다. 이제는 뺄 생각이 추호도 들지 않았다. 좋고 싫은 감정이 들기 전에, 그냥, 그의 일부였다. 당신이 장기를 빼내거나 팔을 내버리고 싶지 않듯이……. 그는 이 집의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이 살기에는 휑하지만 빛이 들어오는 곳은 맘에 든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돌은 살을 베이거나 남을 베는 데에 특화되어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기에 빛이 든다는 이유로 남아있고 싶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삶은 영원하지 않고,
"……나는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았어. 전부 불태우고 혼자 남고 싶었어. 그걸 굳이 끌어낸 게 너희야."
"그리고 너는 나를 다시 처박는구나."
"기어이."
"기어이……."
잘 쌓아왔다고 생각한 벽은 가볍게 밀치는 것으로도 무너져내린다. 바라는 것이 그것 뿐이었어도. 츠모리 시키는 벽을 부수고 웃으며 사라졌고 그는 그 구멍을 멀거니 바라봤다. 균형이 어그러져 모든 돌이 한쪽으로 기운다. 많이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행복하고 안정적인 닻을 내려 나아지겠다는 마음은 불경에 가까워 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나왔잖아. 추억을 나눈 것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도망쳤잖아. 왜 이딴 꼴을 만들어?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너희가 채워넣은 걸 너희 손으로 부수는 저의가 뭐야? 나를 좋아했다면 이래서는 안 되잖아.
그러나 대답은 없고, 빛을 살라먹은 분노는 복구할 길 없이 속에서 끓는다. 눈이 백지처럼 내려 생각을 덮는다. 그렇게 10년이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니 단순한 일을 반복한다. 남에게 날을 세우고 악담을 묵묵히 씹어 세계는 기운다. 실은 그냥 때려치거나 막연히 쌓은 걸 내버리고 나가고 싶은 생각을 한다. 쌓는 것보다는 그것이 쉬웠다. 자멸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왜, 있잖아, …….
눈보라 사이로 넥타이가 잡아채인다.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10년 사이에 변한 얼굴이 코 앞이다. 특유의 오만한 웃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떠난다. 예측, 혹은 예언, 혹은 예감이 눈을 멈춘다. 이 얼굴에 해답이 있다. 이것은 세월이 지나도 명확히 눈 앞에서 빛난다. 바스러진 수정 사이를 비추어 눈을 멈춘다. 먼지의 더께에 가리워도 여전한 빛……. 시선을 떼지 못하던 청춘의 빛. 한 순간도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빛무리가. 영원의 백야는 눈이 그친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이 눈 앞에서는 폭설이 그칠 것도 깨닫는다.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다.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나도 기억의 형태를 정하고 싶어."
적어도 이 빛을 영영 잃고 싶지는 않아. 나도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 단숨에 불타고 싶지 않아. 나아질 것은 한 톨도 없더라도 추억은 손에 쥘 수 있잖아. 나는 기억하고 싶어. 작별인사로 이 푸르게 빛나던 빛을 갈아 제대로 내게 빛이 쏟아지게 만들고 싶어. 언젠가 빛을 잃더라도.
기억은 어딘가에 분명 남아있으니까.
"……졸업, 축하해. 츠모리 시키."
안녕.
기록:: 2021.01.01
영원의 백야는 자의로 귀문을 나온다. 퇴직 사유는 '방해가 너무 많습니다.' 데보라는 어이없는 눈으로 지켜보았지만 본인은 굽히지 않았다. 마법전이 걸리거나 한대 얻어맞는다고 해도 납득할 생각이었지만 별로 큰 일은 없었다. 다들 복수심에 물 밀듯 들어오다가도 소중한 것을 들먹이며 도로 나갔으니. 짐을 챙겨 나오면 누군가 뒷목을 잡아당기듯 끌었다.
"내 뒷목은 손잡이가 아니야."
"불렀는데 대답 안한 자식이 누군데?!"
"모르겠는데."
"이 나쁜 놈."
"한 살을 더 먹어도 달라지는 게 없네."
퇴사한 건 성질 다 부리고 문호 본부로 돌아갈 즈음에 이야기 해줘야겠군. 백야는 묵묵히 상대의 악담과 성질을 받으며 걷는다. 햇살이 곁가지로 들어와 안대를 누른다. 눈이 내리지 않는 하늘에 적응할 때가 됐다. 빛이 번져 아득하더라도 돌아서서는 안된다. 지금 온갖 성질을 부리는 녀석이 가르친 것이다. 겨울밤인 주제에 참으로 모순된 마법사다. 그러나 모순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삶은 영원하지도 않으나 지속되며 쉼 없이 나아질 것이다. 처박히더라도 태워버리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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