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청연
그러고 보니, 하고 운을 띄운 클라이언트가 앉은 채로 허리를 조금 굽혀 서류를 들여다본다. 수익과 정산, 대체적인 그래프를 훑어가던 손이 잠시 멈춘다. 운을 띄운 것도 잊었을 즈음에 가볍게 지나가는 말이 붙는다. "아는 보안업체 없으신가요?" 컨설턴트는 미간을 구기지 않는 데에 성공한다. 다소 뜬금없는 말도 들어줘야 응해준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몇 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저택은 해무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히 돌을 박아 만들어 나무결이 떨어지거나 들뜬 구석이 없었다. 오래된 벽돌집 치고는 말끔한 갈색이 남아있었고, 중간의 흰 대리석들도 모서리가 조금 닳긴 했지만 부서질 정도로 너덜거리지 않았다. 결벽할 정도로 깐깐한 관리인이 천수를 살아 최대한 노력한 광경 같았다. 굴뚝을 타고 시선을 내리면,
그 순간은 공백이라거나, 침묵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숨을 삼켜 코와 입안에서 바람이 도는 소리나, 귀를 오래 눌러 막으면 들리는 희미한 맥박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할 압력이나 흐름에서 똑 떨어져나와 홀로 있는 기분이었다. 유카와 란야는 그 순간을 고립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난파로 부르려고 했는데, 그건 원래 있어야할
잠은 밤의 노래와 함께 찾아온다 사무소의 채광은 밝은 편이다. 노노에 마사키가 두껍게 덮었던 커튼을 죄다 떼어내고, 간단한 블라인드로 교체해두자 빛이 숨 쉴 틈 없이 꽉 차게 들어왔다. 주말이 지나고 문을 열면 흰 먼지가 춤추는 것이 온 사방에 보일 정도로. 남이 넘겨다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유카와 란야였지만 그 빛은 가리지 않았다. 의뢰인이 눈을 찌푸
어떤 삶도 영원할 수는 없다. 영원이 그를 구성하는 음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순적이게도 영원을 바란 적이 없다. 오히려 이 지긋지긋한 순백이 지워졌으면 했다. 지속되는 영원은 하나다. 분노. 나고 자란 곳이 타버리는 것이야 이 시대에 흔한 비극이지만 아이에게서 미움을 사면 흔한 비극도 평생 그치지 않는다. 손 안에 겨우 쥔 애착을 잃으면 노인네가 되어서
사소하지만 까다로운 민원이나 관장의 알 수 없는 - 새롭지만 기존 레퍼런스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그럴 듯하고 눈에 쏙 들어오는 요컨대 다른 도서관에서 했던 그거 - 요구, 혹은 지하 서고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괴담조사니 뭐니 하는 유튜버들을 제외하면 도서관의 업무는 대부분 큰 소리 없이 유하게 흘러갔다. 오랜 세월을 굳건히 쌓아온 도서관의 위엄에 선뜻 난동
2010년 9월 6일에 도달하기 직전, 늦은 밤.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나? 기억 안 나요. 마법사의 시간이란 찰나와 영원을 오가는 탓에, 그는 그 순간의 시간을 기억하지 않았다. 다만 그 공기만이 기억에 남았다. 손을 뻗지 말라고, 오랫동안 함께 해온 예지가 몰락을 예고하며 등을 찌르는 듯한 숨 막힌 적막. 주위는 텅 비어있었다. 운이 좋았다. 아니
옅은 시가 냄새 위에 은은한 꽃내음이 덮여있는 코트 자락. 떠오르는 첫인상을 짚으라면 그런 사소한 점이다. 시각적인 것은 많이 바래어 오래전에 읽은 책과 다름없는 형태였고…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되었으니까. 그래도 활자로 남은 첫 이야기를 서술하면 그랬다. 그 시대에는 현자도 우자도 공평하게 알 수 없는 일로 스러져 나자빠지는 통에 아이의 양육자가
⚠️ 대외적 이름 : 유카와 란야 / 湯河 嵐夜마법명 : 영원의 백야 / Eternity's night인간 시절 이름: 모리츠 나이젤 / Moritz Nagel성씨는 잊어버리기도 했고, 딱히 기억할 생각도 없는 편. 독일 사람들은 성씨를 잘 얘기 안 한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외견 삐침 없이 단정한 흑발. 허리 아래까지 닿는 긴 머리는 곱슬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