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서풍의 뒷편에서 흐른다
둘이서 수사, 수록 3편
잠은 밤의 노래와 함께 찾아온다
사무소의 채광은 밝은 편이다. 노노에 마사키가 두껍게 덮었던 커튼을 죄다 떼어내고, 간단한 블라인드로 교체해두자 빛이 숨 쉴 틈 없이 꽉 차게 들어왔다. 주말이 지나고 문을 열면 흰 먼지가 춤추는 것이 온 사방에 보일 정도로.
남이 넘겨다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유카와 란야였지만 그 빛은 가리지 않았다. 의뢰인이 눈을 찌푸리면 블라인드를 내릴 뿐. 사무소의 한 구석을 떼어 만들어둔 조그만 휴게실에는 얇은 쉬폰 커튼만 달아두고, 그는 아침 일찍 도착해서 멀거니 바깥을 내다보는 습관을 들였다. 노노에 마사키가 오지 않는 몇 달간 말이다.
노노에 마사키가 기억을 잃고 최초를 회상했을 즈음에, 그가 바빠서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런 사소하고도 다양한 변화였을 것이다. 책이나 서류는 빛에 닿지 않게 캐비넷에 가지런히 넣어 치우고, 창가에는 제가 앉는 책상과 의뢰인이 앉을만한 소파를 두었다거나. 협탁 위 차의 종류가 늘었다거나, 문을 가려두어 있는 줄도 모르는 휴게실에는 소파 베드가 하나 생겼다거나….
그런 이야기들. 전부 노노에 마사키에게는 조금 어색할 수 있었겠지만, 유카와 란야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퇴원했다는 핑계로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뻔뻔하게 상대를 올려다봤을 뿐. 그는 괜찮아 보였다.
정확히는, 상당히 괜찮았다. 그가 깨어나는 기색만 보이면 안정제를 넣거나 식사를 넣어주고 다시 잠재웠던 탓이다. 유카와 란야는 살짝 열받아 보였지만, 그것마저도 안정제니 잠이니 하는 것들에 희석되어 아득해졌다. 다만, 아주 약간의…….
"전 잘 자고 있는데 이렇게 매번 와서 챙기는 걸 보면, 사실 당신이 혼자 못 자는 건 아닌가요?"
"이 자식이 챙기러 와도 이런 소리 하기냐?"
"흥."
아주 약간의 앙금이 남았을 뿐.
그리고 몇 가지의 후유증 따위가 남았다. 이를테면 사무소의 문의 잠금장치가 이중으로 늘어난 것으로 모자라 CCTV나 보안 관련의 경비가 있다는 경고문의 부착으로. 혹은 조금 큰 소리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멈칫, 하는 순간. 그리고 밤이 오면 병원 침대의 끄트머리나 노트북의 모서리를 세게 쥐었다가 놓는 습관. 불안한 시선. 병실의 불을 끄면 다급하게 그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라거나. 어두울 때 잘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구태여 입 밖에 내지 못했으나 의사와 그의 파트너는 알아차리기 쉬웠다.
몇 달간의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그는 고개를 저었던 탓에, 의사는 대신 안정제를 내주었다. 알약과 이따금 과호흡이 왔을 때 보호자나 동료에게 투여를 부탁해야 하는 주사로. 그리고 오늘이다. 퇴원 후 이틀째. 하루는 노노에 마사키의 긴급 출동으로 홀로 있었고, 잠들지 않았었는데….
새벽이 지나고 별 미동 없이 사무실에 앉아있던 걸 들킨 날. 피곤한 얼굴로 들어온 사람은 제 얼굴을 보더니, 피로보다는 환장으로 점철된 표정을 지었고, 지체하지 않고 약 봉투를 찾았다.
"안 잤냐?"
"……."
"이 녀석아."
"노력했어요."
데웠으나 식은 지 한참 된 우유나 핸드폰에 재생되다 만 자연의 소리가 그 흔적이라고, 유카와 란야는 턱짓한다. 화를 누그러뜨리진 못했지만……. 저를 들다시피 끌고 간 상대가 휴게실의 소파에 눕힌다. 코트에서는 희미한 담배 냄새와 바깥공기의 냄새가 여실히 묻어났다.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안아 든 순간부터 잠이 오기 시작한 탓이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알콜 솜의 차가운 향이 뒤섞이다가 주삿바늘이 박힌다. 아프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던 잠이 살짝 깰 정도였다. 본인은 모르고 한참 투덜거리며 팔뚝을 누르겠지만.
"……이러지 않아도 괜찮다니까요."
"잠투정 그만 부리고 그냥 누워 있어라, 제발."
"잠투정이 아니라……."
"란야."
커튼 안 칠테니까. 노노에 마사키는 치사하게도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대꾸했다. 그게 무슨 신호인 양 눈이 계속 감겨서, 유카와 란야는 계속 몸을 일으키려다가도 결국 포기하고 늘어진다. 몸 위에 부드러운 이불이 덮인다.
머리와 소파 사이로 베개가 끼어든다. 담배 냄새가 조금 가까이 다가왔다가, 조금 멀어졌다가…… 나직한 노래가 들려온다. 착각일 테지만. 햇볕이 머리를 지나 가슴팍에 닿아 따뜻하게 데워지기 시작하자 서서히 어깨의 긴장이 풀린다. 정말 사람이 있어야 잠이 드는 걸까? 아니면 해가 들어야 잠이 드는 걸까? 아니면 당신이 있어야…….
유카와 란야는 그제야 잠이 든다.
공간의 정의
단순히 발 닿고 누울 수 있는, 혹은 들고 다니기 번잡스러운 물품들을 보관하는 공간. 어린 탐정에게 ‘집’을 정의하라면 그런 단어였다. 제대로 쉰다거나, 단란한 가정에서 으레 노래 부르는 ‘애정이 가득한 우리 집’이라는 애착은 오래전에 상실했다. 그렇다고 불우한 가정사를 늘어놓는 것은 지면의 낭비며, 탐정을 이해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지 않으니 넘기도록 하자. 다른 곳을 이야기하는 게 더 빠른 계산일 것이다.
이를테면 나카스 시의 어느 연구실. 여름에 창문을 열면 풀냄새가 진하게 들어와 한눈을 팔게 만들던 곳 말이다. 발 디디는 곳마다 연구서며 서책이 널린 형제의 아지트이자, 연구자의 요람은 이따금 탐탁지 않은 시선이 들어와도 숨을 수 있을 만큼 번잡하고 수상했다. 어린 유카와 란야는 그 혼자만 돌아가야 하는 날의 저녁이 오면 구석의 낡은 책상 밑에 들어가 몸을 밀어 넣고 의자까지 당겨 숨었다. 할아버지의 전화벨이 영원히 울리지 않기를 고대하면서.
세이야는 어린 동생이 또 다른 길로 빠졌을까 전전긍긍하는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와 주변을 열심히 뒤적이다 의자를 당겼다. 란, 숨바꼭질은 즐거웠어? 하고 묻는 그에게는 슬픈 기색이 감돌았다. 그 표정만은 기억한다. 그래, 아마 처음으로 ‘집’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있었다면 그 어린 여름이었으리라. 이제는 의미가 바랜 채로 영영 빛나지 못하겠지만. 집의 형태는 다음으로 넘어간다.
작은 관. 단면에 손톱자국이 남아있고 짙은 향냄새가 나는, 시끄럽게 떠들던 목소리가 결국엔 잦아드는……. 그는 청소년의 시기까지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집이 되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사후에 머물 시간까지 생각하면 확실히 새로운 집이라고 생각할 법하지 않나? — 노노에 마사키는 듣자마자 반박할 테지. 유카와 란야도 이제 이 사상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 그래서 그의 두 번째 집은 시온 쿄시쿠의 사무실이었다.
애착이 붙지는 않았어도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공간을 고르라면 그런 공간이었다. 사무실에는 온갖 사람이 드나들었다. 울거나 웃거나 혹은, 어딘가에 불타고 있는 사람들. 시온 쿄시쿠의 책상은 이미지와 다르게 꽤 얇은 합판 재질이었다. 누군가가 쿵, 하고 내려칠 때마다 시온은 엄살을 피웠다. 아, 어쩌면 그것도 연기의 한 용도였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고급 만년필과 접착력이 떨어져 가는 싸구려 메모지가 같이 놓여있기도 했고, 비싼 시가와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가 섞여 있기도 했다. 다소 기이한 책상이었다. 통일이라는 게 없는 공간이었지. 16살 즈음의 유카와 란야는 학교에서 돌아와, 사무실 파티션 뒤의 소파에 앉아 웅크려 앉아있는 걸 좋아했다. 비치지 않는 재질 덕에 그는 몇 시간이고 숨어 앉아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숙제를 이어갔고, 이따금 졸다 일어나면 깨진 컵을 쓸어내던 직원이 놀라 화들짝 뛰어오르기도 했다. 존재감 없는 정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는 별 불평하지 않았다. — 생각해보면 거기서 존재감이 없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을 것이다 — 끄트머리를 씹다 버린 인스턴트 커피와 종이컵. 담배 냄새나 불쾌한 약 냄새, 혹은 짙게 뿌려 코가 아플 정도인 향수 냄새. 그곳을 지금도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글쎄. 역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는 성인이 되어 몇 가지 사건을 겪은 후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었다. 그만한 재산이 있는 것 치고는 아주 넓지는 않았다. 적당한 침실과 창고처럼 쓰는 손바닥만 한 드레스룸, 침실과 비슷한 크기의 방은 서재로 썼다. 독립은 처음인 청년이 살기엔 살짝 넓은 감도 있었다. 혹은 그가 물품을 잘 들여놓지 않아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거실의 부드러운 소파와 TV, 유리로 된 커피 테이블. 부엌 상부 장에 가지런히 정리된 흰 식기 세트. 침대와 노트북, 그리고 많은 서류와 자료들. 그것으로 끝. 의뢰로 받는 감사패 따위는 장식하지도 않았다. 답례품도 종종 들어왔으나 전부 창고에 대충 넣었다. 테이프를 뜯지도 않고 보관된 것만 세도 꽤 되리라.
그는 이상하게 그런 걸 장식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가. 화분이나 작은 장식품마저 허락되지 않은, 단순한 보관소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노에 마사키의 기준에서 이것은 분명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무도 반기지 않아서. 불을 켜거나 끄는 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아침의 시리얼을 불을 정도로 내버려 뒀다가 먹어도 불쾌한 얼굴을 보이는 건 자신뿐이었으니까. 그것은 꽤 큰 메리트였다. 소소한 안정감.
그러나 건조한 감각은 가시지 않았다. 목의 안쪽이 간지럽고, 말할 즈음에는 잠겨서 켈록대는 탓에, 이따금 자신의 본성이 고립이나 건조가 아닌지 생각할 즈음에,
그는 노노에 사무소를 바라본다. 정말이지 이전과는 성질이 지독하게 다른 공간이다. 각을 맞추어 둔 물건은 돌아서면 비뚤어진 채 굴러떨어져 생활감이 남았고, 소파에는 사람이 누웠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담요와 뒤섞여 있었다. 청소했다 싶어도 며칠 뒤에 보면 과자 부스러기나 커피의 흔적이 굴러다니는 집안이라니, 답이 있냐고. 그러나 유카와 란야는 거부감없이 정리했다.
죄책감이 더 큰 탓이었다. 그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아서 죽었고 망가졌다고. 피로가 쌓여서 초췌해진 얼굴은 내 탓이라고.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안정감이 드는 탓도 있었으리라. 속죄는 개운한 기분이 드는 건가요? 얼룩을 닦아낸다고 해도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닌데.
유카와는 결국 묻지 못하고 몇 년을 보냈다. 어둡게 드리운 암막 커튼과 전기 포트. 싱크대 옆의 찬장에는 맵고 짠 인스턴트 음식들이 상자나 번들로 들어 있었고, 대접할 용도로 산 오래된 우롱차 티백과 믹스 커피가 약간의 먼지를 머금고 선반에 쑤셔박혔다. 이따금 냉장고에 술까지 들어있는 꼴은, — 이제 와선 그가 그 습관을 내다 버린 덕에 언급하지 않지만 — 다소 오해를 사기 쉬웠다. 곧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방탕함이었다. 덕분에 문을 열 때 커튼이 온 빛을 가리고 있으면, 숨을 멈추고 가만히 소리를 기울이는 버릇을 다시 들였지.
그러나 조금씩, 햇볕에 내둔 책의 글자가 메말라 흐려지듯이. 혹은 밤하늘에서 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눈을 길들이듯이, 혹은 쿠션이 부드럽게 부풀 듯이. 그는 커튼이 드리워져도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스물여덟이 되고 나서야 어둠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다소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노노에 마사키에게 이 모든 소감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전부 알고 있더라도. 언젠가 모든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일의 끝에 돌아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녀왔습니다’를 했다는 사실은 제 입으로 고백하지 않을 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부끄러웠던가? 아니면? 아니면. 그런 말을 하면 당신이 나를 안쓰럽다거나 정말로 동정할만한, 혹은 놓아서는 안 되는 어린 애로 볼까 봐? 혹은 언젠가 동정심으로 결혼이라도 해줄까 봐? 그런 게 될 바엔 차라리 동사라도 해버리자고 생각한 것이 이런 일의 발단이다.
아뢰옵고, 친애하는 탐정님께!
2021년 12월 26일 일 오후 11:46
노노에 마사키의 식성은 유카와 란야에 비견하면 다소 자극적이고 기름졌으며……. 조금 과한 단어를 붙이자면 “애 같은” 취향이었다. 기억하지 않는가? 빨갛다 못해 까만 소스며, 수사하다가 내뱉는 연어 초밥이니, 혹은 고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는 식성들.
사무소를 나누어 쓰던 시절 내내 서로의 입맛에 반기를 들고 동조하며 일견 비슷해진 구석은 있겠지만, 본질이 같아졌다는 수준은 아니었다. 유카와 란야는 여전히 새벽에 배송받는 샐러드 재료가 있었고, 편의점의 도시락 중에서는 채소가 섞인 냉파스타를 집어 드는 족속이었다. 그런 이유로.
“도시락이요.”
“너무 바쁠 것 같으면 거절해도 된다만…….”
이런 말은 조금 곤란했다. 자주 다루지 않는 식재료는 실수할 여지가 너무 많았다.
그보다, 그런 서글픈 눈으로 그런 이야기를 해도 말이죠. 완전히 모순이잖아요, 당신. 그는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해주는 것만 아니면 돼요. 정말 도시락 먹기 질린 날 저녁에 알려주세요. 아침에 받아 가고요. ”
“헤헤.”
노노에 마사키는 바보 같고, 다정하고, 조금은 귀여운 웃음으로 대꾸했다. 유카와 란야는 정말 이런 웃음에 넘어가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정말로.
그렇게 어느 날의 저녁 10시.
평소보다 좀 더 큰 도시락통, 잘 사지 않던 슬라이스 햄과 부드러운 맛살. 깻잎, 오이. 작은 대추 토마토와 포도. 기름 바르지 않은 마른 김. 그리고 계란 한 줄과 작은 식빵. 돌아와서는 남아있던 당근을 채썰고 (어쩐지 그는 몇년이고 연상이면서도 종종 야채를 편식할 듯한 인상이었다) 오이는 얇게 저몄다. 씹더라도 식감이 강하지 않으리라. 불평하면 다음은 없는거고. 이어 맛살은 잘게 찢어 마요네즈를, 계란 몇개를 푼 뒤에는 식빵을 푹 담구어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는 한참이고 저녁까지 불 켜진 주방을 바라보다가, 또 야근이지만 네 도시락은 먹고 싶다고 낮은 투정을 부리던 연인을 떠올리다가…. 한숨 쉬듯 웃고는, 재료를 가지런히 정리해 냉장고에 넣고 불을 껐다.
새벽 5시 33분.
이른 아침이었다. 햄은 기름에 볶여 가장자리가 조금 갈색으로 들떴고, 당근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볶여 가지런히 한 구석에 놓였다. 저며둔 오이를 꺼내어 소금에 잠깐 넣었다 데치는 사이에 본래의 기상 알람이 울렸다. 이제야 6시면…. 아마 노노에 마사키는 눈도 안 떴겠지. 안도를 느끼면서도 손은 분주하다. 아까부터 바깥에 나와 식은 흰 밥을 김 위에 고루 펴고, 돌돌 마는 대신에 속 재료를 넓게 넣어 반으로 접었다. 마요네즈가 버무려진 맛살에는 깻잎이 따라붙었고, 햄에는 오이가 따라붙었다. 받는 본인이 보았더라면 김밥은?! 했을 모양새였을지도 모른다. 조금 넓적하게 펼쳐진 그것을 반으로 가르고, 랩으로 둘러 모양을 잡으면 그제야 적당히 짐작이 갔다.
김밥을 샌드위치마냥 싼 것 같은 형태였던 탓이다. 본인도 낯선지 여러 번 확인하던 유카와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맞는지 물어볼 길이 없었다. 왜냐면, 그러니까, 이 도시락 레시피의 출처란….
‘늘 바쁜 애인을 위한 도시락 팁’이었으므로. 절대 말 못 한다. 하트며 온갖 아기자기한 속재료를 거르고 걸러서 티도 안 나는 걸 골랐다고도…. 절대로.
한숨은 한숨대로 푹푹 내쉬면서 손은 착실하게 도시락통을 채운다. 깔끔히 씻어 넣은 작은 대추 토마토나, 엷은 초록빛의 포도알. 심심풀이로 먹을만한 양념 된 아몬드. 마지막으로…….
“내가 아침부터 뭐 하는 걸까요.”
대답할 사람은 없다. 대신에 달궈진 프라이팬에 오른 프렌치 토스트가 열심히 몸을 불살랐다. 설탕이 위에 뿌려지자 보기 좋은 갈색을 냈는데, 그대로 넣으면 상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결국 도시락의 다른 칸을 따로 차지했다.
간식으로 먹어줄지 몰라서, 혹은 그래 줬으면 해서. 설탕을 무심결에 잔뜩 뿌렸지만, 슬슬 부끄러웠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나.
“부끄럽다고…….”
오전 7시 40분.
이마를 꾹꾹 누르다 조심히 뚜껑을 덮고 작은 가방에 도시락을 끼워 넣는다. 전해주면 분명 부끄러운 소리를 할 테니 얼른 도망쳐야 할 일정을 찾아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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