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Easter egg

은과 금 / 장례, 2천 자

더없이 화려한 장례식이었다. 빽빽하게 늘어선 백색의 조화를 사이에 두고,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파도치듯 밀려들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인산인해였다. 문간에 붙박여 있는 동안 낯익은 얼굴들이 간간이 곁을 스쳐 갔지만 모리타는 구태여 아는 체하지 않았다. 시야가 온통 극명한 흑백의 물결로 가득했다. 구석에서 서성대기를 얼마쯤 했을까, 기어코 까치발을 들고 넘겨다본 안쪽에는 처음 보는 청년이 상주를 지키고 있었다. 뒤늦게 현기증이 일었다. 모리타는 비상 계단으로 도망쳤다. 관절을 지탱하던 근육들이 종잇조각처럼 너절해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한 몸을 간신히 난간에 기대앉힌다. 눈앞이 흐렸다. 마른세수를 하려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왜?

 

어떤 효용도 없는 질문이었으나 모리타는 물어야 했다. 누구에게 향하는 말인지, 심지어는 무엇에 대한 의문인지조차 불분명했지만 이미 입 밖으로 흘러나온 음성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눈가의 열기가 얼굴 전체로, 온 몸으로 퍼졌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논리는 이미 머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필 지금이어야만 했는지. 그보다 우리의 재회는 왜 이렇게 이루어져야만 했는지. 묻고 싶었다. 여기에도 숨겨진 정답이 있나요? 그걸 찾아내면 뭔가 달라지나요? 하지만 모리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목전의 갈래길에서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골랐던 그 때, 진작부터 끝장난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잔여하는 과거의 파편들은 때로 동력이 되었고 때로 걸림돌이 되었다. 만약 그때 세이브 버튼을 눌렀다면, 당신을 떠나던 그 순간에 책갈피를 끼워 둘 수 있었다면. 나는 돌아가지 않고도 언제나 망설였을 텐데. 모리타는 생각한다. 헛웃음이 터진다. 현실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게임의 트릭은 실제 삶에 적용되지 않는다. 마법은 이미 힘을 잃었다.

 

긴 한숨이 흩어진다. 얇은 철문 너머 복도 저편에서 수없는 조문객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들어오면서도 느꼈지만, 지나치게 슬퍼 보이는 사람은 아무래도 없다. 모두들 활기가 넘쳤고 지나간 어제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오히려 모리타에게 이상한 안도감을 가져다 주었다. 시큰대던 콧등이 잠잠해지고, 눈가의 물기가 모두 마르고 나면. 그래도 당신이 떠났다는 소식만은 제때 알게 되어서, 당신이 떠나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여기에 몰려든 인파는 형식에 불과하더라도. 그중에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당신이 우리에게 남긴 자취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여기에 있었던 시간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니까. 그거면 괜찮은 것 같았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래 굽히고 있었던 무릎이 굳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불편은 잠시뿐이었다. 모리타는 계단을 올라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금속의 온도가 열 오른 손바닥에 날카롭게 스며들었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빛이 꼭 이랬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정확히 복기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비상구 문은 모리타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열린다. 역광을 등에 업은 누군가 모리타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 반갑게 다가온다. 분명 아는 사람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모리타는 건조한 눈을 깜박인다. 왜 이런 곳에 있어? 찾아다녔잖아. 그가 웃으며 모리타의 손에 대뜸 무언가 쥐여 주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해낼 때쯤 그는 벌써 식장으로 돌아가고 없다. 제법 두툼한 봉투 안에는 여러번 접힌 종이 뭉치가 들어 있다. 봉투의 내용물을 꺼내면, 손에 쥔 낱장들 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검은 자국. 편지? 황급히 고개를 든다. 모리타는 계단에 홀로 서 있다. 비상등의 초록 불빛이 희미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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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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