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리즈는 자신이 실종되었던 것을 온전히 기억한다. 산딸기 밭, 포근한 밤, 숲의 초입, 그리고 새벽제비……. 새벽제비의 손을 잡고 리즈는 걸었다. 도시 밖, 아니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은 없었다.
로젠이랑 손 잡고 뽀뽀해야해서 아빠가 되기 싫은거에요?
리즈가 물었다. 새벽제비는 폭소를 터뜨렸다. 로젠과 새벽제비는 만난 지 백 년하고도 수없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리즈에게는 말할 사안이 아니었다. 나중에 그들의 관계를 눈치챈다 한들 새벽제비는.
로젠에게는 유감이 없어.
유감? 그러니까 안 싫다는 뜻인거죠.
그래. 리즈, 저기 봐. 저게 산딸기야.
새벽제비는 리즈의 관심을 돌렸다. 처음 보는 산딸기였다. 낮고 가시가 난 덤불에 작고 붉은 점들이 찍혀있었다. 리즈는 그 이후 한동안 산딸기 덤불을 그림으로 그렸다. 산딸기까지 닿는 과정은 리즈를 배제했다. 잎은 거칠었고, 나무에는 가시가 났다. 리즈는 여기저기 생채기를 내며 산딸기를 땄다. 그러다 입에 빨간 물을 들인 채 덤불 속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그 때는 자정이었다. 열 살 아이는 잠을 잘 시간이었다.
길고양이가 죽었다. 리즈를 “괴물” 이라고 부르는 작자들이 리즈가 아끼는 길고양이를 일부러 죽인 것이었다. 당연히 신고는 했지만, 물증이 없다고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 리즈는 소리내서 울지 않았다. 이빨을 앙 다물고 눈물을 글썽이기만 할 뿐이었다. 눈꼬리들에 가득 고인 눈물은 리즈가 입을 열 때 마다 주르륵 흘렀다. 닦지 않았다. 리즈는 그렇게 울 것을 세상에게서 강요받았다. 로젠은 더욱 성대히 리즈의 생일을 준비했다.
리즈, 받고 싶-,
진을 꺼내줘. 진과 얘기할거야.
소금기 때문에 발갛게 튼 뺨. 로젠이 손수건에 물을 묻히는 동안, 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즈의 요구사항은 간결했다.
고양이를 살려줘.
그리고 진의 대답도 간결했다.
그럴 수 없어.
리즈는 탁자에 엎드려서 작게 몸부림치며 오열했다. 로젠도 진도 삶과 죽음 너머에 살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려줘, 제발, 살려내, 로젠은 리즈가 받는 차별과 혐오를 알고 있었다. 그도 리즈를 껴안고 같이 울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다. 그건 해선 안된다. 로젠이 리즈의 고개를 들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물 묻은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생일이라고 모든게 이뤄지는 것은 아냐. 우리, 잘 애도하자.
로젠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바닥 있는 슬픔과 현실이 담겨있었다. 리즈는 코를 훌쩍였다. 로젠이 리즈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리즈의 몸에선 산딸기 냄새가 났다. 그의 이빨은 산딸기 즙으로 얼룩거렸다.
새벽제비가 외행성으로 떠났다는 거, 거짓말이지.
로젠은 놀라 리즈를 꽉 껴안았다. 로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리즈는 마음껏 울 수 있었다. 그 동안 로젠은 말해야 했다. 입술을 억지로 벌렸다. 쉬어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짓말이야.
일부러 보지 않았던 벽에 새벽제비가 초췌한 모습으로 등을 기대고 서있었다. 자세히 보면 정말 실체화 될 것 같아 로젠은 새벽제비를 눈가에 두었다. 리즈의 열 여섯번째 생일은 침통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리즈, 케이크를 불고 소원을 빌어야지.
나를…….
명확한 소원을 빌어야했다. 리즈는 자기가 일기장에 적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다 같은 내용이었지만, 자세함의 정도가 달랐다.
나를 떠난 것들이 살아돌아오면 좋겠어.
사랑하는 리즈의!
뭐, 너도 내 소원을 들어준다 하였으니 나도 공정한 “거래” 를 해볼까, 오, 나의
생일 축하 합니다!
죄책감이여.
로젠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동안 리즈는 뚱한 표정으로 데이터패드만 만지고 있었다. 거기에선 호리호리하게 예쁜 여자가 호캉스를 즐기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 사이사이에 빠른 배속으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크 불어야지.
로젠은 인내심을 되새김질 했다.
소원도 안 들어주면서.
리즈가 비아냥거리곤 휙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찬 바람만 남겼다. 케이크와 덩그러니 남은 로젠은 한숨으로 진정해보려고 했다. 휴우. 휴우. 휴우……. 위로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로젠은 눈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새벽제비에게 신경을 써주진 않았다. 그건 가시였다. 발가락 끝에 박힌 가시.
생일 축하 합니다! 로젠, 새벽제비, 리오의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리즈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한 번에 초 열 개를 불어 껐다. 그 아이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세 개의 선물을 받고 리오가 우물쭈물하게 얘기했다.
나, 선물 하나 더 받고 싶어.
로젠은 불현듯 떠올렸다. 어젯 밤 리즈가 아빠에 대해 물어본 것을. 로젠은 리즈를 막으려고 했지만, 리즈는 새벽제비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새벽제비가 선생님 말고 아빠 해줬으면 좋겠어요.
로젠은 멋쩍게 웃었다. 새벽제비를 보았다. 그는 무섭게 질려있었다. 로젠도 파리해졌다. 리즈는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것을 알고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로젠은 다시 웃어보였다. 무섭도록 활짝. 리즈를 향해. 리즈는 코를 쿨쩍였다. 리즈가 울기 전, 리오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하며 리즈를 낚아 채 방으로 갔다. 들어가기 전에 리즈가 안 보이게 빨리 해결하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로젠은 새벽제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이옌, 미스젠더링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해. 내가 대신……. 아니, 내가 사과할게. 리즈에게 그 개념을 설명하지 못한,
아니야.
새벽제비가 입을 막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비틀거리며 집 벽에 몸을 박았다. 그는 등을 둥글게 굽혔다. 굽히고, 굽혀, 그렇게 하나의 원이 될 것 처럼. 완전히 잠긴 목소리로 새벽제비가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냐. 그러니까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마.
무슨 소리야, 하이옌.
새벽제비는 작은 정원 한켠에 마련한 벤치에 앉아 고개를 돌렸다. 긴 머리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로젠을 달랜 것은 멜이었다.
로젠, 일단 이 사안은 미스젠더링이라고 리오와 리즈에게 말해주세요. 믿을 수 없겠지만…….
멜이 머뭇거리다 작게 덧붙였다.
슈는 안에서 부터 썩고 있어요.
리즈의 열 여섯 번째 생일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리오가 소근거렸다. 리즈가 무언가에 홀렸다고. 어둠? 군체? 아함카라? 물론 아함카라의 비늘을 들고 집에 온 적은 있었지만, 그건 다 처분했다. 분명하다.
선봉대가 이 일을 트집잡으면.
리오의 말을 로젠이 막았다.
우리만 조용히 하면 돼.
리즈는 종종 환청을 듣는 것 같았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로젠과 리오는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 열 살 이후 리즈의 연금이 해제되었는데도. 지긋지긋하다.
리즈가 시무룩하게 잠이 든 뒤, 멜은 새벽제비 몰래 로젠에게 왔다. 그리고 상세히 새벽제비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내장이 자꾸 안으로 썩어간다. 죄책감이 넘쳐 흐르려는걸 억지로 마셔서 그렇다고 새벽제비는 엉뚱한 말을 했다. 그의 말이라도 믿고 싶을 지경이다. 왜냐면 고스트가 고치려고 해도 원인을 알 수 없어, 죽은 새벽제비를 되살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아마 리즈가 다 크는 것을 보지 않을지도.
보지 않는단 말이 무슨 뜻이야?
로젠은 질문하였지만, 답은 듣지 못했다. 멜은 모습을 숨겼다. 새벽제비가 저쪽에서부터 나타났다. 자박, 자박. 맨발로 흙 밟는 소리가 났다. 로젠이 말했다.
하이옌, 슈, 뭐가 됐든, 네가 그랬지. 아이는 항상 준비되지 않았을 때 찾아온다고.
그래. 그렇기 때문에 우린 주어진 상황 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새벽제비는 많이 진정된 것 같았다. 리즈가 그 소원을 빈 이후부터 새벽제비는 보이지 않았다. 정원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멜이 여기 있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오늘 일은 미안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거야.
리즈를 사랑하지 않는거구나.
로젠이 매섭게 말했다. 자신의 말이 비수가 되어 정말로 저 가슴에 꽂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로젠은 더 쏘아붙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면 우리랑 함께 해. 네 고통을 설명하고,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이별에 대해 가르쳐, 리즈에게, 네가, 직접.
직접 사과할테니, 오늘 이 집에서 묵어도 될까.
물레방아, 산딸기, 팔이 네 개 달린 괴물 아이, 괴물 아이의 아버지, 도시 바깥의 숲. 꿈은 리즈가 발견된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멜의 시신. 멜의 시신이 발견된. 로젠은 맨발로 리즈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새벽제비를 저주하며. 리즈를 안고 집에 돌아오니, 발가락에 짧은 나무 가시가 박혀있었다. 잘못하면 염증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로젠은 진의 도움으로 가시를 빼고 소독약을 발랐다. 로젠은 상처를 수복하는 행위를 좋아했다.
새벽제비는 어떻게 되었는지. 로젠도, 궁금해 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집에서 죽은 길고양이와 똑 닮은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리즈가 거기서 위로를 많이 받는 것 같아 로젠은 마음을 놓았다. 고양이 물품을 좀 더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도 생각했다.
네가 어디 있던 간에, 가시가 날 죽이지 못한다면, 그건 마땅히 널 향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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