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

발레리안 일가에서 수호자를 찾습니다

로젠은 낡고 닳은 트럼프 카드를 섞는다. 워낙 헤져있어서 더 이상 카드로의 기능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 흠집이 난 카드는 클로버 킹, 저렇게 흠집이 난 카드는 조커, 어떤 것은 뒤의 필름이 떨어져 무늬가 비쳐보이기까지 했다. 쥘은 로젠이 뭘 할지 약간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로젠은 어린 수호자의 위축된 모습에 가볍게 웃고는 카드를 죽 펼쳐놓고 말했다.

내가 보여줄 것은 카드 점이야.

점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 쥘은 어리둥절하게 로젠을 보았다. 점은 과학이 발전되기 전, 그들의 지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하고자 만들어진 문화적 행위였다. 과학이 발전된 이후에도 점을 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건 하나의 놀이이자 풍속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신문에 실린 운세를 읽었다. 지금은, 지금은 사장된지 오래였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로젠의 긴 설명이 끝나자 쥘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죠?

소용 없지. 그러나 네게 필요한 통찰력을 줄 수 있단다.

쥘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그에게 필요한 통찰력. 로젠은 분명 이 미신적 행위를 통해 쥘이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쥘은 아직 어린 수호자였다. 발레리안 일가에서 수호자를 찾습니다, 그건 일종의 구조신호였다. 로젠은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쥘의 손을 붙잡고 발레리안 일가의 집에서 걸어나왔다.

쉽지? 딱 다섯 걸음 이었잖아.

로젠은 쥘의 마음을 안심시켜주기 위해서 웃기게 말했다. 쥘은 슬펐다. 그래서 다섯 걸음을 더 가고 울음을 터뜨렸다.

로젠은 트럼프 카드를 멋들어지게 펼쳐놓았다. 쥘은 로젠의 설명대로 카드를 뽑아 서툴게 늘어놓는다.

자. 이건 네 마음이야. 읽는 법을 알려줄게.

한동안 설명을 해주자 쥘은 더듬거리며 자신의 패로 점궤를 읽어냈다. 미래에 대한 미약한 통찰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었다. 쥘은 울상이 되었다. 마지막 한 장이 흉한 패였기 때문이다. 로젠은 쥘을 안심시킨 뒤 카드를 다시 섞어 좋은 패가 나올 때 까지 새로운 것을 뽑고 또 뽑았다.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것은 누가 있어.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러면 좋은 일만 보고 싶은 나의 마음만 볼 수 있는게 아닌가요?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로젠도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 앞 날을 개척하는 위대한 수호자.

쥘은 고개를 끄덕이며 패를 다시 덱에 집어넣고 슥슥 섞었다. 중간중간 카드가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쥘은 최상의 패가 나올 때 까지 패를 섞고 또 섞었다.

그래서, 왜 도망친거야?

우는 쥘을 달래고 로젠이 물었다.

학대? 협박? 아니면, 고문?

로젠은 안 좋은 경우를 다 늘어놓았지만 쥘이 말한 것은 그보단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발레리안 가족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저에게 아주 잘 해주셨고……. 그래서 저와 일가가 과거에 뭔가 있었다는걸 알 수 있었어요.

로젠은 카드를 놓치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카드들이 흩날려 꽃잎처럼 펼쳐졌다.

쥘은 로젠의 트럼프 덱을 들고 집을 나섰다. 점궤는 나의 반영. 우리는 운명을 개척한다. 몇 주 뒤 들려온 소식은 발레리안 일가가 살해당했다는 것이었다. 흉보를 듣자마자 로젠은 쥘을 생각했다. 그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 운명은 쥘을 로젠에게 데려왔다. 쫓겨다니느라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 폐인이 문 앞에 서있었다. 꼬질꼬질한 손을 내밀며 쥘은 로젠을 꼭 안았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선생? 로젠은 그를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를 이따위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했어요. 그런데 다음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저의 뜻을 몰라주잖아요…….

이건 아니다. 그렇게 말해야했지만 로젠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맞서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입만 빠끔빠끔 하고 있었다. 햇살은 더럽게 반짝였다. 현기증이 나는 심장에 힘을 주고 로젠이 말했다.

새벽제비, 그에게 가.

쥘은 로젠을 놓아주었다. 퀘퀘한 냄새가 머물렀다. 로젠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봉대는 로젠을 찾아오지 않았다. 쥘을 발레리안 가족에서 데리고 나온 사실을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로젠은 그런 일에 휘말리기 피곤했다. 꼬박 이틀을 잤다. 꿈 속에서 쥘이 말했다.

발레리안 가족은 정말 잘 해줬지만, 친절의 끝에 과거의 진실이 놓여있을까봐 너무 두려웠어요.

그는 점궤에서 무엇을 보고 그 사람들을 죽인 것일까? 물론 순결한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가? 살해당한 이들의 순결이?

로젠에게 카드 점을 가르친 사람은 뻔하게도 새벽제비였다. 누가 점을 믿는데, 그거 죽은 지 오래잖아. 로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새벽제비는 착, 착, 착, 카드를 섞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옷을 벗고 있었다. 로젠이 먼저 제안한 관계였다. 로젠에게는 자신을 불태울 것이 필요했다. 자살과 절망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건 자해야.

새벽제비는 만류했다.

닥치고 대라는 대로 대.

로젠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모든 것이 끝나고 새벽제비는 미래를 점쳤다. 알 수 없는 그림들을 읽고 중얼거리면서 미래를 읽는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미래에는 무지한 채로 남아있고 싶었다. 로젠은 이불에 펼쳐놓은 카드와 쌓인 덱을 쓸어 바닥으로 팽개쳤다. 꽃잎 모양으로 펼쳐졌다. 새벽제비가 카드들을 정리하는 동안 말했다.

점궤는 미래를 보는 게 아니야. 우리 자신을 보는거지.

문득, 로젠은 새벽제비가 먼 옛날 자신에게 고백을 한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네게 있어서 점궤인가? 나에게서 뭘 보고 있는거지?

다시 능숙하게 카드를 섞는다. 새벽제비는 침대 귀퉁이에 앉았다. 그리고 로젠에게 덱을 건넸다.

뽑아볼텐가?

이 꼴이라니!

결국 로젠은 골목으로 들어가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도시엔 공터가 거의 없었기에, 로젠은 골목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사방이 막혀있고 누가 소리치고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 익명의 공간.

이 꼴이라니, 이 꼬라지라니!

쥘에게서 연락이 온다. 로젠은 왜 화가 났을까. 과거의 자신이 쥘을 구해준 데에서 분노를 느끼는가? 쥘의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삭제한다. 아니면 현재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쥘에게만 순수히 화를 내는 것일까? 로젠은 도망을 친다. 아니야, 씨바……. 가게에서 가장 독한 술을 산다. 옥수수로 만든 증류주. 세 모금을 마시고 켁켁거리며 몸부림친다. 다시 단박에 세 모금, 켁켁거린다, 다시 단박에 세 모금……. 로젠은 짧은 시간에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다닌다. 취기에 기침이 난다. 끝에는 기침이 있다. 눈이 부셨다. 보니 한 아이가 손거울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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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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