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

사람의 아이

2천자 - 짧아요

한때 아이였던 사람이 걸어온다. 발은 머뭇거렸고, 왼팔은 오른팔로 감쌌으며, 눈은 아함카라를 직시하지도 못하고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착실히 걸어 아함카라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까지 왔다. 사람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입을 벙긋거렸다. 소원을 빌면 자신에게 천벌이 떨어질까?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 돌아갔다. 아함카라는 이제 이 모든 것이 지루했다.

저주하고 싶은 이가 있지 않나, 오 나의 아이여.

사람이 고개를 든다. 놀란 표정이다. 아함카라는 발에 힘을 주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스핑크스처럼 앉은 생명체는 아름다웠다. 썩어가는 고깃덩어리처럼 아름다웠다. 그렇다. 사람은 저주를 하러 왔다. 그렇다. 그래서 사람은 망설였다. 저주를 하면 그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당연한 미신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니까. 유약한 사람은 선하지 않다. 유약한 사람은 유약할 뿐이다. 선하게 될 자신도, 악하게 될 자신도 없는 그냥 그런 사람.

난…….

사람은 유약함을 벗어던지고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아함카라의 거대한 체구가 눈 앞을 가렸다. 아함카라가 웃었다. 사람이 선과 악을 결정할 때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더 나아가 그 두 개가 혼재되어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는 더더욱 매력적이었다. 아함카라는 사람이 가진 강렬한 소원의 냄새를 맡았다. 아름다웠다. 썩은 고기처럼. 아함카라는 웃듯 입을 크게 벌렸다. 아이가, 마저 말을 했다.

로젠은 잠에서 깼다. 찬 땅바닥에서 노숙을 해서 팔과 목, 등이 결렸다. 모닥불의 미약한 온기는 결림을 방지해줄 수 없었다. 로젠은 고개를 꺾고 팔을 쭉 잡아당겼다. 이런 일로 고스트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모닥불을 보았다. 이제 그것은 모닥불이라 부를 수 없었다. 재와 불씨가 뒤엉켜 깜뿍깜뿍 꺼져가고 있었다. 고요했다.

위대한 사냥에 참전한댔지.

며칠 전, 새벽제비가 물었다. 로젠은 방어구를 정비하며 새벽제비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군주들이 시키니까.

리프가 관여했다고 들었어.

아함카라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사람이 말이 많아.

새벽제비가 쓰게 웃었다. 어찌 된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새벽제비는 이미 한번 아함카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로젠은 어렴풋이 소원을 빌었겠거니 생각했다. 소원을 비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제비는 아직 무지한 로젠에게 부탁했다.

토벌해줬으면 하는 아함카라가 있어.

로젠은 손 방어구를 벗고 모닥불의 재를 잡았다. 불씨가 살가죽을 녹였다. 승천자라도 고통을 느끼는건 매한가지였다. 로젠은 가볍게 인상을 썼다. 그들은 영생을 사는 동안 너무나 많은 고통을 느꼈기에, 다만, 역치가 높아진 것 뿐이었다. 손바닥을 파고들던 불씨가 잦아들자, 로젠은 자신의 목에 두른 스카프를 벗어 재를 올려놓았다. 재가 날아가기 전, 로젠은 스카프를 덮었다.

지구에서 산다는 아함카라. 그 아함카라는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를 떠나본 적 없는, 지구 토박이였다. 새끼 때는 구물거렸고, 성체 때는 위풍당당했다. 때로는 다른 아함카라와 협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하기도 하면서, 그 아함카라는 생존했다. 인간들의 다양한 유약함은 그를 재미있게 했지만 그것도 슬슬 질려가던 차였다. 그 때 뒤늦게 지구에 도착한 두 명의 푸른 인간이 아함카라 앞에 왔다. 그들은 작은 아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줘.

덩치가 크고 단단한 여자가 소리쳤다.

아니,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지구에서 살 수 있게 해줘.

보다 작고 왜소한 여자가 소리쳤다. 아함카라는 두 개의 소원을 모두 먹고 싶었다. 그 때 승천자 하나가 도착하였다. 아함카라는 그 이형의 존재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아함카라는 그들의 방식대로 웃었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새벽제비는 아함카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원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는 달려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달려왔으니까. 그는 아이를 훔쳤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두 여자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로젠은 스카프를 건넸다. 새벽제비는 말없이 스카프를 풀었다. 고운 직물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겨울바람에 나풀거렸고, 겨울바람에 스카프가 품었던 재는 나풀거리며 날아갔다. 재는 흩어졌다. 재는 항상 흩어진다. 로젠의 화상입은 손바닥은 손 방어구에 숨겨져있었다. 잠시 뒤 더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더 강한 바람은 스카프까지 날려버렸다. 로젠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제 그에겐 소원하는 것이 없으므로. 그래서 아주 많은 소원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기에. 재는 침묵한다. 항상 침묵한다.

고맙다.

재가 날아간 곳을 응시하며 새벽제비가 물끄러미 말했다. 로젠은 새벽제비가 자신의 거짓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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