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까마귀는 울드렌처럼 행동하는가?
Why Crow acts like Uldren?
이 글은 저와 이 문제로 얼마간 토론을 해주신 트친, K님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I wrote this post because of my twitter follower “K”, who discussed about “why crow acts like uldren”.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원어인 한국어 글을 병행합니다.
I‘m not good at translate Korean to English, so I’ll write this post with both language.
왜 까마귀는 울드렌처럼 행동하는가? Why Crow acts like Uldren?
먼저 존재론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존재론이란, 존재자가 존재자로 지니는 근본적 규정을 고찰하는 학문입니다. 이 학문이 생긴 이유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한성.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실존적 위기를 겪습니다.
First, we must know about ontology. Ontology is, the philosophical study of being. Ontology is based on human finitude. Finitude. Inescaptable, human die. This being so human suffers existential crisis.
자, 그러면 여기서 묻겠습니다. 유한한 인간이기에 느끼는 존재론적 위기감은 불멸자인 수호자에게도 찾아올까요?
Let‘s think. Mortal suffers exsitential crisis because they are mortal. Then, how about Immortal?
데스티니2 세계에서는, 존재론이 (아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 같네요. 수호자들도 존재론적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대의 존재론을 추측하기엔 철학적 지식이 부족하므로, 어설프게, 수호자, 그 중에서도 까마귀가 겪는 존재론적 위기감에 대해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In Destiny 2, (maybe) ontology enter upon a new phase. Guardians suffers exsitential crisis, too. I don‘t know much about philosophy, fumble an attempt to interpret Guardians, espacially Crow’s exsitential crisis.
수호자는 비어있는 존재입니다. 인간도 비어있는 존재로 태어나죠. 그러나 인간은 비어있는 구간에 자아랄까, 그런 자의식이 없습니다. 거의 짐승에 가까운 상태이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인간으로 자라납니다. 수호자는 아닙니다. 비어있는 구간에 자의식이 뚜렷하고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날 때 부터 어른입니다.
Guardians are empty. Yes, mortal-beings also born empty. But humans don‘t have ego or sense of identity in “empty term”. We were almost animal. We grew animal to human influenced by the environment. But Guardians? No. They have ego and identity in “empty term”. They born as “adult”, not “animal”.
까마귀도 그러합니다. 까마귀는 비어있는 어른으로 부활하였습니다. 그런 까마귀를 맞이한 것은 폭력이었습니다. 폭력의 이유는, 그가 전생에 범죄자(이 단어로 치부하기엔 너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울드렌이었기 때문에, 입니다.
Crow, too. Crow revived as empty adult. It was violence that greeted Crow. Reason was, he was criminal(did much more than “criminal”) - “Prince Uldren”.
상대성이론에서, 사물은 관측하는 것에 따라 관측값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물 그 자체는 명확한 값을 가지고 있죠. 반면, 양자역학에서 사물은 관측하는 것에 따라 관측값이 달라지며, 사물 그 자체도 명확하지 못하다고 얘기합니다. (사실 저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어요!)
In theory of relativity, the value can change by environment. But individual(be observed thing) has a definite value. However, quantum mechanics says, the value can change by environment. Also, individual(be observed thing) isn‘t clear. (I can be wrong……. I can be wrong……. I can be wrong……. SORRY!!)
생각해봅시다. 까마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까마귀를 관측할 때 그들의 상황에 따라 그를 재단합니다. 까마귀도 까마귀 자신의 자아가 있지만 과연 이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케이드의 친구들” 은 그를 미심쩍어하고, “케이드의 부하” 는 그를 죽이려 듭니다. “울드렌의 누이” 는 그를 가스라이팅하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까마귀는 스스로의 값을 조정하지 않을까요?
Okay, let‘s think like this. There is Crow. People obeserve Crow according to their circumstances, and judge him. Crow has his own ego, but could he be free from this perspective? “Cayde’s Friends” look him askance, “Cayde‘s men” wants to kill him. “Uldren’s sister” trys to gaslighting him. With their expactation, Crow……. will change his figure.
사람들은 까마귀를 재단하고, 재단된 대로 까마귀는 조금씩 바뀌고, 그럼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하며 더 심하게 까마귀를 재단합니다.
People judge Crow, Crow changes, then people thinks ‘Of course, he is.’ and judge Crow more and more.
이런 시선이 결국 까마귀가 울드렌을 받아들이도록 민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단절 시즌을 불호합니다.)
This judgment makes Crow think he must accept Uldren, I think. (I don‘t pretty much like Season of Haunted.)
까마귀는 울드렌을 왜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What makes Crow accept Uldren?
불교에서 얘기하는 “공” 을 아십니까? 색즉시공, 공즉지색. 모든 존재하는 것은 공하며, 공한 것은 곧 존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어쩐지 위에서 말한 양자역학과 닮아있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비어있습니다. 비어있다는 것은,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Then, let‘s talk about Buddhism - Śūnyatā(Emptiness, 空). Everything is empty, emtiness can be everything. I think it looks like quantum mechanics. Everything is 空. 空 means “can change”, “can change” means lots of possibility.
위에서 수호자가 비어있는 존재로 부활한다고 말했죠. 그들은 죽었습니다. 죽어서 모든 인연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되살아나 과거를 잊습니다. 강제로 공한 존재가 되어버린거죠.
I said Guardian revive empty. They are dead. Their ties tear off by death. And revive. And forget everything. They became 空, by force.
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Anyway, they can be everything.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뒤로 물러설 수도 있습니다. 더러운 걸레를 빨면 깨끗해지고 깨끗한 걸레를 문지르면 더러워지는 것 처럼요. 까마귀도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본인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죠. 까마귀는 학대당하고, 학대의 이유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 “울드렌이 아닌 것” 에 강하게 집착했습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번뇌에 시달리며 타인이 이해를 거부한 사고를 치고 다닙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제가 선해하는 것입니다. 스토리 겁나 못 썼어요.)
Can go foward or backward. Like - dirty mop can be clean mop by washing, clean mop can be dirty mob by rubbing. Crow is, also, an oppertunity. But he doesn‘t know that. He abused. The reason of abuse was his sin that he doesn’t commit. After knowing that, Crow obessed “Being Not-Uldren”. Crow was harassed by passions - lead to an inexplicable accidents. (oh……. I try to looking good side……. I think it was bad storytelling.)
단절 시즌에, 까마귀는 스스로 자신이 되야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울드렌이 아닌 것” 이 아니라, 까마귀 자신이요.
In Season of Haunted, Crow realize himself - he must be himself. Not “Being Not-Uldren”, but Crow himself.
“울드렌이 아닌 것” 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울드렌” 을 어떻게든 받아들여야합니다. 까마귀는 그렇게 하기를 택했습니다. 다른 가능성도 있었겠죠. 그래서 몇몇 플레이어(저를 포함한)들은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만 그런 아쉬움이야말로 까마귀가 울드렌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Freeing from “Being Not-Uldren”, Crow must accept “Uldren”. And Crow accept “Uldren”. Yes, there is another way, maybe. So it leaves regret to some player(YES, IT‘S ME!). But……. this regrets can be reasons Crow choose accept U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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