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구부리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로젠은 자신의 등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를 무시했다. 듣지 않았다. 앞을 노려보고, 어느 때 보다 빨리, 누구보다 잘 아는 곳으로 달려갔다. 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얕은, 산. 로젠이 석상을 발로 찼던 곳. 석상은 여전히 잡초들 사이에 누워있었다. 석상이 서있던 자리만 화석처럼 움푹 파여있었을 뿐이다. 팔뚝보다도 작은 석상. 로젠은 석상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희미하게 용 그림이 있었다. 결심한 표정으로 석상을 잡았다. 하나, 둘, 셋, 로젠은 움쩍도 하지 못했다. 석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랑은 문 밖에서 기어다니는 흉측한 것으로 깨져버렸다. 새벽제비와의 믿음은 애초에 없었고, 그에겐 측은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약방 사장님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다기엔 만난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두두두두,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들렸다. 천지가 굉음으로 울렸고 작은 돌들이 팔짝팔짝 뛰었다. 로젠은 석상을 놓고 돌아섰다. 파란 트럭이 좁은 산길을 미친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앞 유리에 로젠의 얼굴이 비칠 때, 로젠이 중얼거렸다.
용이다.
트럭은 희고 곧은 빛줄기가 되어 하늘로 뻗혀올라갔다. 눈이 멀 것 같았지만 로젠은 눈을 감지 않았다. 인상을 잔뜩 쓰면서 토룡의 승천을 지켜보았다. 흰 빛이 모든 것을 지웠다. 저기서 스님이 한 명 걸어왔다.
당신의 기지에 놀랐습니다. 멋지게 해내셨습니다.
로젠은 등 뒤를 보았다. 그림자로 얼룩진 석상이 보였다. 토룡신, 아니 용의 힘에 석상이 덜걱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맞게 꼭 끼워맞춰졌다.
자.
로젠이 녹색공을 내밀었다. 스님은 삿갓을 벗었다. 꿈에서 본 남자 아이가 장성한 모습이었다. 스님이 녹색공을 집어들자, 공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르르 먼지가 되어 바스라졌다. 스님이 말했다.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 측은지심이 업이 되어 이천 년 동안 사람들을 괴롭혔으니, 저는 지옥에 떨어지고 말 거에요.
로젠은 위로도 타박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녹색공처럼 파스스 사라졌다. 로젠이 말했다. 잘 가.
내일은 휴가가 끝나는 날이다.
신의 힘이 흩어져있던 곳 마다 빛줄기가 올랐고, 이 기이한 기상현상은 지역 신문에 대대적으로 실렸다.
난 자느라 못 봤는데.
로젠이 회사에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로젠을 괴롭히던 상사는 로젠이 휴가를 즐기는 동안 잘렸다고 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했다. 부하를 성추행 한 성추행범 아닌가. 남자 아이는 흙으로 돌아갔고, 토룡신은 용이 되었으며, 새벽제비는……. 로젠은 약방에 가보았지만 “폐업” 두 글자만 붙어있었을 뿐이다. 붕어빵 집도 자리 다툼 때문에 다른 곳에서 장사한다고 했다. 로젠은 보이지 않는 곳에 흰 국화꽃을 한 송이 놓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일단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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