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꺅!도요
당신이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로젠은 자신의 등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를 무시했다. 듣지 않았다. 앞을 노려보고, 어느 때 보다 빨리, 누구보다 잘 아는 곳으로 달려갔다. 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얕은, 산. 로젠이 석상을 발로 찼던 곳. 석상은 여전히 잡초들 사이에 누워있었다. 석상이 서있던 자리만 화석처럼 움푹 파여있었을 뿐이다. 팔뚝보다도
새벽제비는 깨진 도자기 인형 앞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다. 로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 몇 살의 남자 아이와 꼭 같은 크기인 도자기 인형은 따스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꺼질 것이다. 녹색 비단공이 손 안에서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새벽제비는 울음을 멈추었다. 아들은 죽었다. 신에게 장가를 보내서라도 아들을 살리고 말 것이다. 아들은 그렇게
눈을 떴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아, 아아악, 절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지? 아악, 악,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두꺼운 이불같은 것이 로젠을 둘러싸고 있었다. 손을 휘적거리자 서늘하고 촉촉한 살점이 만져졌다. 희고 반투명했다. 주름이 지글지글 움직이고 있었다. 간신히 고개를 빼낼 수 있었다. 두두두두,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새벽제
그렇게 되면 너는 죽어. 새벽제비가 화난 듯 답했다. 나는 죽나? 로젠이 생각했다. 새벽제비는 로젠 앞에 미음 그릇을 놓았다. 격정이 가라앉는 게 보였다. 로젠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니다……. 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죽는게 더 나을걸? 몇 천년 동안 계속 정기를 빨아먹히는거야, 신한테……. 격정이 가신 그의 얼굴에는 짙은 슬픔이 떠올랐다. 그 역
아이는 힘없이 녹색 비단공을 쥐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울면서 절의 한 방에 앉아있었다. 방 안에는 장지문이 커다랗게 있었는데, 그 곳에는 새 한 마리와 매화꽃이 함께 있는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아이는 눈을 뜨고 있었다. 뜨고는 있었는데 시시각각으로 삶이 아이를 떠나는게 보였다. 절이라 어머니는 크게 울지 못했다. 울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지켜지는 사람이 우선 안전해야한다. 새벽제비의 집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또, 제법 넓었다. 방이 세 개 짜리 아파트였다. 일반 가정집처럼 부엌엔 냉장고, 가스레인지, 오븐, 식탁 등이 갖춰져있었고 거실은 심지어 가정용 소품을 아늑하게 늘어놓기까지 했다. 의외네. 로젠이 새벽제비의 집을 들쑤셔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가정집에 뭘 바란거야. 가정집이
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로젠은 불현듯 눈을 떴다. 유난히 머리를 빡빡 깎은 붕어빵 집 사장이 생각났다. 신의 신부? 그게 뭔지 모른다. 자신에게 닥쳐온 위협? 그것도 뭔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의 용감함으로 로젠은 일어섰다. 밖은 조용했다. 문고리에 눈을 대면 충혈된 눈이 나를 쳐다보겠지. 문 틈으로 지켜보면 벌레들이 자기를 잡기 위해 파고들지
로젠은 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신은 로젠을 신부로 삼기 위해 호시탐탐 노렸고, 그건 이천 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스님 한 분이 신통력으로 석상을 세워 신을 봉인했다. 먼 훗날의 신부를 잡아채지 못하도록. 그러나 석상은 닳고 낡아졌다. 신의 힘이 점점 새어나갔다. 자신의 신부를 찾아 마수를 뻗었고 그 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야. 긴 침묵 끝에 새벽제비가 말했다. 시장이었다. 시장 입구 공영주차장에 트럭을 세우고 내렸다. 내리자마자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소리였다. 시장에 있는 약국에서 뭘 사려는 것인지 로젠은 궁금했다. 그러나 파란 트럭 이후로 새벽제비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로젠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똑같이 조용히 하기를 선택했다. 갑자기 무게 잡는 저 놈
양어머니는 차에 치여서 돌아가셨다. 정확히는 트럭에 치이셨다. 뺑소니었다. 나는 차량 번호판을 볼 생각도 못하고 숨을 몰아쉬며 엄마의 시신을 보기만 했다. 멍청이처럼. 세상이 나를 기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어떤 사람이 내 눈을 가려주었다. 손바닥이 버터를 바른 것 처럼 스르륵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벗어나는 기분. 토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뭐……. 하는 거야? 로젠이 회사 정문에서 얼쩡거리는 새벽제비를 확 밀쳤다. 새벽제비는 나름 변장을 했다. 까만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코 끝까지 올렸고, 이상한 약재상 아저씨 같은 옷 대신 검정 점퍼와 검정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로젠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하기는, 젠장, 어딜보나 수상한 새벽제비였다. 하다못해 허리까지 늘어지는 부석한 머리
상사는 손이 꺾인 것을 핑계로 로젠을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쫓아내는 것 뿐이 아니었다. 보상까지 받아내려고 했다. 로젠은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설명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상사의 손은 누가 봐도 어디가 부러진 것 처럼 시퍼렇게 부풀어 있었다. 반면, 로젠의 허벅지는? 추행을 당했다는 티가 나지 않았다. 설명하려 하면 할 수록 미궁
기분 나쁜 날이었다. 물론, 그 상사의 손을 꺾어버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상사가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은게 없던 일이 되는게 아니다. 그렇게 조용히 끝났으면 괜찮았을까? 상사의 손을 꺾은 것이 문제가 되어 되려 자신이 상사를 폭행했다고 인사과에 얘기가 들어갔다. 그 덕분에 윗사람, 윗윗사람들에게 불려다녔다. 로젠은 발을 구르며 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릴 때
새벽제비는 깨진 도자기 인형 앞에서 울고 있었다. 꼭 열 몇 살 남짓한 남자아이 만한 인형이었다. 도자기의 깨진 면은 따듯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곧 꺼질 것이다. 어미가 왔습니다, 눈을 떠보셔야죠. 새벽제비가 깨진 조각을 그러모으며 말했다. 로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묻지 않아도 되었다. 로젠은 죽고자 했다.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