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신의 신부가 되기로 한다면?

그렇게 되면 너는 죽어.

새벽제비가 화난 듯 답했다. 나는 죽나? 로젠이 생각했다. 새벽제비는 로젠 앞에 미음 그릇을 놓았다. 격정이 가라앉는 게 보였다. 로젠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니다……. 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죽는게 더 나을걸? 몇 천년 동안 계속 정기를 빨아먹히는거야, 신한테…….

격정이 가신 그의 얼굴에는 짙은 슬픔이 떠올랐다. 그 역시 오래가지는 않았다. 카멜레온처럼 그는 변하고 있었다. 나의 힘을 모두 빨아먹고 나면 신은 어떻게 되나? 로젠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신의 신부가 되겠단 말 같은거 하지 마.

토룡신은 성별이 있어?

토룡이라는 것이 뭔지는 알지?

토룡은 지렁이를 일컫는다. 지렁이는 자웅동체다. 그 정도는 로젠도 알고 있다. 그러나 로젠은 새벽제비의 질문에 “아니” 라고 답했다.

그런 옛스러운 말, 관심 없어.

토룡신은 지렁이야. 지렁이가 이무기처럼 변해서 용이 될 뻔 했는데 결국 못 되고 앙심을 품은거지.

그래서 성별이 있냐구?

그건 몰라. 짝이 누군지에 따라서 계속 바뀌거든.

새벽제비가 머뭇거렸다.

이상하겠지, 넌 여잔데 토룡신의 목소리는 여자니까…….

지렁이는 자웅동체야. 맞아. 꼭,

정적이 흘렀다. 로젠은 미음 그릇을 한쪽으로 치웠다. 지금 새벽제비의 표정은 무엇으로 변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로젠이 말을 이었다.

꼭 너처럼 말이야.

새벽제비는 눈을 감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격노할까? 격노하면서 부정할까? 꿈에 의존해 도박을 한다. 로젠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방법이라면, 담대하게 나서야했다. 새벽제비가 눈을 떴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신 그런 말 하지 마.

의외로 담백한 반응이었다.

난 자웅동체도 아니고-,

트랜스젠더라고 알아?

하……. 로젠. 내 말 좀 들어줘. 맛 없는 미음이지만, 이것도 먹으면서 천천히 들어주라, 제발.

새벽제비가 로젠 앞에 미음을 다시 놓았다. 로젠은 숟가락으로 식어빠진 미음을 휘적거리다 말았을 뿐이다.

트랜스젠더 알아. 나도 사실, 내가, 그 쪽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잘은 모르지만.

진실하게 들렸기에 로젠은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제비는 다음 말을 골랐다. 아주 조심스럽게 골랐다. 어쩌면 다음 표정을 고르고 있는 지도 몰랐다. 그는 실패했다. 결국 그는 말하지 못하고 눈가를 가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로젠은 화장실을 쳐다보다가 미음으로 시선을 옮겼다. 흰 죽. 불빛 아래서 하얗게 반짝였다. 믿으면 안 돼. 로젠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새벽제비가 숨죽여 우는 것 처럼, 로젠은 숨죽여 생각을 했다. 몇 분 있다 새벽제비가 발갛게 부은 눈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미안.

목소리가 살짝 잠겨있었다.

네가 날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우리의 계획은 시작됐어. 네가 그런다해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야.

왜 나를 도와주기로 한거야? 신이 강해지면 나쁜 일이 발생해?

로젠은 자신과 비슷하게 생겼던 남자 아이를 떠올렸다. 새벽제비가 말했다.

어린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해야한다는게 참을 수 없었으니까.

그건 로젠이 생각한 답이 아니었다. 로젠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어려?

처음 봤을 땐 열 다섯 살 정도라고 생각했어. 근데, 회사를 다닌다니까 갓 스물 즈음이겠지.

나 서른을 훌쩍 넘겼는데.

새벽제비가 멍청하게 눈을 끔뻑였다. 서른 살 초반? 로젠은 고개를 저었다.

몇 달 있으면 서른 다섯.

나랑 동갑이라고?

새벽제비는 반쯤 소리지르듯 물었다.

뭐? 네가 나랑 동갑이라고?

로젠도 당황해서 반쯤 소리질렀다. 다행이, 거기서 멈출 수 있었다. 로젠은 하마터면 새벽제비를 마흔 넘은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고 실토할 뻔 했다. 다시 정적. 어색하고 멍청하고 바보같았다. 로젠은 머쓱하게 식은 미음을 깨작였고, 새벽제비는 얼빠진 표정으로 허어, 허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근데.

새벽제비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거야?

로젠의 답은 간단했다.

토룡신. 네가 이 모든걸 꾸몄고, 마지막엔 날 잡아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했지.

꿈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 꿈은 온전히 나의 편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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