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나쁜 날 1
기분 나쁜 날이었다. 물론, 그 상사의 손을 꺾어버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상사가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은게 없던 일이 되는게 아니다. 그렇게 조용히 끝났으면 괜찮았을까? 상사의 손을 꺾은 것이 문제가 되어 되려 자신이 상사를 폭행했다고 인사과에 얘기가 들어갔다. 그 덕분에 윗사람, 윗윗사람들에게 불려다녔다. 로젠은 발을 구르며 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오르던, 언덕같이 얕은 산이었다. 로젠을 위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젠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분노보다도 쓸쓸함이 그의 마음 속을 맴돌고 있었다.
저기……!
어떤 남자가 부르는 소리에 로젠은 걷다 말고 뒤를 보았다. 그러다 다리가 꼬였는지, 균형을 잃고 휘청였고, 하필 그 곳에 있었던 작은 석상 하나 때문에 로젠은 대차게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흥건했다. 아파서 비명도 못 지르고 끙끙 앓다가 벌떡 일어나 석상을 노려보았다.
하다하다 이런 돌 까지 날 괴롭혀!
물론 그 석상의 문제는 아니었다. 로젠은 화풀이 할 데가 필요했다. 무엇인가가 흐릿하게 그려진 석상을 발로 걷어찼다. 그렇게 세게 찬 것 같지 않은데 석상은 훌렁 뒤로 넘어갔다. 찝찝했지만 해가 지고 있었다. 로젠은 절뚝이며 넘어간 석상을 뒤로 한 채 산을 내려갔다. 꾀죄죄한 자신의 모습을 들키기 싫어 로젠은 그림자를 밟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산 초입부에, 어떤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다 로젠과 눈이 마주쳤다.
아, 이거 난감한데.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인지, 오늘따라 유달리 등산로 입구가 조용해서 그런 것인지, 아저씨의 목소리가 로젠의 귀에 쏙 들어왔다. 로젠은 연이은 일 때문에 화가 나 있을 대로 나 있었다. 두려울 것이 없었다.
뭐, 임마.
로젠도 이상한 놈팽이에게 으르렁거렸다. 아저씨는 익숙하다는 듯이 재떨이에다 담배를 비벼끄고 로젠에게 다가갔다.
너, 너 말이야 너. 석상을 건드렸지? 장난으로? 아니면 다른 이유로?
무슨 사기를 치려는 거야?
사기라니. 속상하다고. 이거 엄연히 있는 직업이야, 퇴마사라고.
그게 사기꾼이란 뜻이잖아?
무릎도 대차게 까지고.
로젠은 놈팽이의 말에 다친 쪽 다리를 살짝 뒤로 뺐다. 이런 것으로 약점 잡히고 싶지 않았다.
새벽제비.
퇴마사 양반이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돌려 로젠을 가리켰다. 로젠은 손가락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로젠은 이런 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사기꾼” 이라고 믿었다. 로젠의 양어머니께서는 그런 것을 믿으면 안된다고 얘기를 했지만, 천덕꾸러기였던 자신을 거둬 준 어머니마저도…….
사기꾼.
로젠은 생각이 더 흐르기 전에 입을 뗐다.
그래, 사기꾼 양.
나한테 접근할 생각 하지 마. 그리고 내가 사기꾼이겠냐? 네가 사기꾼이지.
새벽제비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머니에서 구깃구깃 접힌 반창고를 하나 꺼냈다.
붙여.
새벽제비가 반창고를 흔들거렸다.
흥, 집에 많거든?
로젠이 반창고를 뺏어 툭 던졌다.
아아, 아깝게.
새벽제비는 그걸 주우려고 하려다가 곧 그만 두었다. 이러면 위생상으로 좋지가 못하다느니, 멀쩡한 반창고를 다 버렸다느니, 그런 헛소리를 쉼 없이 했다.
원래 나, 이런 골치아픈 사건엔 휘말리지 않으려고 하거든? 근데 난감하잖아.
로젠이 새벽제비의 말을 막기 전 새벽제비가 쭝얼거렸다.
너, 곧 죽어.
뭐? 하하, 말도 안 돼.
로젠은 까르륵 큰 소리로 웃고 침을 뱉은 뒤, 절뚝거리며 길가로 걸어갔다. 여기서 몇 분만 걸으면 나름 번화한 동네가 나온다. 거기에 자신의 집도 있고 도움을 청할 파출소도 있다. 사기꾼 하나가 악질적으로 접근-, 그 때 새벽제비가 로젠을 끌어당겼다.
무슨……!
로젠이 빽 소리질렀다. 동시에 파란 트럭이 그들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로젠은 놀라 입을 벌린 채 다물지를 못했다. 트럭은 멈추지도 않고 달려갔다. 바람이 그 뒤를 따랐다. 새벽제비의 손가락이 트럭을 따라 궤적을 그렸다.
뒤로 와. 한 대 또 올거야.
로젠은 얼결에 뒤로 몇 걸음 걸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트럭 한 대가 더 지나갔다.
바퀴 부분, 봤니?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안 보는 게 좋아. 저게 신이야.
신이 트럭을 몰아?
신의 힘이 저 모습으로 의태하여 나타나는거야. 네가 건드린 석상이 신의 힘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뭐……. 네가 더 잘 알겠지.
트럭에 치일 뻔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새벽제비는 쪼그려앉아 우는 로젠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쪽 무릎을 꿇고 같이 앉았다.
비슷한 일이 있었구나.
로젠은 새벽제비를 밀쳤다.
아는 척 하지 마. 사기꾼 주제에.
죽기 싫으면, 뭐.
새벽제비는 로젠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여기서 만나자고. 혹시 모르니 며칠 동안은 여기 계속 있을게.
로젠은 새벽제비를 밀치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이도, 돌아가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젠은 오늘 일을 잊으려고 집 근처 마트에서 청주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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