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나쁜 날 2
상사는 손이 꺾인 것을 핑계로 로젠을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쫓아내는 것 뿐이 아니었다. 보상까지 받아내려고 했다. 로젠은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설명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상사의 손은 누가 봐도 어디가 부러진 것 처럼 시퍼렇게 부풀어 있었다. 반면, 로젠의 허벅지는? 추행을 당했다는 티가 나지 않았다. 설명하려 하면 할 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 때 왜 새벽제비 - 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사기꾼이 생각났을까?
네가 나를 도와준다면, 나도 네 장단에 맞춰줄게.
로젠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그 직장, 절대 잘리면 안 돼. 아니. 잘릴 수 없어.
양어머니와 약속했다. 나도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걸 보여주겠다고. 더 나아가,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살아보이겠다고. 잘 살겠다고. 새벽제비는 로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끅끅거리면서 웃었다.
이봐, 뭘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 장단에 네가 춤추는게 아니라, 내가 내 모든 것을 걸고 널 도와주는거에요, 꼬마 아가씨.
새벽제비가 담배를 하나 빼내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엉거주춤 허리를 굽혔다.
나도 알아. 직장에서 힘든 일 있을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여기서 뭘 도와줄 수 있을까? 나는 사기꾼 퇴마사인데?
저주……. 저주 같은걸 내려줄 수 있잖아?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로젠의 얼굴이 빨개졌다. 새벽제비는 급기야 허리를 펴고 크게 웃었다. 간만에 그렇게 웃는다는 듯 정말 신명나게도 웃었다. 그 틈을 타 로젠은 얼굴을 슥슥 문질렀다.
그런 것은 어디서 들었어?
신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아?
울어서 산소가 모자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로젠은 헛소리를 유도 아니게 집어삼켰다. 새벽제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로젠이 어렸을 때, 양어머니의 부모……. 그러니까 로젠의 조부모와 함께 절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어린 로젠의 보폭을 고려하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으면서 두 사람은 무언가를 큰 소리로 논하고 있었다.
그거, 스님이 말했니?
굳은 표정 그대로 새벽제비는 로젠에게 물었다. 로젠은 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제비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신의 사랑을 받는 아이군요.
어디론가 갈 채비를 하던 스님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꿈을 보내드리지요.
그는 그런 아리송한 말만 남기고 깊이 인사를 했다. 조부모님도 인사를 했다. 그들의 눈빛에 서린 의심을 보았다. 로젠은 숨이 막혔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 합장을 하고, 깊이 인사 했다. 그 이후로는 양어머니와 자신을 괴롭히던 악몽이 사라졌다. 양어머니는 조부모가 괜한 짓을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먹는 수면유도제 덕분이겠지. 아무튼 마음은 받겠지만, 내 아이를 데리고 이상한 짓 하지 말아줘.
꿈을 보내준댔고?
로젠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제비는 묵묵하게 서있다가 그러마 했다. 좀 전의 능글맞은 미소나, 놀리는 듯한 목소리는 사라졌다. 로젠은 그의 눈에 서린 의심을 보았다. 숨이 막혔다.
알았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어. 하지만 넌 내 아래서 보호를 받아야만 해.
새벽제비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으면……. 로젠은 양어머니가 가꾼 따스한 세계를 뛰쳐나가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따스한 세계는 발판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떠나기 싫었지만 떠나야했다. 로젠은 기꺼이 새벽제비의 손을 잡았다. 새벽제비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씩 웃었다.
그럼 무슨 장난부터 쳐줄까?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야. 상사의 죄가 만 천하에 드러나는 것. 어쩔 수 없이 죄를 인정하도록.
쉽네.
새벽제비는 휘파람을 불며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파란 트럭의 문을 열었다. 로젠은 거기에 트럭이 있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옆 자리에 타, 새벽제비가 담배에 불을 붙이느라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로젠은 자신의 눈빛에 서린 의심을 씻어냈다. 입을 굳게 다물고 트럭에 올라탔다. 미안, 엄마.
한 아이가 너훌거리는 옷을 입고 달려오고 있었다. 녹색 비단공이 손 안에서 반들거렸다. 저건……. 그렇다. 어머니가 선물해준 것이다. 아이는 하루종일 비단공을 손에 굴리며 놀다 어미에게 달려오고 있다. 양 팔을 벌린다. 아이가 품 안으로 들어오고, 그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째랑한 목소리가 울린다. 비단공은 비싼 것이었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니 여러 의심이 한번에 녹아 사라졌다. 기뻤다. 그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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