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사랑 1
뭐……. 하는 거야?
로젠이 회사 정문에서 얼쩡거리는 새벽제비를 확 밀쳤다. 새벽제비는 나름 변장을 했다. 까만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코 끝까지 올렸고, 이상한 약재상 아저씨 같은 옷 대신 검정 점퍼와 검정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로젠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하기는, 젠장, 어딜보나 수상한 새벽제비였다. 하다못해 허리까지 늘어지는 부석한 머리카락이나 어떻게 하던가!
아니, 왜? 네가 원하는걸 들어주고 있잖아. 상사의 죄가 만 천하에 드러나는 것.
새벽제비가 손에 든 종이 뭉텅이를 들썩였다. 로젠이 종이를 한 장 뽑았다. 그건 전단지였다. 거기엔 이렇게 써있었다. “고발! 모 회사 부장 누구, 부하직원을 추행하다!” 그 밑에는 흐릿한 화질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상사가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는 순간의 CCTV였다. 이런 것이 찍혔던가? CCTV는 로젠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지나가는 길에 죄송하지만-,
새벽제비가 인사과 직원을 붙잡고 종이를 나눠주었다. 로젠은 혼란스러웠다. 일단 새벽제비를 막아야한다. 이 사진이 조작이고, 그게 알려진다면, 다른 회사로 취업하는 길마저 막힐 지도 모른다. 끔찍했다.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이 화상아!
로젠이 새벽제비의 전단지를 마구 뺏었다. 새벽제비는 뺏기는대로 순순히 뺏겨주었다.
왜?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있나?
맞는 말이야. 맞는 말인데! 이런 얼토당토 않은 증거를 내밀면서…….
CCTV 화면 찍은 건데.
우리 회사엔 네가 들어올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사기꾼 하던 가닥으로 합성을 한 것이겠지.
진실을 밝히기 싫어? 난 변호사 선임하고 트럭도 회사 앞에 한 대 보내고 그러려고 했는데.
로젠은 손에 든 전단지들을 땅에다 던져버렸다. 그리고 빽 소리질렀다.
내 앞길 막지 말고 당장 우리 회사에서 꺼져!
새벽제비는 바닥에 흩날리는 전단지를 보았다. 까만 모자를 벗어 로젠의 머리 위에 꾹 눌러 씌워주었다. 로젠이 모자를 벗어 내팽겨치자 한바탕 꿈처럼 새벽제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닥에 전단지만 잔뜩 나뒹굴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읽어보고 있었고, 몇몇 사람은 신경도 안 쓰고 빙 둘러 가고 있었다. 로젠은 어쩐지 그래얄 것 같아서 전단지를 한 장 집어들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왜였을까? 로젠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곰곰히 생각했다. 전단지 하나로 상사의 죄를 까발릴 수는 없다. 전단지로 자신이 곤경에 처할 수는 있겠지.
로젠 대리, 잠시.
로젠이 생각에 잠겨 회사 문을 들어섰을 때, 다른 부서 팀장이 그를 불렀다. 그가 로젠을 데리고 으슥한 물류 창고에 들어갔다. 그 곳에는 또 회사의 여직원들과 몇몇 남직원이 좁아터진 공간에 잔뜩 끼어있었다. 비밀결사라도 하나, 로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팀장을 보았다.
아무래도, 로젠 대리가 상사의 손목을 꺾어버린덴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우리가 조사를 좀 했어.
예?
상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지금껏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남직원 한 명이 나서서 핸드폰에 다운로드 한 CCTV 화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신입 여직원이 설명해주었다.
CCTV를 보시면……. 여기, 부장, 아니, 그 사람이 로젠 대리님을 추행하는 장면이 똑똑히 찍혀있어요.
남직원이 영상을 멈췄다. 새벽제비가 전단지에 첨부한 바로 그 장면이었다. 로젠의 눈이 둥그래졌다. 신입 여직원이 이어 설명했다. 상사가 로젠을 추행한 뒤, 로젠이 바로 손을 꺾어버리는 장면을 잘라 회사 전체 메일로 뿌려버렸다고. 이제 로젠의 상사도, 인사팀도, 윗사람도, 윗윗사람도, 이 일에 관계된 사람들은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되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감동을 받아 울기 전, 로젠은 .
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나서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이 일에 어떤 외부인이 개입하지 않았나요?
질문에 사람들이 짧게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고 대답이 터져나왔다. 손에 들고 있던 전단지. 로젠은 자신의 손을 내려보았다. 빈 손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악몽을 꿨는데, 그 꿈이랑 현실을 구별 못 했네요.
그것도 기록해 놔, 로젠 대리.
팀장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얘기했다.
웬만해서는 정신과 진단 받고 증거를 남기는 것이…….
점점 팀장의 말소리가 멀어져갔다. 사람들의 끄덕임, 사람들의 눈빛, 사람들의 제한된 동작이 로젠을 감싸 옥죄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유리되는 기분이었다.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그러니까, 그게 오랫만에 들렸다.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처음이었다.
일단, 일단 알겠습니다.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로젠이 엉뚱한 시점에서 팀장의 말을 잘랐다. 또 다른 변명이 필요했다.
너무 좁아서, 공황이.
공황장애는 없었다. 로젠에게는 어떠한 정신질환도 없었다. 그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아이쿠, 그럼 일단 파합시다, 언제까지 창고에 박혀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팀장이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창고에서 나갔다.
그래, 그래. 고맙다는 말은 됐어요, 꼬마 아가씨.
새벽제비가 꼭 아이들에게 하는 말투로 로젠에게 말했다. 로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로젠이라고 불러. 근데,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거야? 어디 아픈 사람인 줄 알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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