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신의 살점 1

지켜지는 사람이 우선 안전해야한다. 새벽제비의 집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또, 제법 넓었다. 방이 세 개 짜리 아파트였다. 일반 가정집처럼 부엌엔 냉장고, 가스레인지, 오븐, 식탁 등이 갖춰져있었고 거실은 심지어 가정용 소품을 아늑하게 늘어놓기까지 했다.

의외네.

로젠이 새벽제비의 집을 들쑤셔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가정집에 뭘 바란거야.

가정집이 아닐 줄 알았지.

로젠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을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집안일에 서툰건지 새벽제비의 부엌에는 인스턴트 식품 투성이었다. 현대에 와서 흠 잡힐 일은 아니지만, 인스턴트 음식들이 어째 다 번데기 같은 것이라 기분이 묘했다. 찬장을 열자 라면이 나왔다. 로젠이 씩 웃었다.

배고프지 않아?

라면 두 봉지를 꺼내서 흔들어보였다. 새벽제비는 피곤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있다가 같이 웃었다.

두 봉으로 되겠어?

이야, 의외로 대식가?

아니. 지금 많이 먹으라고. 너 내일 부로 이런 음식은 다 끊어야해.

라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로젠은 인상을 찌푸렸다. 새벽제비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전에 냉큼 말을 했다.

인스턴트가 얼마나 냄새 고약한 음식인데? 우리의 계획은 냄새를 속이는거고. 자극적인 음식은 당분간 금지.

나름 논리를 갖춘 말이라 로젠은 반박할 수 없었다. 로젠은 무엇보다 그들의 규칙에 잠시 머무르기로 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입맛이 썼다. 이런 애들 장난같은 말에 놀아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씁쓸한 표정으로 로젠은 라면을 한 봉지 더 꺼냈다.

몸은.

신을 튕겨낸 것 치곤 제법, 괜찮아.

새벽제비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방에서 대화 말인데.

로젠은 무슨 대화를 말하는지 잘 몰랐다. 새벽제비는 괜히 이 주제를 꺼냈다 싶었지만 로젠의 표정을 보고 그냥 말을 이었다.

네게 고백할 게 있다. 맞아. 네 뒷조사를 했어. 네가 신의 신부란 걸 알게 된 다음부터, 최대한, 너에 대해서 조사했지.

어디까지 아는데?

웬만한 건 다 알지. 열 세살 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단 생각, 해봤지?

중학교 때 부터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양어머니와 로젠은 번갈아가면서 아팠고 악몽도 다시 꾸기 시작했다. 또, 양어머니가 최대한 가리려고 했음에도 로젠의 눈에 보이던 집 안의 위기들…….

그게-,

신이 나를 점찍어서 그렇다고.

평범하게 살기로 약속했다.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평범하게 살기로 했다. 새벽제비는 라면을 끓이는 로젠의 뒷모습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말을 꺼내놓기 어려웠지만, 로젠에게 확신을 줘야했다.

맞아. 네게 벌어진 일 모두. 네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일부터 네 양조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까지…….

뭐?

로젠이 고개를 휙 돌렸다. 충격이 아로이 새겨져있었다.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

새벽제비는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랐다. 허, 허허, 하! 로젠이 헛웃었다. 새벽제비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 로젠은 끓기 시작한 물에 후레이크와 라면을 집어넣었다.

계란은 없지?

없어. 로젠, 그러니까,

그래. 나 그 사람들이랑 연 끊겨서 아무 것도 몰랐어. 네 논리에 따르면, 그 사람들이 날 학대한 것도 이해가 돼. 나만 없어지면……. 그 집안의 액운은 없어질 테니까.

로젠. 아니야. 우리의 논리로도 그 사람들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긴 한데.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라면 먹고 말하자.

뭐가 됐든 밥 먹으면서 말 할 수 있는 꼴은 아니었나보네. 그 정도면 됐어. 고마워.

엄마의 엄마와 엄마의 아빠가 죽었다. 로젠은 순간 자신을 스쳐지나간 기쁨과 환희에 집중했다. 라면은 조금 불었다. 타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밑반찬도 없이 두 사람은 라면을 아무 말 없이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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