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룰 소개] 천하요란

초시공시대극― 영걸이여 시공파단을 넘어 숙명의 별에 응답하라

RPG 펜설 by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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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걸(英傑) 앞에는 필연적으로 악이 나타난다.

떠돌이, 건달, 이민족, 도적―

입장도 가치관도 제각각이지만,

영걸은 악과 싸우는 숙명의 별(宿星)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초시공시대극RPG 천하요란

악과 싸우는 영웅, 좋아하시나요?

사악한 인물·세력에 고통 받는 약자들을 위해서 히어로가 맞서 싸우는 이야기.

천하요란 또한 그런 간결한 영웅담을 지향합니다. 다만, 어딘가 시대극에 나온 것만 같은 배경에서, 시대극에 나올 법한 악당들을 상대로, 시대극의 영웅들이 나온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시대극이라는 말에 뭔가 무거운 느낌을 받으시나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천하요란은 온갖 시대가 섞인 퓨전판타지를 지향하니까요. 그래서 초시공시대극입니다.

천하요란

천하요란은 F.E.A.R.(FarEast Amusement Reserch)에서 개발한 SRS(Standard RPG System)를 사용해 코다치 우쿄(小太刀右京)가 만든 RPG입니다.

SRS를 사용한 다른 규칙으로는 알샤드 세이비어, 모노톤 뮤지엄, 메탈릭 가디언 등이 있습니다.

이 규칙들은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1. 6면체만 사용한다는 것,

  2. 캐릭터 작성은 클래스 3개를 선택하는 것으로 거의 완성된다는 것,

  3. 그리고 굉장히 강력한 소모성 능력을 준다는 것

등의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SRS는 다양한 룰의 엔진/시스템 중에서도 유달리 간결한 편이기 때문에, 같은 시스템을 사용한 룰들끼리는 무언가 익숙하고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각 룰마다 구현하고 싶은 장르가 확실히 다르고 그걸 위한 룰의 세부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소위 ‘장르 퍼스트’의 면모에 집중한다면 개별 룰의 매력을 쉽게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천하요란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요?

초시공시대극

그냥 시대극이 아닙니다. 초시공시대극입니다!

인간과 함께, 인간이 아닌 존재들― 이를테면 요괴, 인랑, 텐구, 신령, 가면라이더, SD건담 등이 섞여서 살아가는 평화로운 시대.

그런데 갑자기 「시공파단」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습니다. 사악한 것들이 날뛰는 이 세계에서, 무언가를 바로잡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룰북에서는 “상상하는 시대극의 영웅이라면 무엇이든 천하요란의 세계에도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 전에, 시대극이란 뭘까요? 뭔가 특정한 시대를 구현해야 할 거 같고, 무언가 고증에 충실해야 할 것만 같고…….

하지만 앞서 말했듯,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초시공시대극이니까요. 시대극(時代劇). jidai. 스타워즈의 용어인 제다이의 어원 혹은 모티브가 여기서 왔다는 설도 있는데, 진위 여부는 둘째치고 초시공시대극이라는 표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봄직합니다.

온갖 시대의 영웅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작품 내적인 이야기.

사실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온갖 영웅상, 즉 온갖 레퍼런스에서 튀어나온 영웅들을 할 수 있습니다. 같은 SRS를 사용하는 메탈릭 가디언이 슈퍼로봇대전을 할 수 있는 RPG라면, 천하요란은 뭐랄까, 슈퍼판타지대전을 할 수 있는 RPG라고 보면 됩니다.

무언가 시대극스러운 것들을 이것저것 크로스오버

위의 예시는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저라면 저 캐릭터들을 모델로 갖고 오고 싶다면, 천하요란 식으로 주작/요괴화공, 청룡/검객, 백호/요괴 정도로 할 것 같군요.

잠깐,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탱딜힐? 전사성직자마법사도적? 아니다! 청룡, 주작, 백호, 현무.

전투를 박진감 있게 만들기 위해 룰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천하요란은 역할별 직군을 설정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소위 탱딜힐, 아군을 수호하는 탱커, 적을 공격하는 딜러, 아군을 치유하는 힐러 등으로 전문 분야를 나누는 것이죠.

MMORPG를 즐기신 적이 있다면, 굉장히 익숙한 구분이라고 느끼실 겁니다. 전사인데 탱커, 도적인데 딜러, 사제인데 힐러, 성기사인데 바퀴 등등

천하요란의 클래스 구분이 뭔가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름입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방신의 이름을 하고 있지요. 각자 단일 대상 공격수, 아군 수호, 전장 제어, 지원가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직군과 역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일단 플레이어들이 사방신 중 하나씩 맡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빠지는 사방신이 없도록만 조절해봅시다. 인원이 적다면 백호이자 현무라거나, 주작이자 현무라거나 하는 식으로 겸직도 가능합니다.

사신 중 누군가를 빠트리지 맙시다

기본 클래스인 청의 선택을 했다면, 서브 클래스를 선택하면 됩니다. 뭘 또 복잡하게 고르라고 하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목록을 보면 검객, 닌자, 음양사, 요괴, 신령, 이방인, 미래인 등등… 요약해서 말하자면 캐릭터의 인상을 골라달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기본 클래스가 캐릭터의 성능을 어떻게 발휘할지를 고른다면, 서브 클래스는 캐릭터의 다양한 기원, 방식, 스킨 등 장르 문법의 구현을 고른다고나 할까요. 역으로, 서브 클래스의 목록을 보고 어떻게 플레이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겠죠.

같은 검객이어도, 강력한 적수 하나를 상대하는 청룡검객과 다수의 조무래기를 한번에 물리치는 주작검객은 완전히 다른 캐릭터입니다!

더 익숙해지면 검객이면서 요괴라거나, 미래인이면서 초능력자라거나, 떠돌이 건달인데 퇴마사라거나 하는 식으로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취향껏 섞을 수도 있을 겁니다. 취향과 컨셉과 성능을 모두 만족시키는 조합을 찾는 것도 재미 있을 거예요.

영걸과 요이

천하요란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를 영걸(英傑)이라고 부릅니다.

영걸이란, 숙명의 별을 타고난 사람을 뜻합니다. 본인이 정의롭거나 아니거나, 전장을 찾아다니거나 피해다니거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요이와 싸우는 운명에 휘말려서 결국 사람을 구하게 되는 영웅들이죠.

그렇다면 요이란 무엇인가?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에서 태어나서 마계에 사는 것, 세계를 침식하며 마계처럼 바꾸려고 드는 것. 그것을 요이(妖異)라고 부릅니다. 사특한 마음으로 사악한 행각을 벌이는 사람은 요이에게 씌여 ‘나찰’화된다거나, 요이들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염라왕’이라는 지배자들이 있다거나 하는 설정들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복잡하게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간단하게 줄여서 말하자면, 물리쳐야 하는 악이 있고 여러분은 그 악과 싸우는 영웅호걸들입니다.

시공파단― 모든 시대의 영웅들이 있다

연속된 시간선의 어느 특정 시점에, 죽어서는 안 되는 한 영걸(英傑)이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시간과 공간이 산산조각나서 뒤섞입니다.

이것을 시공파단(時空破斷)이라고 부릅니다.

대충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죽어서는 안 되는 안중근 의사가……

시공파단으로 인해 세계가 일그러지고, 온갖 시대의 요이와 영걸이 한 시대에 모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혼란을 정화할 수 있는 신검이 있다고 합니다.

정화의 힘을 가진 신검으로 이 모든 혼란을 구제하려는 영걸과, 인세를 마계로 만들려는 요이 사이의 전쟁이 벌어진 겁니다.

즉, 이것은 시공을 구하는 이야기―

약간 이런 느낌

천하요란의 최초 판본은 2010년에 나왔지만, 한번 룰을 쇄신해서 2021년에 신판으로 발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시기에 나온 수많은 매체(게임, 만화, 소설 등)를 다시금 참고문헌 삼아 더 풍부해졌습니다.

온갖 시대의 요이와 영걸이라는 것은, 그리고 상상 속의 영웅이 전부 있다는 말은 허풍이 아닙니다.

이 룰북은 공식 퍼스널리티(NPC)의 목록에서부터 호쾌하게 선언합니다. 이렇게까지 해도 된다!

에도에 숨어서 뒷골목의 두목이 된 나폴레옹, 뱀파이어가 되어 살아 있는 예카테라나 2세, 염라왕으로 돌아온 제6천마왕 오다 노부나가 등등. 시간과 공간은 물론이고 실제 역사적 행각 또한 미묘하게 뒤바뀐 인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룰북 안의 칼럼 중 하나로 【공식에서 취급할 예정이 없는 인물들】 목록이 있다는 점입니다. 공식의 권위를 신경쓰는 문제 때문에? 아니면 개변의 허용여부를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여겨서? 아니면 창작 의욕을 돋우기 위해서? 뭐가 되었든 좋은 느낌을 줍니다.

실제 인물인 사이토 하지메, 사사키 코지로, 황비홍, 호레이쇼 넬슨 등을 비롯해서 압둘 알하자드, 아르센 뤼팽 등의 가상 인물까지도 이 목록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목록에 셜록 홈즈는 없습니다. 뤼팽은 있는데 홈즈가 없다라……. 그러고 보니 구판본의 서플리먼트에 제임스 모리아티가 출연한 적이 있다는 게 기억나는군요.

오의와 각오

천하요란의 전투를 가장 박진감 있게, 호쾌하게 만드는 것을 하나만 고르라면 바로 이것입니다.

오의(奧義). 한 사람마다 단 3회씩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초필살기입니다.

각각의 오의들은 주사위를 10개 더 던지거나, 공격 대상을 전투 전체로 확대시키거나, 대미지를 공격자에게 반사하거나, 사망한 캐릭터를 부활시키거나 하는 등, 다양하면서도 게임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방금 초기작성한 캐릭터로도 임박한 세계의 위기에도 맞서는 영웅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험을 쌓아 레벨을 올린 뒤에는?

더 다양하고 강력한 특기를 갖춘 완숙한 캐릭터가 되었을 때조차도 오의의 강력한 효과는 무시하기 힘든 것입니다. 단순히 수치만 올린 것이 아니라 속성을 〈신〉으로 바꾼다거나 오의가 아닌 방법으로는 대항할 수 없다거나 하는, 독특한 부가효과가 붙어 있기 때문이죠.

“검선일여를 파사현정”      

      “나도 파사현정”

“천우신조로 되살린 파사현정”   

      “그럼 분골쇄신”

“천변만화로 복사한 검선일여로 회피”

      “크윽”

영걸의 숭고한 싸움을 이렇게 표현해도 되냐구요?

이 오의들은 모두 사자성어의 이름을 갖고 있어서, 「청룡」의 힘으로 「일도양단」의 검을 휘두르거나 「백호」의 힘으로 동료를 「기사회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천하요란의 호쾌한 시대극의 풍미를 높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죠.

각오 상태

「각오」라는 규칙은, 쉽게 말하자면, 돌연사를 방지하는 규칙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RPG나 그 정신적 후속작들 몇몇처럼 HP가 0 이하로 내려가더라도 어떻게든 버티거나 아군의 지원을 받으면 다시 전투에 합류할 수 있는 룰도 있고, HP가 0 이하로 내려간 이후로도 일정 수치까지는 사망하지 않게 하는 룰도 있습니다. 룰에 따라서는 사망하기 쉬운 것 자체를 흥미 요소로 삼기도 하고요.

대립(PVP)에 중점을 둔 룰이라면 「클라이맥스가 되기 전이라면 죽지는 않는다」 같은 규칙을 만들어두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천하요란에서는?

『오의』 부분에서 언급했던 부활의 능력과 더불어서 「각오 상태」라는 규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체력(HP)가 0 이하가 되었을 때 그냥 쓰러지는 게 아니라…… 각오한다고 선언하면 됩니다.

죽음의 경지

각오 상태가 되면 아주 약간 HP를 회복하고, 전투를 강행할 수 있니다.

게다가 각오 상태에 들어가면, 특기 사용에 따른 MP 소모를 무시하고, 상태 이상(배드 스테이터스)도 받지 않는 등, 엄청난 부가효과들을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와 엄청나게 좋은걸?

마냥 좋기만 하면 이름이 「각오」가 아니겠죠?

사실은 3턴만 지나도 자네를 못 구하네

단점은 단 하나. 각오 상태가 된 캐릭터는 더 이상 회복 효과를 받을 수 없습니다. 치유사 계열의 캐릭터가 더는 구해줄 수 없는 동료가 되는 것이죠. 이것으로 한껏 처절한 전투에 몰입하는 심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의는 예외입니다. 기사회생을 믿으세요!

그리고 더 뭘 할 수 있는가

현재 천하요란은 기본 룰북과 서플리먼트 2권(창궁무한, 앵화난만)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나왔던 구판본은, 기본 룰북과 리플레이로 제공된 보충 자료를 제외하고서도 6종의 서플리먼트가 더 나온 적이 있습니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기본 무대가 아닌, 전국 시대나 메이지 시대 등의 다른 시간대의 무대를 다룬 적도 있고, 학원물이나 우주물 등의 다른 장르를 지원했던 적도 있죠.

그리고 서플리먼트가 나올수록 추가되는 클래스들로 구현 가능한-오마쥬하는- 목록도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신판에서는 공개되는 순서나 세부 내용이 이전과는 약간씩 달라졌는데, 이전에 받은 피드백을 적용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구판부터 봐온 유저로서는 좋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원물 스테이지로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인상 깊은 연작 캠페인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보완되어서 발매될지 기대가 됩니다. 해당 스테이지가 유달리 좋았다기보다는 캠페인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잘 맞아떨어진 것뿐이지만, 때로는 좋은 추억 하나가 여러 가지를 이끌어주기도 하니까요.

출판사가 바뀌면서 지원이 풍부해졌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추가로 공개된 시나리오, 공식 퍼스널리티의 일러스트, 무대 배경이 되는 도시들의 지도 등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여담.

제작자인 코다치 우쿄 씨에게는 민속학자인 조부가 계셨는데, 한국에서 교단에 선 적도 있으시다고 합니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천하요란에서는 아이누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구판본 시절 나왔던 메이지 스테이지에서는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지요.

해당 스테이지는 일종의 ‘패배한 미래’를 다루는 이야기여서, 호쾌한 활극과는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 다룰 수 있는 소재일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초시공시대극 천하요란.

백화요란의 화려한 막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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