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 桃靑

도청 外

靑과桃

소리꾼 by 박메론
3
0
0


두 우주인은 어느 동화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지…….

못했다.

고카이쟈가 다시 뭉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두 우주인은 눈앞에 놓인 적을 처치하는 데에 있어 의견의 갈등이 생겨났고, 그 갈등의 불씨가 번져 사랑싸움으로 번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두 우주인은 서로 높아진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다 언젠가의 아임이 그랬듯, 저는 이해 못 하겠습니다, 말한 아임이 죠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 갈레온 밖으로 나가버렸다. 죠는 아임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한숨을 내쉬다가 옆에서 무어라 대꾸하는 가이에게 시선을 한 번 던지기만 했다. 죠의 시선을 받은 가이는 루카의 뒤로 숨기를 시도했지만, 되려 팔꿈치로 얻어맞았다. 박사와 마벨러스는 한숨을 쉬었고 루카는 눈을 빙그르르 돌리다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 아임의 이름을 불렀다.

당일에 화해를 이루지 못한 두 우주인은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약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떨어져 냉전을 벌였던 지난날에 비하면 그 둘에게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같은 배에서 생활하는 다른 동료들에게 있어서는 두 우주인의 냉전은 커다란 문제였다. 아예 척을 진 것도 아니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같이 다니면서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는 두 우주인을 보며, 둘에게 그다지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 마벨러스를 제외하고서는, 남은 선원들은 한숨을 쉬며 둘 중 하나만 하라 입 모아 말했다.

냉전은 한 달을 넘기지 않았다. 또 예전의 아임이 당했던 일처럼, 고카이쟈를 노리던 다른 우주 해적의 세력에 납치 아닌 납치를 당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납치라고 하기에는 아임 혼자 독단적으로 계획한 잠입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고카이쟈는 감히 그들이 아임을 가지고 놀고 있다며 분노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적들을 한 번에 쳐야 한다며 아임을 설득하던 죠는 자신이 한 말을 잊어버린 건지 누구보다 먼저 상대의 본거지로 들어가 변신도 하지 않고 샤벨로 죄가 거의 없는 그들을 무참히 베어냈다. 생각보다 사태가 커지자 아임은 뒤늦게 오해라고 정정하였지만, 고카이쟈의 귀에 그게 들릴 리가 없었다.

적을 처치한 저녁, 죠는 아임에게 사과를 건넸고 아임 역시 죠에게 사과하는 훈훈한 광경이 선원들의 눈 앞에 펼쳐졌다. 박사는 잘된 일이라며 기지개를 켰고, 마벨러스는 무슨 일이 있냐는 듯 고기를 손에 쥐고 뜯는 일에 삼매경이었다. 아임과 죠의 옆으로 다가온 루카가 두 우주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내 팔자에도 없는 사랑싸움 구경이라니, 한탄했다. 화해 기념 겸 해적단 격파 기념으로, 제가! 쏘겠습니다! 가이가 외쳤지만 그걸 귀담아 듣는 이들은 없었다. 이 근처에는 돈을 쓸만한 곳이 없을 텐데요, 아임이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갑작스럽게 터진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죠의 옷자락을 살짝 잡을 뿐이었다.


고카이 갤리온에서 맞는 몇 번의 아침 중 하루였다. 여느 때와 같이 먼저 일어난 아임이 윗몸을 일으키고서는 죠를 내려다보았다. 보통 같았으면 죠 역시 아임이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나 인사를 주고받았을 텐데, 어제 마벨러스와 루카가 죠를 붙잡고 술판을 벌인 덕분에 쉽사리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아임은 죠가 자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불을 단단히 덮어주고서는 침대를 떠났다. 엉킨 머리를 빗으로 곱게 빗어 내리고, 연분홍색의 원피스로 갈아입고, 수많은 머리 장식 사이에서 고민하다 아이보리색의 머리띠를 착용하고 나서야 아임은 침대로 다시 돌아와 죠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그 사이 죠는 몸을 뒤척거려 팔로 눈을 가린 채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불편해 보이는 죠의 자세에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아임은 그의 손목을 슬쩍 잡아당겨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로 만들어보려 했다. 물론 아주 소심한 끌어당김에 그의 팔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아임은 자신의 움직임에 침대가 크게 출렁거릴까 몸을 느릿느릿 움직였기에 처음 일어났던 그 위치로 돌아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죠의 얼굴을 밑에서 바라보던 아임은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자기 머리카락을 매만지다 침대 위로 흩어진 죠의 머리카락 끝을 살살 만졌다. 아임의 머리카락은 갈색에 가까웠으나 죠는 완전한 검은색이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구경하던 아임은 죠의 얼굴 위에 놓인 팔과 손을 보았다. 죠는 오랫동안 검을 잡아와 굳은살과 작은 상처가 팔과 손에 있었지만, 아임은 검보다는 총을 주로 사용했기에 비교적 매끈한 팔과 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손과 죠의 손을 번갈아 보던 아임은, 팔에 일부 가려졌지만, 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임은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인 반면 죠는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이 강했다.

그렇게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해 찾아보던 아임은 어느 순간, 죠의 두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깜짝 놀란 아임이 작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죠는 작게 웃으며 마른세수하곤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냐 묻는 아임에게 죠는 어깨를 으쓱이고서는 아임이 매만졌던 자기 머리카락의 끝을 비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임이 입을 삐죽거렸으나 죠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죠 역시 단장을 마치고 둘은 작은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카이쟈가 다시 뭉친 지 3년이 지났고, 어지간한 해적들을 다 정리해 두었으니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맞지 않냐는 말이 나오고 있던 참이었다. 두 우주인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놓인 음료를 마시며 고민했다. 향이 폴폴 풍기는 차를 입에 머금은 아임은 파미유 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죠는 미지근한 물이 담긴 긴 유리컵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딱히, 말하고서는 아임을 바라보았다. 남아있던 잔갸크 일당은 진작 다 제거했고 고카이쟈의 앞길을 감히 막아설 해적도 이제는 없으니 죠에게는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다니고 싶다는 바램만 남아있었다. 죠의 말에 아임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그가 예전과 같이 여기서 헤어지자 말할까 두려웠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지금 이 상황이 아임에겐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임의 한숨에 죠가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았다. 그 한숨의 의미가 무엇인지 죠는 궁금했으나 아임에게 묻지는 않았다. 시선을 옮겨 그를 바라본 아임은, 죠의 눈동자를 보고선 단박에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안심되어서요, 아임은 짧게 설명했으나 죠는 그 문장 속에 녹아있는 마음을 읽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얼마의 정적 뒤, 찻잔을 손에 다시 쥔 아임이 말했다.

“...저는 가끔 죠 씨의 마음을 몰래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다소 뜬금없는 말에 죠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아임이 이어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죠 씨께서 말씀 해주시니까요. 그 외에 다른 것들은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그렇죠?”

가만히 말을 듣던 죠가 유리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뭐. 아임은 말하지 않아도 다 나타나는 편이지만.”

“제가 그렇게 다 드러나는 편인가요?”

찻잔을 쥐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는 아임을 바라보며 죠가 피식 웃었다. 단숨에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마신 죠는 의자에서 일어나 아임에게 오른손을 뻗었다. 가자, 이러다가 늦겠어. 아임은 왼손으로 죠의 손을 잡으면서도, 제 표정이 그렇게나 다양한가요, 물었다. 걱정 마. 나도 널……. 도청하고 싶었던 적이 있으니까. 죠의 엉뚱한 대답과 해적다운 과격한 언어 선택에 아임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네? 무슨 뜻인가요, 죠 씨. 도청이요? 그럼 죠는 아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잡힌 손에 힘을 줄 뿐이었다.


두 우주인은 이 뒤로도 순탄하지 않은 사랑을 했다.

그러나 이젠 이별이라는 단어로 만든 원 궤도가 사랑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모양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두 우주인에겐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니게 되었다. 두 우주인이 손을 잡고 걷는 모든 길이 사랑이었고 꿈이었으며 서로의 사전에 가장 크게 적힌 단어였다. 싸우더라도 그들은 절대 헤어지자 말하지 않았고, 서로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더라도 금세 회복하여 진심 어린 사과를 나눌 수 있었다. 힘겨운 날에 홀로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힘이 두 우주인 모두에게 있었다. 이 모든 건 두 우주인이 사랑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 동화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는 살지 못했지만…….

 

어느 로맨스 영화의 모든 장면처럼 화려하게 사랑하며 남은 생을 살아갔다.

;


타 사이트에서 연재한 분량 중 외전 분량을 올립니다. 후기는 타 사이트에만 올립니다.

즐거운 감상하세요. 감사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