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는 사실 시장에서 구했어.
도원괴이담2
예지희는 태풍과도 같은 존재다. 천도량은 그리 여겼다. 재해보다는 자연현상에 더 가깝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나 푸른 머리 청랑인 앞에서 서슴없이 뱉었다가, 그 색이 붉은색이 되게 만들 뻔한 적이 있던 후로 이 말은 마음 속에 고이 묻어두었다. 토라진 것을 달래느라 어찌나 진땀 뺐던지. 허나 사람의 자연스런 생각까지야 접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으므로 천도량은 몇년 전부터 이 의견을 견지하는 중이다. 그런고로 그는 태풍주의보가 뜰 때면 알아서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사렸는데, 그중 하나가 말 걸기 전에 관찰(이라고 천도량은 주장한다.)하여 낯이 평소보다 온유하거나, 혹은 심통이 잔향처럼 남아야만 말을 거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그러다 문득 예지희라는 이가 결과로나오는 말의 내용과 어조가 곱지 않아도, 부탁을 하다면 은근히 들어주는 경우가 많음을 깨닫는다. 물론 대번에 거절을 듣고 다시 도전한 이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과실과도 같은 결과였으리라. 어쨌든 그에게까지 부탁하는 이들은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었으므로 과실을 맛보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리 관찰하다 발견한 예지희의 행태 중 하나를 적어보내면 아닌 척해도 칭찬에 약한 예지희가 좋아할 것이라는 게 천도량의 결론이었다. 과연 칭찬을 좋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두고 볼 결과겠다. 그리하여 붓을 든 천도량이 내린 결단은
『친애하는 나의 벗 예지희에게
안녕, 지희야. 난 채소의 요정이란다. 올해면 불러줄까, 내년이면 불러줄까. 오매불망 네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렸는데 넌 항상 우리를 보면서도 모른 척 하더구나. 덕분에 수많을 밤을 눈물로 지새워 내 얼굴이 가지나물처럼 눅눅해졌단다. 아마 모르겠지. 네가 우릴 불러주는 날이면 꼭 주고싶은 선물이 있었다. 도통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가지 꾀를 냈단다. 바로 이 편지다. 우리가 항상 지켜본 바, 네 마음씨가 아직 굳지 않았음을 안다. 귀고리 떨어뜨린 벗의 일을 기억하느냐. 애체가 깨져, 바닥에 눌러붙은 벗이 귀고릴 떨어뜨렸다하자 알아서 찾으라하였지. 허나 귀한 선물이라니 귀고리 있는 곳으로 향하여 은근슬쩍 발로 밀어주었음을 안다. 그러곤 “그리 찾아 대체 어느 세월에 찾을래? 차라리 바닥에 뒹구는 편이 빠르겠다.” 하고 빠져나가는 척하였고. 결국 그 벗이 엉덩짝에 걸린 귀고리를 찾았다고 기뻐하는 모습까지 보고서야 떠난 걸 안다. 지희, 네가 비록 고압적이고 오만해보일지언정 함께할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벗을 위하는 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지희야. 부디 벗들과 완만하게 지내고 채소를 소중히 아끼는 이가 되길 바란다. 네가 장신구를 좋아한다 하여 내 손수 만든 팔찌를 보낸다. 시금치가 푸른색 계열로 하자고 적극 주장하더구나.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올 한 해도 따뜻함만 가득하길 바란다.
항상 너와 친해지고 싶은 야채의 요정이』
라는 얼토당토 않는 서간이다. 이 서간은 맑은 물색의 발찌와 함께 예지희의 비청관 문 앞에 고이 놓여있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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