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크로

[도플크로] 그 눈동자에 비친 것

시기... 안 맞는 부분 있을 수 있음. 캐붕... 있음. 재미... 없음. 로맨스... 없음. Cp 같지 않음...

원피스 by 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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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안 맞는 부분 있을 수 있음. 캐붕... 있음. 재미... 없음. 로맨스... 없음. Cp 같지 않음...

어느날, 크로커다일은 길가에 웅크린 노파에게서 작은 구슬 하나를 샀다. 어린아이의 안구를 고스란히 본뜬 듯한 구슬에는 새빨간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그가 쓸모도 없는 구슬을 산 이유는 그 눈동자 때문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타오르는 불길이 비추어 보이는 눈동자는 그가 가진 보석 중 가장 값비싼 것들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으므로.

구슬은 크로커다일이 모은 다른 보석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크로커다일은 이따금씩 그것이 실제로 붉은 눈동자를 가진 것인지, 혹은 그 안에서 타오르고 있는 새빨간 불길로 인해 붉게 물든 것인지 궁금해했으나 정답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가 다시 구슬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칠무해 회의를 위해 마리조아를 다녀온 그는 새로 들어왔다는 경박한 사내로 인해 상당히 지쳐있었다. 회의에 참가한 칠무해가 단 둘 뿐이라는 이유로 성가신 관심과 시비를 한 몸에 받아야 했던 것이다. 우등생 행세를 해야 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그 어린 놈에게 위대한 항로의 무서움을 보여주었겠지만, 아직은 괜한 소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 크로커다일은 항해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보상받듯 느긋하게 목욕을 마치고 노곤해진 몸을 침대에 뉘었다. 피로한 정신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소음이 그의 의식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멀게 들리는 그 소리는 민중의 아우성 같기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뜬 크로커다일은 소리의 출처를 가늠했다. 바깥은 아니다. 건물 안. 어쩌면 들리는 것보다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누군가 침입했다면 보다 일찍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것은 어떠한 기척도, 전조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리는 오롯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마치 허공에서 홀로 생겨난 것처럼.

그는 빼두었던 갈고리를 다시 차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능력자의 소행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비단 능력자가 아니라도 특별한 이능을 발휘할 줄 아는 족속들을 그는 몇 알고 있다. 어느 쪽이든 크로커다일에게 그리 도움이 될 일을 하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문을 여는 대신 모래로 흩어져 열쇠 구멍을 빠져나갔다. 바람 소리로 착각할 법한 고요한 이동 끝에 그가 다다른 곳은 서재 앞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줄곧 들려오던 소리는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해졌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다. 악에 받친 울부짖음. 고함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서재 안쪽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크로커다일은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어도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아이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게 옳다. 아이라는 것이 작은 선반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닐 테니까.

그는 서재 한쪽에 놓인, 보석을 보관하는 선반을 벌컥 열어젖혔다. 반짝이는 보석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실핏줄이 돋은 작은 구슬이었다. 눈동자 뿐 아니라 흰자위마저 붉은 빛으로 물든 그것을 집어 든 크로커다일은 손을 태울 듯한 열기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화상을 입을 뻔한 손이 모래로 화하면서 구슬 또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는 쌓인 모래 위로 안착해 자취를 감춘 구슬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괜한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예감에 경계심부터 들었지만 정체도 모를 물건을 그냥 방치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몸을 숙여 모래 사이에 파묻힌 구슬을 다시 주워들었다. 열기는 전만큼 뜨겁지 않았다. 전체를 뒤덮던 실핏줄 또한 한결 가라앉은 모양새였다. 크로커다일은 그것의 눈동자 또한 더 이상 붉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안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꺼지고 그을린 회벽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크로커다일은 구슬을 손수건으로 감싸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날 밤이 지날 때까지, 구슬이 다시 소리를 내는 일은 없었다.

아이의 울부짖음이 다시 들려온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쌓인 서류를 처리하느라 밤늦게까지 서재에 남아있던 크로커다일은 오른손에 장갑을 끼고 선반을 열었다. 구슬은 전과 다름없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악에 받친 저주와 비명을 쏟아냈다. 전보다 거센 불길에 휩싸인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렴풋이 아이의 그림자가 보인다. 아이는 어딘가에 매달려 있는 듯했으나 너무 멀게 있어 분명하게 알아볼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자 크로커다일은 구슬을 물잔에 떨어트렸다. 구슬에서 새어 나오던 울음소리는 차츰 잦아들다 곧 완전히 멈추었다.

구슬의 이상 현상은 불규칙하게 반복되었다. 크로커다일은 구슬을 판 노파를 찾으려 했지만 그는 이미 종적을 감추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기에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구슬 안의 풍경은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나날이 선명해졌다. 몇 달이 지나자 아이의 실루엣만을 흐릿하게 확인할 수 있던 첫날과 달리 아이의 옷차림까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열 살 쯤 되었을까. 아이는 허름한 옷가지를 걸친 채 벽에 사지를 묶여 매달려 있었다. 불길의 그림자 탓에 얼굴은 아직 잘 보이지 않았다. 머리칼은 붉은 빛이 돌았지만 어쩌면 금발이나 백발이 불빛을 반사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조금만 더 선명해진다면 아이의 머리색이나, 그가 쓰고 있는 것이 안경인지 선글라스인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덥잖은 일에 신경을 쏟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러나 잠깐의 흥미일 뿐이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이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는 날을 기다렸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마리조아에서 열리는 칠무해 정례 회의 전날, 크로커다일은 아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저분한 금발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한 사내아이. 아이의 왼눈에는 선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화살이 박혀 있었다. 아이는 그대로 눈을 잃을 것이다. 운 좋게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시력이 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중상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비명은 기세가 끊기지 않는다. 아이는 계속해서 외쳤다. 두고 보자, 나는 죽지 않아. 무슨 일을 당하건 살아남아, 너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러 갈 테니까! 눈물과 피가 뒤섞여 아이의 뺨에 얼룩진다. 아이를 삼킬 듯이 타오른 불꽃이 점차 아이를 뒤덮는다.

터질 듯이 뜨거워진 구슬을 물에 담갔다. 치이익- 증발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이 사그라든다. 이윽고, 구슬에서부터 흘러나온 붉은 액체가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구슬을 다시 꺼내자 좀 전까지는 없던 무언가가 눈동자가 있던 자리에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녹슨 화살촉이다. 구슬은 여전히 진짜 안구와는 달리 단단했지만 화살촉이 박힌 눈동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피가 섞인 투명한 액체는 그것을 정말 상처 입은 눈알처럼 보이게 했다. 크로커다일은 상처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천으로 그 주변을 압박했다. 고작 이런 조치로 나아질 리는 없겠지만, 그냥 내버려 두는 것보다야 낫겠지.

"훗훗훗, 또 단 둘이군? 나야 신입이니 그렇다 쳐도 고참이신 영웅 나으리께서는 참 성실해. 안 그래, 센고쿠?"

어김없는 시비에 크로커다일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도플라밍고가 칠무해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크로커다일도 잘 알았다. 그러니 신입이라 얌전을 떨고 있는 거라는 투의 그의 말이 얼마나 헛된 소리인지도 모를 리 없다. 보나 마나 해군의 동향을 살핀다던가,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려는 것 뿐이겠지. 자신이 이 지루하고 답답한 회의에 참가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유일 테다. 저번부터 번번이 구태여 저를 걸고넘어지는 건 아마 심심풀이일 테고. 경박한 행동거지만 봐도 뻔히 보였다.

크로커다일은 수준 낮은 놈과 어울려주는 대신 무시를 택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러려고 했다. 전날 밤 보았던 아이가 떠오르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도플라밍고의 시비에 답해주는 일 없이 알라바스타로 돌아갔겠지. 하지만 도플라밍고를 보고 그 아이를 떠올린 이상 그의 예정은 어그러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단지 같은 머리색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그런 사소한 연결점에 진정 의미가 있다고는 크로커다일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알기로 도플라밍고는 선글라스를 벗는 법이 없었고 심지어는 그 틈 사이로 제 눈을 엿보는 것도 잘 허락하지 않았다. 눈치가 있다면 그것이 단순한 취향 치고는 과민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놈은 아직 그런 걸 능숙히 숨길만큼 노련하지 않았다. 새삼 그를 인지하고 나니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 바보 같은 선글라스는 벗을 생각이 없는 건가?"

"응...? 뭐야. 이제 남의 옷차림까지도 단속하려고? 후훗훗, 모범생다워."

도플라밍고는 기분이 상한 듯 한껏 빈정거리며 옅은 살기를 드러냈다. 예상했던 대로 순순히 맨눈을 보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순간의 변덕이었을 뿐 귀찮음을 무릅쓰고 더 들쑤실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었기에 크로커다일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흥. 네놈이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거겠지. 그 정신 사나운 꼴을 보고 울적해지지 않는 건 너 같은 머저리 정도일 거다. 아, 혹시 먹은 열매가 새새 열매였던 건가? 뇌까지 열매에 지배당한 거라면 그 발정기의 수컷 조류 같은 모습도 이해가 가."

대신 화제를 돌리듯 도플라밍고를 도발한 바람에 싸움을 말리느라 센고쿠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늘었지만 크로커다일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회의가 엉망으로 끝나고 배로 돌아온 그는 전날보다 상태가 안 좋아진 구슬을 들여다봤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곪기 시작할 것이다. 이걸 상처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 그것은 마치 현실과 유리된 듯 외부의 접촉으로는 흐르는 핏물의 방향조차 바꿀 수 없었으므로, 상처라기보다는 어떠한 변하지 않는 흐름을 형상화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쓸모를 다한 물건이다. 처음 그가 마음에 들어 했던 보석 같은 눈동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흉물. 이대로 놓아둔대 봐야 구석에 박혀 썩어가거나 전과 같이 그의 잠을 방해할 뿐이다. 하지만 어쩐지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크로커다일은 전보 벌레를 들어 부하를 호출했다. 평범한 치료가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면 된다. 방법을 찾아낼 능력은 충분히 있으니까.

“치유치유 열매 능력자가 이곳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이쪽도 확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야... 훗훗, 낙원에 처박혀 있던 것 치고는 대단한 정보력이군.”

“글쎄... 너무 허술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소식이 들어오던걸. 부하 관리를 제대로 해야겠더군.”

크로커다일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남자의 얼굴을 마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제 딴에는 철저하게 감추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 바다에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도플라밍고가 드레스로자의 왕위에 오른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아무리 밑 작업을 해두었다고 해도 나라 하나를 집어삼키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 없다. 돈키호테 패밀리가 위대한 항로에 진입한 지 오래되지 않은 새파란 루키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시간을 들인다면 소화야 시킬 수 있겠지만 그 사이에 생기는 틈은 어쩌지 못한다.

“너무 경계할 건 없어. 치유의 힘이란 언제나 유용하지만... 빼앗을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정식으로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아직 그 ‘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빼돌리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그런데 굳이 너와 마주해서 의심을 살 이유가 어디 있겠나?”

“후훗훗! 거기까지 알고 있는 건가. 아는 게 과해. 적진에서 너무 기고만장한 걸?”

“네놈이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시간 낭비 말고 안내나 해라. 이미 대가는 치렀을 텐데?”

노골적으로 성가신 티를 내자 도플라밍고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를 치유치유 열매 능력자가 있는 섬으로 이끌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거래. 협상도 지불도 이곳에 오기 전에 끝이 났다. 크로커다일과 척을 질 게 아니라면 허튼짓은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아직 안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와 싸움이 붙는 것도, 자신의 해역에서 칠무해 하나를 실종시켜 해군의 의심을 사는 것도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보 같은 남자는 아니겠지.

“그 갈고리는 여기서 빼놓는 게 좋겠군.”

섬에 도착하기 직전 멈춰선 도플라밍고는 부하들에게 손짓해 갈고리를 보관할 상자를 내밀었다.

“이왕이면 중요한 무기는 전부 두고 가는 게 나을 거야. 이 섬의 주민들은 특이한 풍습을 따르거든.”

“특이한 풍습?”

“그래. 섬에 들어오는 외부인은 가진 무기를 모두 그들에게 건네야 한다. 무기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아도 안돼. 한 가지 이상은 줘야 하는 모양인데.”

그의 설명에 크로커다일은 순순히 갈고리를 벗었다. 코트 속에 숨기고 있던 권총을 비롯해 몇 가지 무기를 더 내려놓자 의외라는 듯 도플라밍고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크로커다일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단검 하나를 다시 벨트에 끼워 넣을 뿐이었다.

“이제 가지.”

“...그래. 이쪽이다.”

도플라밍고의 뒤를 따라 섬 안쪽으로 들어서자 무성한 나무 사이로 작은 기척들이 가까워졌다.

“안녕하십리까, 도플라밍고 왕! 그리고 처음 보는 대인간!”

“무슨 일로 오셨드래요? 오늘이야말로 리쿠 왕과 만나게 해주려는 겁리까?”

이윽고 와글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손바닥보다 작은 것들이 여기저기서 뛰쳐나왔다.

“호오. 소인족인가?”

크로커다일은 그들이 아주 작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도플라밍고에게 몰려든 반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그에게로 다가왔기 때문에 관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소인족의 요구에 따라 단검을 건네주고는 조잘거리는 말들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가며 정보를 캐냈다. 상당히 오래 붙들려 있어야 할 것 같은 모양새의 도플라밍고를 기다리는 동안 할 소일거리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손님을 괴롭히는 건 이제 그만하지. 내 체면이 곤란해지잖나.”

“으앗! 미안합리다! 깜빡 신이 나버렸더래요!”

뒤늦게 소인족 사이에서 빠져나와 그들을 떼어놓으며 경계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정말 경계할 만한 정보를 소인들이 알고 있었다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놓아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 개인적인 호기심을 풀 수 있었으니 크로커다일로서는 나쁠 것도 없었는데.

“맨셸리 공주는?”

“마을에 계십리다. 안내하겠습리다!”

소인, 스스로 톤타타족이라고 칭하는 그들은 두 사람을 섬의 지하에 위치한 마을로 데려갔다.

“안녕하십리까. 맨셸리라고 합리다, 대인간!”

크로커다일의 키와 비슷한 크기의 건물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자 건물의 꼭대기 층 발코니에서 앙증맞은 소녀가 걸어 나왔다. 홍조로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는 소녀는 정말이지 깜찍하고 순진해 보였다. -이용해 먹기 편하겠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을 정도로.

이런 걸 아직도 풀어두다니. 관대한 건지, 아직 여력이 없는 건지. 아마 후자겠지. 순간 탐이 났지만 도플라밍고의 눈치를 봐서는 이번이 그가 이들과 접촉할 수 있는 마지막일 것이다. 당장은 부딪힐 생각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니 이번에는 아쉽지만 물러나야 한다.

“치료해야 하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리다. 환자는 어디에?”

“아뇨. 사람은 아닙니다. 어린 공주님께 보이기엔 조금, 모양새가 흉할 텐데...”

평소의 크로커다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중한 어조에 뒤쪽에서 도플라밍고가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 가면은 익숙할 텐데 새삼스럽게 굴긴.

“흉하다니요! 괜찮습리다. 어서 보여주시래요.”

“그러시다면야...”

크로커다일은 품 안에서 천에 감싸인 구슬을 꺼냈다. 천을 벗기고 안구의 형상을 한 구슬을 내보이자, 도플라밍고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작위적인 웃음으로 감추고는 있지만 아직 미숙하다. 그에게 맴도는 불쾌한 기색을 못 알아채는 건 같은 풋내기들뿐이겠지.

“이건, 눈입리까?”

“구슬입니다. 눈 같이 생기긴 했지만, 만져보면 그냥 단단한 조각품이죠. 얼마 전에 얻은 기물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변해서... 점점 상태가 악화되는 걸 막아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눈이랑 정말 똑 닮았는데 그냥 돌이라니, 참 신기한 물건이래요. 그럼 한 번 치료해보겠습리다.”

공주가 눈알을 가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 사이, 여전히 짜증스러운 표정을 한 도플라밍고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귓가에 바짝 붙어섰다.

“무슨 속셈이냐. 천하의 사막의 왕께서 고작 저런 걸 고치기 위해 수고를 들일 것 같지는 않은데?”

“흥. 뭘 모르는군. 가끔은 이런 재미도 있는 거다. 그리고, 보물을 포기하는 해적 본 적 있나? 나는 저게 마음에 들었거든.”

천연덕스럽게 답하자 도플라밍고의 표정이 더욱 못마땅하게 변했지만 더 트집을 잡지는 못했다.

“다 되었습리다! 다행히 치유가 통했어요. 깨끗하게 다 나았습리다.”

크로커다일은 오래지 않아 돌아온 공주의 품에 안긴 구슬을 보고 희색을 띠었다. 중앙에 틀어박혀 있던 화살촉은 간데없고, 처음 그의 눈길을 끌었던 붉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오래된 상처마저 이렇게 완벽히 나을 줄이야.”

그는 건네받은 구슬을 대신해 오른손의 반지 중 하나를 빼내어 공주에게 건넸다.

“보답입니다. 공주에게는 조금 클지도 모르겠지만, 미인에게는 언제나 보석이 잘 어울리죠.”

“어머나, 예쁜 티아라네요.”

속이 뻔히 보이는 아첨의 말에도 순진한 공주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하긴 이 사랑스러운 공주를 상대로는 틀린 말도 아닐 테다. 그는 공주가 도플라밍고의 눈을 피해 쥐여준 약병을 소매 안에 숨기며 돌아섰다. 불쾌한 것과는 별개로 궁금증이 들기는 하는지 구슬을 들여다보는 그의 곁으로 도플라밍고가 따라붙었다.

구슬의 눈동자는 더 이상 불길을 비추지 않았으나, 여전히 붉은색이었다. 불길을 품고 있을 때보다 밝고 생생한 색이다. 적어도 크로커다일의 취향에는 이편이 더 들어맞았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의 표면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매끈한 눈동자에 크로커다일의 모습이 담긴다.

...그런데 어째서 정면이 아닌 옆모습이지? 마치 살짝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구도의... 크로커다일은 퍼뜩 고개를 들어 옆을 봤다. 저를 바라보던 도플라밍고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이거, 네 거로군?”

떠오른 생각이 저도 모르게 툭 뱉어진다. 그리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 무슨 소리냐는 양 고개를 갸웃 기울이던 도플라밍고의 얼굴이 점차 굳어지는 것을 보라. 여전히 어리둥절한 눈치지만 상황을 전부 파악하지 못해도 판단 정도는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군. 내 화를 돋워서 뭘 할 셈이냐!”

놈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무언가가 구슬을 향해 뻗어졌다. 빼앗을 요량이었겠지만 그 시도는 발 빠르게 몸을 흩어낸 크로커다일로 인해 수포가 되었다. 지나친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도플라밍고의 뒤쪽에서 다시 형태를 갖춘 그는 구슬을 손안에서 굴리며 심술궂게 웃었다.

“크하하하! 선글라스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겠어. 그 정도 상처면... 이미 적출했나? 아마 어린 시절의 일이겠지. 아직도 그런 하잘것없는 일에 매여있다니. 진짜 애송이인 거냐?”

도플라밍고는 선글라스를 벗기려는 듯 다가선 손을 거칠게 쳐냈다.

“기고만장하게 굴지 마라! 내 약점이라도 잡은 기분인가? 후훗훗, 그런 게 내게 정말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해?”

검은색으로 물든 손아귀가 크로커다일의 목을 낚아챈다. 의외로 저항하지 않는 그를 쥐고 날아올라 빠르게 섬을 벗어났다.

“낙원에 오래 안주하느라 이제는 주제 파악도 못할 지경이 됐나 보지. 남의 영역에서 설치면 어떤 꼴이 되는지 알려주마.”

톤타타들의 시선을 벗어나자마자 폭발적인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급소를 잡혔을 이의 반응은 태연하기만 했다.

“크흐흐, 네가?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건 네놈이다.”

앗차 하는 사이에 손에서 힘이 빠지고 날카로운 모래알들이 손 틈새로 빠져나간다.

“내가 지금껏 몇 명의 루키를 봐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백 명? 천 명? 칠무해에 오르는 놈도 수도 없어. 그러나 결국 그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 몇이나 되지?”

어느새 멀어진 크로커다일이 키득거렸다. 도플라밍고는 그를 쫓는 대신 말라붙은 팔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구겼다.

“자만하지 마라, 애송이. 다음에 다시 볼 때까지 머리나 식히고 있으라고.”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듯 멈춰선 도플라밍고를 뒤로하고 숨겨두었던 배로 향한다. 여전히 피부를 찌르는 살의 어린 패기가 따끔따끔하다. 크로커다일은 그런 그가 털을 곤두세워 덩치를 키우는 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 자란 눈을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궁지에 몰린 짐승을 건드렸다간 탈이 날 뿐이겠지.

알라바스타로 돌아온 크로커다일은 집무실 책상 한켠에 구슬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용해 먹을 속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된 용도는 순전한 장식품이었다. 어차피 그날 이후로 구슬은 도플라밍고의 시야를 비추는 일 없이 잠잠했다. 그저 유리알 같은 광택을 내며 저를 관찰하는 크로커다일을 비출 뿐이었다.

자연히 크로커다일의 관심 또한 시들어 갔다. 때때로 상태가 안 좋아지는 그것을 의사에게 보이는 것 외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도 줄어들었다. 한 번 치료가 통한 뒤로는 공주가 준 물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평범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그가 귀중한 약을 쓸데없는 물건에 한 번 더 낭비할 일은 없을 테니까.

다만 이따금씩, 궁금증을 느끼기는 했다. 처음의 상처에는 명확한 원인이 있다. 그러나 이후의 문제에는 어떠한 전조도, 연관성도 없었다. 적어도 치료된 자상의 후유증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반복해서 생겨나는 기이한 염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크로커다일이 그 답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간 알지 못했던 것도 당연했다. 요란하던 불길 속의 비명과 달리 새로운 밤의 악몽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상이었다. 크로커다일은 눈동자 속에 비치는 눈밭의 풍경을 바라봤다. 파랗게 얼어붙은 눈이 홀로 떨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알을 쥐었다. 체온을 받은 그것이 아주 조금씩, 다시 데워졌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구슬을 손안에 굴리던 크로커다일은 더디게 달아오르는 온도를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의 꿈에는 잠들기 전 보았던 것과 똑같은, 새하얀 눈밭이 나왔다. 열 살은 되었을까 싶은 어린 소년이 그 가운데에 너덜너덜한 얇은 옷을 걸치고 서 있다. 짧은 금발에, 새까만 선글라스. 아이의 손에 들린 권총의 총구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새어 나온다.

총구가 겨누고 있는 끝을 보면 평범할 것 없는 보물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쏟아진 눈발에 거의 덮인 핏자국만이 그곳에 무언가 있었다는 흔적이 될 뿐이다. 더 이상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타인의 개인사 따위, 굳이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이 바다에 나온 이들 중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약점을 잡는 것도, 글쎄. 그가 신세계에 거점을 두고 있는 지금은 필요 없는 일이다.

어차피 알아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꼭 이런 이상한 현상을 통할 것도 없다. 파고들어 봐야 괜히 귀찮은 일을 늘릴 뿐이다. 하여 크로커다일은 어린 도플라밍고를 두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이 현상의 단서를 찾아내려 움직일 뿐이었다. 이것은 현실인가, 혹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허상인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후에 써먹을 길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이가 있는 주변을 제외하면 거의 텅 비어있는 공간을 헤매던 그는 별다른 수확 없이 멈추어 섰다. 이제 깨어날 시간이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일들이 언제나 성과를 얻는 건 아니니까.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호기심이 들었다. 크로커다일은 줄곧 조형물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아이의 선글라스를 벗기기 위해 손을 뻗자 그것은 생명을 얻은 양 격렬하게 움직이며 반항하기 시작했으나, 어린아이 하나 다루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자비 없는 손길에 금세 아이의 눈을 굳건히 가리고 있던 선글라스가 벗겨졌다.

그리고 보인 것은-

크로커다일은 다소 찝찝한 표정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아직 손에 쥐어져 있는 눈알을 들여다봤다. 고민하듯 미간을 좁히던 그는 이내 그것을 벨벳으로 감싸 작은 보석함에 넣고 공주에게 받았던 물약과 함께 포장했다.

전보벌레를 통해 운반책을 부르고 여느 때와 같이 준비를 마치니 시간이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쪽지를 한 장 써서 동봉한 크로커다일은 시가를 피우며 그것을 받을 도플라밍고의 반응을 생각했다. 분명 썩 유쾌하게 여기지는 않겠지. 어쩌면 다시 마주치게 될 때에는 저를 죽이려 들지도 몰랐다. 능력자가 도플라밍고의 손안에 있는 한 앞으로는 구하기 여의찮을 물약을 그냥 넘겨버린 것도 미련한 짓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도플라밍고라면 쉽게 구할 수 있을 물건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화살촉이 박힌 상처에서부터 얼굴 전체가 곪아든 어린 도플라밍고의 모습, 작은 몸을 사르는 불길과 그를 향해 날아드는 날카로운 화살 끝만이 비추어지던 작은 눈동자를 보니 저답지 않은 마음이 들어서. 어쩐지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커다일은 그런 스스로를 비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단순한 변덕이다. 금세 잊히고 말...

마지막 부분은 참새님 트윗을 보고 떠올린 내용입니다~ 사용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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