ワンピース

죽음으로의 항해.

원피스 로저, 레일리 논컾 드림

滄海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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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9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노라 선고받았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짙은 침묵을 갑판 위에 떨구었다. 침묵에 무게가 있다면 오로 잭슨 호는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심해 저 아래까지 추락했으리라.

언제나 유쾌한 소리로 가득했던 해적들은 말을 잃었고, 예상치 못한 사건의 도래가 공기를 바꾸고 키를 돌려 그들을 캄밸트로 인도했다. 죽을 날짜를 받아온 선장이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냐며 와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릴 때까지 배는 어떤 해류도 타지 못하고 정지해 있었다.

항해는 계속된다.

그러나 선장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배는 다시 방향을 돌려 바람을 타고 움직이고… 왜 이래!?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냐! 침묵을 비집고 터져 나온 선원들의 목소리는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그들에게 죽음은 늘 도처에 있었다. 당장 내일 죽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이들에게, 고작 몇 년 후에 다가올 죽음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었다.

다만 아직 다가오지 않을 먼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해적과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며, 누구보다 자유로운 바다의 사나이도 기어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은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그만이기에.

 

항해는 계속된다.

배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다가올 슬픔은 미뤄두는 것이 옳았다. 선장이 죽을 날에 흘릴 눈물을 미리 흘려두는 것은 아까운 일이니까. 선원들은 각자의 몫의 울음은 삼키고 그저 웃었다. 가라앉은 잔여물을 유쾌함으로 덮기는 그들에게 쉬운 일이었다. 들뜬 감정, 맥락을 잃은 말, 논리 없는 문장, 그럴듯한 이야기를 엮어 만든 유머, 허울뿐인 웃음소리, 그리고 약간의 술. 죽음을 저 멀리 밀어내려고 시도하기에 죽음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축제는 기이할 정도로 떠들썩했다. 그것을 덮고 잊기 위하여 소란은 커졌고,

항해사는 늘 그렇듯이 소란 속을 빠져나와 조용한 곳을 찾았다.

다음 섬에서 항해를 멈춰. 그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짚어냈던 항해사는 기이할 정도로 평온한 표정으로 지평선을 마주 보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경계, 끝없이 이어질 자신의 목적지를.

선의 경계를 따라 붉은빛이 서서히 퍼져 물드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 배에 처음으로 올랐던 날이 떠올랐다. 무례할 정도로 급작스럽고 끈질긴 권유가 있었다. 신뢰할 수 없었기에 줄곧 거절했다. 그러나 결국, 이 배에 오르고 말았고… 그것은 생애 최대의 실수였으리라. 아무리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한들 해적의 배만큼은 오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답지 않은 충동이었다. 그래서 바다로 도피하기 위해 늘 발을 빼놓았다.

동료가 아닌 협력. 어디까지나 비슷한 궤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인 동맹관계. 원한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항해사가 없으면 해적의 배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지만, 항해사에게는 배가 필요지 않았으므로. 항해사에게는 육지를 걸어갈 발이 있었으며, 바다를 건너고자 한다면 이 배가 아닌 다른 배를 타면 될 일이었다. 그에게 오로 잭슨 호에서 내릴 기회는 그렇게 몇 번이고 주어졌다. 그러나 그가 내리지 않았던 것은,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저에게 쓸모 있는 장기말이었고, 그리고 선장에게 그는 언제나 친구이자 동료였기 때문에……

사실 배에 한 번 올랐던 이상 영원히 떠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배서에 제 얼굴이 걸렸을 때부터, 아니, 그의 눈에 들어왔던 때부터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항해사는 그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바닷물결을 읽을 줄 아는 만큼 삶의 결 또한 읽을 수 있었으므로.

그러므로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의도대로. 제가 선택한 쪽으로.

방향키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졌다고 한들 그조차도, 삶으로의 항해에서 선장이자 항해사는 자신이었으니.

….

익숙한 인기척이 상념을 가로질러 다가온다.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사람의 것이다.

“애들이랑 좀 더 있질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리 말해도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그는 술을 건네며 웃었다.

“노아 자네가 외로울까 봐 왔지.”

굳이 올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었는데, 갈수록 능청스러움만 늘어서는. 속으로 혀를 한 번 차고 술을 받아서 들자 그의 입꼬리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말없이 얼굴을 들여다보자 올라간 입가를 따라 패인 깊은 주름이 보였다. 사람을 대할 줄도 모르고 여유 없이 그저 왁왁 소리 지르기만 했던, 그저 혈기 왕성했을 뿐이었던 이십 대 청년은 어느새 오십에 가까웠고, 그동안 꾸준히 쌓아왔던 명성과 힘, 연륜 따위가 느껴지는 흔적이 세월과 함께 누적되어 얼굴에 남아 있었다.

그만큼 함께한 지 오래되었다.

그래봤자 제가 산 삶보다는 한참 못 미칠 세월이지만, 그럼에도 몇십 년 동안 쌓아온 지층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두께였다.

……그리고 그렇게나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의 죽음이 가깝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큼 다가온 결말을, 언젠가는 오고야 말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두 사람은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목이 텁텁해서 뒷맛이 좋지 않은 싸구려 술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흘리지 못한 눈물 맛인 것 같았다. 어쩐지 짜고 씁쓸해서 레일리는 괜히 목을 큼큼거렸다. 노아는 괜찮아 보였다. 늘 그래왔듯이 잔잔한 수면처럼.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고는 한참 동안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밤에 이르게 삼켜져서, 해수면은 이미 심해처럼 어두웠다. 달이 뜨지 않았기에 윤슬도 없었다. 이런 날의 바다는 죽음과 같았다.

노아가 로저에게 항해를 멈추라고 말했을 때도 이런 밤이었다. 이딴 몸으로 어떻게 항해하겠다는 거지? 기어코 죽을 생각이냐? 그 흔한 별도 없는 밤에, 선의를 겸하던 오로 잭슨 호의 유능한 항해사는 그리 말했다.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로 다음 섬에서 내리라고, 의사를 찾으라고. 그러나 그 말을 듣는 로저는 웃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의사에게 마침내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도 그랬다. 로저는 웃었다. 레일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멀그러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오로 잭슨 호의 선장은, 그의 파트너는, 골 D. 로저란 사내는….

“너라면 항해를 그만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레일리는 오로 잭슨 호의 배의 항해사가 이번에야말로 배에서 내릴 줄로만 알았다. 그가 꿈을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는 여정을 찬성할 리가 없기에. 허황된 꿈보다는 현실을, 눈앞의 삶을 중요시하는 이라는 것쯤은 선원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대책 없는 항해는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그렇게 내린다고 해도 누구도 말릴 수 없었을 텐데, 노아는 배에 남았다. 로저의 죽음에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은 얼굴로, 도리어 말끔해진 표정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는 태연하게 제 할 일을 했다. 처음부터 죽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심해를, 밤의 해수면을 닮아 레일리는 숨을 멈추었다. 윤슬이 비치지 않는 물 위는 어둠뿐이라, 막연하고 아득하다. 로저가 몇 년 이내로 맞이할 죽음같이.

“후회할 바에는 끝까지 해보는 게 낫지.”

그리고 그의 입에서 이제껏 했던 말과는 다른 형태가 흘러나와 레일리는 눈을 살짝 떴다.

“…꿈 따위에 목숨 버리는 거,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꿈이라고 부르며, 뒷일 생각하지 않고 대책 없이 저지르는 걸 싫어하는 거지.”

삐뚜름한 시선을 따라 밤바다가 쏟아졌다. 할 말이 많아 보이지만 구태여 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고, 너희가 이때까지 한 짓거리를 생각해보라는 듯한 눈이어서, 레일리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꿈과 낭만을, 그것에 목숨 버리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야. 애초에 싫어했으면 내가 이 배에 탔을까? 항해도 뭣도 모르는, 수상한 남정네 둘만 있는 해적의 배에?”

“…그것도 그렇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넌 뭘 위해서. 어떤 꿈을 가지고 이 배에 올랐길래 죽음의 배에 오른 채로 나아가는 선장을 이해할 수 있는 건가? 늘 꿈보다는 현실을 좇았으면서. 죽음보다는 삶을 갈구했으면서. 레일리는 물음을 입 안으로 삼켰다. 노아가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한 터다.

레일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얼굴에 패인 주름을 바라보던 노아는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려 웃었다.

“참나, 몇 년 동안 봤는데 아직도 날 몰라?”

그리고는 밤바다를 꼭 닮은 눈이 다시 지평선을 향해……

그러고 보면 노아는 늘 바다를 보고 있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을 바다의 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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