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 단편

산조로) 잊혀진 ■■

현대AU / 상디 1인칭 시점

원피스 by 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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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그렇지만 예보에 의하면 오후부터 폭우가 쏟아질 예정이란다.

“조로, 우산 가져가.”

선심 써서 챙겨줬다. 안 그래도 바보같이 생긴 놈인데 비에 젖은 생쥐 꼴까지 하면 볼썽사나울 테니까.

“오늘 비 많이 온대.”

녀석의 옷 색깔에 맞춰 고른 우산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자식이 쳐다보는 시늉도 않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우산 챙기라고.”

말해봤자 또 무시할 것 같아서 가방에 찔러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조로가 손으로 쳐냈다. 그뿐 아니라 콧잔등을 일그러뜨리고 이를 드러내면서 성난 어조로 말했다.

“필요 없어.”

녀석이 필요 없다고 말한 건 비를 대비하는 우산이 아니라 나의 배려였다. 나도 미간이 찌푸려졌다. 화는 너만 났냐? 나도 났다 이거야.

“그럼 뭐 어쩔 건데. 이대로 가려고?”

싸우는 거야 일상다반사지만 이번 언쟁은 심상치 않다. 어쩌면 연인이란 관계를 끝맺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아니, 옳은 게 맞고. 저 자식은 하등 쓸데없는 옹고집을 부리고 있으니까.

“알아서 할 거니까 상관하지 마.”

“뭘 어떻게 알아서 할 건데?”

“신경 꺼.”

밉살맞은 소릴 남기고서 방을 나섰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짜증을 증폭시켰다. 가슴이 하도 답답하여 진통제 찾는 심정으로 담뱃갑을 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왜 저러는 거지? 뭘 잘했다고 성질내는 거야?

지금 일만 해도 그렇다. 사람이 챙겨주는 마음으로 우산 가져가라고 했으면 못 이기는 척 받아 가면 되는 일 아닌가? 인상 쓰고서 팽 가버리면 앞으로 뭐 어쩌자는 건데? 누군 자존심이 없어서 안 세우는 줄 아나.

마음 같아선 설문조사라도 하고 싶다. 둘 중 누구에게 잘못이 있냐고 온 세상 사람에게 묻고 싶다.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한쪽을 가리킬 것이다. 당연히 내 쪽이 맞고 마리모 자식이 틀려먹었다.

차라리 내가 잘못한 거면 고치겠는데, 그게 아니면 뭐 어떻게 해야돼? 저 자식이 문제인 거면 뭐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젠장….”

도저히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양보와 이해, 조율, 협의 같은 아름다운 개념이 있지만 저 자식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성립할 수 없는 모양이다.

금연이고 뭐고 속 터져서 안 되겠다. 라이터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 넣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여전히 험악하게 인상 쓰고 있는 녀석이 되돌아왔다.

“뭐야?”

“깜빡했어.”

“뭐를.”

묻는 말에 대답 않고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손아귀 힘이 어찌나 우악스러운지 주먹 잡힌 셔츠에 주름이 질 것만 같다.

녀석이 코앞까지 얼굴을 드밀고 사나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진짜로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입은 왜 댓 발 내미는 거지?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데? 주먹이라도 날릴 심산이냐?

예상과 다르게 이어지는 것은 말캉, 부드러운 감촉.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떨어질 때 쪽 소리도 났다. 꼭 뽀뽀한 것만 같다. 아니, 맞지 않나? 입술에 남은 온기가 이해되지 않아서 멍청하게 눈을 깜빡였다.

“저녁 먹기 전에는 들어올 거야.”

“어…?”

화해를 제안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조로의 얼굴에 심통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우산은 또 챙기지 않았고, 문도 신경질적으로 쾅 닫고 가버렸다. 상황은 조금 전과 똑같았는데 짜증 대신 헛웃음이 나왔다.

나 진짜 이해가 안 간다만. 설마 저 자식 뽀뽀하려고 되돌아온 건가? 물론 약속하긴 했다. 외출하기 전에는 애정 표현 한 번씩 꼭 하자고. 식사 준비에 참고할 거니깐 밥 어떻게 할지도 알려주라고 했었고.

“참나.”

근데 그걸 지금 해? 다른 때도 아니고 이렇게 대판 싸운 상황에서? 이럴 거면 우산은 왜 안 받아가는 건데?

마리모의 사고방식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알기 어렵겠지.

“어휴….”

밥팅 자식이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라고 했었지. 그러면 내일부터 휴일이니까 장을 좀 넉넉하게 봐야겠다. 고기도 사고 생선도 사고 수박도 한 통 사야지. 매의 눈이 보내준 옥수수로는 샐러드를 만들어서….

머릿속에 식단 계획이 차례차례 세워졌다. 싸운 이유는 어느새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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