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5장 식사 테마 단편집 <전정식사> 샘플

9월 디 페스타 Fate 시리즈 쁘띠존 주최 부스(A5) 위탁

<개요>

2부 1장~2부 5장 식사 테마, 크립터 및 이문대 주민 위주 NCP 단편집

소설 / A5 / 무선제본 / 60p / 6,000원

<안내사항>

페이트 쁘띠존 주최 부스 위탁 회지로, 현장판매만 소량 진행합니다.

9/24 오후 9시까지 통판 신청을 진행 중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폼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witchform.com/formViewer/slim.php?idx=687928

본 회지에 대한 문의는 트위터 계정 기사식당(@Roadsideknight) 멘션 또는 DM으로 부탁드립니다.

<주의사항>

일부 단편에 수렵/도축 묘사(이리의 몫, 실명) 및 유혈 표현(이리의 몫, 감자 깎는 신)이 있습니다.

2부 5장 「성간도시산맥 올림포스」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자체 설정을 다수 포함하고 있으며, 본문 내용이 2부 6장부터 공개된 설정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아래로는 샘플이 이어집니다. 각 단편은 구분선으로 나뉘었으며, 내용은 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야가 스몰렌스크 서쪽의 설원. 젊은 야가 사냥꾼 한 명이 눈보라를 헤치며 걷고 있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귀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를 맡는다. 사냥에 나선 야가들이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오직 지금 느낄 수 있는 감각뿐이다. 이곳은 눈 깜짝할 사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사라져버리는 세상. 발자국도, 시체 냄새도, 천천히 내쉰 입김마저도 모두 쓰라린 눈발에 섞여 지워지기 마련이었다.

“크리차띠 씨가 말랐다더니.”

마을의 공동 사냥터에서 내쫓긴 사내는 험한 골짜기와 끝없는 눈밭, 때로는 디아발 뜨란이 헤집고 지나간 폐허 따위를 전전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새벽부터 마을을 나와 발길이 드물게 닿은 땅을 헤맸고, 다른 사냥꾼들이 슬슬 돌아갈 시간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챙겨온 식량은 진작 동났다. 폭풍이 몰아칠 때 한두 모금씩 들이키던 싸구려 화주 역시 바닥을 보였다. 사방에 널린 눈이라도 한 움큼 쥐어 입안에 넣고 싶다는 충동이 머릿속을 맴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간신히 한 걸음을 내딛던 찰나, 북쪽으로부터 한 줄기 질풍이 불어닥쳤다.

짐승 누린내가 진하게 풍겼다. 사냥꾼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을 크게 뜨고 양 귀를 꼿꼿하게 세운다. 쏟아지는 눈발 너머에 거대한 네발짐승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상상 이상으로 가까이 있다. 바람 방향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 목덜미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등골 위를 덮은 털이 바짝 곤두섰다.

총을 잡을 수 있는 나이부터 매일 마수를 상대해 왔지만, 이런 덩치는 처음 본다. 몇 달 동안 텅 빈 땅을 전전하며 얻은 깨달음이 청년의 뇌리를 스쳤다.

사냥터가 되지 못한 땅은 딱 두 종류다.

아무것도 없는 땅이거나, 아무도 못 잡은 짐승이 살고 있거나.


얼음과 불의 땅은 미식과 거리가 멀다.

오필리아 팜르솔로네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식사란 다시 얻을 삶을 연장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발키리들은 때때로 마을에 내려가 공물을 받아 왔고, 스카디가 오찬이나 다과회를 가지기 위해 부르는 일도 있으나, 무엇도 만족스러운 식사가 될 수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홀로 식사할 때는 배고픔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얼음으로 지은 궁전에서 절찬리에 식어가는 뿌리채소 수프를, 대체 어떤 표정으로 먹어야 하는가. 하물며 그 멀건 액체가 한 명의 성인을 도축해 만든 요리임이 분명하다면, 어떤 기분으로 그릇을 비우고 내용물을 자양분 삼겠는가. 범인류사를 모조리 지워버린 자들의 일원이, 기쁜 마음으로 죽은 이들에 대해 가책을 가진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오필리아는 고기 한 점 없는 수프 그릇에 손을 대었다. 얼음으로 만든 걸상은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다. 실제로 냉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형상만 얼음인 물질이라도 그랬다. 이문대의 마스터는 숟가락을 집어 든다. 더 식기 전에, 양젖이 덩어리지고 감자에서 나온 전분기가 그릇 밑바닥에 가라앉고 삶은 콩이 풋내를 풍기기 전에 한 입 머금는다. 물과 풀과 젖의 비린내가 끊임없이 자기주장을 한다. 아무리 소극적인 존재 증명이라고 한들, 어떤 조화도 찾아볼 수 없는 맛에 속이 불편해졌다.

오필리아는 식사 시간마저 피하고 싶었다. 목동을 자처한 신이 만들어낸 세계. 이곳은 매일이 수요일이었다.


“아까 읊은 건 참으로 훌륭한 시였다.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네가 짐의 말벗이 되어줄 수 있겠느냐?”

“내가? 하지만, 천제님은 뭐든지 다 아실 텐데……”

“잘 아는구나! 그러나, 짐은 이 땅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 게다가─ 얌전히 대접받는 일은 이제 지루해서 말이다.”

시황제는 머리를 조아린 자들 너머, 한기가 감도는 숲을 향해 눈짓했다. 제안을 들은 소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금기에 대한 열망은 갓 세상에 나온 만물 안에 도사리는지라, 시황제 역시 흡족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황송해하는 어른들을 지나친 둘은 우거진 나무 아래로 향한다. 밤이슬에 젖고 이끼 낀 땅 위로 두 쌍의 발자국이 남았다. 훤칠한 인영이 수해 아래 몸을 감추며 진한 그림자가 졌다. 진인의 육체는 구리 표면에 슨 녹처럼 짙푸른 빛이었고, 인간의 형상 뒤로 길게 늘어진 옷자락은 나뭇가지와 풀 위로 스칠 때마다 반짝였다.

마치 반딧불 같은 모습에 감탄하던 소년은, 자신이 아는 것 중 가장 비현실적인 존재를 입에 올렸다.

“천제님은 꼭 봉황 같아!”

“오호, 봉황이렸다?”

“응! 시 짓는 법을 알려준 누나가 얘기해 줬어. 봉황은 무척 크고 예쁜 새인데,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지 않아. 천제님처럼 특별한 새라서 귀한 오동나무에만 앉고, 더 귀한 대나무 열매만 먹고 산대.”

“까다로운 놈이로고.”

시황제는 혀를 끌끌 찼다. 그것들이 먼 과거에 중국 땅을 누볐다는 사실을, 한때 자신이 그들에게서 불사의 법칙을 찾으려 했음을, 그중 몇 마리가 아방궁 어딘가에 박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입에 올릴 필요는 없으리라. 대신, 진인은 부드러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하다면 짐은 땅 위의 봉황이 되어야겠구나.”

“땅 위의 봉황?”

어리둥절한 낯의 소년을 뒤로하고, 시황제는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한 알 쥐었다. 어둠 속에서 첨예해진 손끝이 정보를 받아들인다. 과육은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추가로 판단을 내리기 전, 새로운 전별이 신경망 틈을 파고든다. 아리기까지 한 풋내가 코를 찔렀다.

정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육안으로도 덜 여물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천제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이뿐이었다. 분자 단위의 분석 -예컨대 독이 있는지, 있다면 종자와 과육 중 어디에 있는지, 이것이 정말 식물이 맞는지 등- 는 전혀 진행할 수 없다.

고로, 시황제는 손에 쥔 열매를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


제단에 걸린 낡은 동판, 세 번째 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드러지기 쉬운 재료는 그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라.’

누군가는 세계의 순환이 요리 재료를 다듬는 과정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먹지 못하는 부분을 잘라내는 일이 아닌, 제사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굳이 둥글게 깎는 행위처럼 사치스럽다고 여겼다.

모난 구석 없이 잘 다듬어진 세계를 누구에게 올리는지는 여러 사람이 품은 의문이었다. 다만,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민중 속에 없었다. 세계의 시작이 다가오면, 궁금증을 가진 이들은 저들이 상상했던 가상의 식재료들처럼 깎여나갔다.

다듬어낸 식재료 모서리에 눈길 주는 사람은 없다. 닭 모이나 되면 망정이지, 대부분은 흙길에 묻혀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윽고 봉헌에 조금 더 걸맞은 세상이 만들어졌다.

여기 이 청년도 비슷한 상념에 빠져 있다.

그는 오후의 싱그러운 풀 냄새와 반짝이는 시냇물, 바람에 살랑이는 꽃들을 등지고 부엌에서 감자를 깎고 있다. 대대로 뿌리채소를 길러온 집안의 막내기 때문이다. 얻은 풍요에 보답해야 하니, 광주리 가득 쌓인 감자를 동판에 쓰인 대로 모난 곳 없이 둥글게 깎아야 한다.

그는 여러 쓸모가 있는 청년이었지만, 이 순간은 ‘감자 깎는 일’이 그의 유일한 존재 의의였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섬의 모든 문물에서 바다를 보았다. 젊은이들은 활에 시위를 매기고 놓으며 쉴새 없이 파도 소리를 냈다. 모루 앞에 앉은 대장장이는 출항을 알리는 종을 종일 울려 댔다. 목수가 든 조각칼은 한 척의 배였고 날붙이 옆으로 밀려 나오는 나뭇결은 용골 아래 쪼개지는 물결이었다.

지상의 바다를 볼 때면 가슴 언저리가 시큰거렸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릴 때마다, 드레이크는 빌어먹을 바다 신의 저주가 이런 곳까지 미치는 모양이라고 투덜댔다. 이아손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응답한다. 그리 생각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투다.

이아손의 태도가 옳다. 드레이크는 이 아픔이 그리움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순간에 뒤집혀버리는 사람의 마음에서마저, 위대한 선장은 바닷길 변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들, 섬의 주민들 역시 인간이었다. 누군가는 풍랑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표류하던 영혼들은 이윽고 황금 사슴 호에 좌초했고, 난파선의 주인은 그들을 기꺼이 반겼다. 잔을 부딪고 제각각의 노래를 하며 기구하리만치 긴 밤을 지새운다. 취하기로 마음먹고 한껏 목을 축인다. 모두가 곯아떨어지면, 선장 역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머리가 핑 돌고 발아래가 일렁거린다. 내려앉은 눈꺼풀 너머로라도 빼앗긴 풍경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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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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