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포멜로
지인과 연성교환한 글을 모아두었습니다.
유독 맑은 날이었다. 말마따나 ‘푸른 하늘’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머리 위는 구름 하나 없이 청명했고, 그 아래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내리쬐는 햇빛을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양산을 펼쳐 들거나 건물의 그림자를 쫓아 걸었다. 시기상 가을이라 불러야 할 때임에도 한낮은 아직 더웠다. 흰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양산을 손에 든 채 차분히 보도블록 위를 걷는 소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소다 스윗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정오가 지난 지금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마 사흘째, 세상은 그야말로 물에 잠긴 것처럼 어둑하고 습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비는 다음 주까지 지속되어 내일도, 내일모레도 해가 뜰 일은 요원해 보였다. 비가 내려 야외 행동에 제한이 생기는 것은 좋지 않다.
이웃집 스미스 씨의 정원에는 커다란 장미 나무가 자랐다.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의 탐스러운 꽃을 피워내는 넝쿨은 오랜 기간 거기서 지내왔음을 방증하듯 둥치가 작은 나무만 했고 크기는 담장 한쪽 모서리를 전부 뒤엎을 정도였다. 담벼락 안쪽에서 자라난 식물은 담을 넘고 바깥으로 뻗어나가 아래로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렸는데, 잔가지가 많아도 따로 관리 하지 않는
폭풍이 몰아친다. “—자정에는 미국 서부 전역을 허리케인이 휩쓸고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 가정에서는….” “소다, 촛대 찾았어. 양초랑 같은 서랍에 넣어둘게?”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거기에 있었구나?” 식탁 앞에 앉아 한참 가위질 하는 것에 여념이 없던 소다 스윗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쌍둥이가 들고 온 것을 보았다. 언젠가 미리 사 둔, 은색으로
“소다.” 그는 익숙한 어조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다 스윗은, 형용할 수 없는 기시감에 눈을 깜빡였다. 거기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자신의 쌍둥이가 잿빛 양산을 펴 들어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었고 두 사람 사이로 불어온 낮은 바람이 너른 초원에 붉게 돋아난 잔디와 강아지풀 따위를 어루만지다가 흩어졌다. 하늘은 보랏빛이고 태양은 푸르다
쪼그려 앉은 소녀의 앞으로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클로버가 무리 지어 자라 있다. 발치부터 수평선 너머까지 뒤덮은 것이란 오직 클로버 뿐으로, 세 갈래로 난 잎을 가진 들풀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거대한 군락을 이룬 그 모습은 바람이 위를 훑고 지나갈 때면 차라리 소금물 대신 녹색 줄기를 잘라 가득 채운 바다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