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요정
2024년 5월 스윗 쌍둥이 연성교환, 24년 6월 일부 수정함.
이웃집 스미스 씨의 정원에는 커다란 장미 나무가 자랐다.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의 탐스러운 꽃을 피워내는 넝쿨은 오랜 기간 거기서 지내왔음을 방증하듯 둥치가 작은 나무만 했고 크기는 담장 한쪽 모서리를 전부 뒤엎을 정도였다. 담벼락 안쪽에서 자라난 식물은 담을 넘고 바깥으로 뻗어나가 아래로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렸는데, 잔가지가 많아도 따로 관리 하지 않는 것인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봄이 되면 그 거대한 나무에 핀 수백 송이의 꽃송이를 구경할 수 있었다. 어떤 비료를 쓰고,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고목에서 피어난 꽃은 몇 해 키우지 않은 어린 줄기에서 피어난 것보다 싱싱했으며 어른 주먹보다 더 큰 크기를 자랑했다.
집의 전 주인, 제시카 스미스는 장미만큼이나 오래된 고택에서 십 년을 넘게 혼자 지낸 노부인이었다. 고택이라고는 하나 몇 번의 개축을 거친 집은 주변 주택과 비교해도 낡은 태를 내지 않았고, 주인 또한 들어올 때엔 배우자와 함께였으며 이후 남편을 떠나보내고 장성한 자식들이 독립해 떠난 것뿐으로 추수감사절이 되면 홀로 또는 제 가족들과 돌아온 이들로 인해 그 집도 제법 북적이는 사람 소리가 나곤 했다.
그러다 삼 년 전, 그러니까 메리와 소다가 이웃이 되기 일 년 전, 제시카 스미스가 노환으로 저택에서 숨진 뒤 저택은 둘째 아들 제임스의 장자인 로버트 스미스가 물려받게 되었다. 생전 고인이 아직 저택에 기거할 때 가장 많이 방문했으며, 말년에 투병 생활을 할 때에도 군말 없이 내려와 간병한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일은 로버트가 자신의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었으며 고인 또한 생전 그런 손자를 매우 아꼈기 때문에 재산의 분배는 별 잡음 없이 이루어졌다. 물론, 유언장의 최상단에 저택을 그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 명확히 적혀있었음은 원만한 상속의 가장 큰 요인이 되어 주었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로버트는 오컬트 소설 작가로 쾌활하고 친절하나 범인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면모가 있었다. 그는 때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듣거나, 보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곤 했다. 당연하게도, 미국 시골의 마을에 살고 있는 그의 이웃들은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런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잖아요.’ 단순히 보수적이라고는 하기 뭣하고, 일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이 독특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이웃에게 제법 친절하게 굴었다. 오컬트를 인정하지 않고 의학적인 분석으로 다가설지언정, 이 젊지만 수상한 새 주인을 아주 배척하지는 않아도, 구태여 가까이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도 공동 관심사를 논할 때 자연스레 소외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구울보다 두더지를, 은 탄환보다 주에서 새로 허가한 신식 엽총을 흥미로워했다.
그러다 스위트 쌍둥이가 근처로 이사를 왔다. 자신과 같은 것을 볼 줄 아는 소녀와, 같은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소녀가 마을에 들어앉았다. 로버트가 그 둘에게 호의를 내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사람이라면 응당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법이다.
“올해도 장미가 정말 대단하게 피었네요. 작년보다 더 화려한 것 같은데, 아닌가요?”
“장미? 아, 담장에 핀 것 말이지?” 찻잔 세 개와 티팟 하나가 올려진 트레이를 들고 오던 로버트가 아는 체를 했다. “아마 그럴 거야. 내년엔 더 화려할 테고.”
로버트는 가끔 쌍둥이를 티타임에 초대하곤 했는데, 그날도 쌍둥이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산책 겸 식료품을 사러 나가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걷던 중 우연히 만난 이웃의 초대에 응한 참이었다. 초대를 거절하기에, 로버트는 어쩌면 소설 작가보다 베이커리 카페 주인을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화려한 디저트를 잘 구웠다. 쌍둥이는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라면 사족을 쓰지 못했고 말이다. 집 주인이 쾌활하게 웃고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장미 등치를 턱짓해 보였다.
“재작년 가을에 손님이 들어왔거든.”
“손님이요.”
“그래, 수줍음이 좀 많은 손님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 말에 메리 스윗은 온화하게 웃었고, 소다 스윗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홱 고개를 돌려 넝쿨 등치를 바라보았다. 그늘이 드리운 곳엔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 그렇게 해서는 보지 못해. 나도 우연찮게 운이 좋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어떤 손님이길래요?”
“글쎄, 그러게……장미 꿀을 먹고 사는 요정? 모란처럼 화려하지만, 벌새만큼 작지.”
“와, 나도 보고 싶어!”
“그러게, 한 번 보고 싶은걸요.”
“기회가 된다면 말이지.” 스미스는 호기심 많은 청년들을 말리는 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네. 혹시 불편한 건 없는지 물어보고 싶거든.”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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