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교환

폭풍우 몰아치는 밤

2024년 4월 스윗 쌍둥이 연성교환

폭풍이 몰아친다.

“—자정에는 미국 서부 전역을 허리케인이 휩쓸고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 가정에서는….”

“소다, 촛대 찾았어. 양초랑 같은 서랍에 넣어둘게?”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거기에 있었구나?”

식탁 앞에 앉아 한참 가위질 하는 것에 여념이 없던 소다 스윗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쌍둥이가 들고 온 것을 보았다. 언젠가 미리 사 둔, 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지만 사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촛대 네 개는 일이 년쯤의 방치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녹슨 흔적 하나 없이 말끔했다.

“다행이네. 지금이라도 사러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 월마트는 이미 다 털렸을 것 같지만 말이야.”

“그렇긴 해. 뭐가 필요하든 이제 가면 너무 늦지.”

짤막하게 웃은 메리가,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물건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오래전 누군가 공들여 묶은 걸 이제 막 풀어본 것처럼 낡았지만 질긴 가죽끈과 누렇게 바랜 두툼한 종이 꾸러미에 싸여 있었다.

“혹시 이거, 소다 거야? 다락방에서 같이 찾아낸 건데.”

“뭐가?”

재단하던 방풍제와 가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 선 소다 스윗이 메리의 손에 들린 물건을 유심히 살펴본다. 척 보기에도 상당히 낡아 보이는 오브젝트는 일견 사람처럼 보이기도, 물고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둘을 섞은 걸지도 몰랐고…여하간 그것은 몇 겹이나 되는 포장지에 공들여 싸놓은 것 치고서도 굉장히 더러웠다. 가마로 구워낸 것 같은 도자기 인형에 묻은 검댕은 옮겨붙은 것처럼 안쪽 포장지 몇 겹에도 잔뜩 묻어 있었다. 누가 보면 인형이 그 검댕을 온몸으로 내뿜었기라도 한 줄 알았을 것이다. 다만 메리는 구태여 무언가를 더럽힐만한 인물도 아니었거니와 그랬다면 진작 자신에게 해명했을 걸 알았기에, 소다는 손 뻗어 만져보지도 않은 검댕이 제게 달라붙을까 저어하는 것처럼 그냥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처음 보는 물건이야. 메리 건 아니고?”

“그랬다면 네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겠지. 그럼 전 집주인이 놓고 간 물건인가 보다. 이사 오고 나서 다 정리한 줄 알았는데, 어디 숨어 있던 게 이제야 굴러떨어진 모양이야.”

“이사 온 지 사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래서 이게 뭔데?”

“나도 모르겠어. 장식인가? …스미스 씨가 계셨더라면 가져가서 여쭤보는 건데.”

“스미스…옆집 사람? 골동품에 관심이 많나 봐.”

“취미라고 하셨어. 허리케인을 피해서 부모님 집으로 피신한다고 어제 뉴욕으로 떠나셨지만.”

“그런가—아쉽네, 그러면 돌아왔을 때 물어보지 뭐.”

“그래.”

“어쨌든 하던 거나 마저 해야겠다. 방풍제 거의 다 잘랐어, 두 개 남았거든.”

“도와줄까?”

“응, 자른 거 붙여줄 수 있어?”

“어렵지 않지. 이건….” 손에 쥔 것을 잠시 내려보던 메리는 다시 종이로 오브젝트를 잘 감싸 끈으로 묶어, 양초와 촛대를 넣은 서랍에 꾸러미를 집어넣었다. “일단 여기에 둘게.”

“그래.” 그리고 이후로 방재 준비가 바빴기에 그것의 존재는 곧 잊혔다.


늦은 밤.

소다 스윗은 어떠한 징조도 없이 눈을 떴다. 꿈을 꾼 것도 아니고 뒤척인 것도 아니었으나 어쩐지 한 번 깨고 나니 잠이 오질 않았다. 밖으로는 바람이 세게 불어 창문을 뒤흔들고 있었다. 저 소리 때문에 깬 걸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그가 유튜브나 잠시 보다 잘까 싶어 협탁에 놓아둔 휴대폰을 가지고 오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문득 아래층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리가 이 시간까지 깨어있을 리는 없는데. 메리도 바람 소리에 깬 걸까?’

의아해하던 소다 스윗은 망설임 없이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계단까지 가는 중간에 메리의 방이 있지만 문 너머에선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푹 자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아래층에 있거나. 소다는 구태여 방문을 열어 안을 확인해 보는 대신 마저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유리창이 덜컥인다. 강풍이 분다. 허리케인이 가까운 것 같았다. 우리도 도로시처럼 지하실에 숨어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긴 도로시는 그러고서도 집과 함께 에메랄드 시티까지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실없는 생각을 하던 소다는 거실 불을 켜고 주변을 돌아봤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도둑이라도 든 건가 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쥐가 낸 소리라기엔 다소 큰 것 같았는데. 고개를 갸웃, 기울이던 소다는 소파 아래나 커튼 뒤를 더 뒤적여보는 대신 부엌으로 향했다. 달칵, 스위치를 누르지만, 빛은 들어오지 않는다. 몇 번 다시 스위치를 눌러 보던 소다는 안쪽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냉장고 안에서 약간의 찬기만을 가진 채 서서히 식어가고 있는 식재료들을 잠시 지켜보던 그는 조심스레 문을 도로 닫았다. 정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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