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 in the air

Once upon a december - Anastasia

▶PLAY

Once upon a december

Far away, Long ago

Glowing dim as an ember

Things my heart used to know



“프롬은 턱시도가 전부가 아니란다.”

때는 5월 중순이었다.


“랜달, 춤은 출 줄 아니?”


   이곳은 사시사철 어두운 곳이다. 대낮의 햇살마저 검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세계에서 처음 알았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도 여름이 완연하게 찾아오는 모양이다. 몸을 숙여 걸레질을 하던 미티는 그리 생각했다. 언제 떨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들러붙은 쨈이 지워지질 않아 같은 곳을 벌써 몇 분째 닦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부산스러운 소리. 지붕을 뚫을 듯한 높은 콧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이 집 도련님께서는 춤을 전혀 못 추는 듯 싶다. 위에서 쿵쾅거릴 때마다 낮잠을 자던 니욘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고, 춤은커녕 구르고 넘어지고 난리를 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사람 흉내 내는 것들이 교양 떤다 한들 얼마나 갖췄겠냐 싶다.

그건 나도 마찬가진가. 

천장에서 먼지 꽃이 하늘거리며 내려왔다. 

미티는 고무 양동이에서 걸레를 꺼내 물기를 쭉 짜냈다.

   그때 벌컥, 문이 세차게 열렸다. 나무 바닥과 구두 굽이 닿는 둔탁한 발걸음이 규칙적으로 떨어진다. 등을 돌리지 않아도 주인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는 더욱 열심히 내 일에 열중했다. 부엌 바닥에 거품 세제를 뿌려 젖은 헝겊을 덮었다. 아직도 굳은 쨈(어쩌면 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 안 떨어져서 손톱을 세워서 긁어내는데,

“미티.”

주인님이다.

내가 뭔가 또 잘못한걸까?

“손 좀 빌리자꾸나.”

내 팔을 낚아챘다.

“지금은 고양이 발이라도 빌려야하니…♡”

소파에 앉은 니옌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중심도 잡기 전 주인님이 앞서 걸어갔고 나는 질질 끌려갔다. 이런 구도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다. 머리를 감싸고 싶어도 팔이 자유롭지 않았고, 계단 모서리에 치맛자락이 긁혀 올이 풀렸다. 제발, 이번에는 무슨─, 영문도 모른 채 도축장에 끌려가는 돼지마냥 딸려갔다. 쿵, 쿵, 쿵. 이게 내 심장소리인지 발소리인지 판단도 내리지 못했는데 계단을 다 올랐고, 팔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나의 춤 상대가 되어주겠니?”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주인님은

정중히 무릎을 꿇고 나에게 손을 건네고 있었다.



Someone holds me safe and warm

Horses prance through a silver storm

Figures dancing gracefully

Across my memory



   그날 이후로도 미티는 종종 춤을 췄다. 춤 연습에 루터가 미티를 부를 때는 물론, 그녀 혼자서도 청소를 하다, 식사를 준비하다, 하물며 잠을 청하기 전에도 그리했다. 불이 모두 꺼진 새까만 방에서 손은 새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갔고, 발 걸음을 뗄 때마다 치맛자락이 깃털처럼 내려앉았다.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날을 떠올리면 어느새 몸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성에게 닿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단다.

주인님은 그리 말하며 손을 부드럽게 포갰다. 

─남자의 오른손을 여성 위로.

상대의 어깨, 허리, 견갑골을 감싸 안으렴.

살을 칼로 가르는 것보다 아찔했던 감촉.

   루터 폰 아이보리, 나의 주인님은 손끝에서 발끝까지 흐르는 리듬에 몸을 유연히 맞추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몸짓으로, 오히려 내 근육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 올라 문제였지. 그때마다 주인님은 야생 삵을 달래듯이 어루만지며 내 몸을 교정하셨다. 

   루터의 시선은 랜달에 머물러 있었고 대화 역시 그와 하고 있었기에, 미티는 티 없이 얼굴 가죽이 붙은 턱의 가장자리나 목빗근을 따라 곧게 뻗은 선만이 보였다. 루터에게 있어 미티의 존재는 오직 춤추는 것에 허락되었다. 강렬한 눈빛과 창백한 얼굴. 그를 보고 있자니 주변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간헐적으로 찾아왔고, 참을 수 없는 숨이 가삐 오르면 눈을 감고 몸을 맡기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미티는 또 다시 춤을 추고 있었다. 

곤란했다. 

춤을 춘 만큼 청소도 빨래도 못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것을 반복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건 교육 받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만들어졌다. 미티는 자신의 두 뺨을 세차게 올려 붙였다. 배운게 있기 때문에 몸이 움직였을 뿐이다. 그것 뿐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랜달. 여성을 들어 올릴 땐

골반을 잡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단다.

─보렴, 이곳이 몸의 중심이잖니.

……실로 곤란했다.

   결국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기 위해 모두가 나간 집에 홀로 남았다. 카펫을 치우고 먼지를 쓸어 담았다. 바닥엔 의자를 끌어 생긴건지 아니면 도끼에 난도질 난 건지 알 수 없는 흠집이 있었다. 단단한 빨래비누를 뭉게듯이 힘을 주어 틈새 사이를 꽉 채웠다. 이 집은 하루라도 청소를 빼먹으면 피 눌린 냄새와 고기 썩는 지린내가 났다. 사각사각, 청소 솔로 찰흙처럼 새하얗게 일어난 아래를 쓸자 거품이 방울방울 올라왔다. 

   오늘은 묵은 때를 전부 지워낼 것이다. 그리고 모두 끝나면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지. 미티는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뜨거운 물에 과산화수소를 넣어 거품을 내야 얼룩이 잘 지워졌다. 물청소로 미끌거리는 마루를 마른 천으로 닦고 쓰레기도 주워 봉투에 넣었다. 청소에 집중하자. 집에 남은 모든 얼룩을 지우자. 몸에 남은 기억도 전부.

“감정도 그렇게 지울거니, 미티.”

하?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루터가 벽에 기대어있다.

당신이 왜 여기에?

“내 집이니 당연하잖니.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

   그리 말하며 그가 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오우, 벌써 말끔하게 치웠구나. 검지 손가락으로 청소한 곳을 한번 훑더니 손끝을 후 불어냈다. 정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말이야. 굉장하구나.

   루터는 대견스럽다는 듯이 미티의 머리를 쓰담았다. 커다란 손이 얼굴을 반쯤 가리는 검은 장막을 지나 가르마 방향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다녔다. 불은 하나만 켰기에 방 안은 밝지 않았지만 미티는 눈살을 찌푸렸다. 매끈한 손끝과 뭉툭한 손톱, 반지의 차가운 감촉이 얼굴에 덮쳐 들어온다.

그리고 그에게선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웃어보렴. 널 잡아먹으려 온 게 아니란다. 루터가 쓰담는 손을 거두고 미티를 일으켜 세우듯 어깨를 잡았다. 혼자 있기에 걱정되어서 돌아왔을 뿐. 그녀 몸에 묻은 것들을 툭툭 털어주며 (사실 대부분 옷에 스며들어서 의미는 없었다) 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미티, 너는 살아가는 요령이 없잖니. 

루터가 웃었다. 

그 웃음은 캣맨들을 향한 것과 동일했다.

심장이 욱씬거렸다. 

물을 올려둔 주전자가 비명을 질러댄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할 것이 하나 있지.”

   일 순간 루터는 미티의 왼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팔을 뒤로 돌려 루터의 얼굴을 감싸게 했다. 미티는 숨조차 뱉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 한순간 일어난 상황에 미티는 그에 맞춰야만 했다. 억지로 움직이면 팔이 빠지는 정도가 아닌 완전히 잘못된 각도로 꺾일 것이다. 아니, 그는 원초부터 혼돈 그 자체였다. 인간의 범주에서 이해할 수 없는 괴물.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루터는 이미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감히.

Versuchst du mich zu vergessen.

뼈에 새겨진 목소리.

신경을 타고 뇌를 지배한다.

그 한 마디 말로,

그녀의 저항은 끝이 났다.

   이 시각 달은 하늘 가장 높이 떠있었고 숲의 그림자가 짧아졌다. 대신 더욱 짙은 어둠으로 안내했다. 검은 숲엔 검은 집이 있고 검은 괴물이 살고 있다. 그들은 어떤 말도 교환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과 숨소리, 맞잡은 손의 온도와 떨림을 나눌 뿐이었다. 

강압적이진 않았다.

이제 그녀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서서히 발을 맞춰갔다. 바람이 부드럽게 들어와 서로의 머리카락이 귓가를 스치고, 그 사이로 낮게 울리는 귀뚜라미 울음이 들려왔다. 미티의 손은 루터의 뺨에 고정되어있었고, 루터의 손은 피아노를 쓸 듯 그녀의 팔에서부터 허리까지 미끄러졌다.

오렌지 빛의 아늑한 조명이 얼룩진 벽을 비추고 고요한 환희를 불러온다. 청소를 한 마루바닥은 이따금 빛을 받아 호수의 윤슬처럼 반짝였다. 

Lassen Sie Ihre Hände nicht los.

   미티가 그리 내뱉곤 루터에게서 뛰어올랐다. 드로 앤 캐치(Throw&Catch). 이 동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손을 놓치지 않는 것으로, 한 손만으로도 부족해 두 손으로 여성을 감싸야만 한다. 루터는 나머지 눈도 전부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중에서 머리카락이 우아한 원을 그린다. 그리고 품으로 다시 떨어지는 사랑스러운 것을 안았다. 

창밖에선 그날처럼 먼지꽃이 떨어졌다. 

검게 물든 나와 달리 밖은 새하얬다.

   공기는 서늘하고 신선해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밤의 향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루터의 손길은 어떤 때보다 뜨거웠고, 미티의 눈동자는 어떤 때보다 청명했다. 바닥에 떨어진 전등 빛에는 어느새 달빛이 스며들어 은은하게 넘실거렸다. 심야의 고요함 속에서 귓가에 달짝지근한 재즈가 태엽을 감는다. 아아, 그날 들었던 노래다. 그게 벌써 아주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은 시간을 잊은 채 서로를 품에 안았다. 

밤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흘러가고 있었다.

타다 남은 장작불처럼 흐릿하게

어떤 기억이 타올랐다.

내 마음이 기억하고 있던 것들.

내가 그토록 기억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누군가가———

“너 뭐하니?”

그 순간 노래가 멎었다.

“지금 춤춰?”

눈 앞엔 피히테가 있었다.

“아 ?”

그리고 피 범벅이 된 방도.

   찢어진 커튼 사이로 눈보라가 들어왔다. 거실의 가구들은 제자리를 벗어나 뒤집히거나 쓰러져 있었다. 소파는 한쪽 다리가 부러져 기울어져 있었고, TV는 바닥에 엎어져 금이 가 있었다. 바닥에는 유리창과 액자에서 나온 깨진 조각들이 달빛을 받아 날카로운 빛을 냈다. 그 사이로 붉은 묵주 알들이 나뒹굴었고 십자가는 부러진지 오래였다.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온 집이 그러했다. 

   피가 흥건한 바닥에서 꿉꿉한 습기가 퍼져나왔다. 몇번을 휘둘렀는지 날이 전부 나간 소방도끼 하나와 파리가 윙윙거리는 거대한 쓰레기 봉투들. 그것마저 부족했는지 다 담지 못한 내장이 바닥에 아무렇게 떨어져있었다. 벽에는 피가 스며들어 얼룩이 져 있었고, 가구와 카펫 뿐만 아니라 내 옷에도 흠뻑 적셔있었다. 아니, 그 잔해들은 내 몸까지 옮겨붙어 문둥병같이 퍼져나갔다. 

비명을 질렀다. 

과산화수소를 넣은 끓인 물을 피부에 붓고

수세미로 미친듯이 긁어냈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비비안 디트리히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것을 반복하는 기질이 있었다. 나는 또 춤을—, 그건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니 잊어야한다.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문드러지고 있었던 걸까. 잊으면 안 되는데. 내 심장에서 나는 썩은 내였다.

———미티,

피히테가 웃었다.

아니, 내가 웃었다.

너는 살아가는 요령이 없잖니. 

아니, 

아니다.

   미티는 부엌으로 가 가스 불을 잠갔다. 오늘은 묵은 때를 전부 지워낼 것이다. 새로 끓은 물을 가져와 양동이에 담았다. 그리고 모두 끝나면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지. 이 집은 하루라도 청소를 빼먹으면 피 눌린 냄새와 고기 썩는 지린내가 났다. 질척거리는 음식물 쓰레기도 더 상하기 전에 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하나부터 다시 닦기 시작했다. 바닥엔 의자를 끌어 생긴건지 아니면 도끼에 난도질 난 건지 알 수 없는 흠집이 있었다. 솔로 계속 닦으니 더러운 자국이 점점 흐려졌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지워지지 않은 부분은 칼로 살짝 들어내면 그만이었다. 

집에 남은 모든 얼룩을 지우자. 

몸에 남은 기억도

감정도 전부.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