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교환

Dreamcore

2024년 3월 스윗 쌍둥이 연성교환, 중간에 애매하게 끊깁니다.

쪼그려 앉은 소녀의 앞으로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클로버가 무리 지어 자라 있다. 발치부터 수평선 너머까지 뒤덮은 것이란 오직 클로버 뿐으로, 세 갈래로 난 잎을 가진 들풀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거대한 군락을 이룬 그 모습은 바람이 위를 훑고 지나갈 때면 차라리 소금물 대신 녹색 줄기를 잘라 가득 채운 바다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답지 않게도 소다 스윗은, 여태껏 경중을 가리지 않고 공사다망한 일을 겪어왔을지언정 무력하게 털썩 주저앉아 우는 대신 씩씩하게 일어설 줄 알았던 소녀는 지금 발목보다도 낮게 자란 클로버 숲 앞에서 여느 때에도 느끼지 못한 갈 곳 잃은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무력함에 가까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이런 상황은.

그와 똑같은 하늘색 머리카락에 똑 닮은 빛깔의 분홍 눈동자를 지닌 흰 양산을 쓴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구부정하게 구겨져선 자신을 등지고 쪼그려 앉은 얼굴 닮은 이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뒷모습만으로 온갖 불만을 표출하며 뒤통수로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고 있던 소다 스윗의 댓 발쯤 비죽 튀어나온 입에서 불평이 흘러나왔다.

“이런 곳에서 그걸 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그래도 해야지, 그야 네가 하겠다고 한 일인걸.”

그 말에 소다는 고개를 홱 돌려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제법 매섭게 쏘아보는 시선에도 메리 스윗은, 아니, 그 외형을 닮은 무언가는 눈꼬리를 휘며 웃어 보였다.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 소다는 도끼눈으로 상대를 토막 내려 드는 대신 다시 고갤 푹 숙이며 발치에 자란 클로버를 노려보았다. 알 만하다는 듯 메리, 를 닮은 자가 웃었다.

“그래도 무리하지 말렴.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까,”

아니 그건 네게나 해당되는 소리고요. 나는 지금 한시가 급해 죽겠다니까요. 소다는 속으로 불평을 삼켰다. 제아무리 소다 스윗이 겁 없이 쉽게 상대에게 들이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 저런 걸 상대로 객기를 부리는 것이 썩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는 지침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에 간 거야, 메리! 이런 일이 생겼을 땐 나랑 같이 있기로 했잖아! 게다가 여긴, 어딜 봐도 이계다. 스스로는 이계와 별다른 접점이 없는 소다 스윗이라 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은 이질적이고, 낯설었다. 이런 곳에서 뿔뿔이 흩어져 혼자 헤매는 건 위험한 일이다……아마 자신보다도 자기 쌍둥이에게 더 위험하겠지. 괜히 목이 타는 것 같아, 고함을 치거나 비명을 지르는 대신 소다 스윗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여기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동안 메리가 어떤 일에 휘말릴지 모른다. 그럼, 당장 시작하기라도 해야 해! 그게 이 몇 헥타르나 될지 모르는 클로버밭에서 단 하나의 네잎클로버를 찾는 일이라도 말이지! 마음을 정한 소다 스윗이 팔을 걷어붙이며 클로버 바다에 뛰어들었다. 바람결에, 뒤에서 웃는 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찾냐고!”

초원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비명에, 메리를 닮은 소녀는 이번에야말로 참지 않고 크게 소리 내 깔깔 웃어젖혔다. 그 소리에 소다 스윗이 냉큼 고개를 치켜들어 소리가 난 쪽을 쏘아보았지만, 그 뒤로도 조금 더 웃던 메리?가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꼴을 보고 길길이 날뛰는 건 다시 소다의 몫이었다.

“정말 필요한 거면 너도 와서 도와! 당장!”

“곤란한걸. 그건 계약 내용에 없었잖아. 봐, 너는 날 위해 여기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아주기로 했잖니. 대신 난 네게 네 쌍둥이가 있는 곳을 알려주기로 했고.”

“하지만, 하지만……이익, 너도 급한 건 마찬가지 아니야? 그렇게 간절하게 여길 바라보고 있었으면서!”

“그것도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없다는 듯, 조금은 체념한 것 같은 태도로 쌍둥이를 닮은 이가 미소 지었다. 그럼에도 그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목석처럼 자리에 서 있었다. 꼬챙이에 꿰인 물고기가 천천히 말라가는 것처럼, 이미 양발은 대리석마냥 희게 굳어버린 것처럼, 고요하게. “나는 못 해. 그게 계약이거든.”

“계약? 너도 누군가와 계약했어? 대체 언제? 누구랑 했는데?” 어이없다는 듯한 소다의 목소리에 그것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말할 수 없어. 너도 알다시피 여긴 찾아온 자들에게 불친절하잖아. 그게 의도 없는 방문이었대도 말이지.”

“…마치 너도 여기에 떨어진 것처럼 말하네.”

이제 소다 스윗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 그것은 메리 스윗과 똑같은 얼굴로 가증스럽게 웃어 보이며 ‘피차일반 원치 않게 길 잃은 사인데 서로 도와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긴 했지만, 이계에서 메리 외의 인간을 만나 본 적 없었던 —그마저도 같이 떨어진 것이었고 말이다.— 소다 스윗은 당연하게도 저것이 사람인 척 꾸며내고 있다며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상대는 정확히 그 부분을 지적했다.

“믿지 않았던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 나도 여기에 떨어진 신세라고. 뭐……너는 네 쌍둥이와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좀 오래됐거든. 그래서 급한 게 아니냐 묻는다면, 맞아. 급해. 여기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으니까.”

“…그럼 큰일난 거 아냐? 메리는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된댔는데.”

“음, 그러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태평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이미 이 곳에게 무언가를 빼앗겨 결여되어버리고 만 것처럼. “하지만 괜찮아. 시간은 많고, 그 애도 날 기다려주고 있을 테니까. 내가 여기서 그 오랜 시간 동안 그 애가 날 찾아와주길 기다린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대신 네가 날 찾아왔잖아.”

솔직히 말해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소다 스윗은 ‘이거 큰일났다.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렸다가 제대로 엮여 휘말려버리고 말았어.’라고 생각했으나, 속내를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네잎클로버를 찾는 척 천천히 고갤 숙였다. 다행히 상대는 이제 오래 전 잃어버렸다는 제 가족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는 건지 이쪽을 신경 쓰진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사실 처음부터 이쪽엔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짧은 시간에도 상대는 이따금 소다가 살아 움직이고 떠들기도 하는 배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으니 말이다. 그 여상한 태도에 소다는 그를 내버려둔 채 슬쩍 이곳을 떠나버릴 생각도 잠깐 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이 너른 평원에서 도대체 어디로 가야 메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계에게 거의 모든 것을 빼앗긴 것처럼 굴면서도 제 가족을 찾는 그가 내심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오리지널
추가태그
#연성교환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