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문어 괴물

할로윈

온갖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날이 다가왔다. 정확히는 괴물의 탈을 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날이다.

하지만 진짜로 괴물이 섞여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실감나는 눈알과 핏줄 분장, 진짜로 판타지 세계에서 사온것같은 복장과 무기 모형, 동네 마켓에서 파는 싸구려 코스튬, 하얀 천에 구멍을 내서 만든 간단한 보자기 유령 복장….

메리는 소다와 함께 괴물-로 분장한 사람-이 득실거리는 거리를 걸었다. 말 그대로 득실거렸다. 평소엔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모두 놀러 나온 것처럼 많았다. 온갖 건물에 장식된 각양각색의 잭 오 랜턴과 할로윈 가랜드가 풍경에 뒤섞여서 거리가 더욱 복잡해보였다. 그 속에서 간간히 개인기를 뽐내는 괴물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곤 했다.

“메리메리, 저기 좀 봐. 저런 곳에서 컨셉을 잡는 사람도 있어.”

간단한 마술을 뽐내던 웨어울프를 구경하다 말고 소다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메리는 골목길 한가운데를 막듯이 선 새카만 괴물을 보았다. 키가 매우 큰 걸 보아하니 스틸트를 착용하고 매우 긴 수제 코스튬복을 입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나 팔의 구분이 없이 일자로 쭉 뻗은 몸체는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납작하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문어 소세지처럼 바깥쪽을 향해 말렸다. 워낙 좁은 골목길이고 고개를 꺾어야 전부 올려다볼 수 있을만큼 커서 다른 사람들은 아예 막힌 벽이려니 생각하고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게다가 볼 게 넘쳐나는데 굳이 허름한 골목길에 시선을 줄 사람은 이곳엔 거의 없었다.

“저걸 발견하다니 역시 소다는 눈썰미가 좋아. 그런데 진짜 신기한 컨셉이네, 보통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서있을텐데.”

“그러게 말이야. 게다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도 꼼짝도 안 하고 있어.”

메리는 신기하게 생각했다. 햇빛이 닿지 않아도 매끄럽게 윤이 나는걸 보면 저 코스튬에 돈을 많이 쓴 게 분명한데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걸 피하다니, 생김새 자체는 심플하지만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굴곡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일자 라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지는 코스튬을 입고도 sns 스타가 될 생각을 안하다니, 수줍음이 많나봐! 온갖 추측을 하다가 소다의 관심이 귀여운 할로윈 캔디로 옮겨가서 길 건너편으로 이동해야 하게 된 메리는 추측을 멈추고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초록불이 꺼지고 차가 다시 움직이고 스윗 쌍둥이가 노점에 예쁘게 전시된 간식들을 구경하는 와중에도 골목길 안에 서있는 괴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풍선이 흔들리고 사람과 괴물의 머리카락이 흩날렸지만 새카만 괴물은 미동도 없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지면서 노을이 지는 시간이 되었다. 주머니를 사탕으로 채우고 그만큼 간식을 나눠준 메리와 소다는 갑갑한 코스튬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쓰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저녁으로 먹을 타코를 샀다. 이제 한동안 사탕이나 초콜릿을 사지 않아도 된다고 즐겁게 재잘거리던 메리는 무심코 좁은 골목길을 보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 괴물을 보았다. 지금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지 기억 속 모습과 다른게 없었다. 할로윈을 저렇게 홀로 보내다니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메리는 저 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려 인기스타로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허락을 받지 않고 그러는 예의없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저 사람은 그런걸 원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갔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밝게 빛나던 노을이 점점 어두워지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변하자 좁은 골목길이 환해졌다.

정확히는 그 길을 가로막고 있던 새카만 괴물이 바닥에 늘어진 길고 납작한 촉수인지 다리인지 모를 것을 벽에 붙여서 건물 위로 올라간 것이다.

좁은 골목길 안에는 평범한 철제 쓰레기통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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