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2024년 7(8)월 스윗 쌍둥이 연성교환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소다 스윗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정오가 지난 지금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마 사흘째, 세상은 그야말로 물에 잠긴 것처럼 어둑하고 습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비는 다음 주까지 지속되어 내일도, 내일모레도 해가 뜰 일은 요원해 보였다.
비가 내려 야외 행동에 제한이 생기는 것은 좋지 않다. 이번 장마 때문에 소다는 일정 세 개를 취소해야만 했다. 두 개는 소다에게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약속이었으므로 선뜻 전화를 걸어 일정을 바꾸었지만, 메리와 센트럴 파크에 놀러 가기로 한 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퍼붓는 비를 내다보았을 때만큼은 그도 나라 잃은 사람처럼 숙연해지고 말았다. 얼마나 망연자실했는지 메리가 비 그친 뒤에 가서 핫도그를 세 개 사주겠다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소다는 그 주 내내 우울해했을 것이다.
그래도 창가 가까이 앉아 빗소리를 듣는 것은 좋다. 비를 이유로 이런저런 약속을 취소했다지만, 소다 스윗은 비 내리는 날을 제법 좋아했으며 장화를 신고 우산을 챙겨 밖에 나가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다만 보편적인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나갈래, 집에 있을래? 하면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뿐이다. 에어컨 잘 나오는 집을 두고 굳이 습도 100%의 기후에 자신을 내던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적당한 소득이 있는 중산층 미국인으로 나고 자라 나태한 면이 있는 소다 스윗은 메리가 정한 규칙에 따라 분리수거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왔지만, 까짓것 지구가 좀 더 큰일 나건 말건 당장의 에어컨 바람을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어디 가서 입 밖에 내지는 않고 생각만 그렇게 했다. 남부 어느 지역의 아스팔트가 죄다 녹아버렸다는 뉴스를 보고 ‘아, 안 되겠다. 이번 여름엔 기필코 에어컨과 떨어지지 말자!’라고 다짐한 자신과는 달리, 그의 쌍둥이 자매는 기후 위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타고나길 성실하고 적극적인 메리 스윗은 기어코 이 비를 뚫고 시내에 나간 참이었다. 그것도 버스를 타고서. 리유저블인지 용기 없는 생필품인지, 하여간 지구에 좋은 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조금 불편하게 써야 하는 물건들을 괜찮은 가격에 파는 마켓이 열렸다는 것이다. 마침 샴푸가 똑 떨어졌고, 빵도 다 먹었다. 어쩌면 냉동실에 쟁여둘 만한 괜찮은 비건 레토르트 식품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메리는 참으로 들뜬 낯이었다.
이 비에 야외 행사라니, 주최자가 폭염을 견디지 못해 미쳐버리고 만 게 아니느냐는 눈으로 바라보던 소다 스윗도 행사를 학교 강당 안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단 이야기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제 쌍둥이를 따라나설 결심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말마따나 요즘엔 비가 정말, 정말 많이 내렸고, 소다는 새 신발을 장맛비로 적시고 싶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 비건이며 재활용 따위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행할 수 있을지 떠드는 것에 흥미가 없었다.
소다의 성격을 잘 아는 메리도 한 번 떠보듯 말하고 거절의 의사가 담긴 답을 들은 뒤로는 더 이상 동행을 권유하지 않았다. 대신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해서, 귀가가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것조차 소다의 흥미를 끌진 못했으므로 그는 자신의 쌍둥이가 누구와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는지 묻는 대신 ‘그럼 난 냉동 피자나 데워먹어야겠다’ 라고, 답했을 뿐이다.
졸음을 불러일으키는, 빗방울이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는 조금 멀게 들렸고, 에어컨을 틀어뒀으니, 온도는 높지 않고 축축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기분 좋을 정도로 시원했다. 컵 안에 담겨 있던 콜라는 바닥난 지 오래고 냉동 피자는 토핑이 부족했지만, 끼니를 떼우기에 나쁘지 않았다. 테이블 위를 손톱으로 무료하게 톡, 톡 두드리던 소다는 문득 누군가 현관문을 같은 박자로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누구지? 메리가 벌써 돌아왔을 리는 없는데. 의아해하던 소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실을 가로질러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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