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ßball to Football
Yellow to Blue, Illuminated
사우스켄싱턴에는 마법사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막 독일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트레슈 가족의 막내 루크에게는 재앙과도 다름없었다. 그에게 집 바깥은 -분명 보기엔 평범한 런던 거리임에도- 온통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은 미지의 세계였으며, 동시에 허락 없이 함부로 나가거나 행동하면 안 될 것 같은 아주 위험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루크 트레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창 너머로 머글의 런던을 구경하거나, 용기를 내 집 근처나 조금 어슬렁거리며 마법의 ㅁ도 꺼내지 않고 꼭 염탐꾼이라도 된 듯 호기심의 눈빛을 빛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가족이 독일에서 도망치듯 런던으로 떠나온 이유 중에(물론 가장 주된 이유는 부모님의 사업이라고 해도) 제 형인 라스가 머글에게 마법을 보여줘서라는 걸 잊지 않을 만큼은 똑똑했으므로.
아이는 호그와트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루하루가 지루함 이상으로 따분했다. 궁금한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 어떤 것도 해소할 수 없다는 점에 루크는 온 몸을 근질거렸다.
아이의 눈에 제 또래의 이웃집 머글 노아 로즈Noah Rhodes는 늘 즐거워 보였다. 일곱 살의 루크에게 그것은 인생 최대의 불만이었다. 노아 로즈가 밉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머글 꼬맹이는 누릴 수 있는 것을 그는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 아무리 생각해도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 애는 검정과 하양이 점점이 섞인 공을 늘 들고 다녔다. ‘스스로 날아다니지도 못할 게 분명한 공이 뭐 그렇게 좋다고 저렇게 끼고 다니지?’ 그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호기심은 이윽고 루크 트레슈를 잡아먹었다. 그는 기어코 누구도 그에게 씌우지 않은 금기를 깨고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게 뭐야?”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먼저 인사하고, 날씨도 묻고, 네 소개를 한 다음에 용건을 말하는 거야.’ 하며 들었던 잔소리는 머릿속에 맴도는 아주 짤막하고 강렬한 질문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사라진 뒤였다.
그날 루크는 노아에게서 공 차는 법을 배웠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배워야 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마법이 걸리지 않은 공을 오로지 발끝으로 컨트롤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노아 로즈에게 즐거움이 옮은 걸까? 그런 의심도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루크는 노아가 그런 능력은 없는 머글이란 걸 알았으므로 애써 잊었다.
일곱 살 노아가 여덟 살이 되도록 노아와 어울리며 배운 건 단순히 공 차는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 앤 엄청나게 대단한 팀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 애와의 대화에서, 독일에서 푸스발(Fußball)이라고 불리던 게 잉글랜드에선 풋볼(Football)이라는 것 정도를 눈치챌 수도 있었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루크는 제 미들네임을 생각했다. 루크 칼-하인츠 트레슈. 칼-하인츠는 증조부의 이름이었으나, 그는 그 밤에는 이름에서 오히려 다른 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른스베르크에서 받았던 선물을. 루크는 손을 침대 아래로 뻗어 제 보물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잡동사니를 뒤적거린 그는 곧 카드 한 장을 꺼내 손에 쥐었다. 노란 옷을 입은 남자의 그림 위에 ‘카를하인츠 리들레[ 카를하인츠 리들레. 독일의 전 축구선수이자 감독.]’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고, 마법사들의 수집 카드처럼 그림이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종이는 창문 넘어 들이친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루크의 미들네임이 ‘칼-하인츠’라는 걸 알게 된 이웃집 아저씨는 환히 웃으며 루크에게 이 카드를 건네주었었다. 남자는 이제 그 선수는 더는 노란 옷을 입고 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노란 옷을 입고 잔디 위를 뛰던 시절이 여전히 종종 생각난다고. 그가 팀에게 무슨 주인의 접시[ 마이스터샬레. Meisterschale. 독일 축구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의 우승 트로피. 그러나 루크는 배경 지식이 없어 의미 그대로 받아들였다.]인가 하는 걸 두 번이나 안겨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루크는 늘 궁금했다. 날지 못해도, 단지 열정적으로 달리고 맨몸으로 부딪치며 공을 차는 일이 그렇게나 즐거울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나 누군가를 열광하게 할 수 있나? 그는 아직도 궁금했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다음, 노랑이 파랑이 된 다음에도.
저번에 노아가 함께 경기를 보러 가자고 했었는데, 아마 허락해주지 않으실 거라며 거절했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루크는 이불 속에서 오기를 품으며 잠들었다. 언젠가 꼭 가고 말겠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카드를 선물해 준 아저씨의 말처럼 잔디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뛸 수 있는지가 궁금했기에.
당연하게도, 그 불타던 오기는 시간이 지난다고 꺼지지 않는다. 아홉 살의 루크는 이번 경기는 정말 재밌을 텐데! 하는 노아의 말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이번엔 경기를 보러 가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열두 살 많은 누나 이본은 그의 형인 라스에게라면 몰라도 유독 루크에겐 온화한 편이었으므로. 또 루크는 그걸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영악한 어린이였으므로.
“갈래.”
“안 돼.”
“갈 거야!”
“왜 이렇게 나에게 어려운 시련을 주니, 우리 귀염둥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응?”
“유치한 머글 스포츠가 뭐 얼마나 재밌으려고?”
“…….”
그 이후로 루크는 아주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버려 두면 몇 주를 제 누나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알력다툼에서 결국 이기는 것은 더 애같이 구는 사람이다. 결국에 이본이 선택한 건 어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 바로 뇌물이었다.
“이거 봐, 루크. 내가 아른스베르크까지 가서 사 온,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토르테야!”
루크는 결국 토르테의 유혹에 못 이겨 쪼르르 달려왔다. 이본은 ―그 수단이 순간이동이긴 했어도― 멀리까지 다녀온 보람이 있다고 느꼈지만,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녀의 막냇동생은 그렇게 구워삶기 쉬운 어린이가 아닌 탓이었다.
“안 데려가 주면, 누나가 머글 남자친구 만나고 있는 거 이를 거야.”
토르테를 야무지게 해치운 루크가, 케이크를 해치운 만큼이나 당차게 말했다. 이본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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