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글 타입〉 샘플

「일곱 달의 감시자」로부터

구어체 | 마기카로기아 | 자캐

약 3600자

자신의 기원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어떤 마법사는 최초의 영화로부터 태어났고, 어떤 금서는 괴담으로부터 태어났고, 어떤 방문자는 유구한 신화로부터 태어났죠. 그렇다면 저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어머니께서는 유독 반짝이는 일곱 신성을 따다 일곱의 화신을 만드셨어요. 그리고 인간으로, 이종족으로, 한 권의 책으로, 고립된 이경으로 우리를 보내셨죠. 우리의 고향은 모두 현대 인계가 아는 우주와는 다른 이경이자 은하이고, 어머니께서 목숨을 걸고 불씨를 훔쳐 만든 하나의 외행성이에요.

우리의 사명은 모두 하나의 달로서 세계를 감시하는 것. 저의 존재는 곧 어머니이신 셀루네이며 여섯 자매들, 그리고 만물을 비추는 달이죠. 하지만 이 세계를 살아가다 보면 저 또한 인간과 다름없이 느껴져서, 가끔 이런 의문이 들곤 해요.

저 샐리는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죠? 저는 왜 마법사로 세계에 현현했나요?

어머니께서 제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요?

저의 탐구는 존재의 근원을 향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어요. 마법의 시발점이 하나의 불꽃이듯 제 안에는 탐구심이라는 불꽃이 불타고 있었던 거예요.

어느 날 저는 스승에게 물었어요. 한창 중간고사 무렵이었고, 조교인 저는 자연히 채점을 맡았죠. 저는 교수실 책상에 앉아 계신 스승의 앞에 종이 뭉치를 턱 올려두며 말했어요.

“교수님! 왜 꼭 찻잔받침을 그렇게 쓰시는 거예요?”

스승은 찻잔받침에 차를 따라 마시는 습관이 있어요. 꼭 새끼손가락을 세우고 찻잔을 든 다음 조심스레 찻잔받침에 부어 마시는데, 그건 임시 신분으로 재직 중인 인계에서뿐만 아니라 학원에서도 유효했어요. 덕분에 여기서나 저기서나 조교 신세인 저는 매번 찻잔 아래를 신경 써서 닦아야 했답니다.

“습관에 이유가 있나?”

“교수님처럼 마시는 사람은 처음 본다구요.”

교수님은 연로한 얼굴에 설핏 웃음기를 머금고, 잠시 생각에 잠긴 건지 창밖에 시선을 뒀다가 고개를 가만히 저었어요.

“그렇다면 누군가가 내게 남긴 자취겠지.”

“앗….”

“너도 참, 졸업을 앞두니 말이 많아지는구나. 특별히 과제라도 내주랴?”

“에엑? 어휴, 싫어요! 저는 주도적인 학습을 지향한다구요.”

‘누군가가 남긴 자취’. 저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요. 이 세계와 운명을 같이 했을 오래된 마법사가 그간 두었던 수많은 제자 중 이제 몇십 년도 채 살지 않은 저를 수제자로 삼은 이유는, 아마 그간의 제자들이 소멸했기 때문일 거예요.

어느 날에는 스승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읽어 본 적이 있어요. 절반의 책은 빈 종이였고, 남은 절반의 절반조차 내용이 유실되어 있었죠. 언젠가부터 저는 스승의 말투와 사소한 습관 같은 것들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어요. 거기엔 분명히 제가 아는 스승의 성격상 하지 않을 행동,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한 말투가 섞여 있었어요.

마법사란 어쩌면 이리도 무상할까요? 제 추론에 따르면 그는 대파괴 이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긴 시간 동안 교직에 앉아 있던 그에게 찾아오는 제자가 몇 없는 것만 봐도 그렇죠. 그래서 저는 가끔 스승에게서 무엇인가 듬성듬성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저기요~, 플로레스 씨?”

한편, 요즘 관심 있는 우자가 있는데 말이죠?

“아이 씨, 따라오지 마! 조그만 게!”

“어머, 제 키는 그렇게 조그맣지 않은 데도요?”

“쫑알거리면서 졸졸 쫓아다니는 게 꼬마나 다름없다고!”

“그야 플로레스 씨가 절 피하니까 그렇죠!”

“왜 피하는지 모르겠어?”

“네!”

저는 당당했어요! 그야 제가 최근에 그에게 물은 건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살 수 있죠?’였고, 풀이하자면 ‘도대체 왜 돈을 주고 고등 교육기관에 다니면서 그렇게 불성실할 수 있는 거죠?’였으니까요.

우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요. 세상에 태어난 이상 시기적절하게 배워야 할 게 있고, 겪어야 하는 과정이 있고, 때가 되면 독립하여 각자 일을 하고 돈을 벌며 한정된 삶을 영위하죠.

물론 그 과정이 모든 우자에게 즐겁지만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 우자는 유독 특이했어요. 부모님 돈을 무한히 끌어 쓰면서 학교에는 나오지 않고, 잠깐 얼굴을 비출 성싶으면 금세 시야에서 벗어났죠. 하루는 밤거리에서 그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술에 절어 비틀거리더니 전봇대에 불결한 액체를 쏟아내는 거 있죠!

그때 눈을 마주친 순간 그 우자의 (솔직히 너무 잘생긴)얼굴을 보고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어요. 미카 플로레스. 저번 학기에 학사 경고를 받은 불성실한 학생 말이에요.

배움은 언제나 새롭고 즐거워요. 탐구의 과정은 인계의 불꽃놀이와 닮았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환경 파괴가 아니라 기존에 알던 개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거죠. 그런 재미를 뒤로 하고 향긋한 차향이 아닌 악취를 동반하는 음주만을 낙으로 삼는 학생이라니. 심지어 저 눈에 띄게 잘생긴 얼굴을 갖고도 말이죠!

플로레스 씨는 벙벙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다가 휙 몸을 돌려 저를 스쳐 지나갔어요. 

“오늘도 무시하시는 건가요? 저도 노는 법을 알고 싶다구요! 매일 밤을 술과 파티로 보내는 이유 말예요! 분명 거기서 얻는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거죠? 네? 그렇죠?”

“에휴, 저 또라이….” 

덕분에 저는 또라이의 의미를 배웠답니다. 찾아보니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던데요? 근데 말뜻을 따지자면 저보다는 플로레스 씨가 더 또라이에 가깝지 않아요? 

“아, 가 버렸다.” 

뒷모습을 한참 바라봐도 플로레스 씨는 저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빨리해서 저에게서 멀어졌죠. 꼭 그날 밤 전봇대 앞에서 저와 지그시 눈을 마주쳤을 때처럼 말이에요.

아아, 저 잘생긴 청년은 언제쯤 제 의문에 답을 내려줄까요?

 

 

셀루네님께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신 지 인계의 기준으로 약 50년이 지났어요. 셀루네님과 자매이신 샤님의 명성은 인계에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이름의 놀이책으로 널리 퍼져 있는데, 거기 쓰여 있는 내용은 우리의 고향과 꼭 닮아 있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인계에 우자의 손으로 하여금 뿌리내린 건지는 미지수지만요.

“샐리, 네가 이번 ‘전투의식’에 참가하게 됐다.”

“네에, 저도 들었답니다.”

“이기고 와라. 안 그러면 아방궁의 체면이 안 살잖니.”

그러고 보니, <던전 앤 드래곤>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재밌는 표현을 찾았어요.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 빡치라고 하는 거다’라는 말!

“아하하! 저는 아직 정식 아방궁 마법사가 아닌걸요? 그리고, 저에게도 다 계획이 있다구요~.”

이제 저도 어엿한 3계제. 탐구한 것을 제대로 실천해야 할 날이 왔어요. 저는 괴팍한 할망구…… 아차! 위대한 대마법사이자 저의 스승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강의실을 나섰어요.

슬슬 폭염이 지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 초저녁의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말간 초승달이 떠올랐고, 저는 곁의 우자들을 따라 ‘춥다’라고 중얼거리며 드러난 어깨를 감싼 채 손톱 같은 달을 올려다보았어요.

위대한 달의 어머니시어. 이제부터 저는 어떤 마법사들을 만나게 될까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또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답은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전 스스로 배우는 게 좋거든요.

그럼 이만. 잘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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