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에 잠식되어,
허우적 거릴 수록 더욱 빠져들 뿐.
“오히려 쉽게 넘어오지 않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몰라.”
“그리고 전혀 성가시지 않는 걸? 난 오히려 계속 나와 대화해주는 사람이 더 좋아. 그게 날 의심해서 나오는 의문들이어도. 그 의문들에 대해 내가 답을 주다보면 의심이 아니라 다른 걸로 변할지도 모르잖아?”
“거기에 나는 너한테 쉽게 지치지 않을 거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거라는 게 느껴져. 믿어?”
확신하진 못한다. 의심이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을지 없을지. 하지만, 노력을 아예 안하는 것과 그럼에도 노력을 해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이는 너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해준다. 네가 품고 있는 의심을, 네가 품고 있는 의문들에 하나 둘씩 풀어 나아간다. 얽혀진 실타래를 풀듯이, 아이는 너의 의문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지. 그 대답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너의 자유일 터.
매일 같이 듣던 가문의 연설, 그게 어떤 연설인지는 아이는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클레어 가문은 순혈 가문이라는 것 뿐. 그것 외에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너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기도 어려웠지. 아이가 교육하면서 배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문의 간단한 정보일 뿐. 그 가문에서 어떤 일이 있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배우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거에 큰 생각이 없기도 했고. 하지만 그럼에도 너에게 이리 대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너는 나와 같기에, 정말 단순히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어디가 문제인가. 지금 나는 너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너 또한 그러길 바랄 뿐이다.
빛이 존재하기에 어둠 또한 존재하는 법.
물과 불은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있다.
빛이 존재하기에 어둠이 보이고, 어둠이 존재하기에 빛이 보이는 것이기에. 어쩌면 너와 나의 만남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에서야 만났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다 본다.
나는 너와 달리, 의심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 상대방의 눈을 제대로 마주쳐야 살 수 있는 곳에서 살아왔기에, 타인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런 곳에서 자란 아이는 무척이나 너와 다른 느낌이 들게 만들었겠지. 천천히 감았다 뜨는 눈, 그런 눈의 움직임에 따라 찰랑이는 긴 속눈썹, 햇빛 아래에 있어 날 수 있는 포근한 햇빛 향, 네가 알아보기 편할 정도로 평안하게 움직이는 몸, 부드럽게 움직이는 가지런하며 예쁜 손, 어린 아이의 목소리이나 그렇다고 듣기 싫을 정도로 높지 않아 오히려 듣기 매우 편안한 목소리. 이 모든 것이 에리카 이노센트를 뜻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너에게는 달콤한 과실과도 같으며, 빛과도 같다는 사실을 아이는 어쩌면 평생 모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니까.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는 어쩌면 평생 모를테야. 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동자는 너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그런 시선에 홀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터.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에 아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너의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품은 의심은 나에게 있어 관심이고
그것은 나를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온 것이니 용서받을 수 있지.
“그래? 나와 비슷하네. 나도… 거의 가문에서 갇혀 있다 싶이 자라왔기 때문에, 누군가와 필요 이상의 시간을 갖본 적이 없어. 나 또한… 어쩌보면 답답할 수 있을지도 몰라.”
길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말에 뜻은 너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너의 경고를 들음에도 그것을 받아드리고 함께 한다는 것을 택한다는 뜻이다.
나는 널 바라보고 있어.
그것도 제대로.
그러니…. 알려줘. 넌 어떤 사람인지.
모든 일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이 이득일지 손실일지. 행운일지 불행인지. 기적일지 이변일지. 그 어떤 것도 내가 예상하는 순간에 찾아오지 않지. 나는 지금 너에게 그런 존재인 거야. 네가 바라고 끊임 없이 바래왔기에 찾아온, 꿈이 아닌 현실이며. 아이는 또렷하게 너의 앞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제대로 봐줘. 온기가 없어도. 나는 지금 너와 함께하고 있어.
도망가지 않을 거야.
네가 무엇을 부탁해도.
난 들어줄테니까.
자유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따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뿐인걸까. 아이는 자유라는 단어는 매우 포괄적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외부적인 구속을 떠나, 자의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너에게 말한 자유라는 것에는 자의적인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포함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마냥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이가 모를 리 없었지.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다.
그런 모순적임이야 말로 인간성이며.
인간성으로 인한 사고이고.
인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지.
네가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단순히 어리광을 부리고 싶기 때문인지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너의 상태를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 단지 조금 생각을 해보자면, 네가 나를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어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보다 내가 편해서, 혹은 내가 말하는 것들이 너에게 힘이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그리 생각해본다.
너의 중얼거림은 귀가 좋은 아이에게 들려왔다. 그거면 충분하다. 날개가 부러져도. 더이상 원래대로 고칠 수 없다고해도. 그렇다면 날개가 제대로 달려있는 내가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닌가. 날개가 없다면. 날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을 붙여주면 된다. 그것마저 힘들다면 네가 날고 싶을 때 내가 날개를 대신 펼쳐주면 되는 일. 아이는 꿈꾼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속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유로이 날개를 펼쳐 부드러운 바람을 맞이하는 꿈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꿈이며, 너의 의사가 들어가지 않은 꿈이기에. 아이는 그저 생각만에서 꿈을 멈추었다.
“우리는 정말 닮은 점이 많네. 뭔가…. 그래, 너와 만나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게 돼.”
“너는 어때? 너도 나와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그것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법사 또한 사람이기에, 사람은 자신과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한다.
다름을 다름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통틀어 아이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 속에서 살아왔기에, 아이는 순혈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혼혈이었기에 그 어떤 기대를 받지 못했으며, 홀로 조용히 힘을 키워야만 했다. 그래야… 그래,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내가 그들에게 죽지 않을 수 있으니까. 증명해야 했다. 나의 쓸모를. 나의 가치를. 그런 삶에서 살아왔기에 그런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 속에서 아이는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아이에게 있어 호그와트는 유일한 탈출구이며,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일 것이다.
그런 곳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어쩌면 천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 누구보다 운이 뛰어났기에, 어쩌면 그 운이 너와 만나게 해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짧게나마 해보았다.
따사로움.
아이를 나타내는 단어를 찾아보자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따사로움 일 것이다. 겨울임에도 어째 이 호실만은 다른 호실보다 따사로웠고. 해가 들어왔고. 눈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사람의 온기라는 것은 어찌보면 정말 신기했다. 누군가는 그 온기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그런 온기로 죽어가며. 누군가는 그런 온기에 잠식되어 헤어나올 수 없는 미궁에 갇혀버린다고 하지. 넌 어떨까. 너에게 사람의 온기는….
너에게 나의 온기는 어때?
따사로움에 움직이 또한 자연스러워지고. 대답 또한 자연스러워진다. 어때? 아까보다 조금 더 편해졌을까?
“…. 만일, 내가 너무 자유로워 금방이라도 놓칠 거 같고 그런 느낌이 들어 싫다면,”
“내가 직접 네가 만든 새장에 들어가줄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마. 네가 바란다면….”
너의 그런 생각을 알 리가 없기에, 아이는 말할 수 있었다.
“난 언제나 네 뜻에 따라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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