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하고 따스한
포옹의 힘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기분이 무척 가라앉은 커비가 포옹으로 충전 받는 게 보고 싶어서, 대왕에게 괜히 어리광 부리는 커비가 보고 싶어서 써봄.
* 카비데데임. 암튼 그럼.
디디디 대왕은 푸푸푸랜드 초원에서 평화로이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왕~! 마침 잘 만났다!!"
"…갑자기 뭔 일이냐."
핑크색 구체는 전속력으로 디디디 대왕을 향해 뛰어오더니, 그 스피드 그대로 뛰어들어 대왕을 와락 껴안았다. 그러고는 대왕의 배에 달라붙은 채로 칭얼거렸다.
"우웅~ 대왕~"
"뭐, 뭐 하는 거야!? 징그럽게 달라붙지 말고 떨어져!!"
디디디 대왕은 커비를 잡아당겼지만, 대왕의 가운을 꽉 붙잡은 이 핑크색 구체는 도통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몸집은 작은 주제에 힘만 더럽게 센 탓이다.
물론, 이 핑크색 구체의 정체는 커비이다.
커비는 자신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왕에게 필사적으로 외쳤다.
"야아~! 그치만, 나 오늘 힘들었단 말이야…!!"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가라앉은 커비의 목소리. 애써 밝은 어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어두운 기색을 대왕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디디디 대왕은 커비를 잡아당기던 손을 멈추고, 짐짓 평소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며 커비에게 물었다.
"…너, 무슨 일 있었냐?"
"별일은 아닌데…… 그냥, 잠깐만 이렇게 있으면 안 돼? 제바알~!"
그렇게 말하며 커비는 눈꼬리를 내리고는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디디디 대왕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입고 있는 빨간색 가운은 평소와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얼마 전에 새로 지은 가운이다. 이 녀석 때문에 새 옷이 더럽혀지는 건 딱 질색이다.
하지만 거절한다고 해서 이 녀석이 들어줄 리 없었다. 타인의 말, 그중에서도 특히 대왕의 말이라면 귓등으로도 안 듣는 커비가 대왕의 의사 표현을 존중해줄 리는 만무했다.
또한 거절에 대한 보복으로 앞으로 이 녀석이 얼마나 귀찮게 굴지는 안 봐도 뻔하다.
디디디 대왕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돌렸다.
"참나, 이번 한 번만이다."
"와아~!"
그러자 커비는 헤헤 웃으며 대왕을 꼭 끌어안고서 가운에 얼굴을 묻었다.
커비는 확실히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행동거지 자체는 여느 때와 같으나, 미세하게 낮아진 목소리 톤이나 어두워진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커비는 지금 분명 기운이 없는 상태다.
그 태평하고 생각 없기로는 우주 제일인 커비가 저기압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딱히 몸이 아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디디디 대왕은 사정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커비에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아무리 천하의 커비라고 하더라도 가끔은 우울해질 때도 있는 법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커비는 미동도 없이 그대로 있었다.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혹시 잠든 건가 싶을 무렵, 커비가 대왕을 껴안은 양손에 꾹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시더니, 가운에서 얼굴을 떼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좋다아~"
"뭐가 말이냐?"
"디디디한테 안겨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엄청 포근하고 따뜻하거든! 좋은 냄새도 나고!"
"그거야, 그냥 가운 때문이 아니겠냐? 워낙 따뜻한 소재로 만든 거니까 포근할 테고. 냄새도 뭐, 웨이들 디들이 잘 빨아준 거니까 당연히 좋은 냄새가 나겠지."
그러자 커비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그런 거랑은 달라! 마음속, 아주 깊은 곳부터 따끈따끈해지는 것 같은 그런 포근함이란 말이야!"
커비는 대왕의 뱃살을 조물거리더니 짐짓 연구자 같은 톤으로 말했다.
"흠, 이 뱃살 때문인가?"
"뭐라고??!"
"농담이야! 예민하기는~"
커비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왕에게서 폴짝 뛰어내렸다.
"어쨌든 고마워! 덕분에 좀 기운이 났어!"
"거참. 앞으로는 청승 떨지 마라. 너한테는 그렇게 침울해져 있는 거, 전혀 안 어울린다."
위로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디디디 대왕의 말을 듣고 커비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모르겠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응, 뭐… 알겠어! 그럼 나중에 봐!"
커비는 평원에 난 길을 따라 달려갔다.
디디디 대왕은 멀어져 가는 커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왕은 커비가 얼굴을 묻었던 가운 끝자락을 문질렀다.
옅은 봄 내음 같은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니까…"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차며, 대왕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화창한 푸푸푸랜드의 초원 위를 무언가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동그란 주황색 몸에 파란 반다나를 두른 그것은, 바로 반다나 웨이들 디였다.
오늘은 일주일에 하루뿐인 디디디 성의 휴일로, 커비와 반다나 웨이들 디가 함께 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반다나 웨이들 디는 서둘러 약속 장소인 쿠키 초원의 언덕 위로 달려가고 있었다.
곧 분홍빛을 띤 익숙한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반다나 웨이들 디는 손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커비, 나 왔어!"
하지만 커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다나 웨이들 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못 들었나?
이번에는 커비 바로 앞까지 다가와 커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커비!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앗, 반다나 웨이들 디! 언제 왔어?"
"방금 왔어. 그나저나 뭔가 깊게 고민하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어?"
웨이들 디의 물음에, 커비는 잠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날씨가 엄청 좋길래…"
커비의 말에 반다나 웨이들 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정말 화창한 날이야. 이런 날엔 빨래도 잘 마르겠어. 이따가 성으로 돌아가면 대왕님 가운도 빨아 널어야겠다."
그 말에 커비는 반다나 웨이들 디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맞다! 듣고 보니 생각났는데, 대왕의 가운은 정말 따뜻하지 않아? 꼭 끌어안고 얼굴을 묻으면… 해님처럼 포근포근하고 따뜻한 냄새가 나."
그 말을 들은 반다나 웨이들 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그렇구나…"
"그래서 꼬옥 안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 어쩐지 마음이 꾸물꾸물할 때도, 그 냄새를 맡으면 금방 기운이 나는 것 같아!"
"으응… 그래…?"
커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반다나 웨이들 디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커비, 너 혹시 그런… 게 취향이야?"
그러자 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무슨 취향?"
"그러니까… 냄새… 라든지…"
"냄새가 뭐?"
"아, 아니야! 아무것도…"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젓는 반다나 웨이들 디.
커비는 잘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곧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환해진 얼굴로 외쳤다.
"앗! 저기 좀 봐! 우리 저쪽으로 가보자!"
"아앗, 같이 가! 커비!"
커비는 힘찬 발걸음으로 초원 위를 달려 나갔다.
내리쬐는 봄날의 햇살은 포근한 가운처럼, 커비의 주위를 따스하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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