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염원

잿빛 그림자에게도 꿈이 있답니다

요즘 섀도는 어쩐지 몰포랑 닮아있는 것 같음.

검정에 가까운 피부색이라든지, 흰색 눈동자라든지,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점이라든지…… 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짧은 글.

* 섀도 커비 시점


아, 나도 강해지고 싶어!

모두를 이길 만큼 강해지고 싶어!

내 원본은 우주 최강이라는데, 세계를 지키는 영웅이라는데, 그 아이의 그림자인 나는 어째서 이렇게 약한 거야? 왜 이렇게 겁 많고 소심한 거야? 나도 힘이 세면 좋겠어!

나는 그 아이… 커비를 꼭 이기고 싶단 말이야!

바로 그때, 어디선가 주홍색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어.

팔랑

   팔랑

팔랑

  팔랑.

그 나비는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았어.

그러자 나비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공기를 거치지 않고 머릿속에 바로 울려 퍼지는 것 같았어. 텔레파시처럼.

'힘을 원해? 그럼 나랑 계약하자. 나는 널 아주 강한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어. 우주에서 가장 강한 존재에 비할 만큼. 대신 너는 그 대가로 네 꿈을 주기만 하면 돼. 어때, 해볼래?'

아주 혹하는 제안이었지.

하지만 조금 무서웠어. 원래 낯선 자가 하는 말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되는 거잖아.

"꿈을 가져가면 난 어떻게 되는데?"

'꿈을 잃은 자는 영혼이 없는 꼭두각시가 된다…고들 하지. 자아를 잃은 채 영원히 힘에 대한 갈망만을……'

"뭐야 그게!? 무서워!! 안 할래!!"

'잠깐잠깐, 끝까지 들어봐!'

"아 싫다니까!!"

나는 나비를 떼어내려고 팔을 들어 올렸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팔이 안 움직이는 거 있지? 아니, 깨닫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멈춰 있는 게 아니겠어?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정적뿐인 세상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 오로지 그 나비가 흩뿌리는 붉은 빛의 비늘뿐이었지.

결국 나는 그 녀석을 쫓아내는 걸 포기하고, 당당히 내 머리 위를 차지한 나비의 말을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어.

'좀 기다려 보라니까.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보통의 경우는 꿈이 사라지면 영혼마저 잃게 되지만, 너는 달라. 네 본질은 그림자, 태생부터 영혼이 없는 빈껍데기야. 그 아이를 흉내 낸 존재에 불과하단 말이지.'

그 말에 나는 기분이 나빠졌어. 내가 영혼이 없다고? 그럼 지금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다 뭔데? 누구 맘대로 나를 빈껍데기라고 단정 짓는 거야?

그건 그렇고, 그 아이라니? 내가 커비의 분신이라는 사실을 이 나비도 알고 있는 걸까?

나비는 계속해서 이야기했어.

'그러니까 넌 꿈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영혼을 잃지 않아. 너에겐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고. 내가 장담해.'

"정말이야?"

'물론. 네 존재는 너무 불안정한지라 내가 거두어들일 수조차 없어. 쉽게 말해 내가 네 존재를 탐낼 일은 없단 소리야. 네 몸이 워낙 허약한 덕분이지.'

이건 그냥 날 무시하는 거잖아!?

난 화난 눈으로 나비를 쏘아보았어.

하지만 나비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나를 지켜보고만 있었지.

그때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기지 뭐야. 나는 나비에게 물었어.

"근데 너는 꿈을 왜 가져가려는 거야? 어디에 쓰려고?"

'…꼭두각시의 꿈은 쓸모가 없어. 가짜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너는 유별나게 특이한 존재의 투영체니까, 예외적으로 네 소원을 들어주려는 거야. 너라면 그 아이를…… 내 숙원을 이루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마지막엔 아주아주 작아서 나에겐 들리지 않았어. 머릿속으로 얘기하는데도 소리가 작아질 수 있다니 조금 신기하긴 했지.

어쨌거나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어.

내가 되물으려는 찰나에 그 나비가 재촉해왔어.

'그래서 나랑 계약 할 거야, 말 거야? 빨리 대답하는 게 좋아.'

"아, 알았어. 계약할게."

나는 얼떨결에 알겠다고 대답해 버렸어. 그러자 나비는 기분이 좋은 듯 날개를 팔락였지.

'좋아. 계약 성립이다.'

그 말을 끝으로 나비는 불꽃처럼 흩어졌어. 그 다홍색의 불꽃은 내 몸 안으로 흡수되었지.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타오르는 불꽃을 삼킨 것 같기도 하고, 내 안에 또 다른 누군가의 의식이 들어온 것 같기도 한 느낌이랄까.

여하튼 아주 기묘했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 혼자였어. 주홍색 나비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지.

나는 물가로 달려가 내 모습을 비춰보았어.

내 모습이 변해 있었어.

잿빛이던 피부는 암흑색으로,

어둡던 눈동자는 번쩍이는 백색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지.

그 순간 확신이 들었어. 지금의 나라면 누구와 겨루어도 지지 않을 거라고.

강해졌어. 드디어 강해진 거야. 지금이라면 그 아이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힘차게 달렸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당연히 나의 원본이자 영원한 경쟁자인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거지!

지금이라면…

잘만 하면…

어쩌면, 그 아이와 대결한대도……

커비와 대결한대도, 지지 않을지도 몰라!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