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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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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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sgvm_RG41Y?si=jiqxLM-QkrJ3eZbM

어린아이가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대게 그것이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정반대의 일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을 걸친 아이는 자의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끌어안고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따금 지나칠 정도로 성숙하다면 대게 눈치가 빨라 스노스필즈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른은 아이들보다 성장한 신체를 가졌음에도 그들보다 성숙하지 못한 사고를 지니고 있어서, 배려할 줄 몰랐고 성숙한 아이를 영악하고 자신들의 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뿐이었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성숙한 아이가 몇이나 있겠냐지만 트리는 그 적은 수의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향해오는 타냐의 감정을 트리는 썩 좋은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무엇도 바라지 않는 헌신의 형태라는 감정은 스스로를 망치기 가장 좋은 빠른 길이고 그것을 잘 아는 것은 트리 자신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관찰로써 이루어진 사고의 방식이지만. 고해성사 같은 상황에서 트리는 그저 묵묵히 타냐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납득의 표현도, 긍정의 표현도, 부정의 표현 등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가만히 서서 새까만 두 눈으로 타냐를 바라볼 뿐이었다. 

스노스필즈에서와의 비슷한 상황이라고 느껴질 때면 금세 음침하고 축축한 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트리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은 그저 그 곳에서 자라며 익힌 것일 뿐이었다. 어떠한 악의도 없는. 하지만 사람은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 법이고 그 곳에서도 아주 조금의 빛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둠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봐온 트리는 당장 답을 원하지 않았고, 문장 그대로 기다릴 줄 알았다.

" 네 말대로 기다리는 거 맞아. "

새까만 두 눈은 여전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입가에 걸린 것은 긍정의 미소였다. 새삼스럽게 크게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 그렇지만 우리 관계가 쉬운 게 아닌 것도 맞아. 그러나 내일은 괜찮지겠지. "

내일을 기대하지 않던 트리는 이 곳에서는 대신 내일을 기다렸다. 충분히 시간과 안전이 주어진 이 곳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게다가 덜 자란 어른들이 아닌 앞으로 자라나갈 수 있는 당신들이니까. 암담한 것보다는 빛을 더 많이 품고 있는, 스스로 나아가고자 하는 당신을.

" 사람이란 건 그래, 늘 실수투성이고 바보 같고, 멍청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다음이 되면 하나둘 씩 나아져. "

처음 자신에게 날라왔던 마법의 편지를. 처음 통과 해봤던 기차역의 통로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성사해준 이 곳 호그와트에 있는 자신을 떠올린다. 우리는 모두 크게 다르지 않아.

" 우리 관계도 그럴 거야. 타냐. "

트리는 상대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줄 알았다. 너는 앞으로의 자신을, 더 나아갈 자신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어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겠는가. 

" 내 앞에서는 그냥 이것만 생각해. '우리'라는 단어를. "

적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당신이 외롭다고 느끼지는 않게. 나아가는 속도가 더디더라도 결국에는 변화할 것이라면 끝까지 곁에 있어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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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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