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너는 세계의 절반을 가지고 내게로
#개인전 #깜짝 방문 #키스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귀국은 스스로 생각해도 갑작스러웠다. 거리와 비용을 생각하면 나름대로는 제법 자주 드나드는 편이었지만, 한동안 따로따로의 스케줄이 워낙 바빴던 터라 벌써 몇 달은 얼굴을 못 본 기분이었다. 물론 영상통화를 비롯한 통화는 빈번히 했으므로 근황은 비교적 파악하고 있는 편이었으나 그래도 미카가 늘 말하듯 '실물이 최고'인 것은 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이것이 바로 은유적인 의미에서의 사람을 향한 갈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살롱의 아티스트 교류회에는 당연하다는 듯 파트너를 데려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성별을 불문했다. 오히려 슈에게 왜 혼자냐고 묻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 질문에 당황스러워하던 슈도, 지금은 파트너가 모국에 있어서 데려올 수가 없다고 웃으며 넘기는 여유가 생겼다. 일본에 있을 때는 직설적인 부류에 속했던 자신이 어처구니없게도 바다를 건너자 샤이한 동양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에 그대로 끼워맞춰진 상황에 조금 울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럴 경우에는 그 편견을 오히려 이용할 수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되었든, '그런' 방면에서 구미인들에 비해 샤이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술의 파트너'라는 의미에서 파트너의 존재를 거론했지만, 알콜이 한두 잔 들어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찐득한 스킨십을 가볍게 나누는 모습을 자꾸 보다 보니 슈 입장에서도 조금은 의식하게 된다. 물론 의도적으로 무례하게 구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보니, 혹시 훗날 미카가 프랑스에 왔을 때 살롱에 데려가 파트너라고 소개하면 둘이 당연히 성적인 관계를 맺는 사이라고 다들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최근 슈의 작은 고민거리였다. 그렇다고 그 어떤 다른 의미라 한들 미카 외에 다른 파트너를 곁에 둘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으니, 어느 삼류 글쟁이의 입버릇을 빌리지 않는다 해도 이래저래 상황이 '구제불능'인 셈이었다.
어쨌든 그런 파트너에게 언질 한 마디 없이 갑자기 귀국한 데에, 사실 슈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깜짝 놀랐다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할 그 표정을 보고 싶었을 뿐이고, 또 매번 공항까지 마중 나오려 드는 수고를 줄여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조금은 서운해하겠지만 그거야 일본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 주면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슈는 오랜만에 도쿄의 전철을 탔다. 명색이 유명 아이돌이니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법하지만, 피로에 곪고 스마트폰 화면에만 눈길이 못박혀 있는 대도시의 인파 속에서는 뜻밖에도 마스크와 모자만으로 충분히 익명성을 지킬 수 있었다. 슈는 성주관으로 가기 전 오랜만에 단골 수예점에 들러 이번 작업에 쓸 재료를 좀 챙길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 역에도 참 오랜만에 내린다고 생각하며 개찰구를 빠져나온 슈의 눈에 그것이 보인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
상술했다시피 최근 들어 따로따로 하는 일이 많아진 Valkyrie의 두 사람이기에, 슈는 현재 미카의 모든 스케줄을 체크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굵직한 것들이야 홀 핸즈에 들어가면 금세 볼 수 있고 또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것은 이바라의 연락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나 미카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자잘한 일들까지 다 알지는 못했다. 또, 상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슈도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알려 하지는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 붙어 있는, 역 광고 게시판의 포스터에 씌어 있는 이름은 단순히 『SHADOW』일 뿐이었다. 너무나 흔한 단어였고, 전시회 타이틀인지 아티스트의 필명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슈는 그 포스터를 흘끗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이 이끌렸다.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소규모 화방과 갤러리가 많은 골목. 그 안의 어느 작은 갤러리에서 현재 『SHADOW』의 개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단순한 포스터였다. 기간은 1주일 정도였고 오늘은 마침 딱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장르는 팝 아트, 조형물과 회화로 이루어진 발랄한 느낌인 듯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왜 이름을 숨기고 전시회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슈의 본능이 이것은 미카의 작품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물며 당장 눈앞에 있는, 포스터의 배경이 되는 그림에까지도 미카의 색채가 배어 있었다. 확신 자체는 빨랐다. 하지만 슈가 그 포스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서성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게 연락도 하지 않고 첫 전시회를 열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둘이었다. 분노와, 서운함.
자신은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분명히 파트너에게 알렸다. 올 수 있다면 와도 좋다는 의미로, 프로듀서 몫까지 티켓을 두 장 남기고 왔다. 녀석들은 야무지게 찾아와서는 슈의 영혼을 포함한 모든 것이 담긴 전시회를 빈틈없이 즐기고 갔다. 그러니 미카의 첫 전시회가 열린다면 제일 먼저 그 장소에 발을 들이는 것은 응당 자신의 권리라고 슈는 생각했다.
물론 미카가 전시회를 열겠다는 희망사항을 피력했다면 슈는 이렇게 보잘것없고 비좁은 무명 갤러리를 허락하지도 않았을 테고, 심지어 영문 모를 필명을 쓰게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은 이미 아이돌로서나 예술가로서나 이름을 알린 몸이니 굳이 감출 이유가 없으며, 나아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세상에 자기류의 예술을 알리는 것이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의무라는 것이 슈의 주장이었다. 물론, 전시회 장소를 정하는 것은 아티스트 본인의 자유다. 게다가 완성된 작품만을 보여주고 싶으니 준비를 비밀로 하겠다고 한다면 그래, 그 정도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전시회가 완성되고 실제 열리게 되었다면 그때라도 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날짜를 보면 볼수록 머리에 더욱 열이 올랐다.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이틀 사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들이 대체 몇 명이나 그곳을 방문했을까. 그곳을 방문해, 『SHADOW』의 예술을 온몸에 가득 끼얹고 갔을까.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야."
고개를 든 슈의 표정은 괴팍한 늙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심통난 어린애 쪽에 가까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받아야 할 생일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누군가가 먼저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꺼낸 상황을 목도한 어린애 같았다.
"…! 같은 유닛의 멤버로서, 리더로서, 불평 한 마디쯤 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야!"
슈는 포스터의 약도를 머릿속에 잘 새겨 넣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는 사람이 보면 알아볼 수 있는, 억울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
"앗, 슈 군!"
꼬불꼬불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10분 이상을 헤맨 끝에 겨우 발견한 그곳은 입구마저 좁아 얼핏 보기에는 갤러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어쨌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접수 데스크에는 낯익은 코즈프로 직원이 앉아 있었다. 처음부터 확신하고 왔지만 그 얼굴을 보니 더욱 화가 났다. 자신보다 먼저 이 전시회를 본 사람이 명백히 한 명 이상 존재한다는 현실이 눈앞에 쿵, 하고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오늘 온다는 연락은 못 받았는데~? 아무튼 어서 와요. 자, 여기 방명록."
심지어 타인처럼 방명록까지 쓰라고 들이민다. 부글부글 끓는 기분으로 방명록 페이지를 넘겨 보니 많지는 않으나 전부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바짝 약이 오른 슈는 충분히 이름을 쓸 공간이 남아 있는데도 페이지를 휙휙 넘겨 온전히 깨끗한 한 페이지를 펼쳐서는 종이 가득 꽉 차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었다. 이것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분노를 견딜 수가 없었다.
"일반 관람객은, 몇 명이나 다녀갔습니까?"
"응? 아, 이거 공식적으로 발표도 안 했고, 역에만 작게 붙여놓은 거라 미카 군 친구들 말고는 얼마 안 왔어. 그래도 슈 군, 올 거면 연락하고 와 주지. 미카 군 지금 스케줄 가고 없어서 한 시간쯤이나 있어야 올 텐데."
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직원은 자신이 전시회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니 무용한 분노를 뿜어낼 이유가 없다. 그 정도는 구분할 만큼, 슈도 나름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리라. 그보다 마음이 급했다. 그 아이가 창작한 그간의 집대성을 서둘러 보아야 했다. 아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꼭꼭 씹어 음미해서.
내가 모르는, 세계의 절반을.
"가운데에 가벽을 쳐서 ㄷ자 모양으로 만들었으니까 관람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돼."
"…알겠습니다."
평일 낮이라서인지 작은 갤러리 안에는 슈와 직원 외에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그 공간 안에 슈의 발걸음 소리만이 뚜벅뚜벅 울렸다.
막상 관람을 시작하려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카게히라 미카는, 언제나 이츠키 슈에게 깊은 심연과도 같은 수수께끼였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시키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인형으로서 곁에 두었을 때는 이보다 더 단순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며 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답례제 부근부터 알게 되었다.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을 2년 남짓한 시간을 들여 겨우 알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행히도 자신들은 앞으로 20년 이상을 함께 지낼 시간이 있으니 빨리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직원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슈는 화살표를 따라 첫 작품으로 다가갔다. 받침대 위에 각양각색의 테디베어들이 가득했기에 묘한 안심이 느껴져,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나 자신이 잘 아는 카게히라 미카였다. 정성껏 지은 고운 의상을 입고 있는 테디베어, 어딘가에 매달려 있는 테디베어, 엎드려 있는 테디베어, 무언가를 꼭 껴안고 있는 테디베어.
처음에는 그저 그 '귀엽고 무서운' 취향의 발로라고만 생각했는데, 조금씩 안쪽으로 걸어들어갈수록 낯익은 장면이 나타났다. 몇 개는 그냥 지나쳤는데 어느 순간 테디베어가 기묘한 동작을 하고 있어서 유심히 살피니, 얼마 전 미카가 올랐던 연극 무대에서 잠시 선보였던 특징적인 포즈였다. 그렇다면 지나친 것들은 바빠서 슈가 미처 체크하지 못했던 미카의 가장 최근 출연작들이리라.
형사 복장에 선글라스를 낀 테디베어는 당연히 마코토와 함께 출연했던 예의 범죄영화 주인공일 테고, 높은 받침대에 나란히 서 있는 두 테디베어는 미궁전자회랑의 첫 공개 무대로 보였다. 그 외에도 다른 Valkyrie의 무대, 미카의 솔로 피처 라이브 무대, 서클 활동으로 여겨지는 장면 등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꽤나 커다란 쇼케이스 속에 철사로 직접 광선을 만들어 촘촘히 새겨 넣은 매혹극의 무대를 보니 그 아이가 어떤 자세로, 어떤 표정으로, 어떤 손짓으로 이 오브제를 만들고 있을지 슈는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이런 것을 내게 비밀로…."
귀국을 앞당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역에서 우연히 포스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이 모든 전시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그 아이가 자유롭게 만들어낸, 이 온전한 취향의 세계를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다, 차츰 심장이 서늘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헛기침 몇 번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벽 모퉁이를 꺾어 돌아 안으로 들어서니 한 줄로 쭉 이어진 전시 너머에 금장 술이 달린 와인레드 빛깔의 묵직한 커튼이 쳐져 있었다. '건드리지 마시오' 등의 팻말이 없는 것을 보니 관람자가 직접 커튼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것을 감상하는, 최후의 카타르시스 연출 용도로 만들어져 있는 장치인 듯했다. 상투적이고 안이하지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는 찬찬히 나머지 전시품들을 둘러보았다. 앞쪽에는 여러 장면을 재현한 테디베어들로 가득했다면, 안쪽 공간에는 보다 본격적인 호러와 그로테스크풍의 작품이 늘어서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귀여움을 잃지 않는 것이 미카의 개성이어서인지, 두개골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속에 진짜 톱밥이 들어 있는 봉제인형을 보았을 때 슈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참고로 그 옆에 있는 봉제인형의 두개골 속에는 구더기가 끓고 있어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잘 보니 스티로폼과 솜으로 만든 모형이었다. 정말이지, 1차원적인 사고가 오히려 허를 찌를 때도 있는 법이라며 슈는 혀를 내둘렀다.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탁한 색조와 독살스러운 분위기는 마치 늑골을 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미카의 심장을 직접 들여다보는 기분이어서, 슈는 손에 땀을 쥐었다.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예술, 그렇기에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이형의 자극.
덕분에 문제의 커튼 앞에 도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커튼 안쪽으로 좌우 상단에 조명이 켜져 있는 것이 얼핏 엿보였다. 이 벽 앞에 있는 것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로 여겨졌다. 슈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커튼을 양 옆으로 젖혔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
"스, 스승님!"
미카는 정신없이 골목을 달려, 엊그제 열심히 작품을 설치했던 그 갤러리로 뛰어들었다. 스케줄상 전시회장을 계속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었고 오늘은 뒤풀이까지 마치고 나서 올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갤러리에 슈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슈에게는 보여줄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이었다. 거창하게 전시회를 열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작품들의 완성도를 지적당하며 야단을 맞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것들은 지나치게 솔직한 미카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시회가 처음이라서인지 그런 부분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부은 일기장을 짝사랑 상대에게 들킨 기분이었기에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 작품에 커튼을 쳐 둔 것은 의도적인 연출이 아니었다. 정말로, 정말로 부끄러워 그냥 드러내 놓을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작품을 보고 감동한 아라시의 설득으로 결국 전시회에 내놓기는 했지만 깊디깊은 골목 작은 갤러리, 그 안에 가벽을 치고 또 골목을 만들어 그 가장 깊은 곳에 걸어 두고 또 거기에 커튼을 칠 정도로 부끄러운 자신의 소망. 그나마 전시를 하기로 결심한 것도, 어차피 슈는 볼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던 건데.
"미카 군, 빨리 왔네? 슈 군은 안쪽에 있어~."
"응아아, 하아, 하아…."
메이크업도 제대로 지우지 못한 채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미카는 아까 연락을 준 직원에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안으로 돌진했다. 모퉁이를 도니 눈앞에는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그 그림, 그리고 마치 발 밑에 뿌리가 박힌 듯 가만히 선 채 그것을 바라보는 슈가 보였다.
"스승님, 내, 내는…."
"아아, 카게히라."
천천히 돌아보는 슈의 얼굴은 그렇지 않아도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으나, 미카는 도저히 상대의 두 눈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만 숨겨 두려 했던 소망을 상대에게 너무나 노골적으로 들켜버린 기분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처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패러디는, 순수한 너만의 창작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야."
"응아, 으응…."
"하지만 유명한 작품을 패러디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작품에 위탁하고 싶은 의도와 마음이 강렬했다는 뜻이겠지. 그것은 그간 네 마음에 둔했던 내게 경종을 울렸다. 귓가에 직접, 징을 두들긴 것처럼."
"스승님…?"
조심조심 고개를 드니 슈의 얼굴이 보였다. 활짝 웃고 있는데도 그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상태로 슈는 미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고, 네가 애써 감추던 마음. 네가 그린 이 미숙한 그림 한 장이 그것을 환한 빛 아래로 드러나게 해 주었어. 고맙다, 카게히라."
미카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달려들어 슈의 품 안에 안기는 것 외에는.
"스승님, 미안타, 내는… 그냥…."
변명하려던 입술은 상대에게 가로막혀 아무런 말도 자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껴안고 입맞춤을 나누는 두 사람 뒤로, 또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자세로 서로를 안고 있었다. 슈의 말마따나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그것이 클림트의 <키스>를 패러디한 그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림 속 앳된 두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은 그야말로 슈와 미카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복장이었다.
먼 옛날, 쓰레기장에서 만났던 두 사람. 슈가 입고 있던 어린 시절 외출복, 당시 미카에게 입혀 주었던 여아용 원피스.
그림의 제목은 <구원>이었다.
***
얼마 후 실제로 슈가 살롱의 동료 작가들에게 미카를 소개할 기회가 생겼을 때, 슈는 망설이지 않고 미카를 가리켜 '나의 작은 황금'이라고 말했다. 동료들은 모두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미소를 지었고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한 미카만이 그저 애교 어린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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