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옥 끝까지 함께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카우트! 소나기의 패들' 스토리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음 

※모브 많이 나옴

 

 

 

 

"미카링~ 조사를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책이 넘치다 못해 내 침대 쪽을 침범할 것 같거든…. 마냥 쌓아 놓지만 말고, 다 본 건 반납하는 게 어떨까~?" 

"응아, 리츠 군 미안타! 근데 내 머리가 나빠가 줄줄 새는지, 아까 봤던 것도 자꼬 까묵으니께 함부로 반납하기도 어렵고… 쫌만 더 보믄 끝날 거 같으니께 쫌만 참아 도." 

 

책상에 앉아 한참 책에 골몰하다 겨우 고개를 들고 물을 한 모금 마시는 미카를 보고, 침대에 엎드려 있던 리츠가 겨우 타이밍을 잡았다는 듯 가벼운 불평을 늘어놓자 미카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변명했다. 

 

"우리 부소장이 슬슬 새 굿즈 맹글 때라꼬 막 쪼니께 내도 시간 날 때마다 좀 찾아 둬야칼 거 같아서… 근데 내 영국이고 빅토리아 시대고 머고 아는 기 있어야지, 스승님마냥 서양 역사를 좔좔 읊고 있는 기 아이니께 할 때마다 새로 조사해야 칸다 아이가." 

"후후, 미카링이 전담하는 Valkyrie의 굿즈는 아무래도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한다고 다들 생각하니까~. 그래서 미카링, 이번엔 뭘 만들지 어느 정도 구상이 됐어?" 

 

미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책을 보면서 스케치북에 계속 그리던 것을 리츠를 향해 살짝 펼쳐 보였다. 아직 자신이 없는지 수줍게 웃으면서도, 또 누군가가 보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던 듯했다. 

 

"응아, 내 사실은…."

*** 

 

 

짧았던 일본 체류 기간 동안 빡빡한 일정 때문에 미카를 미처 만나지 못했던 것은 아쉽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다소 신선한 만남이 있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자신들의 지난 라이브 동영상을 모니터링하던 슈는 문득 가방을 뒤져, 얼마 전 아이라에게서 받았던 Valkyrie의 사진 굿즈 몇 장을 꺼냈다. 실제 스튜디오 촬영에서 찍은 기억이 있던 장면도 있었고, 실제 라이브 장면을 촬영했는지 낯선 각도에서 찍힌 모습도 있었다. 

 

"항상 표정에 신경을 쓰라고 그렇게 말하거늘, 여전히 긴장이 풀리면 한심한 얼굴이 되는군…." 

 

자신의 옆에 늘 함께 찍혀 있는 미카의 얼굴을 보면서 슈는 나직이 중얼거렸지만 그 표정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 무대에 서면 희열에 도취되고 마는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라는 그 외에도 이것저것 더 주고 싶어 했지만 타인의 물건을 함부로 마구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그 전부가 나중에 코즈프로에서나, 아니면 미카에게서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물건이다. 당초에는 정신이 없기도 했고 아이라가 갖고 있던 물건들이 워낙 신기해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기 유닛의 굿즈를 타인에게서 선물받는다니 기묘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슈는 중복이라는 사진 몇 장을 프랑스의 친구들에게 나눠 줄 생각으로 양도받고, 그리고 특별한 한 가지 물건을 더 손에 넣었다. 아니, 이것은 빌렸다고 하는 편이 좋을까. 

 

-아! 로켓 펜던트가 마음에 드세요? 역시 이츠키 선배, 안목이 있으시네요! 아, 그치만 그건 수주 한정생산 굿즈여서 저도 간신히 구했던 건데…. 

 

가느다란 사슬에 달린 큼직한 펜던트는, 튀어나온 꼭지를 누르면 톡 소리와 함께 열리며 그 속에 들어 있는 사진이 튀어나온다. 슈는 로켓 안에 들어 있는 미카의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가며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전용 의상'을 입고 있는 미카는 공허한 얼굴로 마치 금방이라도 나풀나풀 날아가 버릴 듯, 그야말로 까만 나비 같았다. 특별히 낯선 사진은 아니었는데도 그 안에 들어 있으니 어째서인지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 일본에 돌아오게 되면, 그때 반드시 돌려주겠다는 것이야. 

 

물건의 주인인 아이라가 다소 망설이는데도, 평소 같았으면 남의 물건에 이렇게까지 집착하지 않았을 텐데도 슈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에서 무척이나 간절하고 애타는 기분이 느껴졌는지 아이라는 '아뇨, 괜찮아요! 가, 가져가셔도 돼요!'하고 다급히 미카가 들어 있는 펜던트를 집어 슈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 작은 물건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 들어온 순간 슈는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안도감을 느꼈다. 

 

-그나저나 Valkyrie끼리는 정말 통하는 게 있나 봐요. 그거, ES 아이돌 전원 몫이 판매되고는 있지만 사실은 카게히라 선배가 처음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게 된 굿즈라던데 말이에요. Lo~ve! 

-이 로켓 펜던트가? 

-네, 디자인도 정교하고 섬세하잖아요? 

 

그 말에 새삼스럽게 들고 있던 펜던트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금빛 금속에 세밀한 장식은, 굳이 따지자면 미카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가까웠다. '카게히라 미카 디자인'이 아니라 'Valkyrie의 굿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기 때문일까. 그 작은 목걸이가 한층 더 사랑스럽게 느껴져 슈는 엄지로 미카의 작은 얼굴을 한 번 쓸었다. 

그 목걸이가 지금, 슈의 목에 걸려 있었다. 사슬에 걸려 늘어뜨려지고, 뚜껑을 덮어 안전해진 자그마한 미카가 슈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맞닿아 있었다. 

슈는 그 위로 손바닥을 덮어 가슴을 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 

이것은, 내가 가질 수 있는 '나의 카게히라'.

 

***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 슈?" 

 

파리의 학우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던 도중, Valkyrie의 굿즈를 꺼내 보여 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파트너의 사진이 들어 있는 로켓 목걸이가 기이하게도 유달리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슈 앞에서 학우들은 자기들끼리 의미심장하게 눈짓을 주고받았고 대표로 마리가 그렇게 말했다. 슈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희는 안다는 말인가?" 

"그럼, 알고말고. 슈, 로켓 펜던트는 고대에 부적으로 사용되던 물건이야." 

"부적?" 

"정확히 말하면 액막이. 소중한 무언가를 외부의 위협, 악마, 사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지." 

 

마리의 말에 슈는 가슴이 철렁했다. 옆에서 가브리엘이 거들었다. 

 

"오오, 슈! 사랑은 맹목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맞군그래. 아모르를 지켜주고 싶지만, 곁에 있을 수 없으니 그 상징을 작게 만들어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일. 또한 그것이 자신에게 지극한 안도감을 선사하는 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잖아. 무슨 의미겠어?" 

"물론 그 행위가 상대를 실제로 보호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후후, 자기만족이란 거지. 하지만 사랑은 원래 자기만족이니까." 

 

나란히 떠들어대는 가브리엘과 마리 앞에서 슈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이 화제 앞에서는 귀를 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거의 자신에 대한 처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파리의 학우들이 과거 유메노사키에서 벌어졌던 일을 알 리 만무하다. 그들은 그저 본래 로켓 펜던트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슈에게는 그 말이 여러 겹 더 두터운 의미로 다가왔다. 

안전한 곳에 넣어 두고, 늘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도록 감시하며 보호하는 것만이 사랑일까? 

마리의 말대로 결국 그 모든 행위가 자기만족에 불과했으며 그것이 파국을 불러오고 말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슈로서는 결국, 귀를 막는 대신 눈을 질끈 감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했던 로켓 목걸이가 지금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증거품인 것만 같았다. 

커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아가 불쑥 말했다. 

 

"하지만 슈, 그걸 처음 제작한 건 네 파트너라면서? 결국 상대방도 같은 마음으로 만든 것 아닐까? 너무 자기만족이라는 말에 매몰되지 마." 

 

미아의 말에 슈는 정신이 들었다. 그랬다, 이것은 양산품이기는 하나 미카의 마음이 깃든 물건이다. 자신은 미카의 사진이 든 펜던트만 빌려 왔지만, 미카 쪽에서는 또 슈의 사진이 든 로켓 목걸이를 가지고 있을 터. 결코 일방적인 마음이 아니다, Valkyrie의 사이는. 

 

 

 ***

 

 

"로켓 펜던트? 좋은데~. 나도 마~ 군으로 만들어서 갖고 싶다~." 

"응헤헤, 부소장한테 허락 받으믄 ES 전체에서 맹그는 것도 가능할끼다. 실은 내 사심이 잔뜩 들어 있는 긴데, 마 리츠 군 반응 보니께 나쁘지 않을 거 같구마." 

 

리츠가 미소를 지으며 곁으로 다가와 스케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심이라~ 역시 '스승님' 씨의 사진을 목에 걸고 다니고 싶다는 거? 미카링, 원래도 사진 들고 다니지 않았어?" 

"응아, 그건 글치만… 그, 이래 말하믄 리츠 군 쪼매 괴상하다꼬 생각할지도 모리는데…." 

"미카링의 괴상하고 귀여운 취향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젠 무슨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는답니다~." 

"응아아…." 

 

리츠의 말에 미카는 다소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순순히 입을 열었다. 

 

"책 보다가 안 긴데… 로켓 목걸이가 옛날에는 어무이가 아를 고아원에 버릴 때 걸어 주는 물건이었다 카드라." 

 

리츠의 표정이 굳어졌다. 

 

"결혼을 안 해서, 남편이 없는 채로… 아를 낳아도 키울 수가 없어가 일단 고아원에 놔두고 가지마는, 내 언젠가는 니를 꼭 찾으러 올끼다… 카는 의미로 반쪽짜리 로켓을 걸어 주고 갔다고 씌어 있드마, 몇 백 년 전 서양 얘기지마는. 그카고 나중에 맞춰 보고 모자 관계를 확인하는 기제." 

"미카링." 

"내는 마 이제 와선 솔직히 찾는다꼬 머가 바뀔까 싶데이. 내 이맹키 TV에도 나오고 하는데 아즉까지 연락이 없는 거를 보믄 진짜 찾을 생각이 없는 거 아이가. 그니께 그거는 됐꼬, 그래 책 보다가 그 부분을 보고 내는 로켓 펜던트에 스승님 사진을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제." 

"…." 

 

미카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그곳에 파리로 열린 문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응아, 내 우야노… 어데로 가야 하노… 하고 울고 있을 때, 누가 로켓 까보고 확인해서리 내 손을 잡고 스승님 옆으로 델따주믄 좋겠구마, 그런 맴으로 하나 장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데이. 하다못해 어데서 잘못 헛디뎌서 객사를 하더라도 목걸일랑 남아 있응께, 누가 뼈라도 주워가 스승님한테 갖다 주믄 좋겠다는 생각으로… 응헤헤, 이거는 여그저그 민폐겠제?" 

"…미안해, 미카링." 

"리츠 군이 와 미안한데? 암튼 내, 이런 소리 하기 쫌 챙피해서 말 몬했던 기다. 하아, 캐도 마 털어놓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구마." 

 

미카는 웃으면서 말하는데도, 리츠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정말로 길 잃은 아이가 울상을 짓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스승님은 굿즈는 잘 모르니께 내 혼자 이래 맹그는 기제, 무신 맘으로 맹그는지 알믄 쫌… 너무 무겁게 느껴질 테니께, 비밀이데이." 

 

 

 ***

 

 

"시라토리, 억지를 부려 가져가서 미안했다는 것이야. 자, 돌려주겠다. 그리고 이건 감사의 선물이다." 

"와아…! 소문으로만 듣던 이츠키 선배의 프랑스 선물을 받다니, 태어나길 잘했어…!" 

 

돌아온 펜던트보다도 슈가 건넨 다른 선물을 보고 아이라는 눈물을 흘릴 만큼 감격했다. 그리고 선물을 열심히 풀어 보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문득 로켓 목걸이를 집어들고 딸깍 열어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츠키 선배가 이 로켓을 가져가시고 나서 얼마 전 ALKALOID의 라이브에서, 저희끼리 로켓 목걸이를 걸고 공연했거든요오." 

"음? 굿즈를 착용하고?" 

"네, 뭐랄까… ALKALOID는 병정 콘셉트잖아요? 그래서 전장에 나서는 병사처럼, 이 로켓 목걸이 속에 연인의 사진을 넣는 연출을 시도해 봤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결국 로켓 안에 들어 있는 건 유닛 멤버들의 사진이었지만… 아이돌 팬들은 원래 그런 걸 좋아하니까아, 아하하." 

 

아이라의 이야기에 슈는 저도 모르게 턱을 어루만지며 그 말을 되뇌었다. 묵직한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기분이었다. 

 

"…전장에 나서는 병사처럼, 로켓 목걸이 속에 연인의 사진을…." 

"네! 사실 전혀 생각도 못 하던 부분이었는데, 이츠키 선배 덕분에 아이디어를 얻었던 거죠! 그 덕분에 오히려 제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정도예요!" 

 

아이라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지만 그 이야기는 거의 귓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슈는 대충 고개를 가로저은 뒤 아이라와 헤어져 성주관 안을 돌아다니며 미카를 찾았다. 어차피 만날 예정이기는 했으나 어째서인지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지고, 한시라도 빨리 어서 만나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참 이상하게도. 

 

"카게히라, 카게히라." 

"응아? 스승님, 약속 있다 안했나? 빨리 왔네."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슈를 보고, 공유 주방에서 리츠와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미카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 가슴팍에서 낯익은 로켓 목걸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슈는 어째서인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카게히라." 

"스승님?" 

 

리츠의 눈이 동그래지는 가운데 슈는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어버린 기분으로 미카를 끌어안았다. 이 유한한 삶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이 전쟁터에서 연인의 얼굴을 그리며 눈을 감기 직전에 꾸는 꿈이 아니라고 누가 확언할 수 있을까. 저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포연의 냄새까지 코끝에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당황해서 굳어졌던 미카가 금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슈의 등을 토닥였다. 

 

"와 그라나? 스승님, 오늘은 우짠 일로 어리광쟁이가 다 됐네… 착하지, 착해. 미카 형아가 다 받아주꾸마. 머선 일이 있었나, 얘기해 도." 

"카게히라…." 

 

슈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충동이었으나, 미카를 품에 안자마자 방금 전까지의 갈급함이 깨끗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등을 토닥이는 미카의 작은 손바닥 온기를 느끼다 보니 가빴던 호흡도 차츰 가라앉고,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자 코앞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리츠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바람에 슈는 펄쩍 뛰었다. 

 

"미카링~ '엄마 찾아온 아기'가 과연 어느 쪽일까~?" 

"시, 실례하겠다는 것이야!" 

 

귀까지 붉어진 슈가 발걸음을 잽싸게 돌리자 미카가 "응아아, 리츠 군 미안타! 스승님! 같이 가재이~!"하면서 허둥지둥 뒤따라왔다. 

 

"스승님! 스승님! 오늘 진짜 와 그라는데!" 

 

사람이 없는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던 슈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서더니 뒤를 홱 돌아보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같이 멈춰 선 미카의 가슴팍에서는 여전히 낯익은 로켓 목걸이가 흔들렸다. 

슈는 말없이 그것을 집어들고 딸깍, 소리와 함께 열어 보았다. 

물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슈 자신의 사진이었다. 의기양양하게, 당당하게, 늠름하게, 자신감 넘치는 제왕의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굿즈는 네가 발안해서 만든 거라고 들었다." 

"응아? 로켓? 응, 그건 맞는데…." 

"무슨 마음이었지?" 

 

미카는 당황했다. 그야말로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리츠에게는 전부 털어놓았던 이야기였으나, 눈앞의 슈에게는 들려주고 싶지 않았던 사정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추궁하기 시작한 슈에게는 대충 둘러대는 말도, 작정한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미카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전부 이야기했다. 

 

"…시체에 남아 있는 로켓 사진으로, 죽어서도 나를 찾아오기 위해서…." 

"으, 응아! 역시 스승님한테는 너무 무겁제? 부담스럽제? 으으…. 걍 이자뿌라! 제발!" 

 

얼굴을 가리고 몸부림치는 미카를 멍하니 바라보며 슈는 생각했다. 자신이 고작 영화 속에서나 본 전쟁터를 떠올릴 때, 미카는 현재 삶 속에서의 진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먼 곳에 있는 죽음과, 늘 피부 곁에 존재하는 죽음. 그 새까만 머리카락만큼이나 새까만 심연. 슈로서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그만큼이나 느껴볼 일이 없을 실감. 

 

"그렇다면 무대 위에서 함께 죽자꾸나, 카게히라." 

 

슈는 자신의 입 밖으로 스르르 흘러나온 그 말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무언가에 씌이기라도 한 듯, 입술이 저절로 말을 계속 엮어나갔다. 

 

"이런 로켓 목걸이 같은 것이 필요치 않을 만큼 늘 곁에 있으면서, 죽을 때는 무대 위에서 예술에 휘감긴 채 늘 함께. 네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 일도, 내가 너를 찾아 정신없이 뛰어올 일도 없을 만큼… 언제나 함께." 

 

어쩌면, 자신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어깨 너머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인 양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인데도 그 개념은 한 겹 베일에 싸인 것처럼 아직 불투명하고, 확고하지 않다. 그런데도 왠지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이런 증표 따위를 나누어 갖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려 계속해서 애쓰고 있기에. 

미카는 눈동자를 여러 번 깜박이며 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침내 웃었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곁에 있어 줄 것도 아이믄서, 말은 잘 하는구마." 

"카게히라…." 

"응아아, 캐도 마, 스승님이 글케 말해 줘서 내 얼매나 행복한지 모른데이. 응후후, 그라믄 마, 내가 혹시 해골이 돼서 돌아오거들랑 머리맡에 놔둔다꼬 약속만 해 도. 벌써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서 몸서리가 쳐진다 안카나." 

 

아아, 아직도 이 아이는 너무 멀다. 

로켓 목걸이에 들어 있는 자신의 사진이 오히려 미카의 생생한 심장 소리를 더 또렷하게 듣고 있는 것만 같아, 슈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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