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아침식사 맛있게 하세요

#크루아상 #오해 #개그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름 있는 모브 있음

파리의 고요한 주택가 골목 깊은 곳에 있는 빵집 'Le temps des Fleurs'는 규모는 작지만 늘 갓 구운 신선한 빵을 이른 아침부터 판매하는 소박한 가게다. 큰길가로 나가면 루이 15세 때부터 운영했다는 둥,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영상이 자주 올라간다는 둥, 또 관광객들이 줄지어 찾아온다는 둥 여러 이유로 오래되고 유명한 빵집들이 많지만  'Le temps des Fleurs'는 손님들의 얼굴과 이름을 전부 외울 수 있을 만큼, 정말로 이웃에 사는 단골들만 찾아오는 곳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낯선 동양인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 오렐리는 깜짝 놀랐다.


"…크루아상 하나 주세요."

향긋한 밀가루와 버터 냄새가 풍기는 크루아상 하나를 종이봉투에 넣어 건네자, 아직 따뜻한 그것을 자못 귀중한 무언가처럼 품에 안고 돌아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오렐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뭐, 가끔 길을 잘못 들어 이 골목으로 발을 들이는 이방인도 있으니까, 하고 금세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남자는 아침마다 'Le temps des Fleurs'를 찾아와 똑같이 크루아상 한 개만을 사갔다. 대체로 아침식사용 빵은 가족 수만큼 사가는 경우가 많았으니, 혼자 사는 사람인 모양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혼자 살기에는 집세가 꽤나 비싼 구획이기는 하지만 파리에 사는 동양인들은 대부분 돈이 많다고들 하니까…. 오렐리는 차츰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세 번째로 찾아왔을 때, 오렐리는 말을 걸었다. 


"최근에 이 근처로 이사 왔어요?"

남자는 약간 움찔한 눈치였으나 그간 오렐리가 다른 단골들과 친근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몇 번 보았기 때문인지, 아주 잠깐 망설이다 능숙한 프랑스어로 대꾸했다.


"…유학생입니다."

"그렇구나. 우리 집 빵, 입에 맞아요?"

그 말에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크루아상을 맛보았지만, 이곳이 가장 맛있더군요."

"응후후… 고마워요. 난 오렐리예요. 당신은?"

"…친구들은 모두 슈라고 부릅니다."

"슈? 이거?"

오렐리가 진열장에 놓여 있는 바닐라슈를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묻자, 안면 근육이 웃는 모습을 띠어 본 적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남자의 얼굴에 뜻밖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도, 이곳에서 처음 이름을 밝혔을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때 다른 단골이 문을 열고 들어와, 오렐리는 그쪽으로 신경을 빼앗겼다. 슈도 적당히 대화를 끊을 때라고 생각했는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품에 따뜻한 크루아상 봉투를 안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가게를 나갔다.

매일 아침 찾아와 크루아상을 딱 한 개만 사서 돌아가는 핸섬한 동양인 유학생. 오렐리의 마음속에서 슈는 그런 인상으로, 자연스럽게 또 한 명의 단골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매일 아침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1주일, 또 어떤 때는 2주일이나 한 달씩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타났을 때 조금 궁금한 마음에 어디 갔었느냐고 물으니 모국에 다녀왔다는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 돌아와 오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대답 직후, 쓸쓸하게 눈을 내리까는 모습에 오렐리는 마음속으로 짚이는 데가 있었다.

'모국에 귀여운 연인이 있구나.'

수줍음 많은 동양인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얼핏 들은 적이 있기에, 오렐리는 남의 연애사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면서 미소와 함께 늘 그렇듯 크루아상 하나를 내밀었다.

***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평소와 다름없이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열던 오렐리는 가게 밖에서 숨을 몰아쉬는 어느 낯선 소년을 보고 움찔했다.

"소, 손님?"

"보, 봉주르라예! 하아, 하아… 크루아상… 주이소…."

검은 머리에, 양쪽 눈동자 색이 다른 그 동양인 소년은 사람이 빵집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고쳐 말했다.

"크루아상, 두 개, 주세요."

더듬더듬 서툰 프랑스어였으나 어차피 빵집을 찾아와서 할 만한 말은 뻔했으므로 못 알아들을 것도 없었다. 오렐리는 서둘러 오늘의 첫 손님인 소년을 안으로 들였다. 소년은 진열장 안에 가득한 색색의 빵과 디저트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오렐리를 보더니 다소 흐려진 표정을 지었다.

"금발… 서양인형맹키로 이쁜 누나…."

"응?"

또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기에 오렐리가 고개를 갸웃하자 소년은 또 다급히 고개를 마구 내저으며, 돈을 지불하고 향긋한 크루아상 두 개가 든 종이봉투를 소중히 품에 받아 안았다. 눈에 익은 그 모습을 본 오렐리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혹시, 슈의 친구?"

"응아아?"

대단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외부인이 그리 빈번히 드나드는 동네가 아니다 보니, 마찬가지로 동양인이라면 혹시 슈와 안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생각에 던진 질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프랑스어여서인지 그 말을 알아들은 듯한 소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이름도 알고… 역시 스승님, 저 누나 보러 일부러 여꺼정 찾아오는 긴가…."

이번에도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중얼하던 소년이 잠시 머뭇거리다, 종이봉투를 열어 두 개의 크루아상을 내보였다. 그리고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슈."

그리고 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오렐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식사 맛있게 해요."

소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뒤 가게를 나가자, 안쪽 뒤에서 빵을 굽던 오렐리의 남편이 고개를 내밀었다.


"당신,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응후후, 남의 연애사를 아주 작은 창문으로 살짝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야."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쨌든 사랑스러운 아내가 기분이 좋아 보였으므로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한 뒤 다시 작업으로 돌아갔다.

***

"으, 응아아…!"

프랑스에 슈 취향의 인형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설마 단골 빵집 주인이 그 대상이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얼굴을 보러 매일 드나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 아닌가. 풀이 죽은 미카는 아픈 가슴을 안고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덜터덜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유리창 안에서, 아까는 없었던 검은 머리와 수염을 지닌 어떤 훤칠한 남자가 빵집 주인에게 키스를 하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던 것이다.

"우, 우야노! 스승님! 저 누나, 남친 있데이! 응아아, 남편인가… 아, 암튼 큰일났구마! 스승님은 이거 아는 기가? 알믄 또 속상할 텐데에…."

자신보다 슈가 상심할 것이 더 걱정된 미카는 이 중대사를 과연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오는 길도 슈에게 정말로 지나가듯 들은 이야기를 단서 삼아 겨우 찾아온 입장이었기에, 당황한 미카는 그만 슈의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낯선 거리 이곳저곳을 한참이나 헤매다 겨우겨우 아파르트망에 도착한 미카가 기진맥진한 채 문을 열려는데 눈앞에서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카게히라!!!"

"응아, 스승님. 일어나기 전에 돌아올라꼬 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모르는 파리에서 혼자 어딜 가려 했었던 것이야!!"

쩌렁쩌렁한 슈의 고함이 복도에 하나 가득 울려 퍼졌다. 주말 아침이라 한창 자고 있는 이웃집 사람들이 깰지도 몰라 미카가 허둥지둥 슈를 현관 안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자,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슈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사나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크, 크루아상 사러 갔었데이. 스승님 단골이라는 데…."

"크루아상?"

품에 소중히 안고 왔지만, 막 샀을 때 따끈따끈하던 크루아상 두 덩이는 벌써 식어버렸다. 미카가 울상을 지으며 종이봉투를 내밀자 그 속을 들여다본 슈가 맥이 풀린 얼굴로 받아들었다.

"그럴 거면 말을 하라는 것이야. 길도 잘 모르면서 무모하게 혼자 나서다니, 이 모자란 녀석 같으니."

"스승님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작업하지 않았나? 일어나기 전에 내 사다놀라꼬 했데이. 아침, 맛나게 묵었음 하는 마음에…."

"하아…."

슈가 등을 돌리고 침실로 돌아가는 바람에 미카는 놀라서 쪼르르 따라갔지만,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나가 있으라는 것이야!"하는 호통에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그러고 보니 슈는 아직 잠옷 차림이었다. 설마 저 모습으로 자신을 찾으러 밖에 나가려 했던 걸까.

한숨을 쉬며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슈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찬장에서 홍차 캔을 꺼내는 손길이 그리 거칠지 않은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금세 아까 보았던 빵집 유리창 안에서의 키스가 떠올라, 금세 미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최대한 충격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멀리 돌려서.

"또 무얼 우물쭈물하고 있느냐는 것이야. 어서 자리에 앉거라."

슈의 목소리는 아직도 조금 토라진 음색이었지만 그래도 홍차를 우리는 동작은 정성스러웠다. 조심스레 잔을 받으며 미카가 입술을 떼었다.

"스, 스승님. 이거는 내 일본서 본 영화 얘긴데."

"음?"

"조, 좋아하는 사람헌티… 사실은 애인이 있었다는 기를 알게 되믄… 스승님은 우얄 거 같나?"

맞은편에 앉아 양손으로 다 식은 크루아상을 찢던 슈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것은, 정말로 영화의 이야기가 맞는 건가?"

"응아! 응! 여, 영화 줄거리데이!"

설마 빵집 주인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 채지는 않았겠지. 미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이나 미카를 응시하던 슈는 코웃음을 쳤다.

"내게는 불필요한 걱정이로군."

"으, 응아아… 역시 스승님은 자신감 빼믄 시체제…."

이래서야 말해 보았자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 미카가 맥이 빠져서 고개를 푹 숙이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찢던 크루아상 조각을 놓친 채로 얼어붙은 슈의 얼굴이 있었다.

"카게히라, 설마… 내가 그런 걱정을 할 필요성이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야?"

"그, 그게…."

"내게 숨기는 일이라도? 농! 비밀은 허용할 수 없어! 솔직히 말하거라, 카게히라!"

"응아, 응아…."

미카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경애해 마지않는 스승님이 인형처럼 아름다운 빵집 주인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저렇게까지 큰 충격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연인 또는 남편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하자니 스승이 받을 충격을 경감시킬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계속 모르게 내버려두자니 스승이 너무 가엾다. 어쩔 도리를 알 수가 없어 미카가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데 슈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답례제 이후, 그리고 인형에서 사람으로 만든 뒤 너를 일본에 혼자 두고 오면서,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염두에 두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한낱 스승이자 유닛 멤버일 뿐인 내게 온전히 막을 권리도 없겠지…. 그래서 카게히라, 어떤 사람이지?"

"그, 키도 크고, 머리랑 수염은 검고…."

"수염! 남자란 말이냐? 흐으음… 얼굴은 어떻게 생겼지? 직업은? 나이는? 만난 지 얼마나 되었지?"

생각지 못했던 슈의 질문공세에 미카는 당황해서 횡설수설 대답했다.

"지, 직업은 잘 모르겠고, 얼굴도 잘 안 보였는데에…. 딴 것도 다 사생활 아이가, 내는 모린다. 얼매나 만났나 내 우예 아노?"

슈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미카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짜 잘 안 보였데이! 미안타, 스승님! 그치만 내는 키스하는 모습만 얼핏 본 기 전부라…."

"키스?! 누구랑 누가?!"

"그, 빵집 누나랑 수염 아재!"

"뭐?"

"응?"

홍차가 어느덧 다 식어버렸다.

***

다음날 이른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빵집 문을 연 오렐리는 어제 보이지 않았던 슈가 나타난 것을 보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는 희미한 미소로 마주 인사하던 슈가 어째서인지 살짝 눈을 피하는 눈치였지만 오렐리는 그 모습에 더욱 환한 표정을 지었다.


"크루아상 두 개. 아, 그리고 이 마카롱도 한 상자."

"올랄라."

오렐리가 한쪽 눈을 살짝 깜빡했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크루아상 하나를 집게로 집어, 커다란 동작으로 봉투에 넣었다.


"슈."

그리고 마찬가지로 크루아상을 하나 더 집어, 봉투에 넣었다.


"달링?"

벽창호 같던 청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어버렸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따뜻한 크루아상 두 개가 든 종이봉투, 그리고 예쁘게 포장된 장미향 마카롱 상자를 소중히 들고 돌아서는 슈의 뒤통수에 드물게도 약간의 까치집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오렐리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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