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숙면기계

#SSVRS #여름 #상실감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에어컨이 고장난 수예부실은 너무 더워 땀이 줄줄 흐른다. 소매 없는 하복도 끈적한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니토는 이제 오지 않는다. Ra*bits인가 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과 새로운 유닛을 만들어 활동하는 중이다. 뭐, 상관은 없다. 그 녀석이 없어도 1학년 때는 개인 명의로 혼자 활동했으니까. 아름다운 뮤즈와 잠깐이나마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행운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겠지.

그렇지? 

옆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원래 아무도 없었는데, 왜 돌아보았더라?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손을 내려다보았다. 정교하게 짜고 있던 레이스는 마드무아젤의 새 드레스에 사용할 예정이다. 자그마한 인형옷용 레이스는 그만큼 신경을 써서 섬세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잡념을 없애고 집중하기에는 딱 좋았다. 심두멸각, 작업에 열중하면 더위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 계속해서 바늘을 놀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꽤나 오랜만에 보는 교사의 얼굴이 있었다.

"이츠키-. 등교했으면 교실에 들러서 얼굴 좀 비춰라. 아무리 부실 등교도 출석으로 인정된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원래 와 있어야 할 곳에 와야 하는 것 아니냐-."

살짝 고개를 숙이고 레이스만 들여다본다. 대화할 가치조차 없다. 

교사가 문 앞에 서서 한참 무어라 떠들어댔지만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용해진 것을 보니 지쳐서 포기한 모양이었다.

"어이, 이츠키-."

"슈 군, 잠깐 괜찮을까요?"

"슈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키류가, 아오바가, 카나타가 문 앞에 교대로 나타났지만 상대하지 않자 마치 스크린 속의 등장인물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그 누구와도 말을 섞을 생각이 없다. 어쩌면, 그럴 기력이 없는지도 모른다. 

귀찮아하며 전부 쫓아내고, 목이 마르자 어째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책상에 손을 뻗게 된다. 누군가가 멋대로 끓여놓은 홍차가 적당히 식은 채 놓여 있을 줄 알았는데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왜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옆을 돌아보니 익숙한 마드무아젤만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래, 마드무아젤의 옷을 만드는 중이었지. 여름이니까 시원하게, 하지만 지나친 노출이 없도록. 아름답고, 고상하고, 우아하며, 기품 있는.

누구였더라? 마드무아젤의 옷만 만들어 주다니 치사하다고, 부럽다고. 옆에서 계속 투덜대던 게.

여전히 알 수 없는 답답함을 가슴에 품고 작업에 열중하다 보니 문득 수예부실 안이 어두컴컴해진 것이 눈에 띄었다. 환한 낮부터 바느질에 몰두해 있어 차츰 해가 지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이제 그만 일어나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마드무아젤의 여름 새옷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그러고 보니 늦는다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을? 누구에게? 

가족은 하교가 좀 늦는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 방임주의의 그 분위기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고독과 자유를 동시에 가르쳐주었다.

어두운 별채에 오도카니 앉아 있을 누군가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소리 죽여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별채? 왜지? 안채에 멀쩡한 내 방이 있는데?

아직도 조작이 서투른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스스로가 뭘 하고 싶은지 몰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누구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려 했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방을 챙겨 들고, 한 팔에 마드무아젤을 안고 어둑어둑한 하굣길을 걸어갔다. 이미 학생들은 전부 집에 가고 없는지 귀가하는 다른 학생들은 통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진 후에는 밤눈이 어두우니까 손을 잡아 줘야지. 손을 잡아 주면, 참 좋아했지.

그렇게 생각하고 또 무심코 옆을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다.

아무래도 오늘의 자신은 이상하다.

***

새벽녘 무렵 마치 새가 지저귀는 듯 고요한 노랫소리를 들었던 느낌도 들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유롭게 수면을 취하고 아침에 눈을 떴어도 썩 개운치가 않았다. 등교 준비를 하는데 무심코 2인분의 아침식사를 차린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소식하는 자신으로서는 의아한 느낌이었다. 당황스러워 마드무아젤을 바라보니 늘 그렇듯 의미심장한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찌는 듯 더운 날씨라 아침부터 집 밖으로 나오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손이 묵직하게 느껴져 내려다보니 어째서인지 도시락을 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침 준비하면서 멍하니 챙겼던 것 같다. 날이 더워 입맛도 없고, 원래도 공복을 잘 느끼는 편이 아니라 특별히 점심을 챙겨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길바닥에서 도시락통을 열어 보니 자신이 크게 좋아하는 메뉴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메뉴 자체는 낯이 익었다. 근거는 없지만, 이런 도시락을 자주 쌌던 기억이 났다. 영양 밸런스를 최선으로 고려하면서 맛도 빠뜨리지 않게끔, 무척이나 신경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런 일을 무의식적으로 해냈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바닥에 아지랑이마저 어른거릴 정도로 더운 공기 속에서 문득 고개를 드니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하늘과 뭉게구름에, 문득 그 선명한 아름다움을 옆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그 아이라면 저 투명하리만치 전형적인 풍경에서 무언가 그로테스크한, 신선한 감상을 끌어낼지 모른다.

"아, …."

하지만 여전히 옆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대체 누구를 찾고 있는 걸까?

***

분명히 에어컨 수리를 부탁해 놓았는데, 오늘도 수예부실은 땀범벅이 될 정도로 덥다. 어제 왔던 교사나 친구들의 말대로 교실에 돌아가면 시원할지도 모르지만 물리적 온도가 내려갈지언정 그곳은 도저히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시간이 되었기에 이곳에서 점심 준비를 한다. 본래 주인을 찾지 못해 들려 보내지 못한 도시락이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뚜껑을 열고 늘어놓으니 그 누구인지도 모를 상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적은 양의 음식이 의아한 듯 이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그렇겠지, 이 음식의 주인은 본디 내가 아니므로. 

그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마련했던 도시락은 자신의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자꾸만 안쪽에 켜켜이 쌓이기만 한다. 기계적으로 씹어 삼키고, 또 씹어 삼키다 보니 어제 마시지 못한 홍차가 간절해진다. 그 공간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눈으로 이미 그 공백을 보고 있는데도 손이 자꾸만 책상 위를 더듬는다.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다. 수분 한 방울 없이 바싹 말라버린 목구멍이 조여들며 점막이 서로 달라붙는다. 더워서 땀은 계속 나는데, 이곳에는 마실 물 한 모금이 없다. 

네가 없다.

─삐이─!

문득 머릿속에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퍼져 슈는 눈을 번쩍 떴다. 잠시 자신이 어디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벅이고 있는데, 누워 있던 등받이가 위잉 소리를 내며 의자 높이까지 올라가고 눈앞에서는 반투명한 해치가 머리 위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옆에서는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 잘 잤나?"

삐걱거리는 소리라도 날 듯한 동작으로 천천히 옆을 돌아보니 밤하늘처럼 새까만 머리카락과 뽀얀 얼굴과 색이 다른 동그란 두 눈이 이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손에는 자그마한 문고본이 한 권. 최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독서하는 습관을 들였다더니, 북 룸에서 빌려 온 서양 고전이라도 읽고 있었던가 보다. 덕분에 조금은 대화하기가 편해진 것도 같다고 바로 며칠 전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카게, 히라."

"낫군~ 스승님 인났데이. 30분 딱 됐네. 근데 이거 진짜 30분에 8시간 효과 나는 거 맞나? 스승님 눈 벌건데."

미카가 태평하게 뒤를 돌아보며 나츠메를 불렀다. 하얀 가운 차림의 나츠메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콕핏 모양의 기계 안에 아직도 멍하니 앉아 있는 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글쎄, 사실 아직 프로토타입 수준이라 소프트웨어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지는 않Go… 지금 피험자도 그리 많지 않아서 슈 형이 피드백을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Ah. 슈 형, 기분은 좀 어Ttae?"

"…꼬맹이."

한 살 아래인 두 아이들의 얼굴을 교대로 쳐다보니 방금 전까지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랬다, 자신은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한창 일할 대낮 시간에 잠이 들었던 이유는, 이즈음 들어 많이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역시 시차로 인한 컨디션 불량 때문이었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를 오가는 미카도 곧잘 하품을 했지만 그래도 틈틈이 고양이처럼 구석에 웅크려 앉아 꾸벅꾸벅 잘 자는 반면, 슈는 불면의 형태로 애를 먹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것을 걱정한 미카가 나츠메에게 상담하니, 마침 SSVRS의 개발 과정에서 숙면을 유도하는 부가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므로 한 번 시험해 보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던 것이다. 방금 미카가 말했던 대로 이 기계에 누워 잠이 들면 30분만 자도 8시간을 푹 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는─묘하게 과장광고 같은 그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하는 막연한 기대로 콕핏형 머신에 몸을 뉘였고, 미카는 충직한 강아지처럼 그 옆에 야무지게 꼭 붙어 앉아 잠든 스승의 곁을 지켰다. 그 현실이 눈사태처럼 와르르 머릿속에 쏟아져 들어왔다.

슈는 고개를 몇 번 흔들어 애매한 선잠에서 깬 직후의 불쾌감을 털어버리려 애썼다.

"이 장치는 대체 어떤 원리로 숙면을 유도하는 것이지?"

슈가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나츠메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 대답했다.

"뇌의 사고 영역 안에서 가장 넓은 범위를 차지하는 부분의 부담을 일시적으로 경감해 주는 방식이Ya. 보통 그게 인간에게 주요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자는 동안만이라도 스트레스를 잊고 지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Eo. 어때, 마음 속에 있던 제일 큰 걱정거리나 고민을 잊을 수 있지 않았Eo?"

옆에 앉아 있던 미카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응아~ 그런 기가? 신기하구마. 근데 글타믄 내는 자는 동안 스승님을 까묵는다는 말이 되니께… 낫군, 내는 절대 이 기계 안 쓸란다. 잠깐이라도 스승님을 까묵고 산다니 내는 죽어도 싫구마."

"미카 군이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Eo. 그래서 권하지 않았Gee."

나츠메가 피식 웃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미카가 슈를 돌아보았다.

"그라믄 스승님은… 머를 까묵었나? 응아, 역시 예술이제? 아니믄 창작? 무대? 스승님의 삶의 보람이 예술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기는 알지마는, 꿈 속에서만이라도 잠깐 잊을 수 있었나? 아이다, 잠 제대로 몬 잔 거 같은데… 역시 예술을 까묵는다는 기는 스승님헌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나?"

"…."

슈는 아무 대답도 없이 미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카는 조건반사적으로 그 손을 내밀어 맞잡고, 힘을 주어 슈가 기계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기계 밖으로 나온 후에도 슈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세게 움켜쥐는 바람에 미카가 순간적으로 "응아!"하고 놀랐을 정도였다.

"스승님? 낫군도 있고… 인제 놔도 된데이?"

하지만 슈는 미카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나츠메를 돌아보았다.

"꼬맹이, 내가 몸으로 겪은 귀중한 경험을 굳이 공유하자면… 나는 전혀 피로가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욱 쌓인 기분이라는 것이야."

"저런, 그건 곤란한De. 미카 군 말대로 예술을 잊는다는 게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나 보Ne?"

"…크흠, 그것이 무엇이든, 어찌되었든… 머릿속에서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을 잊는 것이 숙면을 유도한다는 안이한 발상은 불합격이다. 상품으로 개발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신랄하Ne. 뭐, 슈 형답기는 Hae."

"흥, 네가 우리 '오기인'의 귀여운 막내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제안을 애당초 받아들이지조차 않았을 것이야."

나츠메가 어깨를 으쓱하는 가운데 슈는 아직도 으스러질 듯 잡고 있던 미카의 손을 끌며 실험실을 나섰다. 따라오는 미카가 아파하면서도 "응아아, 손… 꽈악 잡아 주는 기, 너무 좋데이…"하고 얼굴을 붉혔지만, 지금은 징그러운 짓 하지 말라며 야단칠 기분도 아니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스스로도 목적지를 모르면서도 어째서인지 마음만 급했다. 하지만 손바닥 안에 계속 붙잡혀 있는 채로, 슈가 잡아끄는 대로 미카가 졸졸 딸려오는 감촉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허전하게 비어 있던 공간이 간질간질한 액체로 천천히 다시 차올라 심장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었다. 이 55kg의 무게가 부족했던 몽중의 세계, 그것은 슈에게 그저 '불안'을 장황하게 묘사한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복도를 한참이나 성큼성큼 걸어 미카의 무게를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기분을 마음껏 만끽한 후, 겨우 성이 찬 슈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니 미카가 숨을 쌕쌕대고 있었다.

"응아, 하아, 하아. 머 그래 급한 일이고? 자고 인나가 빨리 해야 하는 일이 있드나?"

자신의 행위가 상대에게는 부조리한 처사가 된다는 자각이 있었기에 섣불리 변명의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비록 상대가 웬만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다 받아들여 주는, 기적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갈증이, 든다."

"응아?"

"적당히 식힌 홍차를 좀 준비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야."

미카의 눈이 빛나고, 표정이 환해졌다.

"알았데이! 글고 보니 막 깨서 목마르겠구마. 그치만 빈 속에 바로 홍차는 위가 상할지도 모르니께… 응헤헤, 스승님. 내가 식사 준비해 줄 테니께, 가서 밥 묵재이."

"…네가?"

"내 요새 요리에도 도전하고 있다 안카나! 물론 스승님맹키 맛도 있고 영양가도 있는 완벽한 메뉴는 아이지마는, 캐도 함 맛을 봐 주믄 좋겠구마."

"아아, 응."

어떤 음식을 연습하고 있는지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미카의 목소리가 옆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는 것을 들으며, 슈는 겨우 완성된 세계로 되돌아왔다는 실감을 맛보았다. 길지 않은 삶 속에서 물론 미카가 곁에 있었던 시간은 없었던 시간보다 훨씬 짧다. 하지만 이 익숙함은 불가역적이어서 결코 없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간다 한들, 계속해서 그 빈 자리를 더듬고 있을 것이다. 저 숙면기계 속에서의 자신처럼,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리며.

"그나저나 에어컨 빵빵한 방에서 나오니께 억수로 덥구마. 스승님은 아무렇지도 않나? 역시 우리 스승님은 인간이 아닌기다. 이래 더운데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응?"

그 말에 슈는 몇 차례 눈을 깜박거렸다. 그랬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이 사람들의 건강마저도 해치는 날씨였다. 꿈 속에서도 얼마나 더웠는지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그런데도 잊고 있었다. 미카가 손수건을 꺼내 연신 이마를 훔치며 헤헤 웃는 모습을 보고서야, 완전히 잊고 있던 열기가 정수리부터 쏟아지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아아, 아… 당연히, 덥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 너야말로, 제발 양산을 쓰고 다니라는 것이야. 물론 소중히 보관하는 데 가치가 있는 물건도 있지만, 내가 선물한 양산은 실사용에서 비로소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똑똑히 느꼈겠지."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하지만 슈의 장광설에 익숙한 미카는 거기서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응아, 그래야제." 

갈증을 해결해 줄 상대, 더위도 잊게 해 주는 존재. 

슈는 그 손을 더욱 힘주어 세게 쥐며 다시 성큼성큼 잡아끌고 걸어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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