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Happily ever after
#악마공작과 머미 #마드무아젤 #호수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슈미카_전력_60min
주제: 호수
*악마공작 슈×머미 미카
[어머나, 미카쨩. 그쪽으로 가면 못써.]
"응아, 마드 누이…."
작게 죽인 자신의 발소리만 울려 퍼지는 줄 알았던 고요한 복도에서, 갑자기 뒤에서 고운 목소리가 들려 오는 바람에 미카는 움찔했다. 하기야 조그마한 인형이라면 아무리 따라온다 해도 발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슈 군이 그 문을 열지 말라고 벌써 몇 번이나 말했니. 정말 말을 안 듣는구나.]
"응헤헤, 함만 봐 도. 공작님한테 또 들키믄 내 호되게 야단맞는다 안카나."
[이미 나한테 들킨 시점에서 슈 군한테 들킨 거나 다름없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멀찍이서 어여쁜 소녀 인형 마드무아젤이 작은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여운 미카쨩. 슈 군이 네게 하지 말라는 것은 그 딱 하나뿐인데, 왜 그렇게 그 말을 듣지 않는 걸까.]
미카는 머리에 감긴 붕대 위로 긁적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응아, 모리겠다. 기냥 내 호기심이 많아가 원래 그런갑다 해야제."
악마공작이 산다고 알려져 있는 그 성은 겉보기에는 흉흉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면 깜짝 놀랄 만큼 우아하고 아름답다. 어두운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기조를 이루고 있기에 누군가는 음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미의식이 부재한 자는 이곳에 초대받지 못한다. 애초에 성의 주인이 누군가를 자신의 성으로 부르는 일 자체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가뭄에 콩 나듯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악마공작의 괴짜 친구 정도를 제외하면.
[…그래. 아무튼, 이제 곧 3시의 티타임이야. 자리에 없으면 슈 군이 또 화를 낼 것 같아서 찾으러 왔어. 어서 다이닝룸으로 돌아가자, 미카쨩.]
"응! 마드 누이, 내 안고 가까?"
[그 편이 빠를 것 같네. 부탁할게.]
악마공작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소녀 인형 마드무아젤은 얼마든지 자기 발로 걸어다닐 수 있지만 물론 보폭이 작아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못하다. 멀리서 미카가 금지된 문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쫓아왔지만, 미카가 문 코앞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마드무아젤의 단속은 벌써 몇 번 이루어진 일인지 모른다. 슈의 눈에 직접 띄는 바람에 귀를 잡혀 끌려온 적도 있었다(끝없는 잔소리는 당연히 덤으로 따라왔다). 성 가장 뒤쪽에 있는, 커다란 자물쇠가 엄중하게 채워진 철문. 미카는 어차피 열쇠도 없으면서 자꾸만 그 앞을 서성거렸다.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성 안에 넓게 마련된 아름다운 장미꽃밭에도, 예술적이면서 복잡한 미로정원에도, 그 어떤 푹신한 침대가 있는 화려한 방에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데도 이 아이는 계속 그곳에만 집착했다.
"…3시 1분이다.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것이지?"
"응아~ 미안타, 내 둔해가꼬 걸음이 느리적거려가 늦어뿟다. 공작님, 벌써 홍차 마시고 있었나?"
찻잔을 입에 댄 채 슈가 눈길만 움직여 미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드무아젤을 안고 있는 미카는 딱히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고, 마드무아젤은 속을 모르는 미소만 짓고 있었다.
"…흥. 앉거라."
슈가 고개를 돌리며 말하자 맞은편 자리에 앉은 미카가 얼굴을 환하게 빛냈다.
"하에에~! 이 머꼬? 땡그란 곰돌이 쿠키 한가운데 사탕이 콕 박혔구마! 곰돌이가 사탕을 꼭 껴안고 있는 거 같데이! 참말 기엽다 안하나!"
[미카쨩이 사탕 좋아하니까, 슈 군이 일부러 솜씨를 발휘해서 구웠나 봐. 정말 상냥하다니까.]
"맞데이, 공작님은 세상에서 젤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데이."
"너희 둘의 말에는 지적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로군…."
하지만 달콤한 쿠키와 파이에 표정이 완전히 황홀해지고 만 미카를 본 슈는 찻잔으로 입가를 가린 채 허공을 쳐다보았다.
"내는 세상에서 역시 공작님이 젤루 좋다아~."
[어머나, 나는 슈 군이랑 미카쨩이랑 똑같이 좋은데?]
"응아? 당연히 마드 누이도 세상에서 젤루 좋제~. 응헤헤, 내는 차암 행복하구마~."
커다란 창으로 비쳐드는 햇살과 밝은 웃음소리, 그리고 달콤한 향기. 누구나가 두려워하며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는 시커멓고 음침한 악마공작의 성 안에서 벌어지는 한 장면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
"후후. 슈, 그 아이가 퍽이나 소중한가 보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와타루?"
"아뇨? 전 그냥 당신이 그 귀염둥이에게만 너무 푹 빠져 있지 말고, 오랜 친구인 제게도 관심을 좀 나눠 줬으면 하는 것뿐인데요."
늘 그렇듯 긴 은발을 나부끼며 하늘에서 내려와 악마공작의 성에 무단침입한 와타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슈는 차를 한 모금 마시려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잔을 내려놓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해질 때나 되어야 겨우 얼굴을 한 번 비추는 주제에."
"그런가요? 그래도 슈의 성에는 꽤 높은 빈도로 찾아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인간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인간들 속에서 함께 어울리며 사는 것이 그토록 즐겁다니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또한 예술의 한 형태라면, 내가 더 할 말은 없다는 것이야."
마력으로 얼마든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도 굳이 인간들의 도구를 들여 와 제과제빵 및 요리를 직접 하는 슈, 그리고 크고 훌륭한 한 쌍의 날개가 있는데도 굳이 열기구를 타고 내려오는 와타루는 서로 성격은 다를지언정 통하는 데가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슈를 바라보며 와타루는 싱긋 웃었다.
"하지만 슈, 사랑한다고 아무데도 가지 못하도록 가두어 놓고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은 때로 잔혹한 일이랍니다."
"…."
"푸른 수염 흉내는 즐거운가요?"
"그렇게 부주의하고 어리석고 못난 아내를 맞은 기억은 없다만."
"후후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와타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슈, 두려워할 것도, 미리 겁낼 것도 없어요.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올 테니까요."
"…그 제자리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끝까지 발버둥쳐 볼 뿐이지."
"저런, 오늘은 웬일인지 솔직하군요."
창 밖 장미정원에는 마드무아젤을 품에 안은 채, 계절도 모르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 속에 파묻혀 환히 웃고 있는 미카가 보였다. 슈는 일부러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이 꼭 옳은 방향이리라는 보장도 없고."
"후후후. 옳은 것, 옳은 것. 그 '옳은 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다른 쪽을 돌아보는 게 어쩌면 옳은 것일 수도 있답니다, 슈…☆"
***
"응아… 내 진짜 와 자꼬 일루 오는지 모르겠데이."
정신을 차린 미카는 또다시 그 육중한 철문 앞에 서 있었다. 자물쇠를 몇 번 어루만지다 한숨을 호르르 내쉬며 뒤를 돌아본 순간, 익숙지 않은 상대가 활짝 웃고 있었기에 미카는 깜짝 놀라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누… 누고!"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랍니다! 후후후, 인사가 늦었군요. 이렇게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죠?"
"응아아… 쩌번에 놀러 왔던 공작님 친구분이구마.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데이."
"당신에게는 심장이 없지 않나요?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군요…☆"
"재, 재밌나…?"
미카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와타루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 악수가?"
"네! 저는 이제 곧 이곳을 떠날 거라서요, 친애의 의미로 악수 한 번 어떨까요?"
미카는 응에에에… 하고 망설였으나 결국 슈의 친구였기에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와타루는 그 손을 잡고 경쾌하게 몇 번 흔든 뒤, 가볍게 발걸음을 돌렸다.
"Amazing! 귀염둥이 씨, 두려워할 것도, 미리 겁낼 것도 없어요.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올 테니까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세요, 결국 미래는 행동하는 자의 것이니."
노래하는 듯한 와타루의 말과 함께 뒤에 남겨진 미카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딱딱한 감촉에 어리둥절하다 천천히 손을 펴 보았다. 거기에는 둔하게 빛나는 큼직한 놋쇠 열쇠가 놓여 있었다. 슈의 성 안에 있는 물건이라 하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아무 장식도 없고 투박한, 거의 쇳덩어리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
"…와타루가?"
슈는 미카와 미카의 손에 들려 있는 열쇠를 번갈아 쳐다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열쇠는 분명 자신의 서재 안에 있는 금고 속에, 아주 엄중하게 보관되고 있었을 텐데 와타루가 대체 무슨 마술을 부려 가지고 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 열쇠를 가지고 자신의 앞으로 찾아온 미카였다.
"카게히라, 왜지…?"
물론 와타루에게서 열쇠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것으로 잠긴 문을 열고 나갔을 경우를 생각하면 슈는 눈앞이 아찔해지고, 시커멓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열쇠를 가지고 얌전히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보다는 오히려 그쪽 행동이 더 자연스럽게 여겨졌기에, 우물쭈물 열쇠를 들고 서 있는 미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는 계속 그 문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더냐? 그 문 밖에 있는 풍경을 궁금해하지 않았더냐? 왜… 이걸 가지고 내게로 돌아왔지?"
"무, 물론 내도 얼른 나가보고 싶었데이! 와 그라는지 내도 몰랐지만, 마 히비키 씨가 열쇠를 준 기는 엄청난 행운이라꼬 생각도 했데이… 글치마안…."
미카가 울먹이며 말했다.
"내, 글타고 공작님이 싫어하는 짓을 어거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문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쯤이야 마 어차피 열쇠도 없으니께 몬 나갈 걸 나도 마드 누이도 공작님도 다 알고 있었으니까 상관없지만, 진짜 열쇠를 갖고 나가는 거는, 그거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일?]
"응아, 맞데이."
가만히 듣고 있던 마드무아젤이 끼어들자, 미카는 덥석 고개를 끄덕였다.
"내는 공작님캉 마드 누이캉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데이. 그런 식으로 나쁜 아처럼 굴었다가 버림받고 싶지 않데이…."
고개를 숙이고 주먹으로 눈을 비비는 미카를 보고 슈는 빠득,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어깨까지 높이 솟아오를 만큼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넉넉히 그것을 토해내고는 결심한 듯 침통하게 말했다.
"…허락하마, 카게히라. 그 열쇠로 문을 따고 나가, 밖에 있는 풍경을 보는 것을…. 그리고 그 후로도 이리로 돌아올지 말지 또한, 네 선택에 맡기겠다."
"공작님…?"
"거기에는 내가 지은 죄가 있지. 네게 들키고 싶지 않아 꼭꼭 닫고 숨겨 놓았던… 그것을 보고도 내 곁으로 돌아올지 말지는, 네 자유라는 것이야."
"내, 내는…."
"무얼 꾸물대고 있어, 어서 가거라!"
슈가 얼굴을 찌푸리며 호통을 치자 미카가 눈물을 글썽이더니 발걸음을 휙 돌려 달려가 버렸다.
"…열쇠를 손에 넣고도 돌아왔다면, 그것을 보고도 다시 돌아올 것이야… 분명."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가린 채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슈 옆에서 마드무아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슈 군, 손이 떨리고 있어. 괜찮아?]
"마드무아젤, 나는… 저 아이에게…."
몇 번이나 더 잔혹한 짓을 해야만 하는 운명일까?
***
"지… 진짜 개안은 기가, 이래도…?"
슈의 호통에 놀라 눈물을 찔끔하며 열쇠를 들고 문 앞으로 오기는 했지만 미카는 여전히 망설였다. 물론 열쇠로 어서 문을 따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강했지만, 아무래도 원래는 금지당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체념한 듯 고개를 가로젓던 슈의 모습, 누가 보아도 내켜서 내린 것은 아닌 허락.
"공작님은 내가 이 문을 열고 나가는 기를 원치 않을 텐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으나 마드무아젤의 작은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이래도 될까? -된다잖아. 어서 하라잖아.
하지만 이러다 진짜 공작님한테 버림받으믄, 내는….
-두려워할 것도, 미리 겁낼 것도 없어요.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올 테니까요.
-거기에는 내가 지은 죄가 있지. 네게 들키고 싶지 않아 꼭꼭 닫고 숨겨 놓았던… 그것을 보고도 내 곁으로 돌아올지 말지는, 네 자유라는 것이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한참이나 더 망설이던 미카는 결국 열쇠를 들고 자물쇠에 꽂았다. 낡고 녹슬어 보이던 그 자물쇠는 신기하게도 기름칠이 된 것처럼 속에서 매끄럽게 돌아갔고, 미카가 가느다란 두 팔로 온 힘을 주어 육중한 문을 밀자─
눈앞에는 마치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응아…?"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수많은 영상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저 더러운 거지 고아가 또 악마공작의 성에 갔대!
-세상에, 끔찍해라. 무슨 저주를 달고 왔을까?
-그만 발길을 끊거라. 자꾸 이곳을 찾아오는 일은 네게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야.
-내는… 외로워 보이는 공작님을 혼자 냅둘 수는 없다 아이가.
-비가… 비가 멈추질 않아. 벌써 며칠째야… 농작물도 전부 썩고, 끔찍한 질병이 돌기 시작했어….
-저 망할 애새끼가 자꾸 악마공작의 성에 드나드는 바람에, 저주를 묻혀 온 거야!
-아이다! 다 잘못 알고 있는 기다! 공작님은 그런 사람도 아이고, 비가 오는 기는 내하고 아무 상관도…!
-큰일이다! 다들 피해! 둑이 무너져서 홍수가 났어!
-마을 전체를 덮칠지도 몰라! 어서 도망쳐!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으아아아아악!!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던 미카의 두 눈에 차츰 눈물이 차올랐다. 닦을 줄도 모르고 펑펑 흐르는 눈물은 마치 열흘 낮 열흘 밤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던 그때의 비처럼 생생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이 성을 계속해서 찾아오며 문을 두드리고 내 말상대가 되어 주려 한 사람은 오로지 너뿐이었다, 카게히라."
어느 샌가 마드무아젤을 품에 안고 뒤에 다가와 있던 슈가 나지막이 말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폭우와 홍수는 틀림없이 너와 나,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나도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이야. 며칠간 계속해서 비가 오던 그때, 너만은 내 성에 와 있으라고 했다면 좋았을 것을. 보다시피 그때의 큰물은 마력으로 방비되는 이 성 앞에서 멈추고, 호수가 되었지. 그랬다면 너만은 살릴 수 있었을 것을…."
"…."
"네가 계속해서 이 성에 찾아오는 것이, 마을 안에서 그렇지 않아도 고통스럽고 가혹하던 네 삶에 더욱 큰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냉정하게 내치지 못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죄. 그리고 네가 마을 놈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던 중, 갑자기 차오른 물이 호수가 되어 마을을 덮칠 때 너를 구해내지 못한 것.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죄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죄는…."
슈는 손을 뻗어 미카의 머리에 감겨 있는 붕대의 끝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죽음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나 다름없는 안식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너를 차마 놓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몸으로 만들어 내 곁에 둔 것이었다."
"공작님…."
"미라가 된 너는 생전의 기억을 잃었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너라는 존재가 내 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네게 추궁당할 것이 두려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너를 차마 놓을 수가 없어 이런 어정쩡한 상태로 네게 갑갑한 금지만을 강요했던 일조차, 어쩌면 네 번째 죄라고 할 수도 있겠지."
미카는 깜짝 놀랐다. 슈도 울고 있었다. 울면서, 떨리는 손으로 마드무아젤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힘겹게 말하고 있었다.
"자, 이제 다 알았겠지. 원하는 대로 하거라. 지금의 너는 거칠게 말하면 생명을 잃고 껍데기만 남아 내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일 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느 한쪽으로 가지 못하고 헤매는 망령이라는 것이야. 그 신세가 끔찍하고 증오스럽다면 얼마든지 너를 본래 있어야 할 모습으로 만들어 주마. 너에게는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싫다! 와 내를 버릴라꼬 하는데?!"
미카의 커다란 목소리에 슈가 움찔했다.
"내 저번에도 말 안 했나! 공작님캉 마드 누이캉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기 내 꿈이라꼬! 내 은제 공작님한테 죽여 달라고 했나! 미라로 살기 싫다고 했나! 내는 지금이 좋다, 공작님 곁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않나! 와 내가 공작님을 원망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카게히라…."
"내는 그때 마을 사람들한테 구박받으믄서 몰래몰래 올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데이! 세상 사람들이 내를 미라로 맹글었다꼬 공작님을 손가락질한다믄 그거는 세상 사람들이 나쁜기다! 공작님캉 내캉 행복하기만 하믄 우리가 옳은기다! 와 기준을 딴 데서 찾는데!"
울면서 슈에게 달려들어 안겨서는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미카를 슈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일단 조심스럽게 안았다. 잃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잃을 가능성이 두려웠지만, 그래도 무조건 선택권을 빼앗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던 와타루의 말.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공작님, 내 알았데이. 가지 말라꼬 가지 말라꼬 자꾸 그러는데도 내가 계속 이 문 쪽으로 오고 싶었던 이유."
미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고 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물어도 되겠느냐?"
"응아, 내 아마 공작님이 두려워하는 걸 느꼈던 거 같데이."
"…."
"글루 나가도 내는 안 없어진다꼬, 계속 옆에 있을 거라꼬, 그니께 함 내보내 보라꼬… 그런 생각으로 움직였던 기 아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구마. 아마, 지금 내 몸은 공작님이 마력으로 맹글어 준 거니께… 공작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는 건지도 모르제."
슈는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문득 문 앞 맨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곁에 나란히 앉자 어깨를 끌어안고 곁으로 바짝 당겼다.
"이제 곧 해가 지겠구나. 이 호수로 해가 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한 번도 함께 보지 못했다니, 생각해 보면 참 아쉬운 일을 했군."
[후후, 슈 군은 역시 로맨티시스트라니까.]
"응아~ 내는 멀 하든 멀 보든 걍 공작님만 곁에 있으믄 다 좋데이."
진하게 우려낸 홍찻물 같은 주황색으로 물든 호수에 차츰 해가 가라앉는다. 한때는 작지 않은 마을이 있었던 그곳에. 밤이 찾아오면 곧 슈가 만든 요리로 함께 저녁식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미카와 함께 잠을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다시 가벼운 아침식사를 한 뒤 미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내일도, 모레도.
그 예상 가능한 하루하루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이어지게 되리라는 사실이 위대한 악마공작 슈에게는 이보다 더 안도감을 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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