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반드시 '최애'가 생기는 방
#미카의 고향집 #과거회상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응아, 어무이. 잘 지내나? …응, 응. 파리다. 내는 잘 있제. 아, 응… 뭐, 그래 봤자 마 억수로 많이 보낸 건 아이고. 응헤헤, 도움이 됐다믄 내도 기쁘구마. …응. …응. 또 필요하믄 말하래이."
파리, 슈의 아틀리에. 바느질에 골몰하여 주위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던 슈의 귀에 얕은 잔물결처럼 희미한 목소리가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숨 쉬듯 곁에서 늘 들려오는 파장의 익숙한 소리였기에 집중을 깰 정도는 아니었다. 그 목소리를 흘려 들으며 계속해서 작업을 해 나가던 슈는 문득 손을 멈칫했다. 목소리가 문득 불온한 기색을 띠어서였다.
"아─ 글나. 새걸로. 응아… 응, 응. 아이다. 아덜 보기 편한 큰 걸루 해 놓으믄 좋제. 응, 글믄 어무이도 항상 건강 조심하래이. 응. 끊는다."
아무래도 미카는 칸사이의 고향집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모양이었다. 미카 역시 손을 뗄 수 없는 작업이 있어 아틀리에를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테이블 끄트머리까지 이동하여 가능한 한 슈와 거리를 두고 손으로는 작업을 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하던 듯했다. 인사를 마친 뒤 침울한 표정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든 미카는 반대편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슈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
"응아! 내 조용히 말한다꼬 했는데, 스승님 작업 방해해가 미안하데이! 역시 밖에 나가서 통화하고 올 걸…."
"고향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이야?"
작년의 '키다리 아저씨' 사건 이후로도 슈는 미카의 고향 고아원에 꽤나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 하지만 미카는 고아원 문제는 온전히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므로 슈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쪽 이야기는 말조차 꺼내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의 전화를 아틀리에 안에서 그냥 받았던 것도 단순한 안부 전화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도 내용만 보면 정말로 평범한 근황보고일 뿐이었다.
"암것도 아이다. 내 요번에 돈 쫌 부쳐가, 어무이가 잘 썼다고… 내 덕에 세간살이 쫌 바꿨다 칸다."
미카는 하던 작업물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승님, 내 잠깐 화장실 갔다 오께."
"카게히라."
스승 앞에서 어설픈 변명은 하는 게 아니었다. 미카는 눈을 내리깔고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억수로 하찮은 일이라 안카나."
"그건 듣고 나서 내가 판단할 일이다. 어머님의 전화를 처음 받을 때만 해도 명랑하던 네 목소리가 금방 그렇게 가라앉았는데 그 이유를 궁금해할 권리조차 파트너인 내게 없다면, 심정적으로 안타깝기는 하나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는 네 마음과 사정을 존중하여 나 역시 깨끗이 포기하고 더는 묻지 않겠다만."
"응아, 아…."
미카는 슈가 어떤 톤으로 말하든 어차피 그 말을 거역할 수 없었지만 경애하는 스승의 목소리에서 배어나오는 것은 억압과 강제가 아니라 그저 다소간의 서운함이었다. 결국 떨쳐내지 못하고 다시 의자에 주저앉은 미카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게, 집에 테레비… 바꿨다 카드마."
"텔레비전? 아아,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거실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꽤나 구형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지. 잘 바꾸신 게 아닌가?"
고향집 고아원의 거실에 놓여 있는 TV는 여럿이 공용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낡고 화면이 좀 작았지만 딱히 고장이 나지는 않았다. 자금 사정이 넉넉한 곳도 아니고 딸린 입이 많다 보니 당연히 TV보다 우선하여 지출할 곳이 많으므로 이래저래 뒤로 미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겨 여가 면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니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미카가 TV를 바꾸었다는 이야기에 풀이 죽었는지 슈는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미카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스승님도 알제? 요새 ES에서 특집 기획으로 '반드시 최애가 생기는 방'이라는 프로그램을 찍은 거. 하지메 군이 MC라 아이가."
"화제가 왜 그쪽으로 바뀌는지 모르겠다만, 얼핏 소문은 들었다는 것이야. 대중이 아이돌 문화를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돌을 흥미롭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그 Ra*bits의 아이가 소개하는 화면을 본 기억이 나는군."
미카가 뺨을 살짝 긁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응후후, 내는 첨에 얘기 들었을 때 딴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내한테만큼은 참말로 필요없는 방이라고 생각했데이."
슈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세간에서 말하는 '최애'라는 단어의 정의에 비추어볼 때 네 '최애'는 이미 확고하게 정해져 있으니 말이지. 이 이츠키 슈로."
미카는 웃을까 말까 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그거,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안 민망하나?"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한다면 오히려 더 곤란할 것 같다만… 설마, 아니라고 하진 않겠지?"
테이블 건너편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살짝 어두워지려 하는 슈의 얼굴을 보고 미카는 당황하여 두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 아이다, 아이다! 스승님이 맞다! 스승님 말고는 없다! 그니께 내한테는 '최애가 생기는 방'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한기다!"
"…새삼 안심할 필요도 없는 확인을 굳이 받아서 안심이 된다니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감정의 흐름이다만. 시간을 많이 낭비했군. 그래서 그 프로그램과 네 고향집의 TV가 대체 무슨 상관이지?"
팔짱을 낀 슈 앞에서 미카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다 대답했다.
"…생각난기다, 내한테 '반드시 최애가 생기는 방'이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는 걸."
"…."
슈는 이미 거기서 미카가 무슨 말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바람에 오히려 입을 다물어버렸다. 반대로 한 번 입이 열린 미카는, 아까는 그렇게나 말하기가 망설여졌던 이야기를 스스로도 놀랄 만큼 쉽게 털어놓았다.
"옛날에 스승님캉 쓰레기장에서 만나고, 그 뒤로 몇 년이 흘러가… 유메노사키에 입학한 뒤 아이돌이 된 스승님이 Valkyrie로서 테레비에 나오는 거를 첨 봤을 때, 그때 이미 내 운명이 결정됐다 캐도 과언이 아이제. 내는 그 테레비 화면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봤데이. 그때 그 아였다는 기를. 글구 그 아가, 우짜믄 죽을 때꺼정 내 '최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를."
"그러면 그때 그 TV가…."
"응아, 겁나게 오래됐제? 내 어렸을 때부터 있었으니께 낡아도 엄청 낡기는 했데이."
문득,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옹기종기 거실에 앉아 작은 TV 화면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뒤통수. 뒤에서 지나가다 문득 화면의 Valkyrie를 발견한, 지금보다 많이 앳된 중학생 미카. 유닛 체제가 확립되기 전부터 슈가 나즈나와 2인조 유닛으로 활동하던 Valkyrie는 이미 학원의 유망주로 방송 출연 기회도 나름대로 적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곡의 무대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본 미카가 순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린다. TV 화면과 약간의 시간차를 사이에 두고 어느 머나먼 건너편에서 자신의 미래를 좌우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고1의 이츠키 슈는 당당한 태도로 공연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너무 어려워가 유닛 이름을 우예 읽는지도, 또 스승님 이름을 우예 읽는지도 알 수가 없어가 당황했는데 다행히 그때 MC가 다 말해줘가 얼마나 내 눈물 날 것처럼 기뻤는지… 전부 다 똑똑히 기억한데이."
미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가 그 테레비에는 내… 추억이 있는데, 어무이가 바꿨다 카니께… 기분이 쪼매 감상적이 됐을 뿐이데이. 진짜 아무 것도 아이다. 내는 집에 보탬이 됐다는 기 더 기쁘제~ 돈 열심히 벌어가 앞으로도 보내주고 싶구마."
이야기를 마무리지은 미카가 허둥지둥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하던 작업물을 집어드는 모습을 보며 슈는 굳이 무슨 말을 더하지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다.
***
일본에서의 유닛 스케줄이 있어 함께 귀국한 슈와 미카가 성주관 공유방에 잠시 앉아 차를 마시며 숨을 돌리고 있는데, 외출하던 참인지 막 내려오던 리츠가 미카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미카링, 언제 왔어~? '스승님' 씨도 안녕~."
"음, 사쿠마군."
"응아, 리츠 군! 잘 지냈나? 쫌 전에 막 도착했데이."
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환해진 얼굴로 미카가 마주 손을 흔들자 리츠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보다 미카링, 방에 커다란 짐이 와 있던데 그거 미카링 것 맞지?"
"짐?"
미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성주관으로 택배를 보낸 기억은 없었다. 하물며 커다란 짐이라니.
그때 옆에서 슈가 한 손을 들었다.
"음, 그것은 내가 부탁한 물건이라는 것이야."
"스승님이?"
"아~ 주인을 찾아서 다행이네. 난 분명 짐이 와 있는데 미카링한테 아무 연락이 없어서 혹시 잘못 온 건가 했거든. 그럼 난 촬영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니까 나중에 봐~."
"응아, 리츠 군! 그라믄 나중에 보재이~."
리츠가 사라진 후 미카는 슈를 돌아보았다.
"스승님이 내 방에 머 물건 보냈나? 근데 와 내 이름으로, 내 방에?"
벌써 한참을 함께 파리에서 보냈고 귀국도 같은 비행기편으로 같이 했는데 리츠가 당황할 만큼 큰 짐을 보내 놓고 아무 언질도 없었다니 미카는 의아한 기분이었다. 물론 스승님이 하는 일은 (웬만하면) 다 옳고, 미카의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동기가 있어 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슈의 얼굴을 본 미카는 문득 놀랐다. 슈가 안도와 반가움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사실 이미 처분되었다면 되찾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네 말마따나 고장난 물건은 아니라 중고상으로 넘어갔던 듯하더군. 덕분에 무사히 회수할 수 있었다."
"응아? 뭘?"
"텔레비전."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대화였기에 미카는 바로 떠올리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다가, 잠시 후 아! 하고 맥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펄쩍 뛰었다.
"고, 고아원 테레비 말이가?!"
"음. 어머님께 연락드려 처분처를 알아본 뒤, 우리의 귀국에 맞춰 도착하도록 연락해 놓았다."
"그걸 와 스승님이…?"
정말로 모르겠다는 미카의 표정에 슈는 잠깐 이마를 짚었지만 그간의 학습을 통해 어물어물 얼버무렸다가는 이 자기평가가 낮은 아이가 또 엉뚱한, 그리고 영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해석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입술을 깨물고 간신히 말을 쥐어짰다.
"네가… 기뻐할 것 같아서."
완전히 얼어 버린 미카의 눈에 천천히 얇은 눈물로 막이 씌워졌다.
"개안은데… 내는… 진짜로 개안은데…."
"자, 어서 올라가 보자. 사쿠마가 외출한 덕분에, 다행히 커다란 텔레비전을 꺼내 놓고 잘 켜지는지 확인하는 작업으로 폐를 끼칠 일이 없는 지금을 놓칠 수 없으니."
"으, 응!"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슈의 뒤를 미카가 허둥지둥 따랐다. 눈물도 채 닦지 못한 채, 하지만 뛰어오르는 듯한 발걸음으로.
***
슈가 상자에서 묵직한 TV를 꺼내자 미카가 설레는 얼굴로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얼굴로 전원을 켰지만, 잠시 팟! 하고 빛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금세 다시 새까만 화면으로 돌아가버렸다.
"으, 응아…?"
당황한 미카가 TV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용을 쓰고, 윗판을 두들겨 보고 옆을 쳐 보고 꼼지락꼼지락 열심히 움직였지만 TV 화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슈가 턱을 어루만지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아무래도 발송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또는 고아원에서 매도를 할 때는 괜찮았는데 중고상에 보관되어 있던 사이 결국 수명을 다한 모양이군. 워낙 낡기는 했다만."
"으아앙! 이래 가믄 안 된다! 진짜 가뿌믄 우야노! 테레비쨩~!"
"농, 시끄럽다는 것이야! 그렇게 허둥댈 시간이 있으면 오랜 시간 고아원에서 많은 이들을 위로해 주고, 마음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이 텔레비전의 명복을 빌어 주는 편이 낫겠다."
"응아, 마, 맞구마. 요란 떨어가 미안하데이, 테레비쨩. 좋은 데 가그라…."
허둥대던 미카가 슈의 일갈에 코를 훌쩍이며 더는 화면이 밝아지지 않는 TV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 정말로 TV와 함께 보냈던 고아원에서의 여러 시간을 떠올리는 듯했다.
세상에는 물건에 애착을 갖고, 그것에 인격을 부여하는 일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지만 슈만큼 그런 부류에서 멀리 떨어진 이는 없을 것이다. 슈는 미카가 TV와 이별하는 의식을 갖는 사이 한 발 물러나 가만히 기다리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화면에 비추었을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어떤 몸짓으로, 어떤 의사를 표현하려 했을까. 미카가 보았다는 시기는 대략 짐작이 간다. 그때의 자신은 아마도 개인 명의로서의 활동을 끝내고 나즈나를 유닛 멤버로 맞이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고, 지금은 피부처럼 느껴지는 Valkyrie라는 이름도 아직 낯설었을 것이다. 그래도 늘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의기양양하게, 오만하게 노래했다. 제왕으로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TV 속에서 그런 자신을 발견했다는 미카가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스승님, 고맙데이."
미카가 아직도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기에 슈는 한숨을 쉬고서 옆에 있던 티슈를 가리켰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티슈를 몇 장 뽑아서 직접 코를 풀어 주었다.
"…아니, 나도 그때의 그 텔레비전과… 잠깐이나마 직접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것이야."
"응헤헤, 글나."
어린 시절 쓰레기장에서 스쳐갔다는 만남은 정말로 우연에 불과했고, 그것은 시간의 풍화 속에서 어쩌면 그대로 잊힐 사건일 수도 있었다. TV에서 미카가 슈를 발견한 것 또한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달랐다. 미카는 슈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 유메노사키를 찾아왔고, 본인이 거기까지 바랐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하간 Valkyrie의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슈의 곁에 남은 단 한 명의 파트너가 되었다. 오로지 우연만이 거듭된 결과라 하면, 그것은 미카의 행동과 결단에 대한 모욕이리라.
그러나 최소한, 어느 정도 철이 든 미카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우연을 선사해 준 이 TV에는 슈 역시 감사와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야를 인자 어따 두노… 켜지지도 않아가 테레비 보는 데 쓸 수도 없구… 글타고 버릴 수도 없구… 그치만 여기는 리츠 군캉 같이 쓰는 방이라 민폐 되는데에… 역시 버려야 하는기가…."
TV를 부둥켜안은 미카가 낑낑거리자 슈는 단호하게 말했다.
"버릴 이유가 버리지 않을 이유보다 큰 이상 그것은 처분해야겠지. 더구나 동거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응아아~."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 아이의 가는 길을 화려하게 꾸며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데, 카게히라. 어때? 세상에서 가장 큰 [반드시 '최애'가 생기는 방]을 장식하는 데 그 아이의 도움을 받는 건."
"스, 스승님?"
"카카카카! 우리에게는 이미 그러기에 딱 맞는 무대가 있다는 것이야."
미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가운데 슈는 짐 속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분주히 그리기 시작했다.
***
대규모 콘서트홀에서 이틀간 열린 Valkyrie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세트가 철거되는 현장, 미카는 슈의 손을 꼭 잡은 채 가장 높은 곳에 장치되어 있던 그 TV가 내려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승님."
"음."
"테레비 산더미 위에 저 아를 올려 줘서 고마웠데이."
"장례식을 치르는 데에 예술을 바쳤다고 생각하면 딱히 내가 감사받을 일은 아니다만. 나는 그저 예술가로서 '표현'을 했을 뿐이지."
SNS에서는 공연을 보고 나온 팬들이 '미궁전자회랑 무대에 처음으로 나타난, 켜지지 않는 단 한 대의 꼭대기 TV'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으나, 물론 미카는 진실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아니, 슈와 미카만의 비밀이었다. 거대한 암호였다.
"화면이 켜지지 않고 이미 고장이 나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는 텔레비전이라 해도, 거기에 긴 시간과 사연과 사랑이 담겨 있으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위의 가장 빛나는 별처럼 당당히 높은 자리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어쩌면, 나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스승님?"
슈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성큼성큼 넓은 보폭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미카가 허둥지둥 스승님을 부르며 뒤를 따랐고, 주위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익숙한 광경에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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