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고양이와 꽃과 하얀 셔츠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S빌딩에 소속된 아이돌들은 때때로 같은 옷을 맞춰 입는 이벤트에 참가할 때가 있다. 본디 유메노사키와 레이메이, 슈에츠 등 아이돌 전문 육성 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시스템이라 그런지 일종의 교복이라고 하면 또 이해가 되지 않을 바는 없으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긋지긋한 단체활동에서 겨우 탈출해 숨통이 트였던 슈는 이런 공통 의상이 지급될 때면 그야말로 끔찍한 벌레라도 쳐다보듯 옷을 노려보곤 했다. 

 

"…스승님, 암만 그래도 옷에는 죄가 없데이." 

"흥, 알고 있다는 것이야.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건 의상은 의상이지. …하아… 하지만 이제 학교도 벗어나 굳이 그러해야 할 강제성도 전혀 없는데 그 끔찍한 텐쇼인과 또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니, 도무지 내키질 않는군." 

"응아~ 글케 따지믄 나즈나 형캉도 같은 옷을 입게 되는 기 아이가? 좋은 쪽으로 생각하재이, 좋은 쪽으로." 

"흥, 나와 니토에게 이만큼이나 똑같은 옷이 어울릴 리가 없지 않으냐.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자면 체형도 분위기도 모두 다른 아이돌들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는 이 옷이 한층 더 갑갑해 보이는군… 하다못해 내 방식대로 손을 좀 볼 수 있다면…." 

"응후후, 이번 옷은 아무래도 그건 쫌 어렵제." 

 

공통 의상이라고는 해도 단순한 흰 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그 위에 약간의 장식을 달았을 뿐인 심플한 의상이다. 하지만 미카는 슈의 '내 방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알아듣고 빙긋 웃었다. 학생 시절, 단추 부분에 프릴을 달아서 입고 다녔던 슈의 교복 셔츠는 일종의 명물이었다. 

하지만 이 셔츠의, 프릴을 달아야 할 목 아래 위치에는 뜻밖에도 이미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귀여운 여러 송이 꽃을 모아 만든 코르사주였다. 

  

"코르사주를 이 위치에 다는 미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야. 보통은 왼쪽 가슴의 주머니, 굳이 단춧구멍에 꽂는다면 조금 더 아래쪽이어야 할 터…." 

 

혼자 중얼중얼 투덜거리면서 코르사주가 달린 셔츠를 들고 한참을 훑어보던 슈는 한숨을 내쉬며 소매에 팔을 꿰었다. 먼저 옷을 다 입고 기다리고 있던 미카는 슈가 한바탕 불평을 늘어놓기는 해도, 하고 싶은 말이 다 끝나면 결국은 고분고분 옷을 입어 줄 것을 알았기에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다 재빨리 슈의 등 뒤로 달려가 옷 입기를 도왔다. 

 

"캐도 마, 역시 단순한 기 최고라고나 할까… 안 그래도 스승님 요새 몸 키워가, 기본 셔츠가 진짜 잘 어울린다 아이가."

 

단추를 잠그고 코르사주를 꽂는 슈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카는 새삼 홀린 듯 중얼거렸다. 슈는 코웃음을 쳤지만 썩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기본이 어울리지 않는 상태에서 무엇을 입는다 한들 과한 치장, 군더더기가 될 뿐이지. 그러는 카게히라도… 뭐, 제일 잘 어울리는 건 역시 내가 직접 지어 준 옷이겠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야." 

 

코르사주를 구성하는 꽃 역시 딱히 아이돌 각각의 개성을 살려 모두 다르게 만들었다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저 공통된 디자인이었다. 의상 디자이너로서 발주를 받을 경우 한 유닛 안에서도 분위기를 통일시키면서 멤버 개인개인의 특징을 살려 약간의 디테일을 손 보는 것이 특기인 슈로서는 그 또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으나 어찌되었든, 결국 지금은 누군가가 만들어 준 옷을 입는 입장이다. 실제 옷을 만든 디자이너를 존중하는 의미도 담아, 어른스럽게 물러나는 수밖에. 

하지만, 슈는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카게히라의 꽃은 내 것과 다른 건가?" 

"응아? 똑같은 꽃집에서 사 왔다 카드마, 똑같을 낀데?" 

"얼핏 보기엔 그런 것 같지만… 신기하군. 더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좋은 향이 날 것 같아서 말이지. 잠시 실례."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굽히는 슈의 동작이 너무나 내추럴한 나머지 미카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완전히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익숙한 향수 냄새가 갑자기 짙어지고, 스승님의 아름다운 얼굴이 바로 코앞을 스치고, 늘 신경질적일 정도로 깔끔하게 다듬는 머리카락이 눈앞을 휙 지나갔다. 

미카의 목 아래에 달린 생화 코르사주의 향기를 잠시 맡은 슈가 고개를 들었다. 

 

"흠, 똑같은 것 같긴 하군." 

"응아, 응아, 응아아아…." 

"카게히라?" 

 

다리가 풀린 미카는 그만 등 뒤에 있던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키, 키, 키…." 

"음?" 

"키스하는 줄… 알고… 내는…." 

 

넋이 나간 채 중얼거리는 미카의 얼굴은 그야말로 꽃이 달린 목 아래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미카의 말을 들은 슈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오해받을 수 있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얼굴을 살짝 붉혔으나, 다행히 의상실 안에는 단둘뿐이었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채 머리에서 김을 풀풀 내며 웅얼웅얼 신음하는 미카를 바라보던 슈가 문득 입꼬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 스쳐가는 짧은 순간 안에 그러한 기대를 한 모양이지? 후후, 저속한 방송과 화보 촬영 등에 계속 노출된 네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 못 한 것은 내 실수이기는 했지만…." 

"응에에, 미, 미안하데이…. 그, 그치마안…." 

 

수치와 민망함으로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던 미카는 저도 모르게 사과하다가 문득 억울해졌다. 아니, 보통 그렇게 예고도 없이 얼굴을 바짝 들이민 쪽이 잘못 아닌가? 사실 오해의 원인을 제공한 게 스승님 아닌가? 하지만 최소한 왜 얼굴을 붉히느냐고 물었을 때 둘러대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을, 그저 솔직하게 키스하는 줄 알았다고 냉큼 말해버린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었으니… 미카는 그저 머리를 부여잡고 부끄러움에 끙끙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카게히라, 나는 딱히 널 질책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귓가에서 들려 온 슈의 목소리가 너무나 부드러웠기에 미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야말로 키스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슈의 얼굴은 묘하게도, 뭔가에 달떠 있는 듯 보였다. 

 

"그저… 오늘 이 곳은 우리의 첫 키스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는 것이야.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가 아니면 곤란해. 이런, 어수선하고 아무런 무드도 없는 곳에서 충동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것은 내 미학에 반하는 일이라는 것이야." 

"응아… 마, 스승님이라믄 그런 거 무지하게 따질 것 같긴 한데…." 

 

저도 모르게 대답하던 미카는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스, 스승님… 글케 말하믄 꼭…." 

"음?" 

"스승님이, 평상시부터 내캉 첫 키스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니께… 함부로 그래 말하지 마래이, 내 바보라가 쉽게 오해한다 아이가." 

 

슈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해라니? 올바르게 이해해 놓고 왜 굳이 부정하려 드는 것이지? 실제로 나는 만반의 플랜을…." 

"응아아아! 그만! 그마안!" 

 

정말이지 최근의 스승님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미카가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거의 울상까지 지을 정도로 버둥거리던 미카를 본 슈는 문득 정색을 했다.  

 

"흠, 하지만 최근의 네가 온갖 유상무상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매력적인 외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드디어 인간으로의 아름다움이 개화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 어리석은 자들이 이제야 겨우 널 발견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인형이 아니게 되었다고는 해도, 인간으로서의 카게히라 미카 역시 내 소유물이라는 메시지를 어딘가에 남겨 놓는 편이 좋겠군." 

"스, 스승님?" 

"잠깐 들고 있어라, 카게히라." 

 

슈는 소파에 주저앉은 미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않아, 미카의 목 아래에 꽂혀 있던 코르사주를 뽑아 미카의 오른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긴 손가락으로 맨 위 단추 하나만 풀고, 또렷하게 드러난 쇄골 사이로 입술을 들이밀었다. 

 

"!!!" 

 

이번에야말로 정말 얼어서 미카가 꼼짝도 하지 못하는 사이 두 쇄골 사이에는 작고 붉은 꽃잎이 하나 피어났다. 

꽤 긴 시간 정성을 들여 그 자리에 섬세한 꽃잎을 아로새긴 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레 그 자리를 닦고, 다시 단추를 채우고, 그 위에 굳어 있던 미카의 손에서 빼낸 코르사주를 다시 꽂았다. 

 

"이제야 조금 볼 만하군.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 네게는 한 송이의 꽃이 더 숨겨져 있었다는 연출, 나쁘지 않아. 물론, 그것은 영원히 나밖에 모르는 연출이지만." 

"으… 응아… 응아아아…."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참이지? 물론 달콤한 낮잠을 잘 만한 시간이긴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그만 사람으로 돌아오거라. …후." 

 

정말로 태엽이 풀려버린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는 미카를 바라보던 슈는 한숨을 내쉬듯 웃음을 토했다. 

 

"내 스스로도 이게 무슨 촌극인가 싶지만… 카게히라, 아무래도 널 치장하는 부분에서만큼은… 내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야." 

 

예컨대 눈썹을 그리는 마지막 한 번의 터치. 마무리하는 립스틱 라인. 손질을 한 듯 안 한 듯 세팅한 머리카락의 마지막 한 올까지, 무조건 어떻게든 완성 과정에 자신의 손을 대고 싶은 마음. 

그것과 마찬가지로, 코르사주에 마지막 한 장의 꽃잎을 더하고 싶은 마음. 기왕이면 자신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버건디색 장미꽃잎을. 

슈는 그 코르사주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 손길에 미카가 마치 불에 덴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으, 응아아아…. 스승니임…." 

"음?" 

"지, 지금 한 기… 첫 키스보다 더한 거 아이가…?" 

"전혀 다르다만. 첫 키스는 보다 신성하고, 고상하고, 서로가 서로를 티끌 하나 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결하게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이야. 그러나 지금 이 행위는 단순히…." 

 

소파 옆자리로 올라와 앉은 슈가 미카의 허리를 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내 일방적인 독점욕을 네게 강요하는 추한 행위일 뿐이지. 지극히, 인간다운." 

 

그 순간, 미카는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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