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커다란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에 수예부실 책상에 앉아 바느질에 골몰하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옆에서 고요한 숨소리가 들려 온다. 바느질을 배우겠다며 옆에 앉아 처음에는 열심히 관찰하다가 금세 잠이 들어버리고 만 미카다. 눈이 절로 감길 정도로 지루해할 거면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말을 하질 말든가, 잠이 부족하면 처음부터 편한 자세로 눈을 붙이든가, 이 못난 인형은 정말이지 쓸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한숨을 내쉬고 결국 내버려두는 것을 보면 자신도 결국은 무른 모양이라고 슈는 생각하곤 했다. 

미카가 차분하게 바늘을 놀리는 슈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의 안정을 얻듯 슈 역시 옆에서 들려오는 그 규칙적인 숨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곤 했다. 아마도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젖을 먹던 시기를 제외하면 이렇게 가까운 곁에서 누군가가 완벽하게 마음을 놓은 채로 잠이 드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인형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대에서 움직여 주기만 하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을 바란 적은 없다. 

책상 한구석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인형이, 오히려 전혀 움직일 리가 없는데도 어째서인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웃는 듯 보였다.

[우후후, 슈 군. 미카쨩 좀 봐.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웃으면서 자고 있네.]

"하아, 지저분하게 침까지 흘리고 자는군…. 무얼, 자는 모습까지 제어할 수는 없으니, 하다못해 보는 눈이 있는 앞에서는 이렇게 천박한 꼴을 보이지 못하게 하는 수밖에." 

슈는 품에서 레이스가 달린 손수건을 꺼내 미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입가와 책상을 닦아 주며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드무아젤의 지적대로 미카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눈을 감고도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 좋아하는 사탕이라도 먹고 있을까, 사이좋은 친우와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중일까, 또는….

"응헤헤, 스승니임…."

가능하면 마지막으로 돌리고 싶었던 가능성을 본인 입으로 쉽게도 내뱉는 바람에 슈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 결국 그거겠지. 무대에서 예술을 선보이고 있을지, 지금처럼 옷을 짓고 있을지, 또는 벽력같은 호통을 치고 있을지─야단을 맞는 것조차 헤실헤실 웃으며 달갑게 받아들이는 이 인형의 꿈 속에는 여하간 어떤 형태일지 몰라도 자신이 등장하고 있을 게, 결국은 뻔했다.

옆에 당사자를 두고도 또 꿈 속에서 그리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슈는 손수건을 곱게 접어 품에 넣고 다시 바느질감을 손에 들었다.

"…흥."

[미카쨩 머릿속에는 정말 슈 군밖에 없다니까. 그렇지?]

"…이 어리석은 허수아비의 머릿속이라고 해 보았자 기껏해야 톱밥이나 볏짚밖에 채워져 있지 않겠지. 마드무아젤, 사랑스러운 이여. 이제 정말로 집중하고 싶으니 조금만 조용히 해 줄 수 있을까?"

[어머나, 슈 군. 내 목소리를 듣는 것도 슈 군 마음, 듣지 않는 것도 슈 군 마음이야. 굳이 부탁할 필요까지도 없잖아?]

"…."

[지금 잔뜩 밀린 그 일감, 그게 전부 미카쨩을 위해 받아 온 의뢰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어.]

최후의 발버둥으로, 하다못해 완벽한 결과를 내겠다며 한 가지를 잡으면 통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바람에 납기가 자꾸 늦어지는 것이 문제이긴 하나 지금 슈가 만들고 있는 의상은 평소 같았으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을 분야였다. 그리고 미카가 툭하면 옆자리에서 스르르 잠들어 버리고 마는 이유는 Valkyrie의 활동 자금을 벌겠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내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느라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슈는 자신이 들고 있던 천을 내려다보고, 그리고 옆에서 아직도 입을 벌린 채 잠든 미카의 얼굴을 바라보고─쓴웃음을 지었다.

"현자의 선물이 따로 없군."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린 부부 이야기 말이야? 우후후, 그치만 슈 군, 어떤 의미에서는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이긴 하네.]

"…?"

[그 어리석은 행동도 결국,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

"농, 마드무아젤…."

***

예술가 입장에서, 당연히 외견의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갈고닦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둘 중 한쪽만을 강조하는 것은 스스로를 갈고닦는 구도자로서 단순히 나태함의 발로일 뿐이라고 슈는 생각했다─아니, 지금도 생각한다. 단지 일련의 사건을 겪고 바뀐 부분이 있다면 미추(美醜)에 영원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일까. 영원히 아름다운 것도, 영원히 추한 것도 없다. 아름다웠다가도 추해질 수 있고, 또 추했다가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추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현재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못한다. 한때 슈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의 박물관이 단 한 점의 티끌도 허락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시간 및 공간 양면으로 완벽한 미를 갖춘 곳이었다면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관점으로 바뀌었다고 봐야 할까.

한 마디로, 이전보다는 유연해진 셈이다.

사람들의 눈앞에 노출되는 무대는 완벽해야 했기에 손톱만큼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무대장치만이 점점 거창해지면서 그에 비례하여 공연자 자신의 운신 폭이 좁아져 갔던 이전의 Valkyrie 무대와는 달리 지금 슈가 꾸미는 무대는 확실히 대담해졌고, 미카를 전면으로 내세워 보다 마음껏 큰 움직임을 취하게 함으로써 무대를 더욱 넓게 쓰게 되었다. 한 번 바닥에 떨어졌던 것도 얼마든지 하늘 높이 다시 솟아오를 수 있으므로 완벽하지 않다 해도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면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미카의 몸짓을 지켜보면서 슈는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그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카게히라! 레슨에 집중해!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다면 방금 전 스텝에서 오른손 0.3초의 오차를 고치는 데 여력을 쓰라는 것이야!"

"응아아아, 미안타!"

물론 그렇다고 완벽해지기 위한 노력 자체를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그러고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편해졌다는 것뿐이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지'하고 느슨해지는 것까지 용서하지는 않는다. 이츠키 슈는 결국 그런 인간이기에.

"…잠깐만. 카게히라, 잠깐 그 자리에 서 있거라."

"와 그라노? 내 머 잘몬했나?"

두 손을 든 자세 그대로 정지한 미카를 향해 다가간 슈가 손을 뻗었다. 미카가 두 눈을 깜박거리는 가운데 슈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미카의 눈 밑을 엄지로 쓸고, 뺨을 살짝 쓰다듬고, 눈꺼풀을 들어올려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수면 시간은 반드시 8시간을 엄수하라고 말했을 텐데."

"내, 내 어젯밤에 잘 잤데이! 안 설쳤다!"

"농, 이건 아무리 봐도 충분한 수면을 취한 상태가 아니야. …그러니까 낮에 수예부실에서 낮잠을 자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을 텐데. 아니, 흠."

잔소리를 하려던 슈의 머릿속에 요 며칠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바느질을 하는 옆에서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통 못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교내 아르바이트를 늘렸다면서 수예부실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던 것 같다. 일이 바쁠 때면 간혹 있는 일이었기에 새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조금 까칠해진 미카의 피부를 보니 의아해지기는 했다.

"이 정도로 드러나려면 하루이틀 정도의 수면부족 상태는 아닌 것 같고… 최근 불면증이라도 있는 건가?"

화를 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걱정이 되었다. 남들만큼의 통증도 느낄 줄 모르고, 슈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호전적으로 대응하면서 자기 자신의 문제에는 둔감하기 그지없는 이 부실한 인형이 또 무슨 스트레스를 혼자 떠안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알고 싶을 뿐이었다.

"괘… 괘안타! 스승님이 신경 쓸 건 암것도 없다 아이가!"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스스로의 상태를 조금 더 개선하고 오라는 말이다. 휴식을 취할 때는 제대로 쉬는 것도 Valkyrie 멤버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응아, 그, 그치만…."

"불면증이 있다면 침구를 조금 더 따뜻하게 하거나, 칼로리상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따뜻한 허니 밀크라도 한 잔 마시고 자는 편이 나을 테니 오늘 저녁부터라도 바로 잠자리를 봐 주마.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함께 병원에 가 보는 편이…."

"아, 안 그래도 된다니께! 스승님한테 내 신경 쓸 시간이 어데 있나! 내보담은 나즈나 형캉…."

"니토?"

슈의 눈썹이 움찔하자 미카는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하지만 미간에 힘을 준 슈 앞에서 아무 것도 얼버무릴 수가 없었기에, 힘없이 순순히 말을 이었다.

"내 엊그제 지나가다 봤데이. 스승님이 Ra*bits 레슨하는 거,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던 거."

"그건 그냥, 우연히…."

"나즈나 형은 배신자지만, 우예 지내고 있는지 내도 가끔 궁금해가 슬쩍 보고 오기는 하는데… 스승님도 신경 쓰이제? 진짜 잘 살고 있는지, 우릴 버리고 나간 거기서 진짜 행복한지."

미카가 눈을 내리깔았다.

"미안타, 스승님. 곁에 남은 하나뿐인 인형이 스승님 생각대로 완벽하게 움직이지도 몬하고, 이래 징그럽고 흉측하고… 볼품없고, 눈알도 잘못 끼운 까마귀라."

슈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즈나가 Ra*bits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때때로 들여다 보러 가는 건 사실이고, 방금 미카가 스스로에 대해 평가한 내용은 실제로 이전에 자신이 짜증과 함께 내뱉었던 말이었다. 뿌린 씨앗을 거두는 꼴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에 나온 건 엉뚱한 말이었다.

"설마, 그것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잔다는 말이냐?"

"응아! 아이다, 그런 건 진짜 아이다."

재빨리 두 손을 내젓던 미카가 문득 아! 하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이래 말하믄 스승님도 이해가 되겠구마! 그, 스승님. 내, 아직 성장기 아이가?"

"…? 그렇지, 그러니까 더더욱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고…."

"응아! 나루쨩도 그랬다, 잘 자는 얼라는 잘 큰다꼬! 내 그 소리 듣고 생각했데이. 물론 내는 벌써 이맹키 커뿟응께 나즈나 형처럼 요정 사이즈로 짝아지기는 어렵지만, 인제부터라도 태평하게 드르렁드르렁 실컷 자지 말구 잠을 쫌 쭐이믄 그나마 크는 속도를 더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뭐라고?"

눈앞의 미카가 완전히 겁에 질려 움츠러든 것을 보니 자신은 어지간히도 야차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솔직히 그러지 않을 재주도 도리도 없었다. 잠을 줄여서 성장을 억제해? 인형 주제에, 누구 마음대로?

"내가, 언제, 네게 그러라고 했지?"

"응아아아! 쿨쿨 자고 쑥쑥 커서 지금보다 더 커져뿌믄 스승님 취향에서 더더욱 빗나갈 거 아이가! 그라믄 내는 버려진데이!"

"농! 나는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건강을 해치는 편이 더 문제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이야!"

"응아아, 응아…."

처음에 아름다운 외모에 이끌려 미카를 Valkyrie에 영입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후로도 여러 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봐 줄 만한 것은 얼굴뿐'이라는 말을 거의 입버릇처럼 내뱉었으니 미카가 외견에 집착하게 된 것 또한 결국은 자신이 뿌린 씨였다. 가끔 '우야믄 나즈나 형맹키 짝고 귀여워질 수 있나'하는 말을 중얼거려 나즈나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긴 어둠 속에서 슈를 구한 것은 미카의 헌신과 용감함, 끈기,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비뚤어진 '제왕'에 대한 집착이었다. 적국의 공격으로 멸망한 왕국에서 모두가 개미새끼처럼 달아날 때,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왕의 곁에 끝까지 남아 지킨 광대나 다름없었던 미카의 존재는 슈에게 빛이고 구원이었다. 그런 네가 정말로 지금과 외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들─아니, 지금의 상태에서 웬만하면 달라지지 않길 바라기는 하지만─그리 쉽게 버리겠느냐고 입을 열어 설명하려던 슈는, 입술만 몇 번 벙긋하다 결국 입을 다물어버렸다. 인간의 언어란, 고작 몇 마디 말이란, 표현해 버리는 순간 너무나 허무해진다. 세 치 혀 놀리는 데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이츠키 슈가 이 중대한 국면에서, 언변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데 실패할지도 모른다.

설득할 때는 상대방이 가장 알아듣기 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 승리하는 방법이다.

슈는 긴 한숨을 내쉬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올라타거라."

"으응?"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리던 미카의 얼굴이 삽시간에 새파래졌다.

"아, 아이다! 아이다! 스승님, 됐다! 안 그래도 된다! 스승님 목말 같은 걸 탔다가는 내 너무 좋아서 죽어삘지도 모린다꼬 저번에 안 그랬나!"

"농! 널 기쁘게 해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야! 말로 해서는 알아듣지 못하니, 몸으로 표현하려는 것뿐이다! 어서 올라타!"

"응에에에에…."

얼굴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던 미카가 결국 우물쭈물하다 조심스럽게 슈의 어깨에 다리를 걸쳤다. 어깨를 꽉 잡고 "스승님, 진짜 괘안나…? 내 안 무겁나?"하고 묻는 미카의 질문을 못 들은 체하고 슈는 가뿐하게 일어섰다. 야윈 아이여서 어렵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가벼워서 가슴속에 조금 서늘한 바람이 부는 기분이었다. 메인터넌스 때마다 구석구석 살폈기에 잘 아는 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그 무게를 느껴 보니 또 달랐다. 

비쩍 마른 두 다리를 꽉 붙잡고 슈가 말했다.

"넉넉한 수면을 취하면 내 취향에서 벗어날 정도로 거구가 될 거라고? …우스운 말을 하는군. 너 따위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가 안고, 업고, 목말을 태울 수 있을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가 그러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내 관리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에…."

"이렇게 목말을 태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너나, fine의 그 조그마한 아이나, 내게는 별반 다를 데 없다는 것이야."

"폭력적인 논리구마…."

손 둘 곳을 찾지 못해 불안한지 꼼지락거리던 미카가 조심스럽게 슈의 턱을 끌어안았다. 

"미안타, 스승님. 내, 이래 누구 목말 타 보는 기 처음이다 아이가."

"…나도 누군가를 어깨에 올려 보는 경험은 처음이다만."

"응헤헤, 그라믄 똑같네."

긴장으로 굳어 있던 미카의 다리가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정말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어깨에 처음 올라앉은 어린아이처럼 들뜬 느낌이 그 가냘픈 근육으로 전해져 슈는 어째서인지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시 그러고 있던 미카가 허둥지둥 말했다.

"이, 인자 내려 도. 내 잘 알았데이. 밤에 잠도 잘 자구, 수면 시간도 잘 지킬 테니께… 스승님 걱정 안 시킬 테니께, 바닥에 내려 도."

"누가 널 걱정했다고?"

"응아아아."

어쨌든 이제 무용한 염려로 아까운 수면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안심한 슈가 미카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미카는 조금 아쉬운 듯 땅에 다리를 디디며 말했다.

"근데 있제, 내 실은 경험으로 알아서 하는 얘기였데이."

"뭐가 말이지?"

"잠 못 자믄 키 안 큰다는 거. 내, 아주 짝지는 않지만 또 아주 크지도 않지 않나? 아마 어려서 잠 못 자서 그런 기 아인가 싶데이. 고아원에서는 얼라들이 밤에 자꼬 깨가 울어삐니께, 젤 큰 미카 오빠야는 항상 얼라들 챙기느라 얕게 자다가 금방금방 깼제."

"…."

옆에 놓여 있던 스포츠드링크로 손을 뻗던 슈가 멍하니 미카를 바라보았다.

"근데 스승님네 집 와가 밤에 잘라꼬 보니께 괴괴하니 엄청 조용해가 오히려 첨에는 잠이 잘 안 왔다 아이가. 지금은 마 조용한 기 더 좋지마는. 근데, 수예부실에서 집중하는 스승님 옆에 있으믄 진짜 그마이 꿀잠이 쏟아질 수가 없데이. 내헌테는 스승님 곁이 젤 편하고, 안심되는 자리라 안 하나."

잠이 들면 꿈 속에서 슈를 만나고, 눈을 뜨면 곁에 옷을 만드는 슈가 있다. 자신에게는 그보다 더 행복한 공간이 없다.

그렇게 말하며 미카는 수줍게 웃었다.

"내 잠 못 잔다꼬 걱정도 해 주구, 목말도 태워 주구… 역시 스승님은 세상에서 젤 상냥한 사람이데이."

"…나를 두고 그런 평가를 내리는 괴짜는 너뿐이다."

"응아, 세상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는 기제!"

상냥함도, 걱정도, 자신은 그리 많은 리소스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고 슈는 생각했다. 그것을 발휘하는 상대는 단 하나뿐이면 족하다고─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늘 그렇듯 코웃음만 치고 말았다.

언젠가는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어차피, 그때까지 이 아이는 자신의 곁에 있어 줄 것이 뻔하기에.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할 수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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