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God bless 2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천사의 목소리

북부는 기본적으로 기온이 낮고 바다가 가까워 습하다. 결과적으로 1년 중 9개월 정도는 축축한 비와 안개로 젖어 있는 초겨울 같은 날씨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찾아오는 3개월 가량의 여름에는 조금이나마 해가 난다. 슈가 아이들에게 지어 주었던 양털옷이 필요없어지는 아주 짧은 시기다.

그런 여름 초엽의 어느 날. 아침부터 수도원 안이 부산스러워, 세수를 하던 슈는 고개를 갸웃하며 지나가던 수도사를 붙잡고 물었다.

"오늘 무슨 중요한 행사라도 있는 건가?"

"아아, 원장님. 정기적으로 이츠키 가문에서 보내주시는 지원품이 오는 날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첫날 슈가 이곳에 올 때 쪽배를 태워 주었던 온화한 얼굴의 수도사였다. 이름이 카제하야 타츠미라고 했던가.

"원장님이 이곳에 오시고 나서 처음으로 물품 마차가 오는 날이라 다들 기대하고 있답니다. 전보다 조금 더 좋은 게 오지 않을까 하고요."

"…수도사들은 물욕이 없는 줄 알았다만, 뜻밖이군."

"아아, 아닙니다. 저희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만 받습니다. 기대하는 건 저희가 아니고, 마을사람들입니다. 물건을 잘 받아서 마을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해주어야 하기에, 저희도 바빠지는 날이죠."

그 말에 슈는 왜 이 곤궁하고 척박한 돌산의 수도원 아래에 마을이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말았다.

슈는 말간 얼굴로 옆에서 수건을 들고 있던 소년에게 물었다.

"너도 마차에 물건을 받으러 가느냐?"

까마귀 깃털처럼 검은 머리에, 청금석과 호박을 박아 넣은 듯 아름다운 두 눈동자를 가진 초라한 차림새의 소년이 헤헤 웃었다.

"내는 마… 마차 근처에만 가도 걷어채이구 얻어맞으니께, 만날 구경만 했지예. 캐도 마차 오구 며칠 동안은 얼라들이 맛난 거 묵고, 집집마다 마른장작 때서 연기 나는 거 보믄 내 맘도 같이 따땃해졌심더. 동네 전체가 따수워지는 느낌이라꼬나 할까예."

"흠."

고열이 내린 다음날 슈는 소년이 그간 마을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소년 본인은 사실 신변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은 눈치였지만, 고통스러운 밤을 넘기고 눈을 뜬 소년은 한바탕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허탈한 마음이 들었는지 슈가 건네는 데운 포도주를 마시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름은 미카였다. 고아였기에 성은 없다. 아버지도 모른다. 남부에서 온 방랑 무희의 아들로, 어머니는 미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긴 방랑 생활로 체력이 많이 소진된데다 아무리 자비를 베풀어 주는 수도원 밑에 정착했다고는 하나 결국 영양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남부 출신 특유의 검은 머리를 이곳 사람들은 불길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버려진 소년은 신의 은총 덕분에 다른 고아들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다.

"사람 목숨이 질기다는 기 마 그런 거 아인교."

끓여서 알코올을 다 날린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모습은 분명 자신보다 연하일 텐데도 마치 세상만사 다 겪은 노인 같은 느낌이 들어 슈는 잠시 상대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 폭력에… 자주 노출되느냐?"

미카를 업고 나오면서 못을 박아 두었으니 앞으로는 마을 안에서 부조리한 일을 겪는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슈는 걱정이 되었다. 사람의 육체가 외부적 힘에 의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본 경험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처절한 꼴은 처음이었다. 

"아입니더. 저도 눈치가 있지예, 사실 그 양털은 건들믄 안 된다는 기는 알고 있었심더. 그치만 마, 우짜믄 그기 원장님이 시키는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 될지도 모른다꼬 생각하니께… 젤루 좋은 걸루 갖다 드리고 싶더라꼬예."

"…."

자신에게 전속 하인은 필요없다며 소년을 내쫓으려던 일, 그러다 눈동자에 매료되어 또다시 실수를 저지를 뻔했던 일, 그게 두려워 생각나는 말을 아무렇게나 지껄여 내보낸 일을 떠올리니 슈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결국 입에서 나오는 대로 시킨 일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정말로 반성할 일이다.

미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문득 슈가 물었다.

"그럼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 주신 것인가? 이곳이 미카엘 대천사가 꿈에 나타나 수도원을 지으라 명한 자리라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거기서 따 온 모양이지?"

"아…."

미카는 잠시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더니, 뺨을 긁적이며 애매하게 웃었다.

"마… 그런 기지예."

 

참고로 약초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던 수도사가 나중에 의아하게 여기고 슈의 방을 찾아왔다가, 찢은 이불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상처 치료용 붕대라면 준비해 드릴 수 있는데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한 소리 하고 가는 바람에 얼굴을 붉혀야 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일은 늘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지가 않다.

치료를 해 주었으니 이제 그만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얻어맞은 부상이 다 낫기까지 결국 자신의 방에 재우며 돌봐 주어야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향을 떠나 홀로 먼 곳에 온 입장이었던 슈는 싸늘한 침대에 작은 온기라도 있는 것이 솔직히 반가웠고, 마치 날개가 부러진 새끼 까마귀를 구조해 치료해 주었더니 자신을 잘 따르게 된 느낌이기도 했기에 내심 즐겁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슈는 미카에게 자신의 곁을 허락하고 말았다.

"마차 안에 아마 내 앞으로 보낸 물건이 있겠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군."

슈가 나가려 하는데 카제하야 수도사가 말렸다.

"원장님이 내려가셔서 일일이 확인하실 경우, 마을 사람들에게서 좋은 물건을 독차지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마차는 건너편 해안까지만 오고 그걸 배로 실어 나르는 것은 제가 할 일이니, 제가 정리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흠, 속물들이 할 법한 생각이군. 알겠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혹시 할아버님이 내게 보내신 편지가 있으면 그것만큼은 확보하도록."

"그러지요."

자리를 뜨려는 카제하야 수도사를 슈가 문득 불러세웠다.

"혹시 수도원 안에 도서실이 따로 있나? 하다못해 책을 그냥 보관만 해 두는 곳이라도."

"아, 2층에 필사본 작성실이 있는데 그곳을 통해 서고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저희 모두 돌아가며 필사를 하고 있으니 어느 시간대에 가도 반드시 누군가는 있을 겁니다."

"고맙군."

슈가 절망에 빠진 채 수도원행을 결심하면서도 그 와중에 유일하게 기대한 부분이 있다면 수도원 내부에 있다고들 하는 서고였다. 중부에서도 짐승 가죽을 이용해 만든 책은 고급품 취급을 받는데 심지어 수도원에 오면 아름다운 색색의 잉크를 이용하여 예술적으로 필사한 서적이 보관된 곳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했다. 그 내용은 대부분 신의 은총을 찬양하는 종교적인 연구였지만 슈는 내용보다 책 자체의 장정과 거기 실린 그림, 그리고 서체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것을 실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설렜다.

"원장님, 글 읽을 줄 아능교?"

"당연… 아아, 당연한 일이 아니었군. 하지만 수도사들이라면 당연히 읽고 쓰기를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마, 내는 수도사가 아이니께."

뒤따라오던 미카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슈는 미간을 좁혔다.

"문자를 아는 것은 곧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인간이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기존에 몰랐던 것을 배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지. 마침 잘 되었군, 어차피 이곳에 있어도 별달리 할 일은 없으니 네게 글을 가르쳐 주마."

"내한테예?!"

"본의는 아니지만 너를 내 밑으로 거두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는 책임을 지고 널 교육해야겠다는 것이야."

"으, 응아… 내 머리가 나빠가 방금 들은 이바구도 다 줄줄 새는데예…."

"시끄럽다. 글을 배우지 않겠다면 두 번 다시 수도원 안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겠다."

"응아아아아…."

책 자체도 귀중품이거니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 보아야 일부 학자와 성직자들뿐이었기에 고아인 미카가 글을 배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슈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 아이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며칠 사이 완전히 수도원장의 시동 취급을 받게 된 터라 마을에서도 그리 험한 꼴을 당하지야 않겠지만, 읽고 쓰기를 할 줄 안다는 건 상당한 능력이니 이 아이가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마치 미궁 같은 수도원 2층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다 보니 필사본 작성실이 나타났고, 대여섯 명의 수도사들이 깃펜과 잉크와 양피지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양피지 자체가 고가의 물건이어서 아껴 써야 했기에 귀퉁이까지 여백 하나 남김없이 빽빽하게 글씨를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장님이 들어가시는 것은 괜찮지만, 이 아이는…."

서적의 원본이 있는 서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밝히자 수도사 한 명이 미카를 쳐다보며 난색을 표했다. 곳곳에서 툭하면 도둑 취급을 하는 것이 비위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미카 자신도 자못 당연하다는 표정이었기에 슈는 한숨을 내쉬고, 이곳에서 작성된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필사본 두세 권을 빌리기로 했다.

표면에 왁스를 칠해, 글씨를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서판도 요청하니 흔쾌히 빌려주었다.

"그라모, 인자부터 스승님이라꼬 불러도 되능교?"

문득 미카가 그렇게 물었다. 슈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장님이든 스승님이든 자신에게는 통 맞지 않는 사이즈의 옷 같은 호칭이었다. 수도원 안에는 거의 할아버지뻘 되는 수도사도 있었는데, 그렇게 한참 높은 연배의 사람들에게 원장님이라고 불리는 것도 참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달리 불러 달라고 할 이름도 없었다.

"마음대로 하거라."

"응헤헤, 내사 마 공부는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스승님 믿고 함 열심히 해 볼랍니더."

새끼 까마귀처럼 졸랑졸랑 따라오는 미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가니 카제하야 수도사가 가져다 놓았는지 자그마한 짐이 도착해 있었다. 마차 속에서 슈 몫으로 따로 들어 있었던 물품 상자인 듯했다. 상자 뚜껑을 여니 바로 나타난, 조부에게서 온 편지는 안부를 묻는 간략한 문장 몇 줄뿐이었고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편지를 접어 품에 넣고 상자를 뜯으니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뜻밖에도 양모 펠트 인형이었다. 그리고 달콤한 색색의 사탕이 한 움큼.

"열흘 이상을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마차에 굳이 실어보내 자리를 차지하게 할 물건도 아닌데, 할아버님은 대체 내가 아직도 몇 살이라고 생각하시고…."

"이, 이게 머꼬, 스승님?"

한숨을 쉬는 슈와는 반대로 미카는 인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보드라운 질감의 인형도, 값비싼 설탕과 꿀을 굳혀 만든 사탕도 전부 사치품이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닐 터였다. 슈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이 주어진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았기에 몰랐지만 미카의 눈에 상자 속에 든 물건들은 하나같이 태어나 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무슨 용도인지 몰라도 전부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듯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상으로 주마."

"내, 내헌티?! 돼, 됐심더. 천벌 받을 거 같구마…. 응헤헤, 캐도 일케 보는 것만으로도 먼가 행복해지네예. 와아, 이쁘다아…."

이 근처에서 양을 꽤 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양털 옷조차 갖춰지지 않아 늘 추위를 견디며 지내야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양모 펠트로 인형을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치였다. 할아버지가 보낸 인형은 새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슈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토끼 귀가 달린 천사 인형으로 레이스와 리본이 가득 달린,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물건이었다.

미카가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벗어나려 했던 대상을 굳이 보내시다니 할아버님도 정말이지 여전하시다는 것이야. 결국, 도망치지 말라는 뜻인가."

슈는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응아…?"

"농,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나중에 네게 상으로 주어야겠다. 단,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내 지시를 잘 따른다는 조건이 따른다만."

"그, 그런 거 안 줘도 열심히 할 낀데…."

하지만 미카의 눈은 여전히 인형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그 청금석과 호박의 두 눈동자가 이토록 빛나는 모습을 처음 본 슈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툼한 나무 판자를 구해 와 벽에 선반처럼 붙이고, 그 위에 인형을 앉혀 놓았다. 공부하러 온 미카가 고개만 들면 보이는 위치였다.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당연히 핑계다.

그저 미카의 두 눈이 반짝이는 모습을 더 편하게 보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

며칠 후 슈는 혼자서 서고를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필사하던 수도사들도 막지 않고, 오히려 묵직한 열쇠꾸러미를 가져와 엄중히 잠겨 있던 문을 순순히 열어 주었다. 

창문 하나 없이 어둡고 좁은 석조 공간에 퀘퀘한 냄새가 가득했다. 슈는 들어올 때 주의받은 대로 장갑을 끼고 우선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필사본 작성실에 이미 사본이 여러 권 완성되어 있는, 성서 중의 한 권이었다.

"아름답군."

슈의 입술 사이로 감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진짜 금이 사용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짝이는 금빛 잉크, 알록달록한 온갖 색깔들이 넉넉히 들어간 화려한 여러 장의 그림들. 

슈는 신의 기적을 믿지 않았지만, 인간이 초월적인 존재를 찬미하기 위해 생존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행위에 시간과 자원을 들이는 일이야말로 종교가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위치에 자리잡은 이 수도원의 존재, 그 자체처럼.

성서를 두어 권 보다 다음으로 집어든 것은 식물도감이었다. 성서보다 더 그림이 많고, 색채도 풍부했다. 그 선명한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눈을 빛내며 열중하던 슈가 문득 고개를 든 순간, 뒤쪽에서 무언가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툭 떨어졌다.

좁은 공간 안에 자신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던 슈는 깜짝 놀라 비명을 삼키며 몸을 움츠렸지만,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음?"

서가도 없는 곳에서 무슨 책이, 하고 집어든 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은 처음 보는 낯선 문자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알파벳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마치 정과 끌을 들고 돌에 새긴 듯 더 뾰족하고 단순하게 생겼다. 아름다운 채식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투박한 모양새였으나 그 이질적인 모양이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이교도의 문자?"

어째서 수도원에 이런 책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슈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서가 한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겼다. 툭 소리에 기겁도 했고, 더 알아보고 싶기는 했지만 슬슬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나가야 했다.

문을 닫고 나오니 필사본 작성실에 남아 있던 야윈 체격에 곱슬머리를 지닌 수도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슈에게 다가왔다.

"원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방금 전 있었던 일에 아직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슈가 살짝 갈라진 소리로 묻자, 수도사가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원장님이 데리고 다니시는 그 아이 말입니다만."

"검은 머리 소년 말인가?"

"예. 실은 수도사들 전원에게 물어보았는데, 아무도 그 아이에게 원장님을 모시라고 지시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뭐라고?"

성큼성큼 걷던 슈의 걸음이 멎었다. 수도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귓속말했다.

"마녀나 다름없는 남부 출신 방랑자 계집이 누구와 붙어 낳았는지 모를 천한 고아인데다, 그 두 눈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양쪽 색이 다른 눈동자를 지닐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쩌면 악마의 자식인지도 모릅니다. 가엾은 고아라며 수도원에서 다른 고아들과 함께 먹을 것을 주어 키우기는 했지만, 저는 전부터 그 녀석이 너무 불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런 녀석이 원장님이 오시자마자 달라붙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어쩌면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수도원에서 듣기를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저 중앙의 끔찍한 사교계에서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고, 툭하면 상대의 약점을 잡아 깎아내리려 잔꾀를 부리는 귀족들의 더러운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모를까, 설마 이런 곳까지 와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만."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원장님이 걱정이 되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아이, 이전에 만나신 적이라도 있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쉽게 처음 보는 낯선 아이를 바로 옆에 두신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 아이가 사특한 악마의 수를 써서 원장님을 꾀고, 함정에 빠뜨리려는 게 분명합니다. 제발, 부디 조심하십시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화를 낼까 했지만, 이 수도사 나름대로는 진지한 이유가 있어서 설득하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는데 미카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슈 역시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슈가 그날 치료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폭행당한 상처가 덧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을 것이다. 무슨 이득을 보려는 꿍꿍이를 품고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하기에는, 아무리 그래도 그 대가로 자신의 죽음을 지불하려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니 악마의 자식 운운하는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들을 가치가 없지만 첫날 도착하자마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찾아와 하인을 자처한 이유는 한 번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다고, 슈는 생각했다.

필사본 작성실을 나가려는데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잽싸게 움직이는 듯,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으나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

"응아~ 수도원 안에 쥐가 있나 보지예?"

수도원 내 작은 채소밭의 물 주는 일을 돕던 미카가 문득 물었다. 물뿌리개를 들고 한 발 앞서 걷던 카제하야 수도사가 뒤를 돌아보며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먼 바다로 나가는 배 밑창에도 쥐는 늘 있다고 하지요. 아무리 육지와 떨어진 돌산이라고는 하나, 사람이 사는 곳이니 쥐가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글치예? 가만 듣고 있음 천장 우에서 샤샤샥, 샤샤샤샤샥, 하는 소리가 자꼬 들린다 아인교. 우짜다 이런 데 눌러앉았나 몰라도 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멉니꺼. 마, 수도사님들은 암만 풍족해도 배 터지게 밥 묵는 사람들이 아이니께 남은 음식 주워먹을라꼬 돌아댕기는 거라믄 쥐도 배 곯을끼라…."

"후후, 미카 씨는 다정하시군요."

수도원 안에서 슈와 함께 살게 된 미카를 수도사들은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다소 난감한 눈치였다. 슈 하나야 원래 '모실' 예정이었던 사람이고, 거의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니 오히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지저분한 고아 꼬마까지 굴러들어와 함께 살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미카는 최근 들어 슈에게서 공부를 배우지 않는 때면 수도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소도 하고, 일손이 부족해 보이는 수도사가 있으면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도 자청해서 돕는 등 바지런하게 움직였다. 그런 미카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을 여는 수도사도 있었고, 그 중 카제하야 수도사는 비교적 미카에게 잘해 주는 편이었다.

"응아, 마 없는 살림에 다 같이 잘 살아보자꼬 하는 기 아인교. 캐서 마 내… 요새는 빵쪼가리 떼어가 구석에 놔두기도 하고 그럽니더."

"예?"

미카가 수도원 안에서 얻어먹는 것이 사실상 음식찌꺼기나 다름없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카제하야 수도사가 문득 물 주던 손을 멈추었다. 미카는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 아입니더. 암만 쥐라캐도 내 묵는 탄 걸 묵진 않으니께, 그런 걸 주는 기는 아이고예. 가끔 스… 원장님이 묵을 걸 줄 노나줄 때가 있심더. 스, 원장님은 마, 음식이라꼬 생긴 기는 별루 입에 넣는 걸 좋아하지 않아가꼬 자기 묵기 싫으믄 내 주곤 하는데… 그럴 때 깨끗한 부분을 떼어가 복도 한쪽 구석에 놔두믄 금방 없어집니더. 쥐들도 맛난 거 묵고 싶을 때 있지 않겠심꺼?"

"아, 예. 뭐… 그렇겠지요."

카제하야 수도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수도원 안의 쥐까지 챙겨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미카 씨. 선량한 당신은 반드시 천국에 가실 겁니다."

"응아~ 내는 천국 갈지는 몰게꼬 걍 스, 원장님 가는 데 따라가고 싶은데예."

신실한 수도사라면 엄하게 질책해야 할 말이겠지만 카제하야는 여전히 미소만 지은 채 아무 말 없이 다시 물뿌리개를 집어들고 밭고랑을 따라 앞서 걷기 시작했다.

***

그 후 슈는 혼자서 서고에 자주 드나들었다. 항상 필사본 작성실을 통해 들어가야 했지만, 필사하는 수도사들은 슈가 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기도 했지만 슈가 인사를 받아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버렸기에 이제는 무시하고 하던 일에만 열중했고, 슈도 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교도의 문자가 적힌 책을 한쪽에 잘 숨겨 놓았더니, 얼마 후 다시 가 보자 책이 한 권 늘어나 있었다. 누군가가 열심히 필사한 듯했는데 내용을 훑어보니 신기하게도 이교도의 문자를 슈가 알 수 있는 글로 옮기고, 문장을 해설해 놓은 책이었다. 마치 이것으로 이교도의 문자를 익히라는 신의 계시 같았다. 설마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슈는 그 두 권을 나란히 펼쳐놓고 비교해 보았다.

"아무리 봐도, 언어 교본… 이군."

기본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활발한 슈는 그 두 권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방에서는 미카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쪽에 오면 자신이 배우는 처지가 된다. 그것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빌린 서판에 이교도의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밖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네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이 안에 최근 들어온 수상한 놈이라고는 너밖에 없는데!"

"응아아, 아입니더, 진짜 아이라예. 저는 그게 먼지도 모르는데에…."

노호성에 이어 들려온 울음 섞인 소리에 슈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이 주위에서 남방 사투리로 말하는 유일한 사람, 미카였다.

슈가 서고 문을 벌컥 열고 나오자 수도사 몇 명이 미카를 둥글게 둘러싸고 몰아붙이던 중이었다.

"아아, 원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양피지가 자꾸 줄어들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이 필사본 작업실 문앞을 얼쩡거리는 것을 마침 발견했지 뭡니까! 너 이 녀석! 어디다 숨겨 뒀어? 나중에 몰래 팔아먹으려고!"

"아이라고예! 내가 그런 걸 어데 파는지 우예 압니꺼? 사람이 고아라꼬, 와 당연히 도둑질을 한다꼬만 생각하고…!"

미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수도사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험악했다. 

'양피지가 자꾸 줄어들어?'

그 말에 슈는 가슴이 철렁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보던 이교도의 교본, 그것이야말로 새 양피지로 만들어진 책이 아니던가. 잘 생각해 보면 결도 매끄러운데 심지어 아직 잉크조차 마르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미카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은 확실했기에 도와주고 싶었으나, 슈 자신도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른 수도사 하나가 또 나섰다.

"양피지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이츠키 가문에서 보내 주신 물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맞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일정량을 분배해 주고 나머지는 수도원에서 사용할 몫으로 가져다 놓았는데, 모든 부분에서 조금씩 부족합니다! 이 녀석이 훔친 게 분명하다고요!"

"내, 내는, 분명 모른다꼬…."

"얼마 전 양털 사건도, 물론 원장님이 지시를 내리신 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 수단으로 도둑질을 택한 건 이 녀석입니다. 손버릇이 나빠요. 당장 내쫓거나, 여기서 호되게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는 이 녀석을 수도원 안에 놔둘 수가 없습니다."

슈는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이것은 미카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수도사들의 반항일지도 몰랐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던 수도원에 어느 날 갑자기 잘난 체하며 나타나, 원장입네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급기야는 모두가 악마의 자식이라며 꺼려하는 고아까지 끼고 도는 자신에 대한 거부감. 

슈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일단 미카에게로 달려가, 몸집 작은 아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저, 정황은 잘 모르겠지만, 이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으며 도둑질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야. 필사본 작업실 앞을 얼쩡거렸다는 것은, 독서가 끝날 때까지 내가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지. 증거도 없이 지레짐작만으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신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모두 자숙하도록!"

슈가 근엄하게 외쳤지만 수도사들의 적의 어린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들은 이 기회에 미카를 수도원에서 내쫓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서고에만 틀어박혀 희희낙락 외국어 공부나 하고 있었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져 슈는 어쩔 줄을 몰랐다.

큰 결심을 하고 평생을 살아온 중부를 떠나, 완전히 뼈를 묻기 위해 수도원에 찾아온 지 몇 달─. 하지만 자신을 의지하는 이 가냘픈 소년 하나조차 지켜내지 못한다면 슈는 이번에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혀라도 깨물고 싶어질 것이었다.

정말로 죽을 만큼 부끄럽지만, 미카를 데리고 중앙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고 시골 다른 곳의 영지라도 달라고 말해야 할까. 슈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Vet du ikke hvem som er den virkelige tyven?"

(진정한 도둑이 누구인지 정녕 모르겠느냐?)

높디높은 머리 위, 천장 너머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후하고, 깊고, 마치 땅 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가는 듯 묵직하면서도 요사스러운 어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수도사들이 모두 굳어져 버린 상황에서, 아까는 없었던 카제하야 수도사가 어느 틈엔가 나타났는지 외쳤다.

"천사님입니다! 천사님이 수도원에 강림하신 겁니다! 아멘!"

수도사들은 모두 얼결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앙심 깊고 성경에 충실한 이들인데, 하물며 이곳은 애당초 미카엘 대천사의 계시를 받고 지어졌다는 수도원이다. 천사의 목소리라는 말에 복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놀라던 슈는 카제하야 수도사와 눈이 마주쳤다. 카제하야 수도사는 아래에 점이 두 개 있는 한쪽 눈을 꿈뻑했고, 슈는 허둥지둥 미카의 어깨를 누르며 함께 무릎을 꿇었다.

"오오, 천사님…."

"천사님, 저희에게 무슨 은총의 말씀을 내려주려 오셨는지요…."

그 웅성거림 속에서 슈가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Hvem er det?"

(그것이 누구입니까?)

수도사들의 눈이 전부 슈에게 쏠렸다. 천사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 그러고 보면 미카엘 대천사의 계시를 받았다는 자도, 추후 이곳의 수도원장이 되었다.

"Den tynne, høye mannen som har krøllete hår. Han stjal alt og la skylden på gutten din." 

(야위고 키가 크며 곱슬머리를 지닌 남자다. 그 자가 모든 것을 훔치고, 네 소년에게 누명을 씌웠다.)

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쪽을 돌아보자 유달리 움츠러드는 자가 있었다. 처음 자신을 붙잡고 미카를 악마의 자식이라 비난했고, 이번에도 혼자 가장 큰 소리로 미카를 추궁하던 자였다. 

"천사님께서 진정한 도둑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셨다. 허나 나는 지금 이곳에서 그 자를 잡아내 단죄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야. 한때의 실수라 여기고 불문에 부칠 테니, 두 번 다시 이 아이에게 공연한 누명을 씌우지 않도록."

"…."

수도사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치는 가운데 한구석에 있던 카제하야 수도사가 빙긋이 웃었고, 슈는 미카의 어깨를 안고 성큼성큼 필사본 작성실을 빠져나갔다. 가슴속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스, 스승님, 진짜 천사님 말 할 줄 아는 기가…?"

방으로 돌아와 단둘이 남자 미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슈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천사의 말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야. …그리고 아마도 내게 이교도의 언어 교본을 준 자이기도 하겠지. 그래, 어디 설명을 들어 볼까? 카제하야 형제."

어느 샌가 방문 앞에 서 있던 카제하야 수도사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원장님의 자비에 감사를."

"입에 발린 말은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논리적인 설명뿐이야."

슈는 품 속에 넣어 두었던 이교도 언어 교본을 꺼냈다.

"이것을 만든 자, 그리고 방금 전 그 목소리로 천사를 참칭했던 자를 당장 내 앞으로 데려오도록."

"원장님이 그러라고 하십니다. 어서 내려오세요, 마요이 씨."

"히에에…."

카제하야 수도사의 뒤에서 슬그머니 나타날 줄 알고 그쪽만 쳐다보던 슈와 미카는 갑자기 천장에서 누군가가 툭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들바들 떨며 이쪽의 눈치를 보는 그것은 누가 봐도 인간이었다. 보랏빛 머리카락을 땋아내린, 치아가 기묘하게 뾰족뾰족한 모양새를 지닌 인간. 위축된 그 모습에서는 방금 전의 중후한 목소리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야세 마요이 씨입니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천장에서밖에 살지 못하는 종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수도원 천장에서 살다 보니 지식이 풍부해졌다고 합니다. 마요이 씨는 특히 타인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데 능하시죠."

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상대를 응시하다가 입을 뗐다.

"Hva heter du?"

(당신의 이름은?)


"Jeg heter Mayoi Ayase. B, beklager at jeg overrasket deg…."

(아야세 마요이입니다. 노,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아아….)

방금 전의 언어가 통하는 것을 보니 천장 위의 목소리는 이 자가 틀림없는 듯했지만, 그때의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달라 슈는 당황스러웠다. 

"응에에, 그, 또, 천사 말 아이가…."

미카가 신기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마요이는 비교적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카를 돌아보았다.

"후후. 천사 말이 아니랍니다. 먼 바다 건너에 사는, 여러분이 '이교도', '야만인'이라 부르는 자들의 말이지요. 저는 오래 전부터 이 수도원에 살고 있었고, 이곳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답니다…. 으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불쾌하셨죠! 죄송합니다! 살아 있어서 죄송합니다!"

"…카제하야 형제, 이 자와는 제대로 된 대화가 어려울 것 같다만.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야."

슈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카제하야 수도사 쪽을 노려보았다. 카제하야 수도사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요이 씨는 그저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그렇죠, 마요이 씨?"

"네에에에에! 미, 미카 씨가 가끔 음식을 나누어 주시고, 그날 하루하루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신 답례를 하고 싶었답니다아아아!"

"응아아?! 그건 그, 아무도 안 듣는 줄 알고, 쥐들한테만 한 얘기였는데… 그라믄 아야세 군은 여태 내가 한 얘기 다 들은 기가?!"

"네에, 그럼요. 미카 씨가 저 분을 다시 만나서 얼마나 기뻤는지도…."

"응아아아아아아!!"

미카가 두 팔을 파닥거리며 마요이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 사이, 슈는 의아한 표정으로 살짝 미간을 찌푸리다 카제하야 수도사에게 물었다.

"다른 자들은 저 자에 대해 모르는 눈치던데, 카제하야 형제는 어떻게 알았지?"

"정말로 우연이었습니다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미카 씨와 같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흉년이 들어 모두가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주리고 있을 때, 수도원 안의 쥐가 걱정되어 음식을 조금 가져다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흠. 그것은 내 조부님께서 이곳을 지원하시기 전인가?"

카제하야 수도사가 빙긋 웃었다.

"역시 당신은 날카로우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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