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tears in red

#파리동거시공(미래) #와인 #위로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둘 다 성인이 된 후의 미래 시점, 파리에서 동거 중

※음주묘사 있음

피차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일이지만 슈는 알콜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뵈프 부르기뇽과 함께 레드와인 한 잔, 담백한 흰살생선 요리와 함께 화이트와인 한 잔. 프랑스식 식사에 흔히 딸려 나오는, 입 안을 간신히 헹구는 정도의 와인 한 잔 정도가 아니면 본격적으로 술자리에 참석해서 취할 때까지 마시는 모습을 적어도 미카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미카 쪽이 일본주나 맥주, 와인에 위스키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편히 잘 마시는 편이었다. 슈도 자제심을 잃고 도가 지나치도록 마시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술 취향은 신사의 소양으로서 갖고 있는 게 좋다고 말할 뿐 미카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강요한 적은 없으니, 술 자체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술이 약해서일까? 내심 그런 의심을 품은 적도 있었으나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우선 슈의 가족들이 저 유쾌한 조부를 필두로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 주당인데다, 미카가 프랑스에 없던 시절 슈와 함께 홈파티를 한 적 있었다는 학우들 역시 못 마시는 편은 아니라고 증언했다(미카가 일부러 캐물은 것은 아니고, 대화를 하다 보니 나온 화제였다). 주량이 약한 것도 아니고, 술 자체를 아주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면 슈가 술자리를 가능한 한 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솔직히 조금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물을 만한 일도 아니어서 미카는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의문은 늘 마음 속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끔은 집에서 단둘이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의뢰인의 무리한 요구에 맞춰 겨우 납기를 끝마친 저녁에는 함께 시원한 맥주도 한 잔 하고 싶고, 노을이 지고 편안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가운데 센 강변에 털썩 주저앉아 지나가는 유람선을 바라보는 저 자유로운 젊은이들 사이에 섞여 위스키를 홀짝거리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미카가 무엇보다 슈와 함께 마시고 싶은 것은 단연코 와인이었다. 이곳은 평범한 동네 슈퍼마켓에만 가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질 좋은 와인과 치즈가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애주가의 천국이 아닌가. 미카가 마시는 것을 말리지는 않으니 혼자 마실 수야 있지만, 어떻게 술을 마시지 않는 상대 앞에서 혼자 병을 딸 수 있겠는가. 그래서는 단순한 술꾼일 뿐이다.

"내는 영혼을 나누고 싶은 기다, 걍 꽐라가 되고 싶은 기 아이라…."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선물로 받은 고급 와인을 든 채 미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인이 된 후로 일을 하면서 주류를 선물받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았고 미카도 상대의 성의를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집에서 혼자 쓸쓸하게 병을 따는 일은 내키지 않았기에 또다시 집안 한구석에 있는 와인셀러에 처박힐 것이 뻔하고─슈는 잘 마시지도 않으면서 이 또한 교양의 일환이라는 이유로 가구를 장만할 때 결코 미니가 아닌 크기의 와인셀러도 함께 들여놓았다─그 투명한 유리문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미카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똑바로 말로 표현해야 해. 타인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사기꾼 독심술사뿐이니까.

자신의 욕망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미카에게 스승이 가끔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 보틀을 함께 뜯고 싶다고 말하면, 스승은 곤란한 표정을 짓지 않을까? 무작정 화를 내지야 않겠지만 아름다운 눈썹을 살짝 꿈틀하다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다음 기회에. 라고 말할지도 모를 가능성이 미카는 더 괴로웠다. 사소한 일이니, 자신만 조금 참으면 되지 않을까.

그날 손목에 유난한 무게를 느끼며 와인이 담긴 기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귀가한 미카는 부엌에 들러 물을 한 잔 마시면서, 무심코 와인을 식탁에 올려놓고 깜박 잊은 채 자기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서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고 있는데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응앗, 스승니임!"

평상시에는 고양이에 비유되는 일이 많지만 예나 지금이나, 슈의 귀가를 기다리는 미카는 마치 충직한 강아지를 방불케 한다. 없는 꼬리도 너무 흔들다 못해 떨어져 나갈 기세로 현관으로 돌진하는 미카를 보고 슈는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아무리 있는 힘껏 안겨도 꿈쩍도 하지 않는 스승의 가슴에 머리를 비벼대며 "스승님도 오늘 고생 많았제~."하고 맞이하니, "너도 방금 전까지 촬영이 있었던 걸 알고 있다. 자, 오늘 저녁 식사는 내가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거라."하는 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응후후, 메뉴가 머가 될지 몰라도 어차피 다 맛있을끼다~. 내는 알제."

"물론 내가 준비하는 식사는 맛과 영양과 겉보기 모두 완벽하지만, 우선은 이것을 주방에 갖다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야. 카게히라, 너무 달라붙지는 말거라."

마치 코알라처럼 매달린 미카를 한 팔로 반쯤 안아들고 반대편 손에는 식재료가 가득 든 장바구니를 움켜쥔 채 주방으로 이동한 슈의 눈에, 문득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그것이 띄었다. 슈의 귀가로 마냥 기분이 좋아져 있던 미카는 한 발 늦게 그것을 알아차리고 움찔하며 슈에게서 다급히 떨어졌다.

"응아아, 내 정리한다카고 깜박했데이! 얼른 집어넣을 텡게 스승님은 장바구니 정리를…."

"흐음, 네가 사 온 것이야?"

"아이다, 선물받은 기다. 담에도 촬영 잘 부탁한다꼬…."

"그래, 업무 상대와의 원만한 교류는 중요한 법이지. 게다가…."

라벨을 확인한 슈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취향이 꽤 괜찮은데, 오늘 저녁에는 음료로 곁들여 볼까? 마침 닭고기 요리를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니."

"응아, 아, 으응!"

미카는 순간 놀랐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먼저 나서서 마시자는 제안을 처음 들어서 그렇지, 전술했다시피 슈라고 술을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입장은 아니다. 한두 잔 정도야 충분히 식사와 곁들여 마실 수 있는 것이 와인이다. 

자신이 선물받아 가져온 와인을 좋게 평가하고 선뜻 함께 마시자고 말해 준 것이 기뻐진 미카의 얼굴에 금세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응헤헤, 스승님캉 짠! 할 수 있다니 내 너무 행복하데이~."

"짠이 아니고, 썽떼(Santé). 휴우… 술자리 예법까지 지도해야 하다니 갈 길이 멀었군…."

이마를 짚고 고개를 두어 번 절레절레 저은 슈가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향하려는데 미카가 까르르 웃었다.

"무신 소리고, 스승님. 술자리는 내가 스승님보다 더 마이 다녔을 끼다. 암만 스승님이라캐도 술은 내가 더 잘 마신데이."

"농! 주량 자랑은 품위 없는 짓이다만… 설마, 카게히라. 내가 알콜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순간 슈의 눈빛이 번득이는 것을 본 미카는 순식간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손을 내저었다. 안 된다, 이런 곳에서 쓸데없이 호승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응아아아, 아이다, 아이다! 내 암 말도 안했다! 암 생각도 안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오해는 풀고 넘어가야겠지. 내가 저 와인셀러를 다 비우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직접 보여줘야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군."

"집에 있는 와인셀러를 홀딱 비운다꼬?! 스승님, 진짜 괘안은 기가?!"

공연한 소리를 했다며 울상을 짓던 미카는 슬슬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슈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담하게 웃었다.

"괜찮다는 것이야. 지금, 여기서는."

***

본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대로 슈는 좀처럼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잔이 넘어감에 따라 뺨이 살짝 불그레해지고 제비꽃 빛깔의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그 얼굴에서 미카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론 스스로의 취기도 거들어서였다.

"응헤헤, 스승님의 예쁜 얼굴 내 독차지하고 있구마…. 먼 호사고."

"벌써부터 그렇게 흐트러지다니, 그간 다녔다는 술자리가 불안해진다. 어디서 실례를 범하진 않았겠지?"

"아이다! 내 취해가 실수한 적은 한 번도 없데이!"

"흥, 글쎄다. …네 얼굴을 좋아하는 게,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 아니니…."

오래 푹 삶아 부드러워진 닭가슴살 한 점을 포크로 찍으며, 문득 미카는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아니, 이 자리가 아니면 언제 또 물을 수 있을까.

"내는, 솔직히 스승님이 술 싫어하는 줄 알았데이."

미카의 말에 슈는 한 손에 들고 가볍게 흔들던 와인 잔을 훌쩍 비운 뒤, 살짝 입을 삐죽이다 대답했다.

"겉멋만 들었기 때문에 저질렀던 추태여서 웬만하면 말하고 싶지 않았다만, 네가 또 속을 끓일 것 같으니 솔직하게 털어놓아야겠지. …실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입에 댈 술은 반드시 압생트여야만 한다고, 14살 때 결심했었거든."

"응아, 압생트가 머고?"

"진한 초록빛을 띤, 약쑥으로 빚은 독주지. 고흐로 하여금 샛노란 해바라기를 그리고, 또 귀를 자르게 만들었다는…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수많은 예술가들의 연인이자, 환각을 보여 주는 뮤즈이자, 녹색의 악마라는 말에만 도취되어 있었어. 실제로는 빈곤한 예술가들이 없는 주머니를 털어 겨우 구할 수 있었던 값싸고 도수 높은 술이었을 뿐이고, 70도가 넘었던 당시의 압생트에 비하면 지금은 기껏해야 50도 정도가 생산되고 있다고 하지만."

미카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스승님, 50도 그거 쉽게 얘기하믄 안 된다. 술 첨 묵는 사람한테는 50도도 큰일난데이. 사람 잡는다 아이가."

"응, 나는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드디어 옛 예술가들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만 젖어 그 녹색 악마의 손을 잡았던 것이야."

슈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콜 냄새에 섞여 짙은 후회가 함께 배어나는 숨결이었다.

"먹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고 무작정 들이켠 그날 나는 깨질 듯한 두통과 끝없는 구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육체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밤새 시달려야만 했어."

"응아! 와 내는 그때 스승님 옆에 없었던 기고! 내가 있었음 토한 것도 다 닦아주구 화장실 데꾸 가서 등도 뚜들겨 주구, 잘 돌봐줬을 텐데!"

안타까워진 마음에 앉은 채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미카는 '그런 추태를 네게 보일 리가 있겠냐는 것이야!'하고 슈가 호통을 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슈는 눈을 맞추고 가만히 미카를 바라보더니, 기운이 빠진 듯 후, 하고 한숨처럼 웃었다.

"응."

"…?"

그 표정과 대답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미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슈는 와인을 한 잔 더 따르며 말했다.

"네가 없었다, 카게히라."

영문을 몰라 깜박이기만 하는, 색이 다른 두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슈가 말을 이었다.

"옛 시대의 예술가들은 압생트를 마시고 위대한 예술을 일구어 냈지만, 그 악마가 내게 가져다준 것은 저 끔찍하게 이어지던 밤의 기억과… 그때와 달리 내 곁에 네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지독한 처사뿐이었다는 것이야. 무저갱 같은 절망의 밤, 나는 정신이 들 때면 늘 곁에 있던 네게 이런 쓸모 없는 허수아비 따위는 그만 버리고 새롭게 살 길을 찾아 나서라고 말하곤 했지…. 하지만 일그러지고 비뚤어진 인형이었던 너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곁에 붙어 있었고, 간혹 머릿속이 명료해질 때마다 나는 그것을 실감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허나 그 날 밤… 하룻밤이 꼬박 지나도록 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는 네가 1만 킬로미터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드디어 네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만 골몰했다는 것이야."

"?!"

차근한 슈의 말을 듣던 미카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지만 슈는 한 손을 내밀어 대꾸를 제지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 후로 나는 가능한 한 취하지 않으려 노력했지. 그것이 네 눈에 마치 내가 술을 싫어하거나, 술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별것도 아닌, 그것이 사건의 전말일 뿐이야. 완전히 치유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새까만 밤의 기억이 내 안에 그대로 살아 있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는 데 대한 고통을 그토록 생생히 맛보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으니. 그래도 카게히라, 네가 곁에 있다면… 조금의 취기는 오히려 기분 좋은 것으로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식탁 위의 이 와인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카의 두 눈에 차오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는… 내는, 몰랐데이. 스승님이 혼자 추운 방에서 그래 시달리고 있었을 줄은… 내는 암것도 모르고 걍 스승님은 파리에서 마냥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

"물론 이곳은 내 체질에 잘 맞는 장소지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가져올 수는 없었으니 말이지."

슈는, 젖어서 반짝이는 청금석과 호박의 아름다움에서 멍하니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에 차마 눈물을 닦아 주는 행위조차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아름다운 아이가, 오로지 한결같이 자신만을 쫓아서 달려온 이 아이가 지금은 자신의 곁에 온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감동에 새삼스럽게 전신이 떨렸다.

불현듯 미카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와인 잔으로 툭 떨어진 순간, 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잔을 낚아챘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응아아! 그거 내 잔! 그카고 와 눈물 빠진 걸 마시노! 버리고 새로 따르믄 되제!"

"농!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흘려 준 눈물을 직접 마신다는 고결한 행위를 할 기회를 놓쳐서야 예술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 그라모, 내도 마실끼다! 스승님! 요 잔에다가 빨리 눈물 흘려 도!"

"그 머릿속에는 톱밥으로만 꽉 차 있단 말이냐! 흘리란다고 그리 쉽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피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으나 나란히 꽤나 마신 상태였기에 알고 보면 술기운이 얼근하게 돌고 있었다. 그 상태로 서로를 향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던 두 사람은 나란히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응아~ 내는 있제, 스승님. 스승님캉 꼭 같이 와인을 마시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데이."

미카가 식탁에 엎드린 채 눈만 들어서 슈를 바라보며 말했다. 슈도 굳이 예의를 지적하지 않고, 이유를 말해보라는 듯 살짝 턱짓을 했다.

"Valkyrie의 테마 컬러는 와인 레드라는 얘기, 진짜 수도 없이 안 했나? 근데 정작 우리는 같이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다는 기 쫌 우습다고 생각했데이. 캐서 내가 성인이 되믄 꼭 스승님캉 와인 마실라꼬 벼르고 있었는데, 스승님이 계속 술을 피하니께… 우야믄 좋을지 알 수가 없었구마."

"…그런 정도의 사정은 충분히 참작해줄 수 있고, 나는 이제 네 말에 무작정 화를 내지 않는다만…."

오로지 분노뿐만이 아니라 곤혹, 주저, 당황 등 미카는 슈의 모든 부정적인 반응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끌어낼 가능성이 있는 행동을 전부 포기하려 든다.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때로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파트너 사이이지만, 미카의 내면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존재한다. 여전히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

"사실, 압생트를 마신 밤… 어둠과의 사투가 끝나고 날이 밝았을 무렵, 그때가 오히려 더욱 괴로웠었다."

슈는 다소 흐릿해진 시야를 깜박였다. 그 속에서도, 식탁 맞은편에서는 자신의 말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온 힘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미카가 있었다. 압생트가 불러온 환각이 아닌, 진짜 살아 있는 육체를 지닌 미카가.

"본능과 자기연민으로만 점철되어 있던 밤보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이치고 완벽하게 주위 상황이 파악되었을 때. 그때도 정말로 손 닿는 거리 안에 네가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 나는 하마터면 정말로 무너질 뻔했어. 마드무아젤이 네게 전화를 해 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해 주지 않았다면 침대에 웅크리고 꼼짝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응아! …그, 그라믄 그때였나?! 점심때 갑자기 스승님한테 전화 와서, 응아~ 그짝은 새벽일 텐데 웬일이고? 하고 전화 받았더니 목소리 들었으면 됐다믄서 전화 끊어버렸을 때?!"

놀란 미카가 고개를 퍼뜩 들자, 슈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학교에 있거나,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의 네 활기찬 목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던 중의 네 존재가 얼마나 위안이었는지."

슈는 자신이 방금 마신 액체를 생각했다. Valkyrie의 와인 레드에, 미카의 눈물 한 방울. 어쩌면 그것이 지금 자신을 이루고 혈관 속에 도는 생명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해 주려 했지만, 잠깐 고개를 들었던 미카가 다시 식탁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린 모습을 보고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삼켰다. 언젠가, 맑은 정신으로, 미카가 아무 두려움도 없이 슈의 말을, 슈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아껴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날 아침, 약간의 숙취와 함께 눈을 뜬 슈는 자면서도 어찌나 놓지 않으려 꽉 껴안고 있었는지 자신의 품 안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치다 기진맥진해서 늘어진 미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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