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봄을 기다려
#부재중 #프리티5 #독점욕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슈미카_전력_60min
주제: 부재중
"쥰 군은 사실 서클 멤버도 아인데, 거들어 줘가 고맙데이."
"뭘요, 어차피 아기씨 심부름이나 마찬가진데. 카게히라 씨야말로 혼자만 심부름 나온 거, 억울하지 않으세요?"
유리로 된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고, 키가 엇비슷한 검은 머리의 또래 소년 둘이 양 손 가득 꽉 찬 비닐봉투를 든 채 나왔다. 오늘은 휴일이라 나란히 편한 사복 차림으로, 프리티 5의 '서민들의 프리티한 식생활을 알아보자!'라는 테마를 갖고 히요리와 토리의 주도 하에 열린 편의점 신상 시식회─한 마디로 과자파티에 쓸 간식을 사러 나온 쥰과 미카였다.
"딴 사람들은 다 바쁘다카니께 우짤 수 없지 않나? 나루쨩허구 시라토리 군은 스케줄 땜에 쪼매 늦을 거라캤고, 토모에 선배캉 토리 군한테는 마, 이런 거 몬 시키제. 어차피 머 사야는지도 잘 모를끼다."
"하하, 그래서 제가 대신 온 거지만요."
소탈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쥰을 보니 미카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왔다. 같은 코즈프로 소속의 쥰은 미카에게 얼마 안 되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또래 상대였다.
"평소에는 다 같이 카페 같은 데로 디저트 무러 가는데, 요번에는 쪼매 색다른 걸 묵어보고 싶다 카드라. 내도 사탕 같은 거 아님 편의점에서 머 잘 안 사묵는데 마침 재밌는 기회다 싶었제. 전에는 스승님이 준 거 아이믄 아예 안 묵기도 했지마는…."
"저도 무심코 집다 보니 엄청 많아졌네요. 만화책 보면서 까먹을 만한 걸 좀 살까 싶었는데, 이래서는 다 먹을까 싶어요."
두 사람의 양손에 각각 하나씩 든 봉투에는 푸딩과 초콜릿, 케이크, 쿠키, 크림 찹쌀떡, 그리고 물론 편의점산이긴 하지만 크루아상 등이 가득했다. 저 많은 걸 누가 다 먹을까 싶지만 일단은 그래도 먹을 입이 여섯 명 분 있으니 의외로 그럴 걱정은 없을 듯하기도 했다.
어쨌든 편안한 기분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성주관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갑자기 쥰이 묘한 표정으로 앞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일까 싶어 그쪽을 따라 쳐다본 미카의 눈에 낯익고 반가운 실루엣이 들어왔다.
"응아, 스승님?"
"이츠키 선배, 귀국하셨어요?"
"응, 근데 오늘은 스승님 스케줄 있어서 몬 만나는 날인 줄 알았는데… 헤헤, 내 오늘 운이 좋은 날이구마. 스승니임~!"
미카가 금세 활짝 웃으며 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실은 양 팔을 붕붕 흔들며 뛰어가고 싶겠지만 짐을 잔뜩 들고 있다 보니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잘 보니 슈는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빠른 걸음이었다.
"이츠키 선배, 뭐 화나는 일이라도 있을까요?"
가까워질수록 잘 보이는 슈의 얼굴은 눈썹이 잔뜩 치켜올라가고, 미간에 주름이 세게 잡히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두 뺨도 잔뜩 부푼 듯 보였다. 쥰의 말에 슈의 얼굴을 자세히 본 미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는 모리겠는데… 촬영장에서 머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스승님은 기준이 워낙 높으니께, 씅에 안 차는 사람하구 일하는 바람에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겠구마. 캐도 마, 그게 또 우리 스승님 장점 아이가. 내는 스승님이 완벽주의자라서 좋데이."
"하하, 뭐 그런 점에서는 우리 아기씨랑 비슷한 점도 있긴 하네요. 가끔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아이돌 일만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그런데… 응?"
둘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 슈가 문답무용으로 미카의 손에서 봉투 두 개를 빼앗아 들고 어디론가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흥!"
"응에에, 스승니임~! 그거 어데로 가꼬 가는지 알고는 가져가는 기가~?! 스승니임~!"
그 순간 쥰의 머릿속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퍼졌다. 뭔지 모르겠지만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이 두 사람과 계속 함께 있어서는 위험하다는 본능적 경고였다. 쥰은 자신이 들고 있던 봉투 두 개를 잽싸게 미카의 손에 떠넘겼다.
"카게히라 씨, 저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 잠깐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이거 프리티 5 모임에 가져다주세요."
"응아, 갑자기? 알았데이, 쥰 군! 같이 장 봐 줘서 고맙구마! 스승님! 내 두고 가지 마래이! 스승니임~!"
마찬가지로 묵직한 봉투 두 개를 다시 받아든 미카가 소리를 지르며 슈의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쥰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미카 혼자 봉투 두 개를 들고 자신을 따라오는 모습을 확인한 슈가 슬쩍 걸음을 늦추는 것까지 보고 나서 자리를 떴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판단이 적확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
"응, 응! 그래서 분명 지난번에 쥰 군이랑 미카 군이 같이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 간다고 나갔는데 미카 군 혼자서만 돌아왔던 거네. 어쩐지 혼자서 그 무거운 봉투 네 개를 다 들고 올 리가 없다 싶었는데, 문 앞까지만 들어다 준 거였네. 뭐, 나도 그 얼굴을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 올바른 판단이기는 했네."
며칠 후 카페 시나몬에서 프리티 5의 모임이 다시 열렸다. 한쪽 자리에 끼어 앉아 과자를 먹던 쥰이 문득 지난번에 있던 일이 떠올라 이야기를 늘어놓자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던 히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리도 "어쩐지~."하면서 다람쥐처럼 양 볼 가득 마카롱을 넣고 우물거렸다.
"그런데 이츠키 선배는 왜 화가 나셨던 걸까요? 설마 아끼는 카게히라 선배가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있어서? 으으, 설마 유닛 멤버를 부려먹었다고 프리티 5 모임에 항의하러 오시는 건 아니겠죠오? 저, 무대 위에서의 Valkyrie는 너무 멋있고 좋지만 그런 표정의 이츠키 선배 개인적으로 만나면 위압되는데에에…."
쿠키를 집던 아이라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아라시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 요즘의 그 사람, 그것하고는 좀 달라. 아마 질투가 난 거라고 봐. 내가 전부터 지켜봤지만 정말 지긋지긋하다니까, 구속 심한 남자친구. 아이 참, 싫어라."
"질투?"
토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라시가 다리를 꼬며 미소를 지었다.
"안 봐도 뻔해. 아마 사소하게 편의점에 장 보러 가는 것까지 자기랑 같이 가지 않았다고 질투가 난 거야."
"서, 설마 그런 걸로요?"
놀라서 물으면서도, 쥰은 마음속으로 납득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때 자신이 느꼈던 이츠키 슈의 그 묘한 살기는 자신을 향한 질투였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당시의 미카 역시 슈가 왜 그렇게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몰랐고, 또 미카 혼자 따라오는 걸 본 슈의 표정이 금세 누그러진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어처구니없게도 아라시의 말이 맞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지금, 프리티 5의 이번 모임에 미카는 부재중이었다. 이번 귀국에서 슈가 프랑스로 돌아가기 직전 마지막 날이라면서 하루 오프를 내서 쭉 함께 있다가 저녁에 공항 배웅까지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라시가 팔짱을 끼며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이것 봐, 이것 봐. 요만큼도 못 참고 냉큼 데려간 거. 생각보다 일본에 꽤 뻔질나게 드나드는 편인데도 미카쨩이 잠깐 서클 활동을 하는 것조차 봐 주지 않고 데려가다니, 절대 프리티하지 않아. 용서할 수 없어."
"서클 활동이라고 해 봤자 차 마시고 과자 먹는 게 전부인 것 아닌가요…."
"쥰 군, 방금 내가 묘한 말을 들은 것 같네?"
히요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Goddamn! …아무 것도 아닙니다."
쥰이 바로 꼬리를 내리자 마치 아무 것도 못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라시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작전회의를 하나 할까 해. 나, 아무래도 이대로 미카쨩을 보내주는 건 너무 억울하거든."
"보내주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루카미 선배?"
토리가 물었다. 아라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이 중에서 우리 졸업 후에도 미카쨩이 계속 성주관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전원이 서로 눈치만 보았다. 거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 봐, 누가 봐도 이츠키 선배가 미카쨩을 파리로 데려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건 뻔하잖아? 막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솔직히 나는 막을 수 없어. 아무도 막지 못하겠지, 그 '스승님'인데! 그러니까 하다못해 일본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우리와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게 하고 싶다는 거야!"
아라시가 단숨에 말을 쏟아내자 히요리가 즉각 찬성했다.
"나도 미카 군이 남자 보는 눈을 좀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네! 게다가 그 얄미운 인간에게 한 방 먹여 주는 작전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네."
"카게히라 선배가 해외에 가게 되면 아무래도 지금처럼 자주 만나진 못할 테니까… 아쉬운 건 사실이야. 나도 찬성."
"으으, 저는 좀 무섭지만… 내년엔 이렇게 다섯 명이 모두 모이는 일이 지금처럼 잦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동참할게요오…."
전원의 동의를 얻은 아라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두 이 계획이 프리티하게 성공하기를 빌며, 힘내 보자!"
"도대체 프리티하게 성공하는 게 뭔데요…."
쥰의 조용한 한 마디는 전원의 "파이팅~!"하는 외침에 묻혀버렸다.
***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이야!"
택시 안에 슈의 고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 내가, 일부러 스케줄 사이사이에 시간을 내서 만나 주겠다고 하는데! 그 fine의 귀여운 아이와 선약이 있다고 했을 때는 이해했지. ALKALOID의 시라토리와 '케이토반'의 스터디 모임이 있다는 말에도 보내 주었다. 요전번에는 나루카미와 갑자기 메이크업 시연회가 잡혔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승낙했고! 하지만!"
"응에에, 미안하데이, 스승니임…. 그치만 토모에 선배랑 공연 보러 오기로 한 거는 벌써 몇 달 전에 잡힌 약속이라꼬 내 몇 번을 말했나…."
어깨를 잔뜩 움츠린 미카가 슈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대꾸했다.
방금 슈가 거론한 사건들은 '물론'이라고나 할까, '당연히'라고나 할까, 프리티 5 멤버들에 의한 '프리티한 정의' 작전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미카 입장에서도 서클 멤버들 한 명 한 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당연히 싫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슈의 제안을 여러 번 연달아 거절하는 꼴이 되는 바람에 최근 들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참고로 순서는 당연히 슈가 참아 줄 수 있는 허용범위를 고려하여 선정하였으며, 히요리와의 공연 관람이 마지막이 된 이유 또한 '몇 달 전에 미리 예매해 놓은' 공연 티켓을 슈의 '갑작스러운 귀국' 때문에 낭비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였다. 히요리는 당연히 이바라에게 Valkyrie의 몇 달치 스케줄표와 오퍼 들어온 일 등의 정보를 미리 받아 날짜를 정했지만 이 또한 슈도 미카도 알 길 없는 이야기였다.
"글타고 공연 끝나자마자 택시 타고 와가 내를 잡아가믄 어카노…."
정말이지, 히요리와 대화를 나누며 로비를 빠져나오는 미카의 눈앞에 팔짱을 낀 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슈가 떡하니 나타났을 때는 너무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고 나가기 전에도 연락했기에 슈가 자신의 행선지를 알고 있는 것 자체는 놀랍지 않았지만, 그 표정이 너무나도 야차 같았기에 미카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미카를 발견한 슈는 성큼성큼 다가와 팔을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히요리가 "차나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미카 군, 다음 모임에서 보자는 거네!"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미카가 그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려고 하자 이번에는 아예 번쩍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스승님, 내 어디 안 도망간데이! 내 발로 걸을 테니께 내려 도~!"
미카가 버둥거렸지만 결국 슈는 공연장 앞에 세워져 있던 택시까지 미카를 옆구리에 끼고 와서는 뒷좌석에 밀어넣고, 자신도 들어와 앉은 후에야 표정을 풀었다.
"흥,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야. 네게 쓰려고 했던 시간을 벌써 몇 번이나 허무하게 날렸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군."
"응아아아…."
하기야, 지난번 메이크업 시연회는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잡힌 스케줄이었다. 해당 코스메틱 브랜드의 앰버서더는 미카가 아닌 아라시였고 당연히 아라시가 모델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라시는 자신이 화장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서, 모델이 필요하다고 미카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결국 그날 미카와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던 슈가 성주관 자기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방에 있던 이즈미에게서 전해 들은 아라시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항상 내한테 최우선순위가 스승님이라는 거 잘 알지 않나~. 그치만 내도 내대로 친구들이 있꼬, 이짝에서의 인간관계라는 기 있데이. 응아아아, 그치만 담부턴 안 그럴 테니께…."
"애당초, 카게히라. 네게 나 외에 대체 다른 사람이 왜 필요하다는 거지?"
"응아?"
갑자기 슈가 미카의 손목을 잡고 험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황한 미카가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사이 슈의 입에서 폭포처럼 말이 쏟아졌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한다면, 사자나미가 아니라 나를 불렀어야 하지 않나? 공부를 가르친다면 하스미보다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어. 나루카미와의 카페 순례도 좋지만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는 더 향이 좋고 맛있는 차와 베이커리를 팔고 있다. 공포, 영화… 정도는! 나도 사쿠마만큼 볼 수 있… 을 것이야, 아마도. 게다가 공연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있을까? 당연히! 예술에 대한 조예는 토모에보다 내가 훨씬 깊다고 자부할 수 있다는 것이야. 방금 네가 본 공연의 아티스트를 모욕할 생각은 없다만, 나라면 보다 네 예술에 도움이 되고 한층 더 고차원적인 공연을 소개해 줄…."
"곁에… 있어 주지도 않으믄서!"
넋이 나간 채 슈의 말을 듣고 있던 미카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슈가 움찔했다.
"내도 스승님 말고 아무도 필요 없다! 스승님만 있으믄 내는 천국이고 지옥이고 어델 가도 상관없데이! 그치만 스승님이 없지 않나! 내내 옆에 있어 주지도 않을 거믄서 와 내헌티 자꾸 희망을 주는데!"
"카, 게히라…."
"내는 원래 스승님 없으믄 암것도 몬하는 인형이데이! 그치만… 스승님이 혼자서도 머든 잘 할 수 있는 인간이 되라카니께, 그니께 스승님이 없어도 열심히 해 볼라꼬… 그치만… 사실은…."
미카가 슈의 허벅지 위로 엎드린 채 펑펑 울었다.
"스승님 없이 혼자 지내는 기 얼매나 힘든데… 와 자꼬 낸테 그러는 기고…. 꼭 곁에 계속 있어 줄 것처럼, 늘 옆에 끼고 이뻐해줄 것처럼…. 그러지도 않으믄서…."
입을 벌리려던 슈는 문득 조용히 입을 다물고 엎드린 미카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뜨끈하게 젖어 오는 허벅지의 온기에 묘하게도 심장이 저려, 슈는 나직이 속삭였다.
"조금만 참거라, 카게히라. 금방… 외롭지 않게 해 줄 테니."
어린애처럼 서럽게 우는 미카의 머리와 등을 커다란 손으로 토닥거리면서, 슈는 그렇지 않아도 이번 귀국 직전 하숙집 주인에게 부탁했던 일을 생각했다. 내년에 동거인이 일본에서 올 텐데 혹시 방 한 칸을 더 마련해줄 수 없는지, 또는 두 명이 살 수 있는 넓은 방으로 자신이 옮길 수 없을지….
상냥한 하숙집 주인은 흔쾌히 알아봐 주겠다고 말했으니 미카가 프랑스에 와서 살 곳이 곤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그 안을 꾸며 놓기만 하면 된다. 더는 이 아이가 혼자서 외로워하지 않도록,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기댈 것 없이 자신 하나만 찾으면 되도록.
전처럼 함께 살게 되면 동네 마트로 함께 장을 보러 가서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나란히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갓 구운 크루아상과 홍차로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함께 티타임을 가지고, 저녁식사 후 영화를 보다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기도 하고, 공부를 하거나 대본을 읽다가 잘 모르는 것이 생기면 자신에게만 물어볼 것이고, 문화생활을 할 때도 늘 곁에는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단둘이서, 오붓하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슈는 그런 미래를 생각하며, 미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앞으로 미카가 스승의 부재에 괴로워할 일은 결코 없으리라, 재삼 맹세하면서.
***
그 후, 슈가 귀여운 디자인의 프렌치 앤티크 가구를 보고 다닌다는 소문이 대학 친구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봄이면 그 가구에 잘 어울리는 검은 새끼고양이 같은 연인이 바다를 건너 찾아오리라는 이야기도, 대체 누가 먼저 퍼뜨린 소문인지 모르지만 친구들은 전부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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